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과 교육 (R.S. 피터즈 저. 이홍우 역. 교육과학사)
제 8 장(221쪽) 이후
* 만약 교사가 다른 사람들을 자기가 이끄는 대로 어디든지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는 특이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교사가 권위주의적 또는 독단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데 따르는 위험은 그만큼 커진다고 볼 수 있다. 학교나 청소년 단체에는 그러한 종류의 ‘피리 부는 사람(Pied Piper: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몰고 다니는 사람, 즉 무리 앞에 서서 이끌고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해당 분야에서의 능력과 식견을 얼마나 쌓았는가, 그리고 그들의 성격적 특징을 얼마나 올바른 목적에 사용하려고 하는가에 따라 교직에 해독이 되기도 하고 축복이 되기도 한다. 교사 중에는 자기의 그러한 성격적 특징이 아동에게 통제력을 행사한다는 데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동을 영구적인 예속 상태에 붙잡아 두려고 하고, 아동이 다른 데로 애착을 돌리면 질투를 느끼기조차 한다. 그들은 아동에게 강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고 또 그것을 기화로 자기 마음대로 학교 규칙을 조이고 늦추고 하기 때문에 학교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반면에 그러한 자질을 가진 교사 중에는 그것을 교사로서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으로서, 그의 성공 여부는 주로 그의 추진력, 능력, 겸손, 그리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 등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사람을 끄는 힘 - 말하자면 내적인 정열이라고 할 만한 것 - 이 있어서, 그것이 그의 교과에 대한 능력과 바깥으로는 권위의 후광을 높이는 원천이 된다. 그는 학생들의 심리 상태가 어떻게 되어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학생들로 하여금 교사 자신에게 애착을 가지는 상태에서 교사가 하고자 하는 일(그것은 학생이 해야 하는 일과 동일하다)에 애착을 가지는 상태로 나아가도록 해 줄 수 있다. 프로이드가 발견한 감정 전이는 이러한 사태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288-289쪽)
* 전문직에 있는 사람은 전문 지식과 장기간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특수하게 자신의 직책이나 의무에 따르는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비전문적인 행위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전자의 요구 조건과 관련하여 교사는 이중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그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교과의 발전에 맞추어 늘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르치는 일의 방법적인 면, 예컨대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등에도 숙달되어 있어야 한다. (346쪽)
* 학교가 잘 운영되는지의 여부는 순전히 학교를 운영하는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원리에 일치하는가에 비추어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학교가 아동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혹은 아동의 생활방식을 발달시키는 데 얼마나 좋은 자극이 되는지에 비추어서도 판단해야 한다. (349쪽)
* 다른 사람들을 세뇌하든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작하지 않고 그 삶의 패턴을 결정해버리는 경우에 그것이 인간존중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독립적인 행위자로서, 다시 말하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로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 사람들의 느낌이나 세계관을 무시한다는 뜻이다. 인간존중의 원리를 위배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의도, 결정, 사정, 선택 등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거나, 고의로 다른 사람들의 자기결정 능력을 방해하거나 짓밟아 버리는 것이다. ..... 그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결정의 주체로서, 다시 말하면 가치선택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미래와 역할에 관하여 스스로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주체로서 누려야 할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223-224쪽)
* 인간들이 스스로를 ‘인간’으로서, 다시 말하면 가치화, 결정, 선택의 구심점으로서 지각하게 되는 데는 조건이 필요하다. 즉, 의식이 개별적인 구심점으로 ‘개인화(individuated)’ 되고 그것이 개별적인 신체나 개별적인 관점과 결부되어 사회적 중요성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그러한 존재로 지각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으로 발달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된다’는 것은 한 사회가 개인의 관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서 파생되는 개념이다. 개인들이 개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한다든가, 그들의 업적에 긍지를 느낀다든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세밀히 검토하고 선택한다든가, 개인 특유의 정서적 반응을 하는 것 - 한 마디로 말하여 ‘인간’이 된다는 것 - 과 관련되는 모든 특성들을 나타내는 것은 오직 사회가 그렇게 하도록 권장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에게 그런 권리를 부여하는 도덕률이 형식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들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그런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인간’으로 취급되지도 않을 것이요, 스스로 그렇게 취급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비록 사회가 개인의 관점을 중요시하고 따라서 ‘인간’이라는 개념을 일반적으로 인정해 주는 경우에도, 개인에 따라서는 체계적인 좌절과 경멸을 받아온 나머지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객관적으로 볼 때 스스로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상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즉 개인은 인간이라는 개념은 가지고 있지만, 자기가 처한 특별한 환경 때문에 그 개념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수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역사상 노예들은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개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권장된다. 그들은 개인으로서의 행동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되어 있으며, 이와 동일한 근거에서 찬양과 비난을 받는다. 그들은 자기가 잘한 일에 대하여 긍지를 느끼며, 잘못한 일에 대하여 죄책과 회한을 느낀다. 그들은 자기 운명의 결정 주체가 되도록 권장되며, 사실상 바로 그러한 주체가 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순히 한 집단의 성원일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하나의 개별적인 인간으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마음 흐뭇한 자긍심을 안겨주는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자기가 사태에 대하여 어떤 실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데서 따라오는 주인 된 기분에는 일을 잘 못 했을 때의 결과에 대한 우려가 섞여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인의 자율성은 사회에 의하여 가치있게 된 것이지만, 점차로 사람들은 그것과는 별도로 그 자율성 자체의 가치 때문에 그것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자율성 그 자체에 가치있는 것이 별로 없다면, 어째서 사회가 개인의 자주적 견해에 그토록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은 해답하기 어려운 것이다. (225-226쪽)
* 자연법이나 자연권, 또는 정부와 국민 사이의 사회계약 등의 원리는 영국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영국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그들의 법관이란 오직 관례 속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기본법 - 예컨대 재산권과 같은 구체적인 권리를 보호해주는 기본법 - 을 해석하는 일을 할 뿐이며, 영국 국민은 왕이 그들의 조언과 동의를 구하는 것에 익숙해있었다. .... 이러한 전통이 있기 때문에 영미 민주주의에서의 국민의 동의라는 말은 정부가 - 비록 투표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하더라고 - 국민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 권위는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권위는 도덕적으로 타당한 것이 되어야 하며, 그것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 (331-332쪽)
* 만약 고전적 공리주의자들이 말한 바와 같이 행복만이 입법과 올바른 행위를 통해서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이라면, 또한 행복을 얻는 수단이 측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정치적 결정은 기술적인 결정이 될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필요한 계산을 하기 위한 컴퓨터 등의 특수 장비를 갖춘 사회과학자들에게 맡기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토론이 필요하며 정부가 정책의 정당성을 공적으로 옹호해야한다는 사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함부로 이리저리 몰리지는 않겠다는 몇몇 개인들의 자주성이나 과감성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정치적 결정의 핵심에는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가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어 나가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토론하고 조절하는 속에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33쪽)
* 공정, 자유, 이익의 고려, 타인 존중 등의 기본 원리는 이성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그 논리적인 가정으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원리는 실질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절차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기본 원리는 도덕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데에 절차적인 틀이 된다. 영미 민주주의의 생활방식은 이러한 근본원리의 가정 위에 성립하고 있으며, 따라서 거기서는 정치적인 문제를 힘이나 자의적인 명령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합리적인 토론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333쪽)
* 민주적인 정부 체제가 슬로건 이상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요건으로서 사람들이 ‘민주’라는 추상적 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데 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적절한 경험을 했어야 한다. 원리를 명확하게 세우는 것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러나 도덕적 원리를 구체적 사태에 지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또 그 두 가지 중의 어느 것과도 다른 일이다.
민주적 생활방식에 필요한 둘째 요건은 절차적 원리의 수준에서 상당한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공정, 자유, 이익의 고려, 타인 존중 등의 원리를 정당화하는 동안에 우리는, 사람은 이성에 따라 행동하기로 작정한 인간이라든가 다른 사람과 함께 올바른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추상적인 말을 해 왔다. 민주적 생활방식이 현실로서 실현되려고 하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는 선전이나 욕설로 타락할 것이며, 사람들은 자기와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을 악당 내지는 구원받아야 할 길 잃은 영혼으로 취급할 것이다. ....
민주주의의 심리적 요건으로서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공공생활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이다. .... 만약 공공생활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하면 민주주의 제도는 위험에 봉착한다. (337-338쪽)
* 민주적 생활방식이 공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정치적 절차가 필요하다.
(1) 이익에 관련된 집단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절차
(2) 토의 및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절차
(3) 공적 책임을 묻는 절차
(340쪽)
* 민주주의란 계속 지켜나가기가 지극히 어려운 생활방식이다. 민주주의의 바탕인 도덕의 근본 원리들 - 공정, 자유, 이익 고려 등의 원리들은 인간의 강렬한 원시적 감정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한다. 인간 존중이나 인류에 대한 동포애 감정 등, 민주주의의 저변에 깔린 감정은 합리적인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들이 공무에 대하여 지식과 관심을 가지고서 제도 운영에 널리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또한 흔히 말하는 바와 같이 개인의 자유가 침범 당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356-3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