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곳, 다윗의 길1』
사무엘상 26:24-25
24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대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의 선택은 용서와 자비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눌 귀한 은혜 첫 번째 다윗의 선택은 용서와 자비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울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들에게도 축복의 사람입니다.
다윗이 두 번째 사울의 목숨을 살려줍니다. 두 번씩이나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기 위해 출전한 사울을 용서하는 일이 쉬울까요? 사무엘상 26장 10절을 보면 아비새가 잠들어 있는 사울을 창으로 찌르겠다고 하자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강력하게 그를 저지합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셔서 죽을 날에 이르거나 전장에서 망하게 될 것이니라.” 그러니 절대로 그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합니다.
다윗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기름을 부은 자를 해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또 다른 뜻을 생각하면 지금 잠깐 자신의 억울함과 분을 풀 수 있겠지만, 복수하고 나면 다윗의 마음이 편하고 시원할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나를 모욕한 사람을 똑같이 모욕하고 나에게 망신을 주거나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복수하고 나면 기쁘고 행복합니까? 응징과 복수는 그 사람뿐 아니라 나 또한 파멸로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코, 복수를 통해서는 인생의 성공을 이룰 수 없으며 누군가를 응징한다고 내가 치유되거나 회복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선택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용서와 자비입니다.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었으나 그를 용서하고 살려줍니다. 부하들이 나서서 다윗의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하지만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반대로 사울을 용서하고 그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그것이 다윗의 방법이었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다윗의 성공 비결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부하들의 손을 빌려서 자신의 복수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부하들도 그것을 원했고 자신들이 하겠다고 자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9절 말씀에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이렇게 말하며 그들을 제지합니다.
이때 사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무엘상 22장에서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을 도와 진설병을 준 것을 알았을 때 사울은 자기 부하들에게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진멸하도록 합니다. 사울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이 말씀을 몰랐을까요? 아뇨 사울도 이 말씀을 알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루면서 자기 부하들에게 저주받을 짓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과 다윗!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사울은 자신의 성공과 분노를 위해 자기 부하를 저주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다윗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자기 부하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들의 영혼과 인생을 위해 이를 저지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이처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그의 호흡을 받았음을 깨달았다면 바로 그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잊지 말고 목적으로 대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우리를 존귀함, 본질 이런 가치로 보지 않습니다. 수단으로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성령께서 지금도 나를 감화감동하시듯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하나님의 목적으로 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다윗의 방법은 에봇이었습니다.
두 번째 다윗의 방법은 에봇입니다. 그 이야기를 다시 말하면 다윗의 방법은 기도와 말씀이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들의 의복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은 정말 중요한 순간마다 에봇을 붙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복수하고 싶을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어쩌지 못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는 기도할 때 답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지 알고 있습니다. 특히 다윗처럼 사울 때문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야곱처럼 에서를 놓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일지 우리는 알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왜 기도합니까?
우리가 정말 기도하는 이유는 정답을 아는데 그대로 행할 수 없을 때, 행하고 싶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와 말씀은 같이 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희생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울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헌신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롯이 아브라함을 배신하고 떠날 때 그냥 떠났습니까? 가장 좋은 가축, 가장 능력 있는 종들을 다 데리고 뒤통수 칠 때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보면 사울과 다윗 중 누가 하나님께 복을 받죠?
야곱과 에서 중 누가 하나님께 쓰임받죠? 누구의 자녀들이 이스라엘 12 지파의 조상이 되죠?
아브라함과 롯의 결말이 어떻게 되죠?
롯은 소돔이 멸망한 이후 그의 딸들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후 그의 후손들이 모압과 암몬입니다. 반면에 용서하고 용서할 뿐만 아니라 조카 롯을 위해 중보기도하던 아브라함은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축복의 가정 아니 축복의 가문,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게 된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용서하고 희생하고 사랑하라고 하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아브라함처럼, 야곱처럼, 다윗처럼 순종할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방법은 에봇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윗의 방법은 기도였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특히 다윗과 같은 상황에서 내 방법은 무엇입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다윗처럼, 야곱처럼, 아브라함처럼, 기도와 말씀 그리고 순종이 우리의 방법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그 믿음 가지고 마지막 25절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3. 사울의 길과 다윗의 광야
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대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마지막 세 번째 에봇을 선택한 다윗의 당시 상황을 성경은 광야라고 설명합니다.
25절 말씀을 보면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여기서 말하는 자기 곳은 어디일까요? 베냐민에 있는 자기 왕궁! 다윗은 자기의 길로 갔다고 합니다. 자기의 길은 어디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훈련하고 계시는 광야!
비록 사울에게 쫓기고 있지만 그래서 광야를 헤매고 있지만, 다윗은 그곳에서 에봇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고 그 복을 지키고 경작해서 참된 축복의 도구와 축복의 통로가 되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그저 힘들고 외로운 곳이 아니라 축복을 위한 사관학교인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대신해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 사울 시대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다윗이 축복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지금 축복의 사람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무엘상 26장 25절을 보면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을 돌아갔다고 합니다. 사울이 돌아간 자기 곳은 안락하고 안주하던 사울의 궁이었을 것이며 다윗의 길은 광야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은 질투와 교만을 가지고 안주하는 삶을 살았지만, 다윗은 늘 주님 뜻과 씨름하는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은 사울이 이긴 것 같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울과 다윗의 상황은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주하는 신앙이 아니라 날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길을 걸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주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사울처럼 안주하는 인생이 아니라 저는 저와 여러분이 다윗처럼 살아계신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하여 비단 나뿐 아니라 나를 통해 우리 가정과 자녀들이 그리고 나를 알고 만나는 이들도 더불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증거하는 도구로 그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사용될 수 있도록, 사울처럼 안주하는 인생이 아니라 다윗처럼 끊임없이 하나님을 통해 광야에서 훈련받으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위에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