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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자료

(도덕발달) 평등

작성자김원중|작성시간11.04.11|조회수258 목록 댓글 0

윤리학과 교육 (R.S. 피터즈 저. 이홍우 역. 교육과학사)

 

 

제 4 장 평등

 

*(108쪽)

오늘날까지 인간의 평등대우를 정당화하려고 할 때에는 일단 ‘사람들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문제가 왜 하필이면 이러한 방식으로 제기되어야 하는가? 어째서 ‘사람들을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는가? 인간의 평등 원리를 약간 소극적으로 고쳐 표현해서 ‘어떤 사람도 특별한 경우를 일일이 고려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낫게 취급되기를 요구할 수 없다’고 해보자. 이러한 경우에는 사람들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경우에 이유를 대야할 책임은 사람들을 다르게 취급하고 싶은 사람에게 있으며, 그 사람은 그러한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 (104-106쪽)

평등의 원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끔 평등의 원리를 인간의 본성에 관한 어떤 사실적인 법칙과 결부시킨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는다. 만약 그 사람들이 참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의 사실적인 법칙으로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무의미하거나 명백히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평등(equal)'이라는 말은 '동일(same)'이라는 말과 같이, 사람이나 물건을 비교하는데 사용되며, 사람이나 물건은 어떤 기준에 비추어서만 비교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비교하는 기준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너무 많은 것을 포괄하는 말이기 때문에 하나마나한 말인 것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사람들을 어떤 특정한 기준에 비추어 비교했을 때 그 나타나는 결과가 같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그 말은 언제나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장, 체중, 지능, 감성 등의 기준에서 명백히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이와 같이 하나의 사실적인 법칙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록 문법적인 형식으로 보면 사실적인 진술이지만, 논리적인 기능으로 보면 그것은 대개의 경우 사실적인 법칙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법칙을 제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말은 곧 ‘인간은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대담하고 엄한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 말은 모든 인간이 항상 문자 그대로 똑같이 취급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은 그들의 수입에 관계없이 똑같은 금액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뜻인가? 육체노동자들과 정신노동자들이 정량급식제로 똑같은 양의 음식을 배급받아야 한다는 뜻인가? 천재아가 정신박약아와 똑같이 취급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물론, 어떤 생활 영역에서는 이렇게 획일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취급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현명하지도 않으며 정당하지도 않다. 천편일률적인 동등이 아닌 평등 또는 정의의 원리에 의하면, 만약 사람들이 다르게 취급받아야 할 근거가 있다면 다르게 취급해 주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듯이, 평등하지 않은 것을 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평등한 것을 평등하지 않게 취급하는 것에 못지 않게 부정의(不正義, injustice)를 초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배분적 정의의 원리는 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취급해야 하고 평등하지 않은 것을 평등하지 않게 취급해야 한다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억지처럼 들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불분명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 중에서 ‘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은 동일한 ‘범주 내(範疇內, within a category)’에서의 취급을 말하는 것이고, ‘평등하지 않은 것을 평등하지 않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은 상이한 ‘범주 간(範疇 間, between categories)'의 취급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뜻이 분명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신박약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아동들은 똑같이 취급되어야 하며, 이들은 또한 하나의 범주로서 천재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아동들과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 범주 내 평등의 원리에 의하면, 결국 규칙은 규칙이며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물론 예외의 범주가 나타나면 문제는 다르다. 범주 간 평등의 원리에 의하면, 사람들을 상이한 범주에 배치해야 할 경우에는 그렇게 상이한 범주에 배치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물론 범주 간 평등의 경우에 범주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나 범주 내 평등의 경우에 예외를 허용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그렇게 하는 합당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신박약아와 천재아의 지능의 차이는 어떤 경우에 그들을 차별대우할 합당한 이유가 되는가? 아마 음식을 분배하는 경우에는 합당한 이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분배하는 경우에는 어떠한가? (영국의) 1944년 교육령에는 연령과 적성과 능력의 차이에 따라 아동들은 상이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있다. 연령과 적성과 능력의 차이에 의한 구분은 교육을 실시하는 데에 중요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가? 배분적 정의의 원리는 그 자체로서 이들 기준의 적절성 여부를 지시해 주지는 않는다.

 

*(107쪽)

일반적인 특성에서의 차이가 차별대우의 근거로서 합당한지의 여부는 분배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분배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111쪽)

정의는 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원리이다. 정의라는 원리에 기본이 되는 생각은 의미 있는 차이가 있으면 차별을 해야 하지만 의미 있는 차이가 없거나 무의미한 차이에 입각해서는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평등 원리가 가지고 있는 소극적인 의미(‘차이 없이는 차별 없다’)가 중요하다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생각과 관련해서도 충분히 인식되어 왔거니와 평등 원리에 관한 종래의 논의에서도 이 점은 잘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비하여, 평등 원리의 적극적인 의미(‘차이 있으면 차별 있다’)는 덜 강조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하지 않은 것을 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평등한 것을 평등하지 않게 취급하는 것에 못지 않게 부정의(不正義)를 초래한다’고 지적함으로써, 그 적극적인 의미를 강조하였다. 다시 말하면, 합당한 근거에 의해서 범주를 따로 설정하는 것은 이미 설정된 동일한 범주에 속한 사람들을 공평하게 취급하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등 원리는 적극적인 의미에서나 소극적인 의미에서나  '근거의 적합성'이라는 생각과 관련되어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평등 원리가 다른 원리들을 만들거나 적용하는 원리로서 ‘형식적(formal)'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평등 원리에 의하면, 만약 적절한 차이가 있다면 차별대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어떠한 차이가 적절한 차이인가 하는 것은 정의의 원리 그 자체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의의 원리 그 자체는 또한 이미 설정된 규칙에 예외를 허용하는 근거로서 어떤 근거가 적합한지를 결정해 줄 수도 없다.

 

* (131-132쪽)

'교육의 기회 균등'이라는  주장을 보다 올바로 이해하자면, 그것은 기회와 관련 없는 조건 (예컨대 재산) 때문에 교육의 기회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해석되거나, 아니면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할까를 결정할 때 그 근거가  합리적인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 (132쪽)

평등주의자들은 인간에 관한 사실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합당한 차이 때문에 차별 대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 한, 사람들을 평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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