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LAZQUEZ, Diego, <시녀들,Las Meninas>, 1656, Oil on canvas, 313 x 276 cm,
Museo del Prado, Madrid
올해 1월에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이찌가와시라고 도쿄 바로 옆에 있는 도시가 있는데,
원주시와 같이 WHO 건강도시이기에 저는 민간교류를 위해
이찌가와시를 방문하였습니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일본에서 예전에 느끼지 못한 여러점을 느끼고 왔습니다.
그리고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어설프게 정리도 해 보았습니다.
일본은 철저하고 조직적이고, 정교하며 빈틈이 없는 문화적 특색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여유로운 공간이 없는 오밀조밀한 그런 문화이지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어느 구석을 들여다 보더라도 허점 투성이가 많고
정밀하지 못하며, 꽉 채우지 않는 여유의 공간을 갖고 있는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지 않나 합니다.
축대를 보면 일본은 틈새가 전혀없이 정밀하게 탄탄게 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축대는 틈새도 많고 중간에 배가 튀어나와 있거나 해서
다시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적 특색인 조직적이지 못하고 엉성한 무엇의 우리 문화.
문제가 많다고 하겠지요.
허나 그런점이 일본보다 못하다고는 볼 수는 없습니다.
영화를 놓고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조직적이고 치밀한 성격에 빠져서 만든 일본 영화는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꿈틀되는 힘이 부족해서 재미가 없으나,
시나리오 구성면에서 엉성하고 허술하지만
허허로움과 여유의 공간에서 축적된 에너지가
클라이막스에서 분출되어 한국 영화는 감동적이고 재미가 있습니다.
허허로움과 여유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우리 문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문화를 역동성 (다이나믹)으로 정의하고들 있습니다.
한류의 힘이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보고있습니다.
그림을 앞에두고 그림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드셨을 것입니다.
이 글을 다 읽고나시면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림은 우선 공주 같은 꼬마 아가씨가 서있고 그 주위에 여러명이 둘러싸고 있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좌측에 서있습니다.
그림의 제목이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입니다. 번역하면 <시녀들>이지요.
그러니깐 꼬마는 공주이고 주위에 인물들은 이 공주를 돌보는 시녀들이라는 것으로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스페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미술가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 1599~1660)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름이 무척이나 길지요,
보통 디에고 벨라스케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서양 미술사 중에 중요한 그림을 50 개만 뽑으라고 하면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할만큼 유명한 그림이지요.
그리고 서양미술에 관한 책에는 이 그림이 실리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무려 44번이나 모방 작품을 발표할 정도였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열살이 넘어서 이미 미술에 대한 완벽한 기교를 갖추고 있었으며,
18세에 화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으며,
국왕 펠리페 4세는 그가 그린 자신의 초상이 마음에 들어
벨라스케스만이 자신의 초상을 그릴 자격이 있다고 선언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24세에 왕실 수석화가가 됩니다.
우선 그림 속에 인물 하나하나를 들여다 봅시다.
큰 캔버스를 세워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입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공주는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테레지아 공주입니다.
공주 좌측에 서서 공주에게 무언가 설득하고 있는 듯한
시녀(나리아 아구스티나 사르미엔트)가 있으며,
우측에서는 반쯤 일어나 치마를 살짝 들고 인사를 하는 시녀(자벨 데 벨라스코)가 있습니다.
그 옆 오른쪽 모서리에는 난장이(마리 바르보라)와 잠자는 개
그리고 어린 꼬마 광대(니콜라스 데 페르투사)가 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뒤쪽에 어둠 속에 여관장(마르셀라 데 우료)과 경호원이 서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방을 막 빠져 나가려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안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있는
시종장(돈 호세 니에트 벨라스케스)이 문틀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공주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등장을 해서
아주 자연스럽고 생생한 현실성를 갖고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우리의 시선을 잡아 당기는 한 곳이 있으니,
우측 시녀의 머리와 공주 머리 사이 위에 걸려 있는 거울 속의 남녀입니다.
그들이 바로 공주 마르가리타의 부모 왕과 왕비입니다.
그러면 이 그림은 도대체 누굴 그린 그림일까요.
어떤이는 벨라스케스가 저 커다란 캔버스 위에 왕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안나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공주와 공주 시녀들이 왕과 왕비에게 재롱을 펴기 위해 이 방에 들린 것을
그린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림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받고 있는 인물이 공주입니다.
이 그림의 각 모서리에서 대각선을 그었을 때 네 개의 삼각형이 만들어 지는데,
아래 삼각형의 좌변과 우변은 각각 시종의 몸통을 지나고 있으며,
그 삼각형 틀안에 공주는 축소된 삼각형 형태로 자리를 잡고 서 있습니다.
즉 구도상에서도 공주는 그림의 주인공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벨라스케스가 자신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리고 예쁜 마르가리타 공주와
제일 가까이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 집단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화가 자신도 공주와 가까운 사람이기에 같은 화면에 두어야 되고
물론 시녀들, 난장이, 수녀인 여관장, 경호원, 시종장 그리고 개가 같이 등장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공주의 부모인 국왕 부부를 기념사진(집단 초상화)에 넣어야 하는데,
국왕을 광대나 시녀들과 같이 세워 놓고 그릴 수가 없기에
화가는 아주 절묘한 트릭을 써서 이를 해결합니다.
공주를 그리고 있는 이 방에 들어서는 왕과 왕비를 거울 속에 비쳐진 장면으로 처리하여
지혜의 상징인 거울에 통치자를 넣게 되므로 해서
공주와 가까운 지인들의 기념사진 촬영(집단초상화)을 성공합니다.
시종장이 이 방을 막 빠져나가려다 다시 몸을 돌려 방안을 다시 들여다 보는 이유가
국왕 부부가 이 방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측의 시녀가 반쯤 일어나 치마를 살짝 들고 인사를 한는 것도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림은 그림을 들여다 보는 관람자를 왕과 왕비가 함께 같은 자리에 서게 하였습니다.
화가가 그림 안에 들어가 있게 되어 마치 영화 감독이 관객과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들어가 관객을 향해 카메라를 갖다 대는 묘한 시선 역전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장치가 이 그림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벨라스케스가 그림에서 환하고 보석 같이 그려낸 마르가리타 공주는
불행하게도 22살에 요절하고 맙니다. 죽음의 원인은 이 왕가의 근친혼 때문이었습니다.
펠리페 4세는 첫 부인과 사별하고 당시에 14살인
오스트리아 왕가의 여인 마리안느와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마르안느의 어머니는 펠리페 4세의 누나 마리아 공주입니다.
즉, 삼촌과 조카 사이인 펠리페 4세와 마리안느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가 마르가리타입니다.
그림에서 화가의 가슴에 있는 붉은 문양은 이 그림을 그린지 3년 뒤에 덧그려진 것입니다.
이는 벨라스케가 산티아고(성 이아고)기사단에 들어가 기사 작위를 받은 훈장입니다.
이 처럼 벨라스케스는 국왕의 두터운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림의 배경인 뒷 벽에 걸려진 두 명화는 동 시대의 바로크 미술의 대가 루벤스의 그림을
벨라스케스의 사위이자 제자인 후앙 마조가 모사한 그림입니다.
1628년에 스페인 궁정을 방문한 루벤스의 도움으로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를 방문한 뒤,
1650년 초반에 다시 이탈리아를 두 번째 방문하여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을 공부하였고,
특히 티치아노 등등의 그림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런 영향을 받고 스페인에 귀국을 하고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그림의 제일 독특한 특징은 거울 속에 왕과 왕비를 그려 놓으므로 해서
또 다른 공간을 창조해낸 것입니다.
벽에 거울이 등장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 그림이 이 그림이 처음이 아닙니다.
네델란드의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라는 유명한 그림에도
벽에 거울이 있어 그림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는
당시에 마드리드에 있었기에(펠리페 2세에게 넘어가 1789년까지 스페인 왕족의 소유로 있었음)
벨라스케스가 거울을 등장시키는 장치를 참조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반 에이크의 그림을 감상해 보십시요.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1434, Oil on wood, 81.8 x 59.7 cm
National Gallery, London
그림 속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이제 곧 결혼을 합니다.
신부의 배가 불러 있으니 이미 임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실터인데
당시에 돈 많은 여인이 입는 유행하는 옷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1434년에 그려진 그림이기에 벨라스케스 그림 보다 약 200년 전에 그려진 것입니다.
온 갖 값비싼 물건들이 그림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위 성공한 사업가로서 자랑하고 싶은 초상화로 주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벽에 거린 거울입니다.
그 곳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거울도 값비싼 베네치아의 볼록 거울입니다.
15 세기 당시에 베네치아산 거울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부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거울 속에 누가 있는가
자세하게 들여다 보기 위해 거울을 확대해서 보아야 겠습니다.

거울 속에 아주 정밀하게 묘사가 되어있는 부부의 뒷 모습과
그리고 두 사람이 이 결혼(또는 약혼)을 증명하는 사람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리는 반 에이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울 위 벽면에 라틴어로 쓰여진 글 내용이
"요하네스 반 에이크 이곳을 방문하다, 1434년"이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끝
heon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박재형 작성시간 11.10.01 역시 그림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르놀피니부부의 결혼식과 시녀들 두 그림에서 거울에 비친 인물에 대한 비교는 작가의 의도와 그림이 그려질 때의 상황을 지금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두 그림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까지 잘 설명해주셔서 이해와 공감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기분입니다. 앞으로 계속 게시물을 읽으면서 음악과 미술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기회가 닿는대로 직접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 들려서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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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heo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0.02 그래 음식은 좋았는지
와인도 나왔는지
와인이 나왔다면 무슨 와인인지
두고온 음식이 궁금합니다.
저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놈의 식탐....
더 많이 읽으셔서 시험에 통과하여야 한다는 거
이지 마시길 -
작성자산골아저씨 작성시간 12.01.29 난생처음 미술작품를 요모조모 잘살펴보고 느끼고 이해하고갑니다.
기능과 는 또다른 감회가 있다는것을 새삼느낌니다......감사함니다. -
답댓글 작성자heo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1.29 이곳에 올려진 많은 미술품을 감사해 보시면
값진 여행이 되실 것입니다, -
작성자이진우 작성시간 13.08.26 그림 속의 또 하나의 그림인 미장아빔(Miseen ahyme)....
잘 감상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