내가 읽은 가장 슬픈 소설 구절
정미경의 소설 ‘나의 피투성이 연인’ 중 다음 부분을 읽을 때 나는 가슴이 쪼개지는 듯이 아팠다.
찔끔 눈물도 났던 것 같다, 눈앞이 흐려 다음 구절로 넘어가지 못했던 걸 보면.
죽음!
사별!
이제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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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벨이 울린 후에야 전화를 받는 건 유선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날 밤 두 시가 지난 시각에 벨이 울렸을 때, 그러나 유선은 설핏 든 잠에서 끌려 나와 처음 신호가 울리자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그는 모임이 있어 좀 늦을 거라고 아침에 얘기하고 나갔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를 끌어안고 일찍 잠이 들었었다. 불길한 예감 같은 건 없었다. 수화기 속에선 자동 응답기의 기계음과 흡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였고 기계음은 아니었다.
“김주현 씨 댁입니까?”
“그런데요?”
“김주현 씨·········· 사망입니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현실적인 어떠한 질문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병원 이름과 위치를 얘기하고는 전화는 끊어졌다. 어쩌면 한 사람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은 그런 식으로 가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 시각에 왜 그는 문호리에 갔던 것일까.
.......
혼자서, 그것도 술을 조금 마신 상태였다고 한다. 굴곡이 심한 국도 변의 가로수를 그가 탄 차가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했다. 여름 새벽이면 그곳은 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습 안개 지역이라고 경관이 일러주었다.
......
대부분의 빈소가 그러하듯, 급하고 준비되지 않은 채 차려진 그의 장례식에서 유선이 느꼈던 그 감정들. 그때 제 속에서 들끓던 감정들을 그러나 유선은 이름 붙일 수 없어 더 혼란스러웠다. 왜, 이토록 갑자기, 떠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듣게 한 사람에 대한 복잡한 감정, 슬픔보다 더한 어떤 감정이 그때에도 있었다.
한숨도 못 잔 아침부터 조문객들이 밀려왔다. 잠이 오진 않았는데 몸은 꿈속인 듯 둔하게 움직였다. 구석에 잠시 앉아 있을 때 누군가 유선의 손에 피로 회복제 병을 하나 쥐었다.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놓치면 안 되는 어떤 것인 듯 유선은 그것을 오른손에 꼭 쥐고 있었다. 단단히 쥐고 있었는데도 그것은 자꾸만 손에게 미끄러져 내렸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걸 주워서 뚜껑을 비틀어 열고 다시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라도 마셔야지.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꼭 쥐고 있으려 했는데 또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확실히 기억나는 건 없다. 유선은 검은 테두리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바깥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사이사이로 누군가가 와서 끊임없이 말을 시켰다.
관은 무엇으로 주문하시겠습니까?
무엇으로 해야 되나요?
뭐 대략 세 가지쯤 됩니다. 오동나무가 가장 비싸지만 홍송도 괜찮습니다. 가격은 여기 적혀 있습니다. 오전 중으로 빨리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그 남자가 가고 나자 또 다른 누군가가 왔다. 아니 똑같은 남자였는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도 얼굴도 기억할 수 없었으니까.
음식을 주문해 주시겠어요? 준비할 수 있는 음식은 이렇습니다. 메뉴판을 두고 갈 테니까 체크해서 주세요.
책받침처럼 코팅된 그 판에는 음식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유선의 옆으로 바짝 다가서서 책받침을 뺏었다.
세 가지나 다섯 가지 정도가 괜찮아요. 전은 삼색전으로 하시면 모양이 나지요. 마른안주는 따로 준비하셔야 되고요.
그렇게 해 주세요.
여름이니까 돼지 머릿고기는 조금만 주문하세요. 술이나 음료수는 박스 단위로만 공급됩니다. 아이스박스는 저희가 대여해 드리고 얼음 비용은 따로 계산해야 합니다.
유선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삼색전, 도라지무침, 육개장. 반듯하게 적혀 있는 음식 이름들을 보자 처음엔 어지러웠고 곧 토할 것 같았다. 유선은 드링크 병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작고 단단한 그 병 외에는 아무것도 현실감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슬픔을 잊게 하는구나. 유선은 눈으로 시동생을 찾았다. 사람들이 꿈속에서처럼 둥둥 스쳐 지나갔다. 손을 내밀어도 만져질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 다가와서 손을 붙들었을 때, 남편이 죽었는데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여자가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병을 나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손이 비자 불안해졌다. 무엇이든 붙잡고 있고 싶었다.
이틀간 눈을 붙이지 못하다가 발인하기 전, 새벽녘에 상 모서리에 기대어 잠시 졸았다. 유선은 그 짧은 사이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주현은 완벽하게 건강했고 그의 죽음은 꿈 속의 꿈이 되어 있었다.
아, 당신이 죽은 꿈을 꾸었어.
그 말을 할 때,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토록 다행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처음인 듯했다. 가슴이 터질 듯한 행복감에 전율하는 순간 눈을 떴다. 왼쪽 이마에 얹고 있던, 형광등 불빛에 파리한 제 손을 내려다보며 그것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절대로 변경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미칠 듯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경남대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