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7. 『에봇을 붙들었을 때와 외면했을 때』
사무엘상 27:1-4
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2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4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두 번이나 같은 상황을 만나게 하신 이유?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해 다윗이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는 장면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똑같은 상황을 두 번이나 겪게 하신 이유가 있었죠? 사울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자기 부하 에돔 사람 도엑을 수단과 도구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비롯한 85명 학살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절대로 사울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면 다윗에게는 자기 부하들이 자기 정치나 야망을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동역자들이었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실 때 자신과 함께 하나님의 뜻일 일굴 하나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12 제자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7 집사를 단순히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에게 우리는 단순한 도구나 수단이 아닙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특히 남문의 중요한 지체이심을 기억하시길 소망합니다.
2. 정말 중요한 순간
다윗은 정말 중요한 순간마다 혹은 위험한 순간이 찾아오면 에봇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일라 주민들에 블레셋 때문에 SOS를 보낼 때도 그일라에 가면 사울에게 포위될 것을 알면서도 그일라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넘겨 줄 것을 하나님께서 에봇을 통해 응답해주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는 사울이 자신을 쫓고 이스라엘 전역에 현상금을 걸었을 때, 그를 두 번이나 죽일 수 있었지만, 에봇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그를 살려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과연 정말 중요한 순간 혹은 위험한 순간에 에봇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지 그리고 그 뜻대로 순종했는지 말입니다. 하나만 더 할까요? 하나님의 뜻, 얼마나 어디까지 순종하셨습니까?
저는 졸음운전을 잘합니다. 졸음운전은 습관이라고 하죠? 제가 그렇습니다. 졸음운전 때문에 두 번이나 사고를 냈습니다. 그래서 장거리를 갈 때 아내와 되도록 동승하는 이유가 핸들을 잡으면 잘 졸아요.
한번은 벧엘의 집 아저씨들과 송구영신 예배드리고 계룡산으로 일출 보고 오는 길에 앞차를 들이받았고 한번은 교회학교 친구들과 다른 교회와 축구 시합하고 오는 길에 또 졸아서 앞에 있는 차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사고가 있을 때 사고당한 앞차는 축구 시합하는 아들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부모님이셨습니다. 축구 끝나고 아들을 태워서 가던 도중 제게 봉변을 당하신 겁니다. 너무 죄송해서 병원에 찾아갔을 때 이들 부부가 제게 해준 이야기는 사실 자신들도 교회에서 만났고 집사 직분까지 받았다는 것입니다. 둘 다 사회복지와 장애인 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의미 있는 일 하면서 왜 교회에 나오지 않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뜻밖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는 겁니다. 교회를 다니면 헌신하고 희생하고 순종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아예 교회를 나가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들 부부처럼 선한 일, 의미 있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할 때 그리고 순종해야 할 때 고개를 저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기도할 때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워 기도할 때, 때로는 사울과 같은 자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겉옷을 달라고 하는 자, 5리를 같이 가자고 하는 자,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히스기야처럼 건강의 문제가 왔을 때, 나아만처럼 질병의 문제 앞에서 혹은 회당장 야이로처럼, 수로보니기아 여인처럼 가족과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집사님들처럼 말씀을 외면하거나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묻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 속에서 다윗도 평소와 다르게 에봇을 붙들지 않습니다. 왜냐면 에봇을 붙들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블레셋으로 내려갑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이 정해 놓은 선이 있습니다. “하나님 여기까지입니다. 하나님 나는 여기까지 헌신할 수 있고 순종할 수 있고 여기까지는 따를 수 있지만, 이 선을 넘으면 나도 더 이상은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을 순종이라고 하고 항복이라고 하는데 순종이란 일시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항복도 부분적인 항복은 없습니다. 항복이란 두 손과 두 발을 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더 이상은 순종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늘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시고 감당할 수 없을 때는 피할 길이 되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다윗처럼 또 그 집사님들처럼 내가 정해 놓은 선까지만 순종하고 항복하는 신앙이 아니라 온전히 순종하고 완전히 항복할 수 있는 행복한 신앙인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3. 에봇을 붙들었을 때와 붙들지 않았을 때
그렇다면 두 번째 어떻게 부분적인 순종이 아니라, 일시적인 항복이 아니라 온전한 신앙을 이룰 수 있을까요?
다윗과 같은 사람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했는데 어떻게 하면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다윗은 자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 무엇을 들었죠? 에봇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로 결심했을 때 비파와 수금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했습니다.
다윗 인생을 보면 에봇을 들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씨름했을 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해답이 되었을 때 그는 그일라를 구했고 사울을 용서하는 일을 이루어냈습니다. 누가 했죠? 다윗 안에 성령께서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에봇을 붙들지 않았을 때 비파와 수금을 외면했을 때를 보면 블레셋으로 도망치고 밧세바를 범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다윗처럼 에봇을 붙들었을 때, 비파와 수금을 들었을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그은 선 때문에 에봇을 붙들지 않았을 때 우리도 다윗처럼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느냐 못하느냐는 우리가 에봇을 붙들고 기도하느냐, 비파와 수금을 들고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느냐 예배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혹은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 왔을 때 에봇을 붙드셨습니까?
내가 정해 놓은 선을 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비파와 수금을 드셨습니까?
그 순간 내 한계를 뛰어넘어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을 붙잡아 주시길 소망합니다.
4. 그래도 하나님은
마지막 세 번째 그래도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아니 하나님 뜻대로 안 살 것처럼 다윗은 에봇을 외면하고 블레셋 아기스에게 또 투항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아기스의 부하로 살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입니까?
이때 아기스가 다윗에게 블레셋에서 살림 밑천으로 준 땅이 시글락입니다. 그런데 시글락은 여호수아 15장 3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의 종 여호수아를 통해 유대 지파에게 분깃으로 주신 땅입니다. 언제 어떻게 블레셋에게 빼앗겼는지 모르지만,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시글락을 절망하고, 갈 때까지 간 다윗을 통해 하나님은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옛 속담에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떡 광주리에 빠진다.”라고 있습니다. 다윗이 에봇을 붙잡지 않아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또 블레셋으로 도망해도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기름을 부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옛 유대의 분깃 시글락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에게 다윗은 그런 존재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기에는 절망이지만, 하나님은 그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뒤로 넘어져도 떡 광주리에 빠질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줄 믿습니다.
혹 우리 중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순종하기 힘든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온전히 항복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도망쳐도 빼앗긴 분깃을 되찾게 하시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위해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