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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스님 일승법문

운문록 실중어요 37. 어느 곳에서 산하대지(山河大地)를 보겠느냐? 조사선 운문록

작성자원오스님|작성시간26.06.21|조회수108 목록 댓글 1

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37. 어느 곳에서 산하대지(山河大地)를 보겠느냐.

 

[운문선사가 한 때 법을 보이셨다

"나의 몸이 비었듯이 모든 법도 비었으니 천품만류(千品萬類)가 모두 동일하도다." 하신 보공(寶公)스님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라는 대목에서 “나의 몸이 비었듯이 모든 법도 비었으니“라고 하신 말씀은 불교의 네가지의 법인(法印)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적정열반(寂靜涅槃) 중에서 제법무아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법무아는 무유정법(無有正法)이라 원래부터 정해진 법이 없으며 나라는 자성이 본래 무일물이라 지수화풍으로 연기적 형상으로 모여진 것이라 그 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를 환화공신(幻化空身)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나도 없고 법도 없는데 무엇을 나라하고 법이라고 할까요? 이것이 이~뭣 꼬?라는 화두입니다.

이 화두는 너무나 많이 알려 졌으니 이렇게 물었을 때 무엇이 나이며 무엇이 법이라고 알아차리는 이것이 무엇일까?라는 화두이니 당연히 이 몸과 함께 있는 마음이 숨겨진 진실인 것이고 사람이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이렇게 어떻게 움직이고 살아 있는가 라는 진실한 이치가 법인 것입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말씀이 “천품만류(千品萬類)가 모두 동일하도다.”라고 하신 말씀은 삼천대천의 세계에서 이를 알고 살아가는 만류의 생명들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또한 이것을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知覺)하는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무엇입니까?

여려분이 알아차려 한 마음을 깨달으면 이것이 영각성(靈覺性)이며 한 마음을 깨닫게 하는 화두인 것입니다.

운문선사는 이렇게 다음 말씀을 보시면

[하신 보공(寶公)스님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말씀하신 보공(寶公)스님은 누구일까요?

먼저 지공(誌公) 화상의 대승찬(大乘讚)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명은 <대승찬송(大乘讚頌)>인데 보통 줄여서 <대승찬(大乘讚)>이라 한다. 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 남조 양(梁)나라 지공(誌公, 418~514) 화상의 선시집(禪詩集)이다. 지공(誌公) 화상은 양 무제(武帝, 464~549)와 인연이 깊은 분이어서 지공 화상이 황제(무제)에게 지어 바친 글이다.

<대승찬(大乘讚)>은 제목 그대로 대승적 삶에 대한 찬탄의 노래다. 그리하여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간결하고도 설득력 있게 노래한 선시를 수록하고 있으며, 짧은 시구 속에 불교적 삶의 진수를 잘 표현했다.

중국 선불교의 3조(三祖) 승찬(僧璨, 511~606) 대사가 남긴 <신심명(信心銘)>, 영가(永嘉玄覺, 647~713) 선사의 <증도가(證道歌)>와 더불어 선불교 삼대 선시(禪詩)로 꼽혀 선종에서 가장 많이 음미되는 선시집이다.

지공 화상은 신통력이 뛰어난 스님이었다. 그래서 양 무제(梁武帝)는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미혹케 한다고 옥에 가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를 자유롭게 다니는 지공 화상을 볼 수 있었다. 옥졸이 조는 사이에 도망친 줄 알고 확인하니 스님은 여전히 옥 안에 그대로 있었다.

그 사실을 보고받은 무제는 크게 놀랐다. 참회의 뜻으로 지공 화상을 궁중에 모시고서 잔치를 베풀었다.

“스님! 몰라 뵈었습니다. 옥에 모실 것이 아니라 대궐로 모셨습니다. 궁중에 머무르면서 법문을 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

이후 지공 화상은 궁중에 있는데, 또 이상한 보고가 올라왔다. 스님이 살던 절에도 예전과 똑같이 지공 화상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법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면서 가보니 그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무제는 크게 발심을 해서 왕위에 머문 40년 동안 불교를 더없이 융성시켰다. 그리고 지공 화상은 양 무제가 <금강경(金剛經)> 강의를 듣고 싶어 할 때, 거사이면서 명망 높은 부대사(傅大士, 497~569)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금강경>에는 원래 목차 구분이 없었는데, 양 무제의 아들 소명태자(昭明太子)가 구마라습의 역본 내용을 32개 분(分)으로 나누고, 각 분에 소제목을 달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그럴 만큼 무제 부자가 불교를 선양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불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당시 지공 화상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알려지도록 유명해서, 고구려ㆍ신라에까지 그 이름이 잘 알려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해인사(海印寺) 창건설화에도 등장한다. 그래서 현재 해인사에 「지공증점지(誌公曾點地)」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는 “지공 화상께서 지정해준 자리”라는 뜻이다. 즉, 지공 화상이 지정해준 자리에 해인사를 지었다는 말이다.

지공 화상은 임종 시에 <동국답산기(東國踏山記)>라는 책을 제자들에게 건네주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죽은 지 얼마 후에 신라에서 두 명의 스님이 찾아와 법을 구할 터이니 이 책을 전하라.”고 했다.

그런데 지공 화상이 입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과연 신라에서 순응(順應)과 이정(利貞) 두 스님이 도착하자 지공 문하의 제자들이 반기면서 저간의 사정을 말한 후 그 책을 건넸다.

두 스님은 감격하여 지공 화상의 탑묘를 찾아가 “사람에게는 고금이 있을지언정 진리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인유고금(人有古今) 법무하이(法無遐邇)]”는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일주일 밤낮으로 기도하며 법문을 청했다.

그러자 탑 안에서 지공 화상이 나타나 두 스님의 구도심을 찬탄하고 의발을 전하면서 말했다. “너희 나라 우두산(가야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그곳에 대가람을 창건하라.”

그 말을 마친 후 다시 탑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애장왕 3년(802년) 10월 가야산 해인사가 창건됐다.

그래서 해인사에서는 사천왕문 바로 옆 국사단(局司壇 :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를 모신 사당)에 「지공증점지(誌公曾點地 : 일찍이 지공께서 점지해준 자리)」라는 편액을 붙여 해인사 창건의 공덕을 기념하고 있다.

지공 화상에 대한 기록은 여러 책에 나와 있는데, 특히 <신승전(神僧傳)>이라고 하는 책에도 전한다. 이는 신비한 스님들에 대한 기록인데, 이와 같은 책에 기록돼있는 것을 보면 도사(道士)다운 특이한 스님의 행적을 짐작하게 한다.

지공 화상 속성은 주(朱)씨고 산시성(陝西省, 섬서성) 남쪽에 살았으며 어린 나이에 출가해 도림사 승검(僧儉) 화상을 모시고 선업을 닦았다. 지공 화상의 본명은 우리 발음으로는 좀 민망하다. 지공(誌公) 화상의 본명은 보지(金陵寶誌) 화상이다. 일반적으로 보공(寶公)⋅지공(誌公)으로 부른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지공(指空, 1300~1363) 화상이 있다. 이 분은 인도 승려로 선종 제108대 조사라고 하는데, 원(元)나라를 거쳐 고려 말에 우리나라에 다녀간 적이 있는 분이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고려 말의 우리나라 고승 백운(白雲) 화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백운 화상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심경(直指心經)>을 편찬한 분으로서, 그는 지공(誌公) 화상을 무척 존경한 나머지 지공 화상이 지은 <대승찬(大乘讚)>을 비롯한 <십사과송(十四科頌)> 등의 전문을 <직지심경>에 포함시켜 출판했다.

그런가 하면, 백운 화상은 인도 승 지공(指空) 화상이 고려 말에 우리나라에 왔을 때, 그의 가르침을 받아 지공(指空) 화상의 문도라 할 수 있는 그런 관계이다. 그러다가 보니, 한자 이름은 다르지만 발음으로는 같아서 두 지공 화상을 혼동하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스님들조차도 <지공 화상 인과법문>에서 지공을 ‘지공(誌公)’으로 표기해야 할 것을 ‘지공(指空)’으로 잘못 쓰는 분이 더러 있을 정도이다.

지공(誌公) 화상은 장수하셔서 세납 96세에 입적했으며, 시호는 광제선사(廣濟禪師)이다. 그는 <십사과송(十四科頌)> 14수, <십이시송(十二時頌)> 12수, <대승찬(大乘讚)> 10수 등을 남겼다.

그래서 관재대사, 묘각대사, 도림진각대사, 자응혜감대사, 보제성사보살, 일제진밀선사 등의 시호가 많이 있다.

<대승찬송> 10수라고는 했으나, 매 수마다 구절의 수효가 꼭 같은 것은 아니다. 내용에 따라 10수로 나누기도 하고, 24수로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대승찬>이 10수라고 말하지만, 현재 전하는 것은 9수라고 한다. 한 수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가 97구절이어서 97수라는 분도 있다.

<대승찬> 서두는 다음과 같은 글로 시작이 된다.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 수재목전난도(雖在目前難覩)

큰 도는 항상 눈앞에 있는데, 비록 눈앞에 있지만 보긴 어려운 법이다.」 이 시에서는 사람의 일상생활의 경계인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대상 그 자체에 바로 도(道)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말하자면 도는 인간의 주변 그 어디에도 없는 데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김태완씨는 “대승찬은 큰 도(大道)가 늘 눈앞에 있는데 이를 보기 어렵다는 게송으로 시작한다.”면서 “눈앞에 있는 도를 보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형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뭔가 분별하려는 생각을 따라가는 습관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도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라 했다.

어떻든 <대승찬>은 대승의 진리를 찬탄하는 첫 구절부터 ‘도(道)’를 이야기하고 있다. 큰 도[大道]란 무엇인가. <신심명>에도 첫 구절에 지극한 도인 지도[至道]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 지금 이곳의 눈앞에 있다는 말이다.

비록 지금 눈앞에 있지만 보지 못하고 알 지 못하며 누리지 못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인생의 의미를 누리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 다시 인생의 의미와 보람이 있겠는가. 사회적으로 출세를 하거나 불문에 들어와서 견성성불을 한 이후라야 꼭 그 사람의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가치는 그런 것과 아무런 상관없이 무엇을 하며 살든 태어나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매 순간 모두가 그 사람의 소중한 삶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사는 것이 곧 대승적 삶이다.

그러므로 만약 도의 참모습을 깨닫고자 한다면 지금 이렇게 보는 사물과 듣는 소리와 말하는 이 사실을 제외하고 따로 찾지 말라. 보고 듣고 말하는 이 순간의 이 사실이 곧 도의 참다운 모습이다. 그대로가 진정한 인생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삶이다. 이것이 진정 큰 삶이라는 진리를 찬탄한 것이다. 곧 실상(實相)이 그대로 진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지공 화상은 <대승찬(大乘讚)> 강설을 통해 대승이란 소승과 대승이라고 하는 차별된 나눔이 아님을 강조했다. 대승, 즉 대중(大衆)에 대한 찬탄을 통해 승속(僧俗),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의 차별과 경계가 전혀 없는,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사실’을 깨우쳐 주는 글이다.

즉, <대승찬>의 마지막 구절이 「97. 약오상승지진(若悟上乘至真)하면 불가분별남여(不假分別男女)」라, 만일 상승의 지극한 진리를 깨닫는다면 구태여 남녀를 분별하지 않으리라.

만약에 상승(上乘)의 지극한 진리를 깨닫는다면, 혹은 깨달으려 한다면, 촤상승(最上乘), 대승(大乘), 대도(大道), 지도(至道)에 이를 것이지, 남녀의 분별을 하지 말라, 상대적인 편견을 갖지 말라는 말이다.

다음은 <대승찬>의 앞부분이다.

1.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 - 대도는 항상 눈앞에 있어,

수재목전난도(雖在目前難覩) - 비록 눈앞에 있지만 보긴 어렵다.

 

2. 약욕오도진체(若欲悟道眞體) - 도의 참된 본체를 깨닫고자 하면,

막제성색언어(莫除聲色言語) - 소리, 색, 언어를 제거하지 말라.

3. 언어즉시대도(言語卽是大道) - 언어가 바로 대도이니,

불가단제번뇌(不假斷除煩惱) - 번뇌를 끊어 제거할 필요가 없다.

4. 번뇌본래공적(煩惱本來空寂) - 번뇌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하지만,

망정체상전요(妄情遞相纏繞) - 망령된 생각이 번갈아 서로 얽힌다.

5. 일체여영여향(一切如影如響) - 모든 것은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으니,

부지하오하호(不知何惡何好) - 뭣을 좋아하고 뭣을 싫어할지 알 수가 없다.

6. 유심취상위실(有心取相爲實) - 마음을 가지고 모양을 취해 진실로 여기면,

정지견성불료(定知見性不了) - 끝내 견성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7. 약욕작업구불(若欲作業求佛) 업業을 지어 부처를 구하려 한다면,

업시생사대조(業是生死大兆) ― 업이 바로 생사生死의 큰 조짐이다.

8. 생사업당수신(生死業常隨身) ― 생사의 업이 늘 몸을 따르니,

흑암옥중미효(黑闇獄中未曉) ― 깜깜 어두운 감옥 속에서 아직 깨닫지 못한다.

9. 오리본래무이(悟理本來無異) ― 이치를 깨달으면 본래가 다름없으니,

각후수만수조(覺後誰晩誰早) ― 깨달은 뒤에 누가 늦고 누가 빠르겠는가?

10. 법계량동태허(法界量同太虛) ― 법계法界의 크기는 허공과 같거늘,

중생지심자소(衆生智心自小) 중생의 지혜로운 마음이 스스로 작다.

11. 단능불기오아(但能不起吾我) ― 단 ‘나’ ‘나다’ 하는 마음 안 일으킬 수 있으면,

열반법식상포(涅槃法食常飽) ― 열반의 진리 음식에 항상 배가 부르리.

12. 망신임경조영(妄身臨鏡照影) ― 허망한 몸의 거울에 영상으로 비추어지나,

영여망신불수(影與妄身不殊) ― 그림자와 허망한 몸 다르지 않네.

13. 단욕거영유신(但欲去影留身) ― 그림자는 버리고 몸만 남기려 한다면,

부지신본동허(不知身本同虛) ― 몸이 본래 허공과 같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4. 신본여영불이(身本與影不異) ― 몸은 본래 그림자와 다르지 않으니,

부득일유일무(不得一有一無) ― 하나는 있게 하고 하나는 없게 할 수가 없다.

15. 약욕존일사일(若欲存一捨一) ― 만약 하나는 두고 하나는 버리려 한다면,

영여진리상소(永與眞理相疎) ― 영원히 진리와는 서로 멀어진다.

16. 갱약애성증범(更若愛聖憎凡) ― 또한 성인을 좋아 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생사해리침부(生死海裏沈浮) ― 생사의 바다 속에서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리라.

17. 번뇌인심유고(煩惱因心有故) ― 번뇌는 마음에 말미암아 있기 때문에,

무심번뇌하거(無心煩惱何居) 마음이 없다면 번뇌가 어디 있겠는가.

18. 불로분별취상(不勞分別取相) ― 애써 분별하여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

자연득도수유(自然得道須臾)저절로 도(道)를 얻음이 잠깐 사이이다.

19. 몽시몽중조작(夢時夢中造作) ― 꿈꿀 때에는 꿈속에서 조작(造作)하지만,

각시각경도무(覺時覺境都無) ― 깨어난 때에는 깨어난 경계가 전혀 없다.

20. 번사각시여몽(翻思覺時與夢) ― 깨어난 때와 꿈꿀 때를 뒤집어 생각해 보니,

전도이견불수(顚倒二見不殊) ― 뒤바뀐 두 견해가 다르지 않구나.……100가지의 육언귀절에 200개의 개송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승찬의 "나의 몸이 비었듯이 모든 법도 비었으니 천품만류(千品萬類)가 모두 동일하도다."라는 대승찬의 게송을 향상일구로 제시하고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대는 서 있어도 선줄을 보지 못하고 가면서도 가는 줄을 보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본다는 것은 빛그림을 찰나간에 비추이다가 사라지는 형상은 그 실체가 없으니 결국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모든 천품만류가 모두 그러하듯이 그대는 서 있어도 선줄을 보지 못하고 가는 줄을 보지 못한다고 하시어 모든 것은 빛그림자를 보았다고 하지만은 이미 본다고 하는 순간 이미 빛그림자는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안목으로 본다면 일체 형상은 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니 이것도 빛 그림자에 비친 형상은 사실 물질 자체도 텅빈 허공같은 공(空)인데 오직 이 형상을 그려 내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며 허상이란 것입니다. 왜 허상이냐 색즉시공(色卽是空)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 금강경 사구게에서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若見) 제상비상(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것이 모두 허망한 것이라. 만약에 이렇게 보이는 형상이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안다면 즉시에 여래를 본다라는 게송이 있듯이 모든 상은 빛 그림자이며 찰나간에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무상인줄 바른 안목으로 본다면 여래라는 자연의 법칙에서 우주의 법칙에서 본다면 언제나 형이상학적으로 생주이멸(生住異滅)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이렇게 말후구를 날립니다.

[4대5온이라 할 것이 없는데 어느 곳에서 산하대지(山河大地)를 보겠느냐. 그대가 매일 발우를 들고 밥을 먹는데 무엇을 밥이라 하겠으며 게다가 어느 곳에 한 톨의 쌀이 있다 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4대5온이라 할 것이 없는데 어느 곳에서 산하대지(山河大地)를 보겠느냐.” 라고 하신 것은 반야심경에서 오온개공도(五蘊皆空道)라고 하였듯이 오온인 색수상행식이 인연과 연기적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지 그 실체가 없는 헛개비와 같고 아지랑이 같이 서로가 서로를 연기적 형상으로 비추이다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오온도 사실 그 실체적 진실성이 없으니 그럼으로

“어느 곳에서 산하대지(山河大地)를 보겠느냐?”라고 우리가 실체가 있다는 산하대지인 이 삼천대천세계가 그 실체적 진실이 없이 모든 상은 우리 마음의 진공묘용(眞空妙用)으로 여래장(如來藏)의 화현(化現)임을 바로 알아차린다면 그기에 집착하지 않고 욕망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형상에 집착하지 마라는 뜻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이어지는 생각에 집착하지말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으로 마무리 하십니다.

“그대가 매일 발우를 들고 밥을 먹는데 무엇을 밥이라 하겠으며 게다가 어느 곳에 한 톨의 쌀이 있다 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발우를 들고 밥을 먹는데 무엇을 먹고 있지만 이것 역시 습관화 되고 색에 훈습된 상으로 이루어 지고 있지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일체시(一切時) 일체처(一切處)가 다 개시 허망하며 제행무상(諸行無常)함을 바른 중도정견(中道正見)으로 바로 보라는 것으로 이 향상일구를 날립니다.

알겠습니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모든 상은 다 그대 스스로 만들어 내는 내 마음의 형상임을 밝히시길 비옵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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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원오스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1 운문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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