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영상에서 우리는 조주가 설계한 무의 막막함까지 바라봤습니다. 그런 본격적으로 조주의 더 깊은 모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그럼 시작합니다. 같은 시대 같은 땅 위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임제 의견 조주와 거의 같은 시기에 중국 복방에서 활동한 선사입니다. 임제는 할로 유명합니다. 제자가 질문을 가지고 오면 대답 대신 고함을 질렀습니다. 때로는 주먹이나 몽둥이가 날아왔습니다. 제자를 때리고 내쫓고 뒤집어 엎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습니다. 역사는 그를 임제 장군이라 불렀습니다. 전쟁터의 장수처럼 맹렬하게 제자들을 몰아붙였기 때문입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가거라. 이것이 임제의 선언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덕산 섬강 그는 봉으로 유명합니다. 질문에 답하는 대신 몽둥이로 내리쳤습니다.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충격으로 분별을 깨뜨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임재할 덕산의 봉은 지금도 선의 역사에서 하나의 쌍처럼 회자됩니다. 이런 시대에 조주는 어떻게 했을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함을 치지 않았습니다. 몽둥이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자를 내쫓거나 뒤집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냥 앉아서 짧은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때로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상의 한 조각을 그대로 돌려줬습니다. 그리고 입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조용한 자리에서 나온 말들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조지의 선풍을 가리켜 승구선이라 불렀습니다. 입술과 혀로만 하는 선 몸을 쓰지 않고 오직 말 그것도 아주 짧은 말만으로 작동하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조주의 말은 짧았습니다. 대체로 한마디였고 때로는 한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며칠이고 맴돌았습니다. 빠져나갈 틈이 없었습니다. 이 영상에서는 그 말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겠습니다. 앞에서 다룬 모화두는 워낙 거대하여 따로 다루었으니 이제 그 외의 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지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조주가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방치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임재가 고함으로 제자의 분별을 깨뜨렸다면 조주는 일상의 말 한마디를 통해 같은 일을 해냈습니다. 방법이 다를 뿐 목적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의 차이가 전혀 다른 성격의 공안을 낳았습니다. 네. 첫 번째로 살펴볼 말은
끽 다거
입니다. 차 마시고 가라. 먹을게 자다. 갈 거 이 공안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 스님과 원주 절의 살림을 맡은 스님입니다. 조주는 한 스님에게 묻습니다. 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가? 스님이 답합니다. 있습니다. 조주가 말합니다. 끽따거 차나 마시고 가게. 이번엔 다른 스님에게 묻습니다. 전에 여기 온 적이 있는가? 이 스님은 답합니다. 없습니다. 조주가 말합니다. 끽따거 차나 마시고 가게. 이것을 지켜보던 원주가 조주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외운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차나 마시고 가라고 하십니까? 조주가 원주를 불렀습니다. 원주 끽따거 세 사람에게 모두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온 적이 있든 없든 물음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이 공원을 처음 접하면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절명이 없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결론도 없습니다. 그냥 세 번의 같은 말 그게 전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나라 시대의 차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문화는 송나라 이후에 자리 잡았습니다. 당나라 때는 차가 귀했고 특별한 경우에만 마셨습니다. 약처럼 쓰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조지의 킥다가는 단순히 차 한 잔 하게라는 가벼운 인사가 아닙니다. 더 직접적으로 읽으면 정신 차리고 가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거는 명백히 가다는 뜻입니다. 온 적이 있는 스님에게도 없는 스님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온 적이 있는 사람은 이미 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온 적이 없는 사람은 처음이라 모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둘 다 분별 나누고 비교하는 마음입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처음과 나중 경험과 미경험 이 모든 분별이 질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조주는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함으로써 보여준 것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있든 없든 왔든 안 왔든 그냥 차나 마시고 가라. 그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조주는 임제처럼 고함을 지르지 않았지만 같은 효과를 냈습니다. 임제는 충격으로 분별을 깨뜨렸고 조주는 반복으로 분별을 무너뜨렸습니다. 두 번째 말 정전백수자들 앞에 잣나무 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선의 세계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질문입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선종을 전한 달마대사 조사가 서쪽 인도에서 굳이 동쪽 중국으로 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역사적 사실을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의 본질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불법의 핵심을 한마디로 일러달라는 것입니다. 조주가 답했습니다.
정전 백수자
뜰 앞에 잣나무니라
스님이 항변했습니다. 스님 경계를 들어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경계란 주관과 대비되는 객관세계 즉 바깥에 있는 대상을 가리킵니다. 이스님은 지금 잔나무라는 사물을 예로 드는 것이 아니라 선의 본질을 직접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조주가 답했습니다. 나는 경계를 들어 보인 적이 없다.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가 다시 답했습니다. 들 앞에 잣나무니라 이 공원 역시 처음 보면 답답합니다. 왜 잔나무입니까? 불법을 물었는데 나무를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경계를 들어 보이지 않았다고 했으면서 또 잔나무를 말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조주가들 앞에 잔나무를 가리켰을 때 그가 가리킨 것은 잣나무라는 사물이 아닙니다. 주관과 객관으로 나뉘기 이전의 상태 내가 잔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잣나무와 내가 하나인 그 자리를 가리킨 것입니다. 그래서 조주는 경계를 들어 보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전나무는 도구가 아닙니다. 잣나무 그 자체가 선의 자리입니다.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나와 세계를 나누어 생각하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어가 있다. 목적어가 있고 보는 자아 보이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선은 그나님 이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이전을 언어로 설명하면 설명이 되는 순간 또다시 나뉩니다. 그래서 조준은 설명하지 않고 그냥 잣나무를 가리켰습니다. 두 번 같은 말로 세 번째
세발우거
발우를 씻으러 가거나 한 스님이 조주를 찾아왔습니다. 가출관 신참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막 절에 들어왔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조주가 물었습니다. 아침 죽은 다 먹었느냐?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다 먹었습니다. 조주가 말했습니다. 발우를 씻으러 가거나 이 공안은 무문관 제 7 측에 실려 있습니다. 스님은 깨달음의 길을 물었습니다. 조주는 밥 먹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밥 먹었다고 했더니 설거지하러 가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가르침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설거지나라는 다소 통명스러운 대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조주 가르침의 핵심 방식입니다. 깨달음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조주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말하는 대신 지금 이 자리를 직접 가리켰습니다. 밥 먹고 바로 씻는 것 그것이 이미 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하는 순간 그것은 개념이 됩니다. 그래서 조준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바로를 씻으러 가라고 했습니다. 당나라에서는 이른바 일상의 선을 강조했습니다. 밥 먹고 똥 누고 자고 일어나는 것 그 모든 일상이 이미 선이라는 것입니다. 마저로부터 이어진 이 흐름을 조주는 가장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구현했습니다. 어떤 극적인 장치도 없이 그냥 일상의 언어 그대로 그것이 바로 씻으러 가라는 말이었습니다. 네 번째
만법 귀일 하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것은 한 스님이 조주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만법 귀일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결국 하나였고 원리로 귀결된다라는 것은 불교뿐 아니라 동서양 철학을 통틀어 아주 오랫동안 탐구해온 주제입니다. 서양에서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으로 동양에서는 도아의 심해 문제로 그 모든 것이 하나라면 그 하나는 다시 어디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은 존재의 궁극을 묻는 것입니다. 조주가 답했습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배 적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7근이더라. 이 대답을 처음 들으면 잠시 멍해집니다. 아무 연결도 없어 보입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물었는데 옷 무게를 말했습니다. 이것이 조조의 방식입니다. 거대한 관념적 질문 앞에서 조주는 그 질문 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지극히 구체적인 지금 이 자리의 것 청주에서 만든 옷 7근의 무게를 꺼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돌아가는 하나가 만약 실재한다면 그것은 지금 여기 이웃 한 벌 안에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 먼 추상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옷의 무게 속에도 차 한 잔 속에도 바로 씻는 일 속에도 이미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답들 사이에서 하나의 패턴이 보입니다. 조주는 절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끌지 않습니다. 결론도 주지 않습니다.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킵니다. 혹은 아주 간단한 일상의 말을 그대로 던집니다. 그리고 입을 닫습니다. 이것이 왜 가르침이 됩니까? 오히려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조조가 생각하는 가르침의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선생이 알고 있는 것을 학생에게 전달합니다. 학생은 그것을 받아 이해합니다. 이해하면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 선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이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어떤 정보나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어로 정의되는 순간 이미 그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달 자체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언어는 항상 손가락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주의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언어를 사용하되 그 언어가 생각을 끝내도록 만들 것 답이 되는 말 대신 생각이 멈추는 말을 할 것 조주의 말들을 다시 보겠습니다. 끽 다 거 차 마시고 가라. 정전 백수자 들 앞에 잔나무 새발 우거 바로 씻으러 가라. 7근짜리 옷 이 말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 이해가 안 됩니다. 무시해 버리기에는 어딘가 걸립니다. 그냥 넘어가면 무언가를 놓친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그렇다고 잡아보려하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 감각이 바로 의정 의심의 감정 의심이 몸에 들어온 상태의 시작입니다. 조조의 말들은 이 의정을 만들어냅니다. 배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속시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그 말이 여전히 마음 한켠에 걸려 있는 상태 그것이 조주가 만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조주의 이 방식에 대해 훗날 사람들은 그를 고업을 오래된 부처라 불렀습니다. 조주 고읍을 이것은 단순한 존경의 표현이 아닙니다. 오래된 부처라는 말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새롭게 만들거나 급격하게 변화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 마치 뜻 앞에 잔나무처럼 이 별명은 또한 조지의 삶 방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관음원에 머물면서 단 한 번도 시조에게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았습니다. 공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조항이 찾아와 귀위를 표했을 때도 조준은 선상 자선하는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소승이 어려서부터 일을 많이 해. 노세에서 선상에서 내려오기 힘듭니다. 왕 앞에서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조앙은 조주에게 정중히 예를 올리고 돌아갔습니다. 이 일환은 단순한 무례함이 아닙니다. 조주의 가르침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드러난 장면입니다. 왕이 왔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것 어떤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이미 가르침이었습니다. 관음원의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가사는 낡을 때로 낡아 형체만 남았고 좌선하는 의자는 다리가 부러져 타다. 남은 나무를 끈으로 묶어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조주는 그 자리를 고쳤거나 교체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낡은 의자에 앉아 낡은 가사를 걸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짧은 말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조조의 말들이 갖는 힘을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임제고암은 충격입니다. 덕산의 몽둥이도 충격입니다. 충격은 분별을 순간적으로 깨뜨립니다. 그런데 충격은 예측 가능해지면 효과를 잃습니다. 또 고함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고함은 이미 다른 것이 됩니다. 조조의 말은 충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고요한 물에 작은 돌을 던진 것과 같습니다. 튀어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파문이 번집니다. 올해 천천히 멀리 그리고 그 파문은 잠이 든 다음에도 밥을 먹는 중에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다시 돌아옵니다. 이것이 조주의 가르침 방식이었습니다. 가르치지 않으면서 가르치는 것 설명하지 않으면서 가르치는 것 결론을 주지 않으면서 생각이 계속 맴돌게 만드는 것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조주가 가르치려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설명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발우를 씻으러 가라고 했습니다. 자나 마시고 가라고 했습니다. 들 앞에 잣나무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말이 가리키는 것은 어딘가에 있는 특별한 진리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그것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가르침이 사실은 가장 많은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오래된 부처라고 불렀습니다. 897년 11월 10일 조주종심은 정자한 채로 입적했습니다. 나의 120세 당나라가 망하기 꼭 10년 전이었습니다. 왕조가 기울고 있었고 세상은 다시 어지러워지고 있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가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장례를 준비하려 하자 조주가 미리 남겨둔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죽은 후에 화장을 하되 사리를 줍지 말라. 선종의 제자들은 세속의 인간과 다르다. 육신은 헛깨비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사리 같은 것에 얽매이겠는가? 그리고 제자에게 명하여 자신이 평생 들고 다니던 주장자를 조항에게 전하게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일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한 것입니다. 자리를 줍지 말라. 지팡이를 보내며 다 쓰지 못했다고 말하다. 이 두 마디를 조지의 마지막 가르침으로 읽는다면 어떻게 들립니까? 살이란 무엇입니까? 고승이 입적한 뒤 화장을 하면 남는 유골의 결정체입니다. 신성하게 여겨지고 탑에 모셔지고 참배와 공경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조주는 그것을 줍지 말라고 했습니다. 육신은 헛깨비라고 했습니다. 남는 것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고 나서도 무언가를 형상화하고 모시고 기억의 틀 안에 가두려는 마음 자체를 조주는 마지막 순간에도 잘라냈습니다. 주장자 이야기는 더욱 깊습니다. 일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했다는 말 조주가 120년을 살았고 그 삶 전체로 무언가를 가리키려 했는데 그 가리킴이 아직 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 쓰지 못한 것을 조항에게 넘기는 것 그것은 부탁입니까? 아니면 또 하나의 공안입니까? 어쩌면 조주는 이 마지막 행위로 자신의 가르침이 어디에도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끝이 없는 것 아직 다 쓰지 못한 것 그래서 계속 남아 있는 것 살인은 없지만 말은 남았습니다. 그 말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조주가 떠난 뒤 관음원은 역사의 풍파 속에서 여러 번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원나라 때에 이르러 사찰 이름이 백림선사 잔나무 숲의 절로 바뀌었습니다. 조주가 그토록 많이 말했던 들 앞의 잔나무에서 온 이름입니다. 그 공안이 절 이름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 경례에는 아름드리 잔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고 합니다. 조주가 가리켰던 그 나무가 지금도 거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주가 남긴 것은 건물도 아니고 종파도 아니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이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지에게는 뚜렷한 법통을 잇는 종파가 없습니다. 임제가 임재종을 열었고 조동이 조동종을 열었듯이 조주에게는 그런 종파적 후예가 없습니다. 제자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기록에 따르면 수많은 수행자들이 조주를 찾아왔고 그중 일부는 깊은 인상을 받아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조주파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할까요? 조주의 가르침이 하나의 방향으로 규정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체계가 없었고 교류가 없었고 따라야 할 특정한 형식이 없었습니다. 그의 말들은 어떤 틀 안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말들을 받은 사람은 각자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방향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주는 제자들에게 길을 준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게 만든 다음 각자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종파는 없지만 조지의 영향력은 다른 어떤 선사보다 넓고 깊고 오래 이어졌습니다. 조지로 조주진재 선사어록은 지금도 한국 중국 일본의 선방에서 읽힙니다. 벽암록 1측 중 12층이 조주의 것이고 무문관 제일 측이 조주의 것입니다. 한국의 조계종 오늘날 한국 최대 불교 종단에서 가나선을 수행법의 중심에 두는 수행자들이 첫 번째로 받는 화두가 이 조주의 모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어딘가의 선방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앉은 수행자가 들고 있는 화두가 조조의 한마디입니다. 당나라는 907년에 망했습니다. 임제도 덕산도 위산도 그 시대의 수많은 선사들도 같습니다. 그런데 조지의 모는 여전히 수행자들의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1000년 넘게 왜 이 한 글자가 이토록 오래 남았을까요? 이제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조의 말들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무는 답이 아닙니다. 기타 거도 답이 아닙니다. 정전 백수자도 답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질문입니다. 그것도 해소될 수 없는 질문 풀릴수록 더 깊어지는 질문들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언어가 달라져도 받는 사람의 처지가 어떻게 변해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들은 그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분별합니다. 리타워 없다. 나와 너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옳은 것과 그런 것 이 분별의 언어를 낳고 언어가 개념을 낳고 개념이 집착을 낳고 집착이 고통을 낳습니다. 조지의 말들은 그 분별의 뿌리를 건드렸습니다. 당나라 사람이든 고려 사람이든 21세기를 사는 사람이든 분별한다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조지의 질문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잠깐 멈추고 조주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를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조주록을 6년에 걸쳐 강설한 한 현대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주가 남긴 질문들은 수학 시험처럼 계산해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답은 없고 대신 길이 있다고 그리고 그 길은 누구나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이 말이 중요합니다. 담이 고정되어 있으면 한 번 받으면 끝입니다. 더 이상 그 질문과 실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답이 없는 질문 더 정확하게는 이해로 다칠 수 없는 질문은 계속 살아 있습니다. 받는 사람의 나이가 달라지면 다시 보입니다. 살면서 다른 일을 겪고 나면 또 다르게 들립니다. 그 질문은 사람을 따라다니며 조금씩 깊어집니다. 그것이 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조주의 가르침이 지닌 힘입니다. 그것은 다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시간입니다. 조주가 살았던 구세기 당나라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무척 다릅니다. 왕조도 없고 패불도 없고 행각하는 수행자들의 무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지의 말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야말로 조주의 말이 더 필요한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와 지식에 둘러싸여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검색하면 됩니다. 궁금한 것은 물어보면 됩니다. 지식은 넘쳐납니다. 설명 무한하게 공급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지식과 정보 속에서 정작 나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답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더 많이 할수록 더 확신이 없어집니다. 더 많이 비교할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더 많이 연결될수록 더 고독해집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역설입니다. 조주가 살았던 시대도 비슷했습니다. 선에 관한 말들이 너무 많아졌을 때 깨달음에 관한 이론이 쌓일 때로 쌓였을 때 조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말을 줄였습니다. 절명을 걷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을 가리켰습니다. 차나 마시고 가거라. 바로나 씻으러 가거라. 들 앞에 잔나무 무 이 말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를 가리킵니다. 과거를 뒤질 필요도 없고 미래를 설계할 필요도 없습니다. 있다 없다를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이것 이 순간 치열하고 날카롭게 깨어 있는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다른 곳에가 있습니다. 과거를 되짚거나 미래를 걱정하거나 지금 이 자리가 아닌 어딘가를 향해 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도 차를 마시지 않습니다. 발우를 씻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을 떠돌고 있습니다. 잔나무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주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말을 했습니다. 평생 반복해서 무 끽타거 정전 백수자 세발 우거 이것들은 서로 다른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는 것 분별로 뒤덮인 마음에서 잠깐 빠져나오라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그냥 있어 보라는 것 조주의 120년은 그 한 가지를 향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쌓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 하면서 그러면서도 이 단순한 가리킴 하나를 반복한 삶 살인은 없지만 말은 남았고 종파는 없지만 화두는 살아 있습니다. 무 이 한 글자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닫힌 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해된 순간 다 된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 년 전에도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맴돌았고 지금도 맴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조주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끝까지 다치지 않는 것 끝까지 남아 있는 것 끝까지 사람을 따라다니며 지금 여기를 가리키는 것 조주가. 마지막으로 보낸 주장자에 담긴 말이 기억납니다. 일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한 것 120년을 써도 다 쓰지 못한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로 건너왔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들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써나가야 합니다. 답은 없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끽끽 다 거 차 한 잔 마시고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