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예배하면, 그래서 일하십니다.』 2026. 6. 14
창세기 18:1-5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1.들어가며
저는 목회하면서 부족한 점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아시는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음치입니다. 제가 찬양 인도하는 모습을 보면 저를 아는 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혹시 하나님의 은혜나 기적이 어디 있나?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찬양하는 모습을 보시면 됩니다.
제가 음치라고 했더니 찬양대 한 권사님께서 “목사님 음치 아니십니다. 힘내세요.” 응원해 주셨는데 그 말이 저에게 정말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예배 시간에 찬양대, 그전에는 성가대라고 했죠? 정말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체 친구들은 다 찬양대에서 불러주는데 유독 저만 안 불러주는 겁니다. 그러다 찬양대 하던 형이 군대에 갔길래. 찬양대 지휘자 선생님을 찾아가서 00형 군대 갔으니까 제가 찬양대 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찬양대 지휘자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저는 찬양대보다 교회학교 쪽에 은사가 있는 것 같다고 교육부장님을 만나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평생에 찬양대에 한번 서보지 못했습니다. 딱 한 번 한 학기. 교육전도사 하던 대전 산성교회에서 1부 예배 찬양대를 하면 장학금을 준다는 말을 듣고 지휘자도 없고 파트도 없는 7시, 1부 예배 찬양대를 해본 게 전부입니다. 찬양대 그런 말 아세요?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 그 말을 조금 바꾸면 오늘 찬양대가 서신 그 자리는 제가 그토록 서고 싶었지만, 실력이 없어서 서지 못했던 자리이니 제 몫까지 더 큰 은혜 부탁드립니다.
우리 내친김에 찬양대 고맙습니다. 같이 박수할까요?
2. 찬양대 정 권사님 이야기
제가 찬양대를 하고 싶었던 고향교회 정 권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찬양을 정말 잘하시고 3 남매 모두 너무 목소리가 좋아서 교회나 지방 찬양대회 하면 무조건 1등하는 부러운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정 권사님께서 정말 어렵고 힘들어서 ‘이제, 그만 끝내자.’ 그렇게 마음먹고 동네 저수지에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신나게 노랫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나는 이렇게 힘들어서 모든 것을 끝내려는 판에 저 사람들은 뭐가 좋아서 저렇게 신나게 노래할까?’ 부아가 나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노랫소리를 찾아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권사님 표현대로라면 그 순간 성령님이 인도하셔서 찬양대에 특별찬양이 시작되었습니다. 찬양하는 찬양 대원들 모습이 권사님 보시기에 정말로 천사 같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나도 죽기 전에 저렇게 노래해보고 싶다.’ 그리고 저수지로 가던 발걸음을 이제는 교회로 옮기게 되었고 권사님께서는 자신이 사모하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셨습니다.
정 권사님께서는 지금도 자기 삶의 벼랑에서 찾아오신 하나님! 자신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복음을 찬양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찬양할 때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시는 성령님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의 자리에 오시면서 어떤 마음, 어떤 자세로 오셨습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이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요즘 새벽기도회를 통해 ‘목적이 이끄는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에 의하면, 우리 삶의 목적, 우리가 지음받은 이유가 무엇이죠?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을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죠? 예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여러분이 예배가 삶이고 삶이 곧 예배가 되어서 예배하듯 살아가고 삶을 통해 예배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축복하고 말씀 같이 나눌까요?
“예배에 성공합시다. 예배로 승리합시다.”
결국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합니다. 예배에 승리하면 세상에서 승리합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그런 믿음을 가지고 1절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3. 그래도 예배합니다.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하는 귀한 은혜 첫 번째는 “그래도 예배합시다.”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마므레, 마므레는 헤브론의 옛 지명입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늘 하나님께 친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는 장면이 당연한 것 같지만, 아브라함이 86세에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었을 때 그 이후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 때, 예배하듯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살아가며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임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번 예배에 성공하면 좋은데, 매일같이 예배하며 살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예배했는데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고 뭔가 뭉클한 것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아브라함은 13년 동안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히 응답도 없었고 은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1절 말씀을 보면 여전히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있습니다. 성경에서 상수리 나무 아래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릴 때, 언약과 맹세의 증거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사사기 6장을 보면 기드온도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부르십니다. 창세기 35장을 보면 야곱이 다시 베델로 올라가자고 하며 우상과 이방신상을 묻은 곳이 바로 상수리나무 아랫니며, 여호수아 24장을 보면 여호수아는 성소 곁에 상수리나무를 세우고 백성들과 언약을 채결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은 13년 동안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은혜도 사라졌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과 신앙에서도 아브라함처럼 예배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지 않고, 신앙 속에서 은혜가 마를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도 그래도 하나님을 예배하셔서 메마른 땅에 구름 기둥이 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기둥이 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 다같이 2-3절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4. 그래도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2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두 번째 아브라함은 그대로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말씀대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간이 13년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 하란에서 가나안 그것도 넉넉하고 풍요로운 갈릴리 북부 지역이 아니라 남부 지역으로 옮겨 왔습니다. 아니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은 전혀 이루어질 기미가 없고 믿었던 조카 롯도 자신을 배신하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난 뒤 아브라함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거나 펴졌다면 이해하는데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쭈그러들고 밀려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그래도 말씀대로 가장 뜨거운 정오 길 가는 나그네를 자기 장막에 영접하여 그들을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 우리도 예수를 믿고 점점 형통하고 흥왕하면 좋은데 예수 믿고 점점 밀려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저는 아브라함처럼 그래도 말씀대로 사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터닝포인트인 줄 믿습니다.
5. 그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사실 오늘 이 본문은 작년 이맘때 제가 설교했던 본문입니다. 저는 주일 설교만큼은 제가 본문을 정하지 않고 감리교 성서일과에 따라서 정해진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올해 또 이 본문이 나왔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아브라함처럼 은혜가 사라졌을지라도 예배합시다. 그럼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합시다.”라고 설교했습니다. 올해는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성경을 보던 중 창세기 19장, 20장을 같이 읽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창세기 20장에서 아비멜렉에게 애굽의 바로에게 했던 것처럼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 동생이라고 또 소개합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번에도 아브라함과 사라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정말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약을 성취한 것,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위해 일하신 하나님이시구나!’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또 갈대처럼 흔들렸습니다. 그는 또 나약하게 실수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브라함을 붙드셔서 일으키시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하신 분은 비록 13년 동안 침묵하셨지만, 임재하지 않으셨지만 그럼에도 늘 아브라함을 주목하고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초지일관 믿음으로 승리했던 믿음의 조상이 아니라 그는 애굽에서도 실수했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통해서 실패했고 아비멜렉 앞에서 또 넘어졌지만, 그 실수를 성공의 밑거름이 되게 하신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아브라함이 나약했고 넘어졌지만 그럼에도 오늘 말씀을 보면 그의 평생에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예배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비록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일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6. 갈무리
오늘 말씀 정리하겠습니다. 지난 1952년 1월 29일, 남산동 597-1번지에 십자가를 세우신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를 이곳에 모여 하나님 나라 전초기지가 되게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흔들릴 때, 의심할 때도 지난 70여 년 수많은 생명을 치유하고 수많은 가정을 회복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그렇다면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며 더 많은 가정을 인가귀도 하실 분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맥추감사주일 이웃초청 삼계탕 DAY!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대로 살았던 아브라함처럼, 저는 저와 여러분이 한 영혼을 초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내가 초대한 한 영혼들로 우리 예배당이 가득 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작년 바자회 때 주방에서 봉사하시는 집사님 권사님들이 너무 감사해서 “권사님 감사해요. 힘드시죠?”그랬더니 한 권사님께서 웃으시면서 “목사님 힘들어요. 그런데 재미있어요. 우리 교회가 이랬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람을 아브라함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남문교회를 남문교회답게 세우시고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서 일하실 때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위에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