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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성막이야기

성막의 역사와 법궤의 이동 경로

작성자산소|작성시간09.05.28|조회수6,465 목록 댓글 0

 

 

 

성막의 역사와 법궤의 이동 경로

 

A. 성막의 역사

 

1. 광야 생활 동안의 성막의 역사 :

 

    시내산 :

        모세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성막 건축에 관한 계시를 받았는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양식까지 자세하게 지시해 주셨다(출25:1-31:11).

         이 성막은 시내산에서 애굽을 떠난지 2년째 되는 해, 곧 제2년 1월 1일 유월절 2주전에 완성되었다(출40:2, 17).

       성막이 봉헌되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구름이 성막에 가득하였다.

         세워진 성막 주위에 레위 자손들이 진을 쳤는데 고핫 자손은 남쪽에, 므라리 자손은 북쪽에, 게르손 자손은 서쪽에 진을 쳤고, 동쪽에는 모세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민10:33-36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나 여행할 때, 그들의 앞에 법궤가 앞장서 행하며,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아래의 그림은 시내산 성막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성소 위로 불기둥(낮에는 구름기둥)과 번제단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모습이 보인다. 

성막(시내산 성막)의 모습

   

         이후 성막은 시내산에서 약 50일간 정주한 후, 출애굽 제2년 2월 20일에 이동을 시작하였다(민10:11).

 

[※ 참고자료]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할 때는(출40:36) 법궤와 성막과 그것에 속한 부속품과 기구들을 정리하여 각각 맡은 부분대로 레위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행진하였다. 먼저 남쪽에 진을 친 고핫 자손은 성막 안의 모든 기구를 관장하였고, 번제단, 진설병상(떡상), 정금등대(금촛대), 물두멍, 분향단성막의 기명(器皿; 기물)들을 어깨에 메고 운반하였다(민3:29-32).

 

   북쪽에 진을 친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 그 밖의 모든 기구의 운반책임을 맡았다.

 므라리 자손들도 아론의 아들(이다말)의 감독 아래서 일했다(민3:36-38).

 

   30세 이상된 8,580의 장정으로 구성된 레위 자손은 성막과 기구(성구) 등 성막에 관한 모든 것을 보관하였다.

 저들은 제사장을 도와 성막 안에서 행하는 거룩한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다(민3:9).

 

 레위 자손의 진 바깥에 열 두 지파가 진을 쳤다.

 동쪽에는 유다의 진으로 유다잇사갈스불론으로 형성되었고(민2:1-9),

 남쪽에는 르우벤의 진으로 르우벤시므온으로 형성되었다(민2:10~17), 그리고

 서쪽에는 에브라임의 진으로 에브라임납달리므낫세로 형성되었고(민2:18~24),

 북쪽에는 의 진으로 납달리아셀로 형성되었다(민2:25~31).

 

   12지파는 4대(四隊)로 형성되었으며 각 사대에는 세 지파가 있었고, 거기에는 족장과 기(旗)가 있었는데,

 이 네 지파들은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로서 장차 구원받을 모든 피조물을 암시하기도 한다(계4:6~11).

 네 개의  진은 성막 주위의 사면에 각각 위치하고 있었으며, 레위 지파를 포함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총 인구수는 603,550명이었는데, 이는 군인이 될 만한 장정만을 계수한 것이다(민2:32~33).

 레위 지파를 포함하지 않고서도 12지파가 된 것은 요셉 지파가 그 두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가데스 바네아 :

 시내산에서 출발한 이스라엘은 결국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게 되는데('출애굽경로' 참조 지도 보기)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한 구체적인 지명들은 민33:16-49까지(출애굽 원(元)년1월 15일 라암셋을 출발하여 아벨싯딤까지 41개 장소)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적인 처사(민13:1-14:33, 12족장의 40일간 여리고 탐지)로 인해 약38년간 가데스 바네아에서 배회하게 된다. ( 아래↓'Box' 참조)

   그러나 이 기간 중에 그들은 통례적인 예배(제사)가 드려지지 않았다(암5:25).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행진케 하셨고, 둘째는 대적들과 전쟁 중에 있었고, 셋째는 성막을 정상적으로 건립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민1장-14장까지는 성막 건립의 기록으로 끝난 출애굽기에 이어 출애굽기에 이어

     출애굽 제2년 2월 2일까지의 사건부터 계속해서 연결된 사건의 기록이며,

 

     민15:1-19:22까지는 신2:14에 기록된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 동안'의 기록이다.

 

     그리고 민20:1-29부터 광야 방황의 38년째이자 출애굽한지 40년째되는 해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란 광야의 가데스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후(민13장-14장)

     38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재차 가데스 바네아도착했다.

 

     (두번째의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출애굽 제39년, 가나안에 입국하기 1년 전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따라서 이 부분의 기록은 출애굽 제2년부터 제39년 사이의 약38년간의 광야 여정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와 레위인들은 항상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으며 진행할 때에도 성막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민2:1-34; 3:23,29,38; 9:17-23).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막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단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2. 가나안 정착 후의 성막의 역사 :

 

      길갈 :

       가나안 땅에 대망의 첫 발을 내딛은 후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요단강을 건넌 후 제일 먼저 정착한 곳은 여리고 근처의 길갈이다(수4:19; 5:10; 9:6; 10:6,43).

        그곳은 사람들이 살지 않았고 사람의 무덤으로도 더럽혀지지 않은 장소였기에 성막의 임시 정착 장소로는 적합하였다.

 

     실로 :

      가나안 정복이 일단락되자 길갈에서 약 32Km정도 떨어진 지점의 에브라임 지파의 영지인 실로로 성막을 이동시켜 정착했다(수18:1,10; 19:51).

         (※   실로가나안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전국 각처에서 모이기에 용이한 곳이었다.)

      그 이후로부터 성막은 영구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으며, '여호와의 전(Temple)'으로 불리어지기도 했다(삼상1:9; 3:3)

      사무엘 당시에 실로에는 문과 문설주가 있는 성소가 있었다(삼상1:9; 3:5).

         그러나 사사 시대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배교를 거듭하였고, 성막 예배는 형식적으로 수행된 적이 많았다.

         그 당시 사무엘은 4대 성읍(라마, 미스바, 벧엘, 길갈)을 순회하며 통치하였다(삼상7:15-17).

         이는 곧 지성소가 비지역화됨을 말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신앙생활의 큰 혁명이었다.

 

 

    (Noph) :

      성막에 대한 다음의 언급은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던 에서 볼 수 있다(삼상21:1-9).

         제사장 아히멜렉사울을 피하여 요나단의 도움으로 망명해 온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자다(삼상21:1-6).

         이 사실로 볼 때 사울 시대에 성막이 땅에 있은 적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울 왕에 의하여 에서 모든 제사장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 아히멜렉의 아들 중 아비아달 하나만이(삼상22:20) 살아 남아 몇 년간 있었다.

 

 

     두 개의 성막(기브온 산당과 시온에 있는 다윗의 궁전) :

       다윗왕 시대에 가서야 성막이 기브온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왕상3:2-4; 대상16:39; 21:29).

         당시 기브온에 있었던 성막은 모세 생존 시대에 만들어졌던 성막과 동일한 것으로 추론된다(대하1:3).

 

       한편 다윗은 자신의 궁전을 시온에 건축한 후에 하나님의 법궤를 그곳으로 옮겼는데, 거기에는 법궤를 두기 위한 성막도 구비되어 있었다(삼하6:16,17; 대상15:25-29). 그러므로 그 당시에 성막이 2개 있었던 셈인데 기브온에는 제단을 구비한 성막이,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법궤를 안치한 성막이 있었던 것이다(대하1:3,4).

 

        이 후 기브온 제단에서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사자의 칼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듯 단일 중앙 성소인 성전이 세워지기 이전의 상황에서는 여러 곳에서의 제사와 예배가 용인된 것으로 짐작되나, 성전 건축 이후의 산당 제사는 엄격한 금지 사항이었다(왕상15:14).

 

    솔로몬 성전으로 옮기움 :

       솔로몬 왕 때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성전이 건축되고 법궤와 기타 거룩한 기구들도 성막에서 성전으로 옮겨졌다(왕상8:1-4; 대하5:3-5). 회막회막 안의 기타 성구들은 새 것으로 모두 대치 되었기 때문에(왕상7:15-51), 성전의 골방들에 보존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성막이 성전으로 대치됨으로 약 500년에 걸친 성막의 역사는 끝나게 된 것이다.

 

3. 성막과 성전의 수난사

       성막의 성구와 유품들은 솔로몬 시대 이전에는 전쟁, 재화 등으로 유실되었다.

         성경에는 이러한 전쟁과 재화가 백성들과 함께 성전에도 미친 흔적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대하12:9; 28:24)

         성전은 두 번 탈취 당했는데 첫 번째는 여호야김 왕(대하36:7)때이고, 두 번째는 여호야긴 왕(대하36:10)때이다.

 

       때로 성전이 소화된 것은 대하36:19 이하에 나타나 있다.

         (대하36: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이것은 솔로몬성전의 최후도 되고, 모세의 장막의 최후도 되지만 모세 성막의 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성막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성막의 변천  성경적 시기 성막의 위치                     내     성경적 근거
1. 시내산성막 모세시대 시내산 1)출애굽 후 2년 유월절 2주일전
   하나님의 명령으로 성막이 세워짐
출40:2
2. 길갈성막 여호수아시대 길갈

1)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 옆 여리고 근처

  에 세워짐

수4:19, 9:6
10:4,6
3. 실로성막 사사시대 실로 1)길갈에서 32Km떨어진 실로로 이동함
2)이때까지 성막의 구조와 기구는 그대로
  보존되었으나 그 후 벧엘에는 법궤(언약
  궤)가 실로에는 성막이 있었음
암5:26
4. 놉성막 사울시대 1)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던 놉에 있다가
  사울왕에 의해 기브온으로 옮겨짐
삼상21:1-6
대상16:39
대상21:29
5. 예루살렘성막 다윗시대 예루살렘 1)성막의 모형인 장막은 시온에 두고
  법궤는 다윗 성으로 옮겨짐
삼하6:17-19
대상16:1
6. 두 개로 나눠진 성막 다윗시대 기브온과
예루살렘
두 곳
1)기브온과 예루살렘 두 곳에 성막이
  있게됨 (기브온-제단, 예루살렘-법궤)
2)법궤와 제단은 성전 건립 후 하나로
  통합됨
왕상3:1-4
대하1:5-6
왕상8:4
7. 솔로몬성전 솔로몬시대 예루살렘 1)성막은 솔로몬성전시대 이전에 전쟁,
  재화 등으로 파괴 또는 유실됨
2)솔로몬성전의 파괴(모세성막의 최후):
  첫번째 파괴(여호야김왕-대하36:8)
  두번째 파괴(여호야긴왕-대하36:10)
왕상8:1
삼상4:11
왕하24:13
단1:1-2, 5:2
대하36:18

 

 

B. 법궤의 이동 경로

 

 

 

 

   성막이 실로로 이동하여 정착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성막이 분해되고 제단이 새로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성막이 분해되고 제단이 새롭게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레위자손이 분산됨에 따라 새로운 제단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제단 분립의 시작이 되었고(삿19:1-31) 벧엘법궤가 이동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삿20:27).

 

 

      

 

       법궤는 휘장으로 쌓여 있었고(민4:5),

       법궤와 2개의 단은 대제사장의 감독 하에 레위지파의 고핫 자손에 의해서 운반됨(민3:31,32; 4:15)

 

       ※ 분리 해체된 또 다른 성막의 기구들은 각 지파의 족장들이 제공한(민7:2-3) 덮개가 달린 수레 여섯과

       소 12마리에 의해 운반되어졌는데 각 수레마다 소 2마리가 함께 수레를 끌었다.

 

 

 

1. 실로 :

    엘리 제사장 때 법궤실로에 있었다(삿18:31; 삼상4:3).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가 존재하고 있는 실로의 제단에 나아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무시하였다. 결국 이것이 발단이 되어 그들은 이방의 풍속과 우상숭배에 쉽게 물들게 되었고 결국에는 이스라엘의 선민으로서의 정체성마저도 잊어버리게 되는데 이것은 사사기의 전체 흐름(범죄→하나님의 심판→회개→사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악순환이 거듭 반복)이기도 하였다.

 

  1-1 벧엘 :

     삿20:25-27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벧엘로 올라가서 화목제번제를 드렸으며, 하나님의 법궤도 거기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수18:1에서는 실로에 성소가 세워졌다고 나와있고 삼상1:3; 2:14; 3:21; 4:3에 의하면 법궤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기게 될 때까지 실로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삿21:9에는 여호와의 절기가 매년 실로에서 열린다고 기록되었다. 이러한 여러 사실을 종합해보건대 성소와 법궤는 원래 실로에 있었으나 삿20장에서의 이스라엘의 심각한 내전(內戰)이 수행되는 동안만 법궤벧엘로 옮겨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 에벤에셀 :

   암울했던 사사시대 말기의 블레셋과의 전쟁은 법궤에벤에셀로 옮겨간 배경이 되었는데(삼상4:1) 사울 왕 당시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 와중에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법궤를 미신적으로 사용하려고 하다가 죽임을 당하였으며, 결국 법궤는 빼앗기게 된다(삼상4:1~11).

 

 ※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가 전쟁에 임한 예는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한다(수6:12~16,20; 섬성4:3,4). 그러나 법궤는 그 임재의 상징일 뿐이고 그 궤 자체에 어떤 신통력이 깃들어 있어서 전쟁에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보다 법궤를 더 의지함으로써 종종 전쟁에 패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였다(삼상4:5,11,17~22).

 

3. 아스돗 :

   에벤에셀에서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아스돗으로 가져다가 다곤의 신상 앞에 두게 되는데 그 일이 있은 후 다곤의 신상은 부서지고 독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원인모를 고통을 당하게 된다(삼상5:1-7).

 

 

4. 가드 :

   하나님을 모독하던 블레셋인들에게 하나님은 연속적인 징계를 통하여 그들을 공의로 징벌하시는 심판자이심을 밝히셨다.

이로인해 블레셋 다섯 방백들은 긴급대책회의을 열어

법궤를 다곤 신당이 없는 가드로 보내는 것으로 결정한다(삼상5:8).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독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자

또 다시 에그론으로 옮겨지게 된다(삼상5:9-10).

 

 

 

 

 

5. 에그론 :

   에그론 지방의 사람들 역시 앞서 당한 동일한 고통을 그들로 당하게 되자 법궤를 이스라엘의 본국 벧세메스로 돌려보내게 된다(삼상6:2-12).

 

※ 이렇게해서 언약궤가 이방 땅인 블레셋 지방에 머물러 있었던 기간은 7달이었다(삼상6:1).

 

6. 벧세메스 :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하며 제사도 드렸지만 법궤를 들여다 본고로 (오만)칠십인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삼상6:13-19).

  

7.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안착 :

   법궤의 최종 귀착지는 옛날 법궤가 위치했던 실로에서 가까운 기럇여아림으로 결정되었다.

법궤는 이곳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보관되었다고 기록되었다(삼상6:20-7:2).

 

8. 오벧에돔의 집 :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20년을 머문(삼상7:1-2) 하나님의 법궤는 또 한 번의 블레셋과의 전쟁 때에 사울 왕의 명령에 따라 법궤를 기럇여아림에서 베냐민 기브아로 옮겨와 전쟁을 치르게 되고 여기서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둔다(삼상14:16-18).

그 후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다윗으로 바뀐 뒤 기럇여아림에 있던 법궤는 다윗성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 때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아효가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예루살렘(다윗성)으로 옮기는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상사가 발생하게 되는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들이 뛰므로 법궤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법궤를 붙들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웃사법궤를 만지는 실수를 범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그 일로 인해 웃사는 그만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삼하6:1-7).

이 사건으로 인해 다윗법궤예루살렘(다윗성)으로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 거기서 3달을 지내게 되는데 법궤로 인해 그 집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삼하6:9-11).

 

9. 예루살렘 다윗성 :

   오벧에돔의 집이 법궤로 인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지자 다윗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기쁨으로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다윗성)으로 옮겨와 자신이 준비한 장막가운데 안치하게 된다(삼하6:13-17a).

다윗법궤를 무사히 운반한 데 대해 감사하고 아울러 법궤를 모신 장소를 성별하기 위한 봉헌식을 드렸다(삼하6:17b-19).

 

※ 이렇게 하나님의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진 후 다윗에 의해 다윗성(예루살렘)으로 옮겨지기까지 사실상(삼하6:3,12,17) 약 40년간 실로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10. 솔로몬 성전 :

    솔로몬 왕 때에 성전이 건축되고 법궤와 기타 거룩한 기구들도 성막에서 성전으로 옮겨졌다(왕상8:1-4; 대하5:3-5).

 

 

 

                                                                      출처 성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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