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연의 터에서 - 2 -

작성자원욱|작성시간00.09.10|조회수259 목록 댓글 0
"너, 왜그러니?" "저..... 정말 진짜로 스님 맞아요?" "그래, 내가 스님이란다. 왜, 넌 스님을 처음 보니?" 그러자 녀석은 정말 심각한 얼굴이 되어 나를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우리나라에도 진짜 스님이 계셨구나!" "아니, 넌 스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단 말이냐?" "예. 저는 텔레비젼에서 밖에 스님을 본 적이 없어서 옛날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줄 알았어요." 기가 막혔다. "너 몇 살이니?" "저는 일곱살, 얘는 다섯 살이예요. 그런데 진짜 스님이 여긴 왜 왔어요? 어디 왔다가 가세요? 사는 곳은 어디예요? 놀러 가면 안 돼요?" 나는 녀석의 손을 꼬옥 잡은 채 가슴 한 구석이 뻑뻑해져서 말문을 열 수 조차 없었다. "스님은 지금 이곳에 살진 않지만 앞으로 서른 밤을 자고 나면 이곳으로 이사 온단다. 그때 꼭 놀러 오렴." 대강 일러주는 곳을 다행히 안다고 해서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녀석은 절을 꾸벅하고는 작대기를 휘두르며 사라졌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이 기이한 인연에 가슴이 시렸다. 내가 봉사와 생산성 있는 노동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떠나려 했던 곳은 결코 먼 곳에서 찾을 일이 아니었다. 이 땅에도 태어나 7년이 되도록 스님을 만나 보지 못한 아이가 있는데 여기를 떠나 그 어느 곳에서 자유를 얻으려 했는지 너무 부끄러웠다. 오랫동안 어린이 포교를 담당해 오면서 싹튼 어줍기 짝이 없던 내 자긍심은 여지 없이 무너졌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래, 최소한 내가 사는 이곳에서 부처님과 스님을 처음 만나는 아이가 없도록 열심히 한 번 살아보자. 수처작주(隨處作住). 머무는 곳 그자리가 가장 공부하기 좋은 곳이니 그 곳에서 주인공이 되어 살라! 옛사람이 불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온갖 고행을 할 때 불보살께서는 걸인의 모습으로, 혹은 젊고 예쁜 여인의 모습으로, 혹은 병들고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깨달음을 주신다는데 이렇게 고뇌하는 내게 그런 가피가 열린 것일까? 어쩌면 그 아인 내게 이 도리를 일깨우기 위해 짐짓 몸을 나투신 문수동자가 아닐까? 이렇게 야무진 꿈(?)을 꾸면서 나는 새로운 각오로 '포교당만들기'에 정신 없이 빠져 들었다. 그로부터 한 달 만에 법당을 꾸미는데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늘 함께 하면서 인연을 맺은 어린 연꽃들로 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포교당만들기"에 동참하여 새로운 이 땅에, 부처님을 모르고 사는 이들이 있는 이곳에 부처님 법을 들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데 동참해 주셨다. 지난 날 내 번뇌를 안으로 푸는 능력이 모자라 밖으로 돌리려 했던 어리석음은 마치 바닥이 얕은 개울물처럼 온갖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지혜로룬 이의 삶은 깊은 강물처럼 조용히 흐른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단연코 지금 있는 그 자리를 떠나서 뭔가 해보려 했던 나에게 문수동자와의 만남은 그가 나의 발원이 되고 희망이 되어 주었다. 일년이 지나도록 나의 문수동자는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기다림의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또 다른 문수동자들이 법당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다시 순수해져라. 그리고 생각을 깊게 갖고 순수한 사람들과 이웃하며 살아가라. 그러면 너는 다시 지혜로워 질 것이며 밤에 울던 그 고통과 고뇌는 영원히 가버릴 것이다. -[숫다니파타]- 그래도 내 가슴 한 구석엔 나의 문수가 남기고 간 깨침의 소리를 들으며 항상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어쩌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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