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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조주 무 막힘한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작성자空山 내려놓음 마음학교장|작성시간26.06.06|조회수30 목록 댓글 0

이번 시간에는 그 모두를 몽땅 지워버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봅시다. 그럼 또 시작할까요? 당나라가 서서히 기울어 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구세기 안사의 난이 지나간 자리에는 왕조의 피로가 깊게 배어 있었습니다. 황실의 권위는 흔들렸고 지방 철도사들은 저마다 세력을 다졌으며 불교는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더 깊숙이 민간과 귀족의 삶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특히 선종은 이 시대를 타고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흐름이라는 말에는 조심할 부분이 있습니다. 전종이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동시에 선종이 제도화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도화된다는 것은 말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설명이 붙고 체계가 들어서고 이 방식이 옳다. 저 방식이 옳다는 논쟁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달마가 벽을 보고 앉아 있던 그 침묵은 이미 먼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발세기 초 해능의 남종선이 북종선을 밀어내고 주류가 된 이후 선의 세계는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그리고 마저 도일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서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마조의 문화에서만 수백 명의 제자가 배출되었고 각각의 제자는 또 각자의 방식으로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임제 위암 조동 온문법안 이른바 선정의 오가라 불리는 다섯 갈래가 모두 이 시대의 토양 위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선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눈을 감고 이 상황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스승이 수많은 방식으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스승은 고함을 지릅니다. 어떤 스승은 몽둥이를 뜹니다. 어떤 스승은 화두를 던지고 어떤 스승은 제자의 발가락을 비틀고 어떤 스승은 손가락 하나를 그냥 들어 보입니다. 모두 이것이 선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두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적어도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이 혼돈 속에서 한 가지 역설이 생겨납니다. 너무 많은 가르침이 생겨나면서 오히려 가르침 자체가 무거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이 말을 낳고 설명이 설명을 요구하고 체험이 다시 개념으로 굳어지는 순간 선이 처음 겨냥했던 그것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 개념 이전의 것은 점점 더 두꺼운 언어의 층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주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조주 정신 조주는 그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지역의 이름이고 종심이 그의 번명입니다. 오늘날의 허베이성 일대에 해당하는 극당에서 그는 120년에 가까운 긴 생을 살았습니다. 당나라가 세워진 뒤인 나라가 기울고 황소의 난이 일어나고 5개의 왕조가 차례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조주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시대에 한 일이라는 것이 묘합니다. 더 강렬한 방식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더 정교한 체계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이론을 쌓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는 줄여갔습니다. 걷어냈습니다. 한마디로 잘났습니다. 마조의 제자들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 시대에 조주의 자리에는 이상할 만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그는 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강단에 서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짧은 말 한 마디 때로는 그것도 아닌 침묵 때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남았습니다. 1000년이 넘게 남았습니다. 수많은 선사들이 거대한 언어의 탑을 쌓았지만 정작 오늘날 선의 세계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말은 조주의 한마디입니다. 뭐 들 앞에 잔나무 차 한 잔 마시고 가게. 이 짧은 말들이 그 어떤 정교한 이론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보일까요? 이미 너무 많은 말이 쌓인 자리에서 이 사람은 왜 더 침묵에 가까워졌을까요? 그리고 그 침묵에 가까운 것이 왜 오히려 더 깊이 박혀 빠져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들고 조지의 삶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778년 중국 산동성 조주 학향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혹시 이름은 종심 훗날 이 사람이 조주라 불리게 되는 것은 그가 태어난 곳의 이름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마지막에 머문 곳 하북성의 조주 지금의 허배이성 일대 그 땅의 이름에서 아는 것입니다. 같은 발음이지만 한자가 다릅니다. 태어난 조주와 머문 조주 이름 하나에도 이 사람의 개인 인생이 겹쳐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는 고향의 호통헌 혹은 용사라고도 전합니다. 그곳에서 점심 먹고 가야지. 정확한 나이는 기록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10대 초반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구조께 정식 승려가 받는 계율을 받기 이전에 사미 신분이었습니다. 3일은 아직 완전한 출가자가 아닌 견습 수행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긴 여정은 그 시작부터가 완성이 아니라 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사미가 처음 남전 보온을 찾아갔을 때 이미 예사롭지 않은 장면 하나가 전해집니다. 남자 스님은 방장실 주지 스님의 처서에 편안히 누워 있었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어린 사미를 보고 그가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아이가 답했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습니다. 남전이 다시 물었습니다. 서상 상서로운 모습은 보았느냐? 서상원의 서상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받아 던진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서상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누워 계신 열애는 봅니다. 열애란 부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누워 있는 남자는 열애라 부른 것입니다. 이 말에 남전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너는 주인 있는 삶이냐 주인 없는 삶이냐. 주인 있는 삶이란 스승이 있는 아이를 말하고 주인 없는 삶이란 아직 스승을 정하지 못한 아이를 말합니다. 아이가 답했습니다. 주인 있는 삶입니다. 남전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주인이냐?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월이라 아직 날씨가 춥습니다. 스님께서는 부디 몸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대화를 처음 읽으면 이상합니다.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어린 종심이 이미 품고 있던 것의 한 면입니다. 주인이 누구냐는 물음은 사실 내 본래 면목 본래의 참 모습이 무엇이냐는 선의 핵심 질문입니다. 그 질문의 답을 개념으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것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남자는 이 아이를 기특히 여겼고 그 인연으로 종심은 남자네 문화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남자 보원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는 마저 도일의 제자입니다. 마조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선종의 역사를 가는 거대한 분기점 같은 인물입니다. 마저의 뛰어난 제자들 중에서도 서당 지장이 경전의 깊이를 가졌다면 백장회에는 선의 체계를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주는 이 둘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합니다. 경은 지장에게 돌아가고 선은 회에게 돌아가는데 남자만이 홀로 사물의 경계 밖으로 뛰어 껴놨구나. 달맞이를 나갔을 때 새 제자 중 홀로 아무 말 없이 팔을 흔들며 돌아가버린 남자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말 밖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남자의 가르침 중 지금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평상심씨도 평상심이 곧 도이다입니다. 이 말은 원래 마주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조주가 남전에게 가르침을 받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장면이 됩니다. 어느 날 젊은 종심이 남자에게 물어보었습니다. 도란 무엇입니까? 남전이 답했습니다. 평상심이 바로 놓이다. 정심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그 평상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남전이 말했습니다. 얻으려 하면 이미 도에서 어그러진다. 종심이 또 물었습니다. 얻으려 하지 않으면 어찌 도인 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남전이 말했습니다. 돈은 알고 모르는 것과 관계가 없다. 안다는 것은 망가. 잘못된 깨달음의 착각일 뿐이고 모른다는 것도 무기. 아무 판단도 없는 흐릿한 상태일 뿐이다. 만약 의심할 바 없는 돌을 진정으로 통달하면 그것은 허공과 같이 확연하여 걸림이 없다. 어찌 그것에 옳다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듣고 종심은 도리를 깨쳤다고 전합니다. 이 대화에서 잠깐 멈춰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평상시 밑오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보통 일상의 마음을 잘 유지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마주한 암전이 이 말로 가리키려 했던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핵심은 노력해서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부수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이 본래 이미 부처의 성품 위에 있다는 것 그러니 특별히 추구하거나 닦거나 증득해야 할 것이 따로 없다는 것 그것이 이 말에 날 선 의미입니다. 쉬워 보이지만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종심은 이 남자의 문화에서 수십 년을 머무니다. 남전이 834년에 입적할 때까지 종심의 나이로 쉰여섯 무렵까지 그는 곁에 있었습니다. 스승을 잃은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조주라는 인물의 또 다른 면이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구조계는 승산 소림사의 유리 계단에서 받았다고 전합니다. 정식 승려로서의 출발이 이미 젊은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후 80세가 될 때까지 자그마치 수십 년을 행가. 저를 떠나 여러 스승과 수행자를 찾아다니며 수행하는 것으로 보냅니다. 행각이란 단순히 여행이 아닙니다. 자신이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시험해 드리는 행위입니다. 더 배울 것이 있는지 자신의 이해가 완전한지 또는 아직 더 깎여야 할 것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가 생각 중에 남긴 말이 있습니다. 7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 내가 그에게 배울 것이고 100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것이 있으면 내가 그를 가르치겠다. 이 말은 겸손의 수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아마 청원 계통의 주류 선사들은 물론이고 당시 이미 세력이 기울어 가던 신수의 북종 계통 선사들도 찾아갔습니다. 가르침이 있다면 종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넉넉함이 아닙니다. 자신이 이미 옳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 긴 행각의 시간 동안 그는 인생에서 결코 작지 않은 사건을 몸으로 통과합니다. 845년 회창 테블입니다. 당나라 무종이 도교를 깊이 침봉하면서 불교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단행했습니다. 전국의 사찰 4600여 곳이 철거되었고 26명이 넘는 승리 뇌와 비구니가 강제로 환속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중국 불교사에서 산모 일종의 범란 새 황제와 한 군주에 의한 불교 탄압이라 불리는 네 번의 대박해 중 하나로 그 규모나 철저함에서 가장 가혹했다고 전합니다. 사찰의 자원 사찰이 소유한 토지와 재산은 국유화되었고 뭘 먹어? 경전은 불태워지고 불쌍은 녹여졌습니다. 감히 무종에게 항의문을 올리는 자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종심의 나이는 67이었습니다. 그는 이 폭풍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기록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살아남았습니다. 그것도 승려로서 다음 해 무종이 죽고 선종이 즉위하면서 외교는 다시 회복되었지만 그 1년 사이에 이미 수십 년 쌓인 것들이 무너지거나 흩어졌습니다. 선종 계통이 이 테이블의 파괴에서 상대적으로 잘 살아남은 것은 산속에 있는 소규모 사찰들이 주를 이루었고 경전이나 불상에 의존하지 않는 수행 방식이었기 때문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글자 밖에서 마음을 전한다는 선의 방식이 역설적으로 난리 속에서 더 단단했던 셈입니다. 배불리 지나간 뒤에도 종심은 행각을 계속했습니다. 황소의 난이 일어나고 당나라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그는 걸었습니다. 그리고 80세가 되던 애 그는 마침내 하북성 조주성 동쪽에 있는 관음원이라는 작은 철에 정착합니다. 관음원은 지금의 백림선사 잔나무 숲의 절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도반들이 훨씬 이전부터 이제는 어딘가에 정착해서 가르침을 펴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했지만 그는 도무지 그럴 마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80세 비로소 앉은 것입니다. 그 절은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가 직접 지은 12시가 하루 12시간의 생활을 치러 읊은 것에는 당시의 처지가 솔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릴 쌀도 없고 창문 틈새에는 먼지만 쌓이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는데 참새만 짹짹짹대고 대접을 받기는 커녕 차과 달라 종이꺼달라며 때만 쓰는 사람들이나 오더라는 내용입니다. 머리 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 누가 알았으랴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120세 장수선사의 이야기가 내내 이랬으면 웃음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초라한 절에서 조주는 40여 년을 더 삽니다. 조항이 몇 차례나 왕부로 초청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사찰을 지어 공양을 올리겠다는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국가에서 내리는 가사와 진재대사라는 시오는 말년에 어쩔 수 없이 받았습니다만. 그것이 그의 삶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가난한 절 먼지 쌓인 창문 존중받지 못하는 일상 그 속에서 그는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조주라는 인물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짚어야 합니다. 자녀 역 역사에는 단번에 깨닫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 번쩍 열리고 그 뒤로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서사입니다. 그런데 조지는 그 서사에 잘 맞지 않습니다. 그는 남자 문화에서 이미 깊은 것을 보았고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수십 년을 더 행복했고 80세까지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행각의 자세가 이미 다 알았으니 확인하러 다닌다가 아니라 배불러 아직도 더 깎일 것이 있다는 쪽에 가까웠다는 점은 그가 남긴 말의 흔적들에서 드러납니다. 깨달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느냐 아니면 평생에 걸친 과정으로 보느냐? 조주는 후자의 대표적인 얼굴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단순한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 마모되고 다듬어진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120세까지 살았습니다. 800 197년에 입적합니다. 당나라가 무너지기 10년 전의 일입니다. 그가 태어난 해부터 죽은 해까지 그 사이에 중국에서는 왕조의 흥망 대규모 폐불 반란 분열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파도 속에서 작은 절의 먼지 낀 창문 곁에서 120년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남는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이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무엇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반대로 무언가를 계속 덜어내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 답의 실마리는 그가 남긴 말들 속에 있습니다. 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대답했습니다. 무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 한 글자가 지금으로부터 1000년도 훨씬 넘게 동아시아 수행자들의 머릿속에 박혀 빠져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방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 글자 하나를 들고 앉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저 없다는 한마디가 왜 이토록 오래 남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조금 돌아가야 합니다. 먼저 이 무우가 던져진 배경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불교에는 불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부타다투 즉 부처의 성품 혹은 부처가 될 수 있는 봄바탕이라는 뜻입니다.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 중 하나인 대반열반경에는 이런 선언이 나옵니다. 일체 중생 시류불성 모든 중생은 빠짐없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교리입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아무리 약한 자라도 예외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모두의 아내이미 부처가 될 씨앗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은 또한 열애장이라는 개념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열애장이란 열애 즉 부처를 품고 있는 창고라는 뜻입니다. 모든 중생의 내면에는 이미 부처가 들어 있는데 다만 번뇌와 무명 어둠과 미혹이 그것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는 사상입니다. 그러니 수행이란 무언가를 새롭게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가리고 있는 것을 걷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먹구름이 가리고 있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진 것이 아닌 것처럼 이 교리는 매우 포용적이고 인간적입니다. 누구도 구원의 가능성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말이니까요. 불교 사상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바로 이 교리를 들고 조주를 찾아온 것입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개에게도 있겠습니까? 질문 자체는 성실합니다. 교리를 배운 사람이 당연히 생겨날 수 있는 의문입니다. 개는 중생입니다.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면 개에게도 있어야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조주가 말했습니다. 뭐 없다. 그것뿐입니다. 스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개에게는 왜 없습니까? 조조가 대답했습니다. 업식성 중생이 번뇌의 업에 묶여 망념을 일으키는 성질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여기서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있습니다. 기록을 더 살펴보면 또 다른 날 다른 스님이 똑같이 물었습니다. 계획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뉴욕 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질문에 없다고 했다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순입니까? 거짓말입니까? 아니면 앞뒤가 맞지 않는 노인의 착각입니까? 아닙니다. 조주는 아주 정확하게 의도한 것입니다. 있다고 해도 걸리고 없다고 해도 걸린다. 어느 쪽을 붙들어도 틀렸다. 이것이 조주가 이 두 대화로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 스님이 어떤 답을 기대하고 왔느냐에 따라 조주는 정반대의 말을 던졌습니다. 기대 속으로 뛰어들어 그 기대를 발밑에서 무너뜨리는 방식입니다. 일단은 답을 원했다면 없다를 주고 없다는 답을 원했다면 있다를 줍니다. 그중 어느 것을 붙들어도 그것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을 해야 합니다. 조지의 문은 없다는 뜻의 일반적인 부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와 무라는 두 개념의 틀 자체를 비틀어 버리는 무입니다. 있다 또는 없다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차단하는 한마디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이것이 맞다 혹은 저것이 맞다. 있다 혹은 없다. 옳다 혹은 그르다. 이것이 우리가 언어와 개념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기본 방식입니다. 논리학에서는 이것을 이양 대립이라고도 합니다. 에이이거나 A가 아니거나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성이라는 것이 과연 이 틀 안에 들어오는 것일까요? 불성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실체라면 이따 혹은 없다로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불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평상도 없고 어떤 하나의 모양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봄바탕 깨달음의 가능성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에 대해 이타 혹은 없다고 묻는 것은 처음부터 물음의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스님이 던진 질문은 이렇게 읽힙니다. 개에게도 불성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그 물음안에는 이미 불성이 어딘가에 가지거나 안 가질 수 있는 물건처럼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조조의 문은 그 전제째로 잘라낸 것입니다. 없다가 아니라 그 질문 자체가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송나라 선사 무문회계는 이 장면을 훗날 무문관이라는 공한 집에 제일 측으로 선정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잠선은 모름지기 조사관 역대 조사의 핵심을 꿰뚫는 관문을 통과하는 데 있으며 오묘한 깨달음은 마음의 길이 완전히 끊어져야만 한다고. 그리고 이 한 글자 무야말로 선종 무문관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무문관이라는 제목 자체가 역설입니다. 문이 없는 관문 통과해야 하는데 통과할 문이 없습니다. 들어가서 들어가려고 하면 들어갈 곳이 없고 돌아가려고 해도 그 자리에 그냥 막혀 있습니다. 이 막힘이 핵심입니다. 공안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잠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공항은 원래 관청의 문서 즉 공식 판례나 규범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선의 세계에서 공안이란 역대 조사들이 제자들과 나눈 문답 그 자체로 하나의 기준이 되고 관문이 되는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화두라고도 합니다. 화두는 말의 머리 즉 말 이전의 것 언어가 시작되기 이전의 자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안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밀어붙이며 의심덩어리 의단을 형성하는 수행법이 바로 가나선입니다. 화두를 보는 선 이 가나선의 수행에서 조지의 무화두는 출발점 중에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이 문자 하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계도 분명히 전해집니다. 고려의 보조 진홀은 무자 화두를 참고할 때 빠지기 쉬운 잘못들을 열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중 처음 두 가지가 이것입니다. 있다 없다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말 것 진짜 없음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말 것 그다음으로 도리를 따져 이해하지 말 것 의미를 동원해 헤아리지 말 것 언어로 설명하려 하지 말 것 어느 쪽으로 가도 오류입니다. 있다고 받아도 안 되고 없다고 받아도 안 되고 그 둘을 넘어선 어딘가에서 찾으려 해도 안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진우는 말합니다. 그저 의심을 심화시켜 나가라고. 이 의심이 무르익어 의단 하나의 거대한 의심 덩어리가 되면 어느 순간 그 이단이 터진다고. 이 말이 처음엔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키우라고 합니다. 대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막히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과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풀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의심이 생기면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의심을 더 크게 키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의심이 가득 차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점이 되면 무언가가 터진다고 합니다. 이 구조를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방에 들어갔습니다. 방 안에는 자물쇠가 걸린 문이 있습니다. 열쇠를 찾으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없습니다. 그러다 벽도 살펴봅니다. 창문도 없습니다. 비상구도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 막막함이 깊어지면서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애초에 나는 어디 있는가? 이 방이 실제로 있기는 한가? 이 문을 열어야 한다는 전제가 맞는가? 이 생각이 들 때 지금까지의 모든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무라는 화두가 하는 일입니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구하는 방식 자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조조의 모는 자물쇠가 걸린 문이 아닙니다. 문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던 벽 자체입니다. 대일 종고는 가나선을 체계화한 선사인데 이 무화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라는 한 글자는 무수하게 많은 잘못된 지갑을 꺾는 무기라고 불성이 있다는 니 없다느니 하는 이론적 논의만으로는 당사자의 존재를 흔드는 어떤 감동도 전하지 못한다고 오직 이 무 하나를 온몸으로 밀어붙이는 것만이 분별하는 마음을 태워 없앤다고. 그렇다면 이 공안이 선종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일까요? 무문관은 선종의 3대 공안집 무문관 벽암록 종용록 중 하나인데 무문회계가 1228년에 편찬한 이 책의 48개 공헌 중 제일 측이 바로 조지의 구자 무불성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입니다. 벽암록에는 100개의 공안이 담겨 있는데 그중 12개가 조지일 것입니다. 봉안집 전체에서 한 사람이 12개를 차지한다는 것은 전례 없는 비중입니다. 그리고 이 무문관의 책 제목 자체가 조주의 모에서 나왔습니다. 무문헤게는 이 무가 종문이 제일 관문이라고 했고 그것을 책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무문관 문이 없는 관문 무가 관문이고 무가 책 이름이고 무가 선종 수행의 입구입니다. 조지의 한 글자가 선의 세계 전체를 대표하는 문이 된 셈입니다. 이 영상을 마치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스님이 물었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말했습니다. 무 이제 이 무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 보이십니까? 이것은 없다가 아닙니다. 있다도 아닙니다. 있다가 없다. 사이 어느 순간도 아닙니다. 그 질문이 서 있던 땅 자체를 잘라낸 것입니다. 발밑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 순간 이 물음을 들고 서 있던 스님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양 옆도 막혔습니다. 그 막힘 속에 오래 서 있다 보면 아주 오래 무언가 달라지는 일이 일어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전해 왔습니다. 막힘은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막힘을 설계한 사람이 조주 마키만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병원에서 우리 동생 대학병원 옮겼어요.였습니다. 다음 영상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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