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독의 차이.
한국어 외로움과 고독은 결이 다른데, 사상사에서 긍정된 것은 거의 항상 후자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정확히 이 구별을 한다. 고독(solitude)은 자기와 함께 있는 상태이고, 외로움(loneliness)은 자기에게서조차 버려진 상태다. 두 단어 모두 ‘혼자임’을 가리키지만, 고독에는 동행자가 한 명 있다 — 자기 자신이다. 외로움에는 그 한 명마저 없다. 파스칼·릴케·키에르케고르가 끌어안은 것은 정확히 말하면 고독 쪽이다. 즉 그들의 긍정은 “자기에게서 버려진 상태를 견디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와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을 만들라”는 말에 가깝다. 이 구별을 깔고 들어가면 그들의 논리가 훨씬 정직하게 읽힌다. 그들이 긍정한 것은 외로움 자체가 아니라, 외로움과 만남이 교차하는 리듬 이다. 외로움은 들숨에 가깝고, 만남은 날숨에 가깝다. 들숨만 계속 쉬면 죽는다. 그러나 들숨 없는 날숨은 곧 메마른다. 우리 시대(인스타그램의 시대)가 외로움의 가치를 더 강하게 호출해야 하는 이유는 — 시대가 우리를 날숨만 쉬게 만드는 구조로 자꾸 떠밀기 때문이다. 들숨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진 시대에서, 들숨의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 곧 외로움의 긍정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면서 자기 자신이 된다. 즉 자기가 된다는 것은 지금의 자기를 무너뜨리는 작업의 다른 이름이다. 발견할 본질이 아니라 창조할 형식이다. 자기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되는 것이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보물이 아니라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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