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수 있기에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있기에 우리는 본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가장 큰 자유였습니다. 오늘 이 법문을 끝까지 들어오신 그 자체가 이미 한 자루의 짐이 내려간 일입니다. 마음을 모아한 가르침에 머무르신 이 시간이 있길 위로 풀시가 떨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흙탕물이 가라앉는 시간이었습니다. 호수 바닥에 돌이 자리를 잡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달라졌는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셔도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본래 조용한 까닭이며 풀잎이 자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풀잎은 자라고 있는 까닭입니다. 불자 여러분 오늘 하나만 마음에 새겨가시기 바랍니다. 업이 거치는 그 시작은 더 좋아지려는 결심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시는 그 한 호흡에 있습니다. 더 많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돌아오시는 그 일이 진짜 수행이 됩니다. 잊으셨다. 다시 알아차리시고 흔들리셨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시고 잠시 멈추셨다. 다시 한 걸음을 떼시는 그 반복이 우리를 본래의 자리로 데려다주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이제 함께 짧은 발언을 올려보겠습니다. 원컨대 이 법문의 작은 공덕이 듣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가만히 닿게 하소서. 무거움. 마음에는 가벼움이 닿고 미운 마음에는 자비가 닿으며 어두운 마음에는 빛이 다케하소서.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이 그리고 그분들과 인연다운 모든 이들이 가족과 친지가 먼저 떠나신 분들과 아직 만나지 못한 모든 인연이 함께 본래의 평안에 이르소서. 오늘 이 법문이 마음에 닿으셨다면 아래 좋아요를 눌러주십시오. 더 많은 분들이 이 가르침을 만나실 수 있도록 주변에 나누어 주시면 그것이 또한 저락의 회향이 됩니다. 좋아요와 나눔 그 작은 한 번이 모르는 누군가의 무거운 마음에 가만히 닿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아직 구독을 하지 않으셨다면 구독과 알림 설정을 함께 부탁드립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다시 만나뵐 수 있도록 작은 손길 한 번을 부탁드리며 그 손길 또한 또 하나의 인연이 됩니다. 그리고 아래 댓글란에 오늘 마음에 가장 깊이 닿은 한 단어를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알아차림이든 참회든 감사든 가벼움이든 그 한 단어가 또 다른 분의 마음에 가만히 닿게 됩니다. 한 분의 한 단어가 모여 큰 회양의 마당이 되어 갑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만히 눈을 감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호흡 길게 들이쉬시고 한 호흡 길게 내쉬어 보십시오. 들이시는 그 숨에 부처님의 가피가 들어오고 내쉬는 그 숨에 우리 안에 남아 있던 한 자락의 무거움이 가만히 빠져나갑니다. 한 번 더 한 번도 이 짧은 세 번의 호흡이 오늘 한 자리에 작은 수행이 되어 줍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업의 매듭이 풀려가는 그 자리마다 본래의 평안이 가만히 드러나며 오늘 밤 깊고 맑은 자만에서 새 새명을 맞으시기를 바란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업이 거치는 가장 분명한 시작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오늘 부처님 말씀과 마음 공부 64 쪽이구요. 네 개는 억보가 닥치지 않으리라라고 작은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방울물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작은 악이 쌓여서 큰 죄악이 된다. 내게는 억보가 오지 않으리라라고. 작은 선은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방울물이 모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조금씩 쌓은 선이 큰 선을 이룬다. 이제 이런 게 이제 부처님께서 처음 그 뭐 실혼 개론 생선론에서 선인선과 악의 악과에 대한 이런 법문을 하셨죠. 이 현상세계 현상세계의 법칙은 선인선과 악인 악과의 어떤 법칙에 놓여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작은 악을 지는 탈지라도 그 악업을 행한 것이 나에게 남아서 그대로 이게 습으로 쌓인다는 거죠. 그래서 선을 행했던 악을 행했던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한번 쌓이고 두 번 쌓이면 그게 이제 그 승관의 경향성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 반복 된 악행은 그게 경향성으로 굳어지기 때문에 그게 자기의 어떤 업이 되고 업장이 되고 업습이 되고 자기의 어떤 성격도 되고 그러면 그렇게 이제 경향성으로 굳어져 버리면 이게 위험한 것이 뭐냐 하면 변화가 쉽지 않다는 거죠. 되게 익숙한 거죠. 뭘 보자마자 나쁜 쪽으로 자동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부정적으로 자동으로 생각이 되는 게 그냥 전자동으로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아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왔던 삶의 경향성들이 그렇게 나를 몰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이런 말을 하잖아요. 그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다 뭐 이런 말 하는데 이게 이제 업을 얘기를 한 거예요. 고쳐 쓸 수 있죠. 고쳐 쓸 수 있는데 이 업으로 이렇게 굳어지고 이 순간이네. 그러니까 왜 장애까지 이렇게 굳어지게 되면 그것을 바꾸는 게 점처럼 쉽지는 않죠. 근데 내가 그렇게 되면은 본인 스스로 이제 그것을 옳다고 믿게 되고 그렇게 되면 어지간해서는 사람 성격 바꾸는 게 이게 쉽지가 않아요. 도둑질하던 사람은 개가 천선에서 더 이상 안 한다. 이래도 그래서 또 도둑질을 하게 되고 또 당대표는 사람은 담배를 딱 끊었어도 어지간해서는 완전히 끊기가 쉽지 않다. 그러대요. 그러니까 오직 했으면 담배 끊는 사람하고는 같이 사업을 하지 마라. 이럴 정도로 너무 독한 사람 그건 진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겠죠. 그러니까 한 번 그렇게 습관이 이렇게 굳어지게 되면 그걸 바꾼다는 거는 아주 쉽지가 않아요. 그러나 그걸 이제 바꾸려고 할 때 내가 이제 굳어진 어떤 내 업의 경향성을 바꾸려고 할 때 그걸 바꾸려고 막 애쓴다고 해서 바꿔지지가 않아요.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툭툭 튀어 나오는 거다 보니까. 그래서 이제 그걸 바꾸려고 할 때 바꾸려고 막 길을 쓰는 노력을 해가지고 바뀌는 게 아니고 음 근데 이게 나쁜 성격이니까 나쁜 업이니까 바꿔야지. 바꿔야지 하고 너는 나쁜 놈이야 하고 규정한다. 너는 좋은 사람으로 변해야 돼. 해서 바꾸려고 막 키를 쓰고 노력하는 행위를 통해 바꿀 수 있느냐. 그게 쉽지 않다. 쉽지 않다는 게 밝혀졌어요. 그 우리 심리학이라는게 뭐 저도 잘 몰라요. 근데 대충 심리학이라는 게 막 100년 이케 뭐 지금이 오지 않았나 싶어요. 근데 한 100년 동안 심리학이 오면서 그동안 심리학은 그랬다는 거예요. 사람들을 보니까 문제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 평균적이지 못한 사람들 그런 사람을 이제 장애라고 이름을 붙여놓은 거예요. 뭐 강박장애 뭐 무슨 뭐 무슨 장애 무슨 장애에서 장애가 점수가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어요. 심한 사람이 있고 안심한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그동안에 심리학의 흐름이 한 지난 백년 동안 심리학의 흐름이 얘는 무슨 장애를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진단한 다음에 그 사람을 이제 정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걸까요?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무슨 장애 무슨 장애 딱 이름을 붙여놓은 다음에 이걸 바꾸는 방법들이 연구되는 역사가 심리학의 역사였어요. 그래서 막 무슨 뭐 인지 치료니 뭐 행동치료니 뭐 생각을 바꿔가지고 그걸 바꿀 수 있다. 뭐 행동을 바꿔서 막 바꿀 수 있다. 뭐 다양한 이제 기법들 그 사람의 없습을 변화시키는 좋게 바꾸는 나쁜 악업을 선업으로 이렇게 뒤바꾸는 이런 것들이 이제 지난 100년 동안 해왔던 말이에요. 근데 결론이 났습니다. 100년을 했는데 안 되더라고. 그 안 된다. 아이 그 답이 없다. 왜 안 되더라는 거냐면 100 프로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그리고 요즘엔 또 워낙 심리학도 이렇게 다양하게 이렇게 발전을 해서 상당히 도움되는 것들 분명히 있어요. 이걸 이 직면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 이게 요즘에 나온 어떤 심리학의 어떤 그 변화들이 그런 것들이 좀 더 가깝게 해줘요. 근데 과거에 그게 문제라고 여기고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라는 방식으로 했더니 잠깐잠깐 좋아지는 것 같았다는 거예요.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그게 근원에서 해결되진 않았어요. 그게 결국엔 나중에 쌓였다가 다시 터지는 거죠. 잠깐 덮어놓은 거 정도밖에 되지 않더라. 그래서 근원적인 해결책이 안 되더라는 거죠. 그리고 오히려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더라는 거예요. 너는 나쁜 놈이야. 넌 장애가 있어. 너무나 장애 지수가 높아. 넌 정상이 아니야. 비정상이야. 너 바꾸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돼. 그러니까 이 사람은 막 더 강박이 생기는 거예요. 바뀌어야 된다라는 강박 나는 나쁜 놈이라서 변해야 된다라는 강박에 오려. 사로잡혀서 힘들고 바뀌어야 돼라고 하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이게 막 더 반대편으로 폭발하거나 이러기도 하더라는 거죠. 그러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 도대체 여기 심리학 아무리 똑똑하신 분들이 연구를 100년을 해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는 거예요. 바꾸려고 애쓰면 SS로 오히려 더 안 바뀌어지는 아이러니가 튀어나오더라는 거죠. 그럼 뭐지? 이렇게 당황하고 있던 와중에 불교가 서양으로 전파가 된 거예요. 달라라마 틱나탄 스님 또 우리 숭산 스님 같은 뭐 이런 분들을 통해서 불교가 이제 전례가 되면서 하버드 대학에서 심리 이런 쪽을 하는 교수님들이 불교에 대해서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관심을 갖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이분들이 이거구나 여기 답이 있구나. 우리가 그동안 풀지 못했던 답이 여기 있구나. 그러니까 불교는 처음 보는 방식이더라는 거예요. 이런 이런 방식이 다 있지. 난생 처음 보는 방식인 거예요? 문제라고 규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그동안 사람들의 생각이었잖아요. 심리학의 방식이었는데 불교는 그 사람을 문제가 있다라고 낙인 찍거나 이러지 않더라는 거예요. 지 관이잖아요. 불교의 수행이라고 하면은 중도인데 중도의 수행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지 관이라고 말하거든요. 그 멈출 진짜 생각 판단 분들 규정 이런 것들을 멈추는 거거든요. 너는 문제야 이렇게 규정하는 걸 멈추라는 거예요. 나는 나쁜 놈이구나 나는 능력이 없구나 나는 부족하구나 나는 문제가 많구나. 이런 규정을 멈추라는 거예요 그것도 판단 분별이잖아요. 판단 분별을 진단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진단 방법을 엄청나게 발전해 왔잖아요. 저희도 이제 제가 군에 있을 때 심리학을 공부를 많이 했어요. 군에서는 장병들 중에 막 스트레스 받고 막 괴로워하고 막 어 너무 힘들어하는 장면들이 많잖아요. 요즘 말로 사랑이 필요한 병사들 옛날 말로는 관심사병 이렇게 많이 있단 말이에요. 근데 그 친구들을 누군가 케어해야 되니까 종교인분들 목사 신부 스님들이 좀 케어해 주셔야 되겠나. 근데 그거를 종교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케어는 절이나 교회에서는 하겠지만 그냥 보편적인 방식으로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장병들을 정상으로 돌려놔라 이거죠. 그걸 이제 우리 군종 장교들에게 하라고 하다 보니까 그 종교적인 방식으로 하면 이게 이렇게 표준화가 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심리학의 방식으로 심리치 심리 상담을 통해서 바꿔라는 거죠. 그래서 이제 목사님이 전문 이제 우리 시대들이 모여가지고 심리 관련된 자격증 따로 많이 따셨어요. 안 배우는게 없어요. 이것저것 그때그때 유명했던 막 온갖 자격증 다 땄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심리학에 대해서 재미나게 이렇게 좀 공부를 하게 됐죠. 근데 이 심리학에서 충격을 받았던 게 뭐냐면 저도 이제 해 보니까 이게 한 10분 20분 이렇게 다양한 검사를 해요. 검사지가 엄청 많잖아요. 검사하면 요즘 MBTI 하듯이 뭐 검사하면 뭐 탁탁탁 나와요. 너는 뭐다 너는 뭐다 뭐가 부족하다? 뭐가 좋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이렇게 해야 되고 저렇게 해야 되고 뭐 온갖 직장은 어떤 걸 하는 게 좋고 뭐 별의별 다양한 것들이 있어서 상당히 도움이 돼요. 도움을 많이 받았고 어떻게 모든 학문들은 다 도움이 돼요. 그리고 어 우리 불교에서는 세감법 출세감법이라고 해서 세간에도 법이라고 이름을 붙여 세간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잘못됐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아니에요. 세간법의 영역에서는 세간법을 공부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출세간법의 영역으로 들어와서는 그때는 이제 출리심이라 그래가지고 이 세간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 그걸 가져야 되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한정해서 이제 세간을 내려놔라. 이렇게 방편을 쓰는 것뿐이지 그래야 출세간에 내가 매진할 수 있으니까. 세간법을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많은 도움들이 들어요. 어 저도 이제 해본 것 중에 이제 음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은 나는 고민되는 것 같았어요. 뭐였냐면요. 어느 목사님 선배님들이 같이 갔는데 음 거기서는 저거를 하더라고요. 이렇게 심리 이렇게 막 하는데 뭐라 해야 되지? 이렇게 역할극 역할을 그걸로 해 가지고. 내가 어릴 때 뭐 부모님 때 상처 엄청 받았어요. 그럼 이제 그 얘기를 딱 들어본 다음에 이제 내가 부모님이 되고 옆에 있는 그 선생님이 이제 내가 되는 거죠. 그래서 내가 할법한 얘기를 막 하면 내가 거꾸로 부모님 입장에 대가지고. 너 네가 잘못했잖아 하면서 막 얘기를 하는데 신기한 게 어떤 어떤 정교한 분께서. 하지만 옆에 지켜만 봐도 신기하더라고요. 당신은 부모님에 대한 엄청난 분노가 있어서 그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그 분노 때문에 엄청 상처받았잖아요. 근데 이제 본인이 거꾸로 부모가 돼가지고 자식한테 막 네가 잘못했다고 막 써붙이는데 본인이 본인이 이 사람이니까 자기가 더 잘하잖아요 얘기를 잘못한 건 그러니까 본인이 막 뭐라고 막 화를 내면서 막 네 같은 녀석하고 막 저거 하면서 막 화를 내고 하는데 너무 리얼하게 너무 리얼하게. 몰입을 해 가지고 본인이 역할을 바꾼 게 아니라 내가 그냥 대뻐려가지고 너 같은 놈이 너 같은 자식을 둔 부모는 오죽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하면서 너 같은 놈을 둔 나는 얼마나 괴로웠겠느냐 하면서 내 무슨 짓 무슨 짓 한 거 기억 안 나냐? 나도 괴로웠다. 너 때문에 나도 힘들었다 하면서 막 쏟아붓단 말이에요. 롬을 리얼하게. 그러고 났는데 나중에 한동안 멍하고 계시더니 본인 스스로가 충격을 받은 거예요. 와 내가 한쪽만 봤구나. 내가 자식 입장만 생각했구나. 내가 리얼하게 부모 입장이 대보고 나니까 그게 확 이해가 되는구나. 그러면서 그거에 대해서 상당히 치유가 되고 부모님에 대해서 이해
하는 어떤 계기가 되었다. 뭐 이런 그걸 옆에서 이렇게 좀 지켜보면서 되게 놀
그래서. 야 이렇게 그것은 어떤 걸까요? 그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나는 이제 내 견해만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견해 속에 갇혀서 살잖아요 우리는 그런데.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가지고는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마음을 닫는 거죠 그 사람의. 입장이
돼보고 싶지 않은 거예요. 부부 간의 갈등이 있다. 역할을 탁 바꿔버리면
신기하게 보살님이 남편 입장을 기가 막히게 내보내면서
이렇게 할 거란 말이죠. 그렇게 한 번쯤 상대방이 되어서 이렇게 역
할을 해 보는 것이 되게 이렇게 아 이건 참 되게 어. 뭐랄까. 상대방은 이해하고
내견에만 주장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을 열 수 있는 좋은 어떤 계기가 되겠다? 이제 이런 식의 보면서 저도
저도 나름 되게 도움도 받고 아 이런 것들이 있지. 어찌 보면 그 옛날에 이제 불교 수련
많이 가잖아요 우리. 옛날에 수련대 같은 게 많았어요. 내지는. 불교에서도 보면 이제 수련회 같은 게 많았어요. 뭐. 템플스테이 이런
것도 있지만 근데 그 템플스테이에 있는 다양한 그 이제 기법 같은 것들이 있어요. 수행
이라고 해서 요즘에는 연불하고 도경하고 절망시키고 그러지 않아요. 템플스테이 같은 데서 이 심리 치유의 방식 같은 것들을 상
도입을 해서 스스로 이렇게 문제 있다. 이런. 것들을 이렇게 직접 만나게 해주고 이런 것들을 불교에서도 많이 해요 이제. 이게 서로가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주고 하면서 하는 거겠죠 이것도 우리 부처님 말씀하신 지론 개론 생천론
수준의 이 현실 세계 이 현실 세계의 수준에서는 어 우리도 상당히 많이 이렇게 열리게 만들고
조금 더 어 좀 이렇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만들고 그럴 수 있는 물론 아주 좋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랬는데 어쨌든 이것이 답이 없어 없었는데 불교를 만나 가지고 이 생물이 설법을 들어보니까 이 물 문제라고 해결한 문제라고 낙인 찍는 것 자체를 일단 거부하더라는 거예요.
왜 사람을 그렇게 옳다? 그러다를 둘로 나눠 놓느냐 옳은 사람 틀린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그걸 왜 이렇게 나눠 놓느냐?
구분을 하느냐 그렇게 분별해 가지고 그거를 변화시키려고 막 길을 쓰고 노력한다. 그걸 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불교 수행법에서는 불교 수행법이 중도인데 중도를 현실 속에 구현하는 게 8 정도거든요. 그런데 그 8 정도를 억지로 갈고 닦는 게 아니라 지관 멈추고 보기만 하면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면 정견 보기만 하면 그냥 해결된다라는 게 4년 차거든요. 그 있는 그대로 통찰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해결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본인은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사실은 몰라요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 모른다. 모를 뿐 그러니까 좋은 좋은 걸 취하고 싶은 집착도 해결해야 되고 싫은 거를 거부하고 싶은 것도 해결해야 되고 이 문제를 현대에서는 진단을 하고 나야 그 진단에 대해서 해결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불교에서는 뭐라 그랬냐면 여러분 사념초에서 법령초 마지막 신소심 법화인데 법령처를 보면 이게 뭐냐면요 나와 세상 일체 모든 모든 존재 모든 것들 모든 존재 이게 법이거든요.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 즉 나와 세계를 포함한 전부를 법이라고 해요 전제라고 해요. 근데 이 있는 그대로의 인연따라 생겨난 모든 것들 이것을 법령처 법을 믿는 거예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라는 거예요. 첫 번째 자리에서 첫 번째 자리라는 건 내 생각과 해석으로 재해석하지 말고 버티지 말고 분별하고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고 그냥 버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법령처에서 오후개도 그냥 보고 칠각지도 그냥 보고요. 오후개라는 거는 우리 탐진지. 삼독계 확장판 같은데 그 이제 우리 마음을 뒤덮는 오염된 마음들이에요. 수행하려고 하면은 너무 졸리거나 의식 공부해서 되겠어 하는 의심이 들거나 뭐 욕망 욕망 같은 것들이 막 올라오거나 또는 막 너무 들뜨는 마음이나 가라는 마음이 생기거나 이런 어떤 수행을 방해하고 우리 공부를 우리의 맑음을 방해하는 마음의 요소들 그런 것들이 올라올 때 다른 거 할 게 없다는 거예요. 그런 곳이 올라오든지 내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이 올라오든지. 아니면 칠각지라고 해서 마음 공부를 했더니 마음이 고요해지고 있는 그대를 알아차려지고 법이 뭔지 이것이 법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고 환희심이 생기고 어떤 뭐 희열이 생기고 기쁜 마음이 생기고 이런 고요한 평정이 생기고 이런 좋은 마음들이잖아요. 수행의 공덕이 되는 마음이 올라올 수도 있고 마음을 뒤덮는 오염된 마음이 와서 올라올 수도 있는데 두 가지 마음을 동등하게 그저 통찰할 뿐 똑같은 법령 정책 정도예요. 안 좋은 마음을 내가 안 좋은 마음이니까 바꿔야 돼.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안 좋은 마음이 올라와도 그냥 알아차릴 뿐 좋은 마음이 올라오면 우리는 좋은 마음은 쥐고 싶어요. 더 경험하고 싶고와 근데 너무 환상적이었어. 그거는 한 번 더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문제라는 거예요 그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취사 반대까지 만나는 거예요. 취하려는 것도 병이고 버리려는 것도 병이다. 그러니까 그걸 동등하게 바라보는 거예요. 이게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거 아니에요? 좋은 걸로 보고 나쁜 걸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통찰할 뿐 거긴 분별이 없단 말이에요. 우리 우리들에게 법을 설하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오개 같은 나쁜 것도 바라봅니다. 칠각질같이 좋은 것도 봐라.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방편을 쓰는 거지. 즉 이 말을 심리 치유에 대입해 보면 강박장애 뭐 우울장애 뭐 온갖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그걸 그냥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진단해 가지고 해결하고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이 순수한 첫 번째 자리에서 오염되지 않은 첫 번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번다는 거예요. 그것과 함께 판단하지 않고 그것 속에 있어준다. 그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을 그냥 경험해 주는 거예요. 그 속으로 뛰어든다는 거예요. 강박 장애가 있는데 그걸 버려야 되는 게 아니었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누가 해 봤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진짜 공부는요. 정말 위대한 공부는 가장 쉽고 가장 할 게 없고 음 가장 심플하고 단순한 거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복잡한 사람들 머릿속에 문제야 이거 어떻게 해결하지? 해결법만 생각하는 방법론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중도적인 방식 기라는 길 하대 함이 없이 하는 길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문제 속으로 뛰어드는 방식이 얼마나 이게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어요. 처음에는 이게 말이 돼? 이게 가나선을 주창하신 대해 스님께서는 대해 서장에서 대종고 스님이 서장에서 이렇게 표현했어요. 제자가 와서 스님 제가 지금 끌어오르는 이 분노와 뭐 화와 너무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이 괴로움의 불길이 막 내 온몸을 막 태우는 것 같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괴로워 죽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가 이 뜨거운 불길에서 피할 수 있을까요? 왜냐면 불교에서는 이 불의 비율을 들거든요. 탕진티 삼독의 불길이 타오른다. 이렇게 불길처럼 타오른다. 이런 비유를 들거든요 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마음 때문에 막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 때문에 제가 살 수가 없어요. 어디로 피하면 될까요? 그 피하는 방법을 물었단 말이에요. 근데 대외정부 스님이 뭐라고 하셨냐면 타로는 불길 속으로 피해를 줬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 타우르는 불길 속으로 피해라. 그 밖에서 여기가 동쪽에 있다가 서쪽에 있다가 의자를 이렇게 갔다 저렇게 갔다가 의자를 뒤로 돌려보면 등이 뜨겁고 옆으로 나오면 왼쪽 다음에 뜨겁고 어떻게 해도 그 계속 뜨겁단 말이에요. 너무 큰 불길이 나를 쫓아다닐 때는 어디 가도 불길에 쫓아오는데 어디로 피할 수가 있겠어요? 피해지지 않는단 말이죠. 그런데 피할 생각만 했단 말이야. 우리 취하거나 버리거나 좋은 건 취하고 싫은 건 버리는 거밖에 사람은 할 줄은 몰라요. 그게 분별심이거든요. 그거밖에 안 해 본 거예요 태어나서. 그러니까 피하는 방법을 묻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선지식은 그 불길 속으로 피해라요. 피하는 게 아니잖아요. 펴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피하지 말고 직면해라는 거죠. 피하지 말고 그것과 하나가 되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 피하면 불길과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그럼 불길은 자기가 뜨겁다고 생각할까요? 불길은 불길을 피해서 도망치려고 생각할까요? 자기가 뜨겁지를 않아요. 불길 옆에 있는 사람이나 뜨겁지 불길이 돼버리면 불길은 뜨겁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불길 옆에 있지는 않아요. 불의법 둘이 둘로 나누어 가지고 취하려고 남들이라고 하는 건 다 이런 게 일어난단 말이에요. 둘이 또 본래가 하나란 말이에요. 벌레가 하나. 번데가 막 보리예요. 음 번뇌가 보리기 때문에 번뇌 속으로 뛰어들어야 되는 거예요. 문제 속으로 뛰어들어서 그것과 하나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문제가 해결돼 버려요. 보상 뜨겁지가 않아요. 그거 자체가 돼버리니까. 이 불교에서 말하는 지관 중도 육바 사나라는 게 바로 이거예요. 어떤 문제나 장애가 있을 때 그걸 문제라고 하고 장애라고 하면서 너희들은 장애가 없으니까 정상이겠구나 나는 장애가 있으니까 문제가 많아. 이렇게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자기를 막 중생으로 어리석은 존재로 낙인 찍고 이러지 않는단 말이에요. 번뇌가 있든 없든 동등한 부처란 말이죠. 언니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수행을 열심히 해 가지고 막 환희SIM에 환희SIM에 막 젖어서 막 기뻐서 환희SIM에 막 기뻐하는 사람이나 다를 게 없단 말이야. 똑같은 부처예요. 이 사람은 본 뇌에 사로잡혀 있는 거고 이 사람은 한의심에 사로잡혀 있는 거지. 그거는 부처님은 놀랍게도 너 수행해가지고 칠각제를 얻었으니까 넌 대단하다. 훌륭하다. 너는 고개가 너를 잡아삼키고 있으니까 너는 아직 수행 멀었다. 이렇게 오비가 나를 지금 켜고 있는 그대로 통찰하고. 칠각지가 막 일어나더라도 그걸 가지고 막 내가 공부가 잘 됐다. 나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다. 나는 공부해가지고 이런 것까지 체험해 봤다. 이런 상의 취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법상에 도치돼 가지고 그것도 문제가 된단 말이에요. 그것도 우리는 그런 생각 안 해보죠. 나쁜 거를 피하는 거는 수행 잘하는 건데 좋은 거에 집착하는 건 저 저 문제라고 생각 안 해요. 좋은 거에 집착 좋은 거에 집착하는 게 문제죠. 이 공부를 하다가 쑥 내려가는 체험을 했다. 그 체험에 집착하기 때문에 문제가 돼요. 그런데 막 너무 놀라운 체험을 했단 말이에요. 한 번도 태어나서 경험해 보지 못한 채울 테니까 거기에 집착을 해요. 응 그런 사람에게 칠각질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라는 게 4년초가. 그래서 하는 거거든요. 그런 체험도 나 보려라는 거예요. 그냥 볼 뿐이지. 그 체험은 그 깨달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그런 밤 있잖아요. 내 옆에 있는 도반 보니까 막 오 만 가지 체험을 다 해 보고 막 어떤 사람은요 진짜 체험 많이 하는 사람은요? 그냥 아니 우리 학생들 수련회 시켜서 그런다니까요. 제가 체험을 시켜줘가지고 친구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이러면 약간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해요 그런데 그게 만들어집니다. 제가 분위기부터 그렇게 딱 잡고 시작을 하잖아요. 약간 방편으로 좀 뭔가 감동을 주고 싶다. 이럴 때 이럴 때 아예 애초에 분위기 자꾸 시작해요 그냥 아예 이거 탁 집중해 봐라. 왜 이게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막 막 꼬셔요 가스라이팅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이제 뭐 유도를 하면서 이제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연불이 뜬 진원이든 그냥 딴 생 잡생각 일어나지 않게 젊은 애들 막 힘 있잖아요. 힘인데 뭐 큰 소리로 엄만히 반명만 하라고 하든지 막 안생버섯만 하라고 하든지 뭔가 막 그냥 오 하면서 배 힘주고 오 막 뿌뿜하면서 이런 것도 하고 뭐 이렇게 하면은 그냥 갑자기 몰입이 돼요. 그런데다가 막 한 50명 100명에 한꺼번에 공간 한 공간 안에서 막 다 같이 큰 소리로 막 몰입을 하잖아요. 그러면 다 같이 하면 이게 더 힘이 있어요. 그럼 막 몰입이 돼 버려요. 그러면 그 1 1시간 그러고 나서 딱 앉아서 동그랗게 앉아서 얘기를 하면 반 이상의 한 7 70 프로 이상이 막 놀라운 체험을 하고 막 어떤 사람은 뛰쳐나가서 토하고 뭐 하늘을 붕 떴다 내고 뭐 뭐 누구 소리를 들었다 내고 막 별의별 오만가지 칩니다. 얘기한단 말이에요. 근데 그 얘기할 때 한 30 프로는 시무룩해 가지고 기가 푹 죽어 가지고 어떤 사람은 2박 3일 3박 4일을 했는데도 남들은 2박 3일 동안 온갖 체험 다 했는데 본인은 처음도 끝까지 한결같이 아무런 체험이 없는 그런 사람은 귀가 푹 쉬고 있단 말이에요. 인상 푹 쓰고 나는 수행 불구장가. 나는 수행을 해도 안 되는가 난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니 거의 그러지 않습니까? 남들 수행했다라는 체험 이야기 들으면 막 부럽고 대단해 보이고 막 나도 저러고 싶은데 이렇게 느껴지잖아요. 그것도 병이라니까요. 그것도 거기 쥐고 있으면 쥐고 있으면 그것도 병이라니까요. 그건 그냥 칠각질 관해야 될 대상일 뿐이에요. 사념철하는 게 뭐예요? 사띠 알아차릴 대상이라는 거예요 그냥 그것을 그게 법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통찰하게 되면 좋은 경기든 나쁜 경계든 그걸 통찰하기만 하면 바라보기만 하면 그게 아 좋은 것도 왔다 가는 거구나. 영원한 게 아니구나. 진짜 법이 아니구나. 왔다 가는 걸 어떻게 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진짜라고 할 수 있어요. 왔다 가는 2년 따라 오고 가는 허망한 거죠. 2년 가합이잖아요. 그렇게 제일 무상이구나 좋은 느낌도 무상이고 나쁜 느낌도 무상이구나. 무상한데 집착할 필요가 없구나. 아니 무상하게 왔다 가는 걸 어떻게 나라고 할 수 있냐. 좋은 게 왔다 가면 나는 좋은 사람입니까? 그냥 왔다 간 거지 좋은 게 나쁜 게 왔다 가면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냥 2년 따라 왔다 간 거지. 내가 그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무상무화를 깨닫는단 말이에요. 제임 무상 제품 모아를 깨닫는단 말이죠. 거기서 통찰하게 된단 말이에요. 우산과 무화를 통찰하게 되면 내가 아닌데 우사하게 변해가고 내가 아닌데 그걸 나라고 쥐지 않죠. 아집을 가지고 내 거라고 쥐지 않죠. 좋은 분도 주지 않고 싫은 것도 주지 않으니까 취사 간택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괴로움이 있으니까. 무상 무한을 깨달아서 쥐지 않으면 괴롭게 없어요. 일치 계고가 사라져서 열반 적정이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상 무화이기 때문에 그걸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은 일체 계곡인 거예요. 중생들한테는 그렇게 세 가지가 산법인 거예요. 근데 이걸 통찰하고 나면 일제 개고가 열과 적적으로 변한단 말이에요. 이 법을 통산하게 된다는 거죠.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는 걸 통해서 그러니까 왜 보라고 하겠어 정견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봐라. 그게 중도거든요. 간단한 거 정도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봐라. 우린 지금까지 있는 그대로를 자기 식대로 왜곡하고 판단하고 해석하고 비교해서만 봤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보는 이 단순한 게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면 정결하면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죠. 그냥 볼 뿐이지 좋은 경기도 없고 나쁜 경기도 없어요. 그냥 볼뿐이지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어요. 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보고 보고 보고 있을 뿐이에요. 모든 전체를 버블 법이 뭐가 법이에요? 이 몸도 법이고 세계도 법이고 전부 법이에요. 그래서 그걸 좀 구체적으로 사념초에서 오온을 관해라. 12초 18개를 관해라. 이래요. 온 몸 몸을 관하고 있는 그대로 몸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대상에 얘는 얘는 얘도 보이지요? 대상이니까 보이잖아요? 얘도 보이잖아요. 보는 대상 아니에요 이거 이 몸이 이렇게 보이잖아요. 이거 이게 납니까? 이거 주관입니까? 이 몸 내가 이렇게 보고 있잖아요. 내가 몸의 감각을 느낄 수 있잖아요. 느끼는 놈이 나지 느껴지는 것이 나겠어요? 느껴지는 거는 왔다 가잖아요. 10대 때 느껴지는 감각 사라졌잖아요. 감각이 계속 왔다 가잖아요? 느낌도 왔다 갔고 생각도 왔다 가고. 몸도 왔다 갔잖아요. 10대 때 몸 왔다가가 버렸잖아요. 하나도 찾을 수 없잖아요. 그럼 근데 10대 때도 그 몸을 그 젊고 뽀송뽀송하던 몸을 보고 있던 애가 있었고 지금도 내가 이거 보고 있던 보고 보는 논문이 있단 말이야. 보는 논문 그거는 다른 놈일까요? 아니 눈동자가 보는 것 같은 눈동자도 왔다 갔는데요. 그럼 10대 때 그 버던 놈하고 지금 보는 눈하고 다르죠. 그때 때는 젊은 눈통자였고 지금은 노한이랑 눈동자인데 그 눈동자가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죠? 그 그 보는 놈은 왔다 가지 않는단 말이에요. 몸도 왔다 가고 느낀 감정 생각 의지에서 온이 다 왔다 가도 그래서 이거를 오원이 왔다 가는구나 뭐 이렇게 해석하라는 게 아니에요. 그럼 몸과 마음을 그냥 바라보면 무상고 무활을 통찰하게 되는 거예요. 저절로 18개월 마찬가지예요. 내 눈과 눈에서 보이는 경계 색경과 이것이 접촉할 때의 초를 통해서 일어나는 인식 아 이거 하얀색 컵이구나. 이런 음별 인식 내 안에서 이걸 보자마자 일어나는 분별인식 좋다거나 나쁘다는 분별신 있는 그대로 그냥 보는 볼뿐이란 말이야 볼 뿐 이게 공부예요. 이 볼뿐인 이 자리는 붕괴의 자리가 하나 있잖아요. 분별해서 보는 게 아니잖아요. 분별해서 보는 건 여러분 처음에 오자마자 이 지구별에 오자마자 분별할 줄 알았습니까? 몰랐잖아요. 그때는 그냥 그 어린 아기의 그 맑고 투명한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다 신기하고 막 그냥 너무 신기한 한 꽃이고 똥을 싸고도 쥐똥을 막 이렇게 손으로 막 척박격하면서. 웃을 거 아니에요. 아무리 더러운 것도 막 그냥 갔다가 막 그냥 입에 대기도 하고 강아지 막 고양이 끌어안고 막 그냥 입으로 빨고 이러면서도 이 털이 입에 들어가면 안 돼. 뭐 어쩌고 이런 생각이 있겠어요. 없단 말이에요. 그냥 그냥 생겨난 눈동자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 순진한 천진한 그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잖아요. 근데 이제 나이 들면서 배운 거죠. 명과 상 이름 특정한 모양 모양을 이름과 개입시키면서 이거는 컵이야라고 배우고 이건 사람이야라고 배우고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배우고 이런 건 나쁜 행동이야 좋은 행동이야. 배우고 이런 면과 상을 배우면서 분배했음이 생겨나면서 이건 좋은 거고 저건 나쁜 거야를 배웠잖아요. 배우면 진짜가 아닌 것 어? 진짜처럼 배우면 진짜라고 믿어지거든요. 그니까 지금 우리가 보는 견해가 옳지 않을 수 있어요. 그 뭐 아프리카 언어 부족은 살이 찌면 찔수록 미녀라고 그래요? 우리나라는 빠질수록 미녀잖아요. 또 우리 제 이제 도반 스님 중에 이렇게 약간 그 중국의 포대와 상같이 생긴 달마 포대화상 같이 생긴 스님이 계시는데 이분이 그 중국을 한번 갔다 오시더니 약간 엎드셔가지고 야 내가 중국 가서 살아야 되겠어. 내가 중국에서 먹히는 얼굴이 중국 사람들은 나를 나를 보고 막 포대화 사고 닮아 가지고 너무 좋아하더라고. 그런 문화 속에서 예를 들어 예를 들어 뭐 미얀마 갔을 때 보니까 여기 이걸 찢어 가지고 여기다가 접시를 이렇게 달아서 접시를 큰 거 사는 사람일수록 미니라. 그래요. 그럼 이제 그거를 어릴 때부터 그렇게 주소 들으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주저들으면 실제 이게 접시 크게 닮은 미녀처럼 보이는 거예요. 뚱뚱하고 한번 미니쳐. 한번 읽어보고. 포대아 상담 후 미연암처럼 보이고. 이렇게 되지 않나요? 여러분 누가 나는 별 관심이 없는데 이게 되게 귀한 거라고 막 얘기하면 진짠가 하고 막 되게 좋아 보이잖아요. 가방은 우리가 진짜 아무리 뜯어 봐도 이게 이게 뭐 몇백만? 원짜리 가방하고 5만원짜리 가방하고 차이를 모르겠거든요. 사실 이제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모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도 사실은 모르잖아요. 비싸다고 하니까 그냥 그래 하는 거지. 사실은 모르거든요. 그런데 이게 이제 비싸다고 이게 막 예를 들어 500만원짜리야. 이러고 이제 누가 가져왔다. 그 선물을 줬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이게 정말 막 애지중지하면서. 막 그냥 이럴 거 아니겠어요? 사실 전에 봤습니다. 저희 어머니한테 저는 짝퉁인지 모르고 5만원짜리 비싼 메이커로 사다 드렸죠. 너무 좋아하시더라. 제가 이 얘기를 저 BTN에서 못 해요. 부모님이 딱 보는 게 BTN밖에 안 보시거든요. 이건 안 보시니까 제가 이런 말해도 아직 모르실 거예요. 그러면 본인한테 그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내가 나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 하는 것도 남들이 야 괜찮아 괜찮아 하면 괜찮은 줄 알잖아요. 우리는 그러지 않아요? 진짜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처음엔 별로였던 사람이 옆에서 괜찮다. 그러면 진짜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정해진 실체적인 게 없어져가요. 그 관접이라는 게 만들어진 거예요. 좋고 나쁜 게 만들어진 거 하니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만든 거예요. 만들면 우리는 그렇게 굳어 줘요. 분별심이 그렇게 굳어진다니까요. 그러니까 민영의 기준 미남의 기준 그런 게 없어요. 그런 게 없어요. 근데 우리는 이걸 정해 놓고서는 이건 좋고 저건 싫어. 이렇게 분별하길 좋아하잖아요. 근데 분별하지 않으면 대평등이에요. 모두가 일체가. 일체 모든 경계가 전부 다 대평등이에요. 본래 세상은 대평등의 세상일 거예요. 초코 나쁜 게 없는 거예요.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없단 말이죠. 완전히 모두가 부처란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나는 옛날에는 꿈이 크고 원대했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애들 밥이나 해주면서. 내 젊은 청춘을 다 보내면서 그러면서 내 인생 어디 갔나? 예를 들어 이런 분이 계실 수 있어요. 왜 내 인생은 쪼그라든 거 같고. 남들 보니까 막 젊었을 때 일한 엄마들 보니까 막 막 막 직장 다니면서 막 높은 자리에 올라 가지고 돈도 많이 벌고 막 차도 좋은 거 타고. 가방도 비싼 거 하고 하면서 뭐 모처럼 뭐 만나면은 밥도 한번 파 멋있게 쏘고. 근데 내 인생이 막 괜히 처량해 보이고 맨날 맨날 밥 밥 내 땅에는 열심히 맛있게 만들어 줘도 안 먹을 건데 이러고 그냥 나간다든지. 왜 밥맛이 이러냐고 뭐 그런다든지 어느 집 가니까 참 맛있던데 뭐 이런다든지 뭐 이런 소리나 늘어나 가면서 내가 이 이 놈들하고. 내가 내가 내 인생을 바치며 살았다는 게 내가 어이가 없다 이러면서 사는 분도 있을 수 있단 말이죠. 그런데 이 법에서는 그거는 현상 세계가 그런 거예요. 현상세계에서는 그 보살님은 직장에서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이고 나는 맨날 만나느니 남편하고 자식 얘네만 바라보면서 평생을 산 것 같은 보기력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게 자기 생각이잖아요. 진실은 진실은 그렇잖아요. 출세간의 진실은 출생 안내 진실은 동등하다니까요. 내 아들을 내가 만나면서 인연맺고 있는 이 밥 먹어. 띠 말 한마디와 그분이 5000억짜리 사업 계약을 따내가지고 따냈다 하고서 신나는 그 말이 이 첫 번째 장에서 다르지 않은 말이에요. 내가 밥해 주는 이 행동과 1000억을 버는 어떤 뭐 뭐 문서를 만드는 그 작업이 다른 작업이 아니란 말이에요. 동등한 부처뿐인 세상에서 비중이 없단 말이에요. 대단하고 못난 게 없어요. 이 세상에는 그냥 그래서 정멸이 돼 정렬 정멸이 뭐겠어요? 고요하고 고요해도 이렇게 고요할 수가 없는 완전히 딱 끊어져서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이 세상에는 아니 눈앞에 분별을 따라가면 천억이 있고 10원이 있는데 이 정멸의 자리에서는 천억하고 10원하고 똑같다니까요. 그게 다 공에서 드러난 인연이잖아요. 2년 공항 가운데 들어오는 애년이에요. 근데 자기 분별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평생을 그냥 어떤 예를 들어 장애가 있는 애 하나를 입양해 가지고 그 아이를 위해서 평생을 내가 그 아이한테 바라지만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내가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 죽었어요. 이 사람은 이 전 인류를 살려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계속 승상장구하면서 어마어마한 대기업에서 세상을 바꿀 만한 엄청난 발견 막 하고 일론 머스크처럼 모험과 것들 막 정말 개발하고 하면서 세상을 몇 번을 막 되바꿨다. 그러다가 죽었다. 그건 현상 세계 얘기예요. 현상 세계 아무리 일론 머스크 10명 있어도 자기 마음 하나 깨닫는 것만 못 알아다니까요. 마음 하나 깨달아 버리면은 그 가난한 농부로 평생 살다 죽었어도 그게 인류를 구원한 거라니까요. 그 이두를 보낸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마어마한 수천조 원대를 벌어가지고 수조 원을 전 세계에 막 도움을 줬어도 후원을 하고 돕기를 했어도 그거는 세감법이에요. 세간법 세간법에서는 훌륭한 사람이죠. 놀랍게 훌륭한 사람이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훌륭한 사람이죠. 근데 출소한 출세관에서는 그냥 아직 걸음마도 못 한 유치원생하고 똑같아요. 이 추세 간에는 아주 무지멍매한 거예요. 하나도 이런 게 없는 거예요. 하나도 이런 게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요? 본래 정멸인 가운데 이루는 게 없어요. 여기는 이루는 게 없어요. 2년 따라 2년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뿐이지. 그거는 2년 가합이거든요. 2년을 잘 조합시켜 가지고 사람들을 잘 조합시켜서 수천억을 만드는 기업을 만들었어도 그 2년이 생겨나고 2년이 사라진 그걸 다 해요. 선별 고지 출세관에서는 출세관에서는 가치가 없다는 게 세간의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정렬 속에서 바다에서 드러난 파도예요. 그게 똑같이 근데 파도가 거대한 막 집체만한 파도가 이렇게 쳤어도 집체만한 파도를 자기가 내가 이 파도예요. 어마어마한 파도를 해서 주변 사람들 막 다 집어삼켰어도 자기가 바다인지 모르면 그 모험 의미가 있겠어요? 구릿바에 지갑하던데 집채만한 파도에도 파도고 요만한 일센치짜리 파도여도 파던데. 근데 1센티짜리 파도였어도 자기가 받아인 줄 알면 얘가 파도입니까? 전 바다 전체지 TV는 전체 바다로 깨어난 존재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현실이 거창하고 현실이 대단하고 막 이래야 되는 게 아니에요. 왜냐면 그건 인연 따라 어찌어찌 대단한 일을 해야 되는 역할이 주어져요.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법계에서 주어져요. 어찌 보면 이거는 주어지지 않나요? 신기하게. 내가 해야 될 일이 내가 찾아나선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쪽에서 온다니까요. 그냥 그러면 그냥 2년 따라 사는 거예요. 거기에 맞춰서. 언제까지? 2년이 계속될 때까지. 근데 인연이 떠나가. 근데 이게 다 2년인 줄 아니까 지금 왔다고 해서 거기 막 막 신나 하고 막 어깨 힘들어 그러지 않는단 말이에요. 이게 다 2년인 줄 아니까. 이거 언제나 언제든 사라질 것뿐이 아닐까. 대단할 게 전혀 없는 거예요. 그 2년 동안 주어진 거 그냥 할 뿐이죠. 그러니까 이 큰 스님들이 2년 따라 2년을 만나면 베풀고 2년이 없으면 그냥 쉰다. 그거밖에 할 게 없는 거예요. 어떤 인연도 그냥 감당하는 거예요. 사실은 동등한 인연이죠. 똑같은 모든 인연이 동등한 인연이에요. 내가 한 명을 데려다 놓고 그 한 명을 늦게 오게 깨닫게 해 주는 것과 수만 명을에게 강의를 해 가지고 수만 명 수백 명을 깨어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하나가 전체고 전체가 하나거든요. 부처님 한 분 꽃담아시따르타라는 부처님 한 분이 2500년 전에 딱 깨어났는데 당신은 그 한 명이었잖아요. 근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게 한 명이 한 일이 아니죠. 지금 지금부터가 시작이에요. 고타마 시따르타라는 35밖에 안 된 청년이 깨달았다라는 그 사건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지금부터 시작이 아닐까요? 지금까지는 2500년 동안 워밍업 같은 그런 거였고 지금부터 시작인 거 같아요. 지금은 이 법이 전 세계적으로 막 이 언론인이 이런 걸 통해서 막 급격하게 빠른 빠른 속도로 전해지기 때문에 이제는 왜 이런 말을 하냐면요. 이제는 누구나 YouTube가 됐든 TV가 됐든 언론이 됐든 요즘에 채PT라. 그래 가지고 가장 훌륭한 예를 들어 그럴까요? 가장 훌륭한 강의가 뭐냐 이런 거 다 찾아줄걸요? 나중에 내가 찾을 것도 없이 자기 안목 가지고 못 보아도 누가 사주실 수도 있단 말이죠. 그런데 우리 먹딱소리 홈페이지에다가 누가 채피띠가? 그 이게 검색 엔진 같은 이런 건데 이게 막 이렇게 말을 글을 쓰면 그거를 이렇게 다 찾아준대요. 근데 이게 막 기가 막히대요. 예를 들어 뭐 무슨 무슨 소설을 써 줘. 이러면 소설을 막 한 몇 분이면 소설 한 편이 나오고 책 한 권이 나오고 이런다는 거죠. 그 누가 깨달음이 뭐니 하고 물어보니까 깨달음에 대해서 쫙 써 놓은 게 아주 고승의 본문 같은 썼더라는 거죠. 이렇게 이제는 완전히 열린 세상이 돼버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옛날엔 어땠냐면요. 옛날에는 사기치기가 너무 쉬웠던 게 사기꾼 그 사이비 종교 교주가 사람들을 무지멍미한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너 나 아니면 너 큰일 난다. 너 인생 완전 끝장난다. 나에게 헌신해야만 너는 살 수가 있다. 안 그러면 너는 죽는다. 나만이 너를 이끌 수 있다. 세상 전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너의 스승이다. 넌 나를 스승으로 삼아야지. 너 집안에 5한2 없고 좋아진다. 조금 아주 악질인 사람은 이렇게까지 말하죠. 그렇게 해서 말 안 듣잖아요. 그럼 협박하는 거예요. 바르세요. 또 나에게. 벗어나면 집안에 큰 우한이 있다. 생명이 단축될 수도 있고 집안에 누군가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이렇게 안 할 것 같죠? 이렇게 한 사람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런 상담을 너무 많이 받아 가지고 제가 막 분노를 막 너무 분노를 한 적도 있어요.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그것 때문에 너무 분노를 하고 또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넘어갔다라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근데 이제 제가 거기 어떻게 넘어갈 수가 있죠 하고 이제 막 이렇게 설명을 하면 나중에 본인 스스로가 충격을 받아요. 스님 말 듣고 보니까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네요. 근데 그때그때 진짜 같았죠? 진짜 같다니까요. 여러분 여러분이 이렇게 뭐 다 이렇게 뭐 이렇게 사실형같이 하고 이렇게 나타나서 답장이 나타나서 뭐 이렇게 타원이 보는 것처럼 하면서 당신 단명한다. 이를 보세요. 그 얼마나 무서울 거예요? 단명 안 되는데 뇌물이 죽는다는데 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바로 나오죠. 그건 뭐 한 3천만 5천만 원 가져와라. 그러면은 그게 문제겠어요. 지금 내가 내가 죽지 않아야 되는데 그러면서 사기를 치면서 이렇게 바깥으로 못 나가게 한단 말이에요. 왜 바깥으로 나가면 세상과 어울리면 세상의 정보를 들으면은 내가 사입인지 알게 되잖아요. 그런 게 폐쇄적인 집단은 바깥으로 못 나가게 하고 막아요. 딴 사람을 못 만나게 해요. 스승은 나밖에 없다. 이래 가지고. 열리지를 못해 폐쇄적이에요. 그러니까 공동체를 이루어요. 산골짜기 같은 곳에서. 우리끼리만 사는 거예요. 그래서 강제 노동 이 요즘 말로 하면은 노동 착취를 하는 거죠. 그건 자발적으로 갔으니까. 그러고서 10년 20년 30년 한 평생을 끌고 살다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옛날에 지금도 많이 있을 것이고. 상당히 많았다니까요. 근데 그게 발각이 나지 않는 시대였어요. 지금까지 시대는 근데 지금은 그게 들통나기가 너무 쉬운 시대로 바뀌었죠. 그래서 지금 실제 그런 데가 많이 무너지고 있고 그런 곳에서 많이 충격을 받아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많아져요. 왜냐하면 스마트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요즘에는 아무리 사이비 종교 집단에도 이제는 처음엔 막았을지 몰라도 이젠 못 막잖아요. 스마트폰 없는 사람이 없어요. 스마트폰이 있고 나면 YouTube가 됐든 뭐가 됐든 다 볼 수 있어요. 다 볼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이 종교 얘기하는 사람 저 종교 얘기하는 사람 이 철학을 얘기하는 사람 저 철학을 얘기하는 사람 이런 방식으로 얘기하는 사람 저런 방식으로 얘기하는 사람 모든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어요. 이제는 쉽게 말해 뭐 목사님들끼리 경쟁 뭐 스님들끼리 경쟁 뭐 철학자들끼리 경쟁 그게 아니에요. 무한 경쟁이에요. 이 세상 모든 존재와 경쟁이에요. 쉽게 말해. 왜냐하면 여러분 강의 들을 때 이런 얘기를 해요. 뭐 교회 다니는 사람 성당 다니는 사람이 뭐 쓰림 법문 듣는다. 이거는 일도 아니에요. 이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나는 뭐 어떻게 어떻게 듣게 됐어요? 이러면은 옛날에 뭐 듣다가 어떤 철학자에게 듣다가 어떤 인문학 강의 듣다가 뭐 어떤 목사님 얘기 듣다가 또 어떤 무슨 저 저 양자물리학 교수 강의 듣다가 뭐 온갖 것들 듣다 듣다가 막 그렇게 많이 듣다 보니까 어때요? 눈이 아니 비교가 되잖아요. 이제 비교가 너무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닌 게 훤히 보이잖아요. 이제 아닌 게 너무 확 늘어나잖아요. 시대가. 근데 이게 이 이런 열리는 시대의 초입이거든요. 지금이 그러니까 인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깨어나겠어요. 얼마나 많이 안목이 밝아지겠어요? 그러면 이제 사기 치는 사람이 안 보이겠습니까? 여러분 눈에 안 안 보이겠습니까? 100 프로 보이죠. 그 그 수법이 훤히 보인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제 나만할 수가 없는 시대가 돼버려요. 이제 앞으로의 시대는 더욱더 더욱더 그렇게 돼 버려요. 그래서 그런 것에 이렇게 그 막 사로잡혀 있던 그런 조직들이 다 무너지잖아요. 요새는 그 피디 스톡 같은 데 막 온갖 이상한 단체들 다 발각되잖아요. 지금 이제 알고 손님 이제 사람들이 본인 스스로 안단 말이에요. 허공 중에서도 바다 가운데서도 또는 산속 동굴에 들어갈지라도 악어외 가품에서 벗어날 그런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업을 지으면 업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느냐. 도망갈 수 없다는 거예요. 인과 옹보라는 이 현실 세계의 법칙에서는 도망치면 될 것 같잖아요. 안 된다니까요. 도망칠 수가 없어요. 여기 말하는 것처럼 악업의 가품에서 벗어날 그런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허공으로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어디 되지 않을까? 산속 동굴에서 혼자 살면 되지 않을까? 안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고 엄청 치고 남들 나쁜 짓 시큰하고 이 조직에서 내가 약간 밑보여 놓으니까 아직 쉽게 말해서 개판을 치고 그러고 난 때려치면 된다 하고 그 회사 사표내고 딴 데 가면 되겠지. 급한 데 가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요. 이사 가면 되겠지. 나는 전혀 리셋할 거야 나서. 내 인생 새롭게 시작할 거야. 그래가지고 전혀 다른 동네에 가서 새롭게 이사 가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 저처럼 쉽게 되지가 않아요. 5분 늘 따라다니거든요. 그러니까 전에 보면 자꾸 사기를 당해요. 어떤 분이 자꾸 사기를 당해요. 근데 어이없는 사람에게 자꾸 사기를 당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이제 어떤 사람이 사기를 치는 것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섭게 해. 가지고 그 사람 피해서 딴 데로 도망가서 새롭게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또 비슷한 사람 만나서 또 사기를 당하고. 자기 업이 투영된 게 세상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디 이 조건을 바꾸고 현실을 바꿔야 되는 게 아니에요. 자기 마음을 바꿔야 되는 것이죠. 말 그대로 마음에서 업장이 소열돼야 되는 것이지 현실에서 도망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업장에 여기서 말하는데 업의 가품에서 벗어날 장소는 없다. 그랬잖아요. 그러면 업을 업은 무조건 받아야 되는 걸까요? 업은 도망칠 수 없으니까. 그런데 불교에서는 어업에서 도망칠 것은 어디도 없다. 어분 무조건 받아야만 없어진다. 이런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불교에서 저래가 뭐라 해요? 업장 소멸 기도 업장 소멸 백일기도 원해요. 업정상을 배격기도 한다. 이런말이 저래서는 그럼 업장 서멸이 되는 것도 있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게 왜 가능할까요? 업장은 받아야만 돼. 이것도 맞는데 업장은 소멸할 수 있어. 이것도 맞아요. 이게 다른 말 같잖아요. 왜 맞는지 아세요? 이게 부처님께서 하신 절묘한 비유가 있어요. 그게 소금물의 비유예요. 내가 나쁜 짓을 했어요? 나쁜 업을 많이 줬어요? 나쁜 업을 많이 하면 나쁜 업에 과보를 받아야 되잖아요. 나쁜 업을 많이 할 때마다 이 소금 여기 소금이 이렇게 쌓여요. 내가 나쁜 업을 많이 해서 이만큼 소금물이 쌓였어요. 이게 나쁜 업이에요. 그러면 소금물을 이렇게 그냥 이렇게 이걸 이렇게 퍼먹어야 되니까 얼마나 싸겠어요? 먹을 때마다 고통스러울 거 아니에요. 먹기 싫은데 막 이걸 먹어야 돼요. 내가 내가 만들어 놓은 악업은 내가 다 갚아야 돼요. 이거 갚아야지만. 즉 이 소금은 다 먹어야지만 사라져요. 동굴에 들어가든 하늘로 솟구쳐도 이거는 무조건 거기 가서도 먹어야 돼요. 이 야곱은 무조건 다 받아야 돼요. 이 소금물은 무조건 무조건 먹어야 돼요. 뭐 다음 생까지 가면 다음 생까지 가서도 먹어야 돼요. 여기 무조건 먹어야 끝나는 게임이에요. 이 인간부의 게임은 근데 부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맞다. 무조건 먹어야 된다. 그런데 먹는데 먹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르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게 억보할 때 억을 지으면 무조건 보를 받아요. 그런데 억보할 때 보짜가 무슨 보짜인지 아세요? 다르게 익어 간다는 뜻이에요. 받을 거가 다르게 익어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다르게 받을 수 있느냐 다르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예요. 내가 내 길 그릇을 키웠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떻게 그릇을 키우겠어요? 지혜를 등장하고 복독을 등장하고. 이렇게 두 가지 불교에서는 복독과 지혜를 키운다. 그래요. 복을 많이 키울 때 내 그릇이 커지는 거예요. 복의 그릇이 커지잖아요. 또 지혜가 증장될 때 또 출세 간의 공덕 출세간의 복이 커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복을 많이 짓는 건 세간복이라고 하고요. 이 깨달음을 얻는 건 출세간의 복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세관에서도 출세관에서도 복을 짓는단 말이죠. 그럼 복의 그릇이 커진단 말이에요. 그럼 이 소금은 무조건 먹어야 돼요. 요만할 때 먹으면 그냥 먹으면 괴로워. 죽을 것 같이 먹어야 돼요. 남들은 그러고 먹고 있어요. 지금 그릇이 요만하니까. 근데 나는 마음 공부를 해서 지혜도 등장됐고. 복을 많이 지어 가지고 복독도 부족됐어요. 그럼 내가 그릇이 2만큼 커졌었단 말이죠? 그리고 다르게 읽어가는 것 하나가 이렇게 그릇이 커지는 게 있어요. 그리고 또 다르게 읽어가는 거 하나가 뭐가 있냐면요. 시기를 바꿀 수 있는 어떤 보기 자기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볼을 받을 시기. 억부를 받는 시기. 받긴 받아야 되는데 받긴 받아야 되는데 여러분 무조건 병이 한 번 걸려야 돼요? 근데 조선 시대 때 걸렸으면 금방 걸리면 그냥 죽어요. 근데 내가 복이 많아 가지고 시기만 바꿨을 뿐이에요. 지금 시대에 딱 태어났더니 약 한 알 먹으니까 끝나 버렸어요. 그래도 먹은 먹은 밖엔 마른 거죠. 밖인 바른 거잖아요. 근데 그 시기가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달리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르게 익어가는 것 중에 시간이 꼭 공간이 있어요. 자기 보개그릇을 키우는 것도 있고 그러니까 보게 그릇이 커지면 시간이나 공간을 달리할 수 있게 돼요. 공간을 달리하는 건 뭐냐면요. 내가 그릇이 작았을 때는 내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막 이러니까. 내 편이 없는 거야. 사람들이 그러니까 내가 막 괴롭게 괴롭게 괴롭다가. 누가 나한테 너 같은 놈은 죽어 버려라. 이렇게 얘기하면 내 편이 아무도 없어요. 모든 사람이 다 욕을 하니까 나는 여기서 좌절하고 절망해서 확 죽어 버려요. 예를 들면 근데 이 사람이 그릇이 커지고 사람들 돕고 인복이 많이 생겨서 사람들 많이 돕고 하니까 인복이 많이 생겨서 복이 부족되잖아요. 그리고 다음 생에 딱 태어났는데 이 사람이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은 복이 많아요. 그 인복이 많은데 그래도 이 과부는 받아야 되잖아요. 내가 누구한테 옛날에 죽어라 했던 그 과부는 받아야 돼. 이때 이제 얘는 친구가 많은데 어떤 친구 하나가 이제 업을 가지고 업보를 줄 만한 사명을 가지고 온 친구가 나를 보고 욕을 한단 말이에요. 그럼 나는 갑자기 괴롭지만 옆에 있는 많은 친구들이 내 편이 돼. 주면서 야 쟤 이상하네. 너 아무 문제 없어. 걱정하지 마 이 내 편이 되어 주니까 그게 금방 해결되잖아요. 문제가 아니게 된단 말이야. 과보로 바뀐 받았단 말이에요. 바긴 받아야 돼요. 그때 무조건 그런데 이렇게 조건이 달라지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겠죠. 그리고 또 마음 공부를 해서 달라지는 건 뭐냐면요? 내가 누가 내가 누구를 괴롭히고 욕했어요? 그럼 내가 이제 그 그걸 받아야 돼요? 근데 내가 마음공부를 안 하고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 있을 때 누가 나한테 욕을 하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안 되겠다 죽어야 되겠다 하고 확 좌절하고 절망할 수도 있거든요. 근데 내가 마음 공부를 해 가지고 마음이 넓어지고. 이 모든 것이 그냥 근데 텅빈 것이구나라는 걸 자각한 상태에서 누가 나한테 와서 욕을 했다. 큰 뭐 상관이 없단 말이에요. 욕을 하든 말든. 지나가는 인연이구나 하고 그냥 그 욕을 받긴 받았단 말이야. 그래도 그 욕을 받음으로써 그냥 확 사라진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도 욕은 먹었단 말이에요. 안 굴리마라도 과부를 받았잖아요. 깨닫는다고. 과부를 안 받는 게 아니에요. 소금물은 무조건 먹어야 돼요. 근데 이건 다르게 먹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릇이 커지면 큰 냄비에다가 물을 물을 잔뜩 넣고 내가 그릇을 키우니까 물을 막 잔뜩 넣고 버삐를 잔뜩 받아가지고 물을 잔뜩 키워서 거기다. 이제 내가 다른 복도 많아서 나물도 넣고 두부도 넣고 배추도 넣고 해 가지고 된장찌개나 배추국을 끓여 먹었다. 끓여 가지고 먹었다. 그 어차피 그건 다 먹어야 되지만. 오늘 된장국 한 그릇 먹고 내일 된장국 한 그릇 먹고 그렇게 해서 맛있게 먹어서 소금으로 해칠 수 있죠. 맛있게 먹어서 선물을 먹을 수도 있어요. 이거 안 먹은 겁니까? 먹은 거예요. 이래서 다르게 익어 간다고 해요. 그래 가지고 불교에서는 이거 없장 받은 거잖아요. 그죠? 받은 건데 받지 않은 거죠. 어떻게 보면 받지 않은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받지 않을 수는 없으나 받지 않는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단 말이에요. 크게 다르게 익어 가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만약에 기계론적으로 무조건 받아야 되고 무조건 똑같은 크기로 받아야 되고 이럴 것 같으면 우리가 마음껏 뭐하러 하겠어요? 옛날엔 나쁜 짓 한 번 베린 몸은 끝이에요. 그냥 근데 이 공부에서는 한 번 배린 몸 끝이 아니에요. 한 번 베르셔도 상관없어요. 본래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만 인간을 받으면 돼요. 근데 현실에서 인간보도 다르게 받을 수 있어요. 지금 공부하면 된단 말이에요. 지금 복을 짓거나 복을 늘리거나 지혜를 늘리면 그러니까 부처님의 귀입을 양족존 두 가지가 존중하신 부처님께 귀유합니다. 아 세간에서도 복을 지어야 되고 출세간 복인 마음꿈으로 깨어나는 공부도 해야 된단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보면 듣는 거 마음 공부하는 거 주변 사람들을 돕고 힘든 사람들에게 뭔가 힘이 되어 주고 뭔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그 사람들이 힘든 걸 좀 덜어주고 특히 아까 말했던 것처럼 보세요. 예를 들어 사이비의 종교가 가장 잘하는 방식이 사람들의 두려움에 떨게 해 가지고 꼼짝바싹 못 하게 만드는 방식이거든요. 삿댄 종교가 하는 방식 두려움을 조장해서 그 사람을 확 잡아버려요. 응 그게 그냥 보편적인 방식이었어요. 너 잘못하면 지옥 간다? 근데 지금 안 가는 방법이 나한테 있긴 해. 가셔줄 수도 있어. 그렇게 지옥 안 가게 해 준다고 하는 거예요. 너 단명 너 단명해. 어떻게 알아요? 지가. 그럼 너 단명해 이렇게 그 겁을 주는 거예요. 겁박하는 거예요. 자기가 단명할지 안 할지도 모르잖아요. 안다는 압니까? 깨달은 사람이 자기가 죽고 사는 거 알아요? 지가 자기가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딴 사람이 죽는지 하는지 알 수 있어요. 여러분 이런 식의 지금도 이런 사람 많거든요. 예 음 지금 들어서는 많고 이런 데 혹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사람 정법인지 사법인지 판별해주세요. 저한테 그거 와서 묻지 마라시고 그냥 듣고 스스로 판단하시면 돼요. 스스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요. 음 그래서 이렇게 두려움을 조장해 가지고 나를 믿게 하고 두려움을 조장해서 뭔가 가져오게 하고 이런 거 있잖아요. 그게 가장 최악인 이유가 뭐겠어요? 부처님께서 가장 큰 복은 보시는 어떤 보시라? 그랬냐면 무의 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없애주는 곳이 벚꽃이나 재물보시보다 더 큰 게 무엇이라 그랬단 말이에요. 그 거꾸로 말하면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게 제일 큰 죄라는 거 아니에요. 죄를 짓지 말도록 해야 되는 사람들이 제일 큰 죄를 짓고 있다니까요. 종교가 제일 두려움을 조장했었단 말이야. 옛날에 그랬었단 말이죠. 진실은 진리는 왜 무애시가 좋은 보실까요? 본래는 두려워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려워할 게 있어라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는 본래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본래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진실의 모습이에요. 내가 있는 사람만 두렵거든요. 내가 있다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만 내가 죽으면 안 되고 내가 잘 살아야 되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 내가 있으니까 두렵단 말이에요. 내 생각이 있으니까 두렵단 말이야. 그 생각을 믿으니까 두렵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진리로 깨어나면 두려움이 사라져요. 지도를 깨어나면 우리가 이제 누구나 그런 게 있잖아요. 살다 보면 누구나 근원적으로 음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미래가 막연히 두려워요. 내 잘못된 원처지? 병남은 놓쳐진 음 집안에 우한이 생기면 어쩌지? 그리고 죽음은 어쩌지? 다음 생에 지옥과 마초지? 온갖 두려움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단 말이에요. 그게 생각이 만든 드럼이에요. 생각이 만든 드럼. 분별심이 있을 땐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 몸과 마음이 나라는 허망한 망상에 있을 때는 반드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근데 진리로 깨어난다라는 것은 뭐랄까 이제 가장 큰 효과랄까요? 그런 게 두려움 이런 게 이게 사라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이런 말 있잖아요. 옛날 원시 시대 때부터 사람은 나라는 애고가 있어서 두려움. 내가 지금 큰 짐승에게 잡혀먹힐지 모른다라는 두려움 때문에 뭔가 이렇게 삶의 원동력이 됐다. 이런 말 하잖아요.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래서 깨닫고 나면 두려움이 없으니까 사자 허랑이 우리에서도 들어가 자고. 뭐 이럴까요? 깨달았으면 그렇지 않는단 말이에요. 두려움이 없지만 아예 없는 게 아니에요. 없는데 없는 게 아니에단 말이에요. 이게 현실에서는 현실에서는 그걸 다 활용해 쓴단 말이에요. 분배를 다 활용했어요. 현실에서는 도인이 하나 부처가 있다. 현실에서 도둑놈이와 가지고 칼을 들이고 들밀려고 한다. 그건 도망간단 말이에요. 아니 부처님이니까 초들러 떨지 않을 것 같잖아요. 항상 이렇게 잠자않고 편안하고 조용하고 걸음걸이도 천천히 갈 것 같잖아요. 그럼 도둑놈이 왔거나 그러면 그래도 천천히 걷겠습니까? 화닥 도망가야지. 종신 이상자 이런 말이 있다니까요. 진리를 깨달은 3개의 대도사인 성인이 성인도 정신 이상자 망나니가 휘두른 칼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안 맞아 죽으려고 도망친단 말이야. 성인은 죽고 사는 게 둘이 아니야 하고서 죽든 살든 만들어해라 하고 그러진 않는단 말이에요. 최선을 다한단 말이야. 자기 삶에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러나 그 근원에서 있잖아요. 근원에서. 그러니까 겉에 드러난 이런저런 울고 오는 게 없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이 일대기 보세요. 겉에 드러나 인연 따라 일어나는 좋고 나쁜 일이 없었습니까? 부처님도 있었단 말이에요. 석가정 멸망할 때 너무 가슴 아파했고 상수 제자들이 먼저 죽을 때 가슴 아파했고 외로워했고 다 했단 말이에요. 근데 부처님이 외로움이 있겠어요? 외롭다고 했어요. 살해 불과 못 근절이 먼저 죽었을 때 이 승가가 텅 빈 것 같구나. 텅빈 것 같은 공허감을 느낀단 말이에요. 부처님이 그런데 절묘해요. 이 승가가 텅빈 것같이 외롭거나.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이렇게 외로운데 외롭지 않구나. 이렇게 외로운데 이 근원에는 전혀 외롭지 않은 그 그것이 딱 버티고 있단 말이에요. 그 뿌리에서는 그게 생긴다니까요. 그러니까 삶에서 40만만함 내지는 그 두려움 없음이라는 게 여러분 야 정말 인생에서 내 인생에서와 내가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죽음이 두렵지 않고 미래가 두렵지 않을 수 있다고? 얼마나 놀라운 인생 아닙니까? 놀랍지 않나요? 그게 부처님 가르침이거든요. 이게 이 마음공부예요. 그 두려움이 사라져요. 그러니까 그 두려움 없음을 무시하는 게 지혜를 무시한다는 소리거든요. 그치 그러니까 그게 최상의 보신 거예요. 그게 중생들은 중생은 왜 중생이냐 중생은 반드시 두려우니까.
그래서 이렇게 어디도 도망칠 수 없지만 그러나 내가 마음공부라는 걸 통해서 과거는 완전히 뒤엎을 수 있어요. 쉽게 말하면 지금뿐인 거예요 지금뿐 그래서 지금 과거를 싹 다 성도에서 변화시킬 수 있어요. 지금 그래서 신기하게도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불교 역대 부처님 일대기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점들이 있어요. 이게 일반인들 일반 성인들과 부처님이 완전 다른 점이 하나 있지 않나요? 되게 놀라운 점 우리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은요. 우리 여러분 옛날에 성인 저 뭐 위인전 같은 거 보세요. 위인전에 보면 위대한 어떤 임금이나 이런 사람들은 나쁜 돈 도적대 이런 사람들 다 토벌해가지고 잡아가지고 잡아 죽여 버려요. 다 죽여버려요.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요. 그런 사람을 위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전부 다 그죠? 나쁜 놈은 잡아응징하는 거 덜 주는 거 그걸 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근데 이 수많은 위인종이 다 그렇게 나오는데 석관이 부처님의 위인전만. 부처님 생에만 살펴보면 그런 게 없어요. 그런 거 있습니까? 부처님 응징했다. 이런 거 있습니까? 심지어 앙굴리 만화같이 99명 999명을 죽인 TDA 살인마도 제가 와가지고 부처한테 귀한 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먼저 찾아가서 불법을 전해서 깨닫게 하는데 그거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요. 그거는 절대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요. 일반 사람들 생각에서는 왜 그러냐면 부처님이 그 일을 했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이 욕먹을 찌신 거예요. 저 사람은 모든 사람이 죽이고 싶은 사람인데 저 사람을 깨닫게 해서 특히나. 이거를 스님으로 받아들여가지고 내가 데리고 산다? 이게 여러분 부처님이 얼마나 큰 모험이겠어요? 그 임금들 왕들 신도님들이 그걸 좋아했겠어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인 거예요. 부처님을 욕하지 않았겠어요? 아 요즘에 하다 못해. 우리 정치적으로 예를 들어 보수나 진보 이렇게 극단에 있는 사람은 이쪽 진영에 있는 사람이 뭔 일을 해도 미워하고 잘한 일을 해도 미워하잖아요. 그러면 예를 들어 부처님이 어떤 내 머릿속에서 이러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걸 했다. 우리가 부처님이라고 욕 안 하겠어요. 욕한다니까요. 사람들도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욕한다니까요. 내 생각은 그게 아닌데 부처님은 그걸 얘기했다. 그 욕하요. 응 그런 일이 부처님을 여러 번 했거든요. 안 굴리마라는 그렇게 무지한 것도 마찬가지였고요. 또 이런 일이 많았어요. 평소에는 와가지고 법문을 설해 달라고 해도 아직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겐 아예 안 했어요. 피했어요. 그런데 아 때가 됐다 싶잖아요. 그러면 앞뒤 보지 않고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부처님이 이 사람이 오늘 죽을 것 같은 거예요. 오늘 내 할 것 같은 게 딱 뭐 부처님 눈에 보였나 봐요. 저희 눈엔 안 보이는데 부처 눈엔 보이셨었나 보지. 아마 모르게 하여간 경제는 그렇게 나와요. 부처님이 보니까 이 사람이 오늘 죽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죽기 전에 내가 얘를 깨닫게 해 줘야 되겠다 싶은 거예요. 그 부처님이 그 집에 찾아가요. 먼 길을 혼자서. 찾아가서 앉혀놓고 법문을 서대해 주고 그 사람이 그걸 딱 듣고는 그 자리에서 아란안과를 증대해요. 정덕하고는 너무 감동스러운 나머지 부처님이 가는 길을 이렇게 따라 나서면서 마중을 해요. 제가 오셔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이만큼 마중을 해서 됐다. 이제 가거라. 나는 알아
갈게 하고 이렇게 가고 얘는 뒤돌아가다가 촛불에 부딪혀 가지고 죽었다. 뭐. 이런 얘기가 몇 번 나오거든요. 그랬
을 때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한테 찾아와 가지고 이 부처님 제자리를 쉽게 말해서
참모들이 부처님한테 뭐라고 전했겠어요? 아 부처님 아 우리 승가 이미지도 생각을 해야지. 이게 요즘 이미지 마케팅이 중요한데 아니? 부처님이 지금
사람이 죽을 사람인데 부처님 아셨을 거 아닙니까? 근데? 부처님이 갔다가 본문에 주고 이렇게 마중만 안 났어도 이 사람은 살았을 건데 마중 하러 왔다가 죽
딴 사람들은 뭐라고 했겠어요? 그 사람? 죽었는데 그 사람이 아나운서를 증택했는지 안 했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나는 걔를? 구제하러 갔었다 해도 그건 부처님 입장이고 일반인들은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부처님이? 괜히 왔다 가는 바람에 부처님이 죽였다. 이런 식으로.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건? 앞으로 좀
중생 구제도 좋지만 그런 거 하지 마세요. 했단 말이죠. 그 부처님이 안 한 것 하지 않고 나는
그런 거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을 괴로움에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다.
나는 오로지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 그것을 위해서 움직일 뿐이다. 그것이 나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일 뿐이지 생각하고 계산해 가지고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이미지가 떴고 뭐 이미지 마케팅을
하고 이런 걸 안 한단 말이야. 처님은 그러니까 부처님
의 생애를 보면 이렇게 천하의 나쁜 놈이라고 해도 동등하게 대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신기하게. 우리가 봤을 땐 그럼 안 될 것 같은데. 세상에서는 그게 단이라고 해도 부처님만은 그러지 않았단 말이에요. 이게 어찌 보면 어 약간
보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부처님은. 약간 사회 파탄자다. 사회의. 어떤 질서를 이렇게 그 무시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단 말이에요.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부처님은 왜 그럴까요? 법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래요 법안. 불안 해안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단 말이에요. 중생으로. 보이지 않는 거예요. 중생으로? 보지 않는 거예요. 모두가? 둘이 안에 너와 내가 둘이
다스리지 않은 부처란 말이죠. 파리지 않은 부처로 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부처님 가르치면서 참 놀라운 점이에요.
우리가 이 말은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과거의 잘못을 했어도 아무리 큰 죄를 졌어도
어떻다는 말이에요? 부처님에게는 죄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부처님이 심판해가지고 지옥에 보낼 수 있겠어요? 우리를 부처님에게 있어서는 우리는 심판받아 지옥할 수 없어요.
또 알 수 없는 게 그러면 스님 심판이 없다. 이렇게. 하셨으니까 스님은가 봤어요? 뭐.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현상 세계에서는 저는 안
봐서 알 수 없어요. 현상. 세계에서는 윤애하는 이 현상 세계에서는 그런 방편을 쓸 수 있는 측면이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옆나대왕이. 심판한다라는 방편을 하나님이 심판한다라는 방향을 쓸 수도 있는 측면이
거예요. 분명히 그게 인간부를 얘기하는 거 아니겠어요. 인간부를. 주관한 어떤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부라는 그 법 그것을 어떤 신 내지는 염라대왕 이렇게 설명한 거죠. 이야기로 만든 것이겠죠
나쁜 짓 하면 나쁘게 된다. 심판받는다. 좋은. 1 하면 좋게 된다. 인간관계하는. 얘기겠죠.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 심판의 측면이 현상 세계에서는 그런데 출생안에서는 출생안에서는 심판이 없단 말이에요. 분별이. 없는데 어떻게 심판
그리고 우리는. 심판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데 심판없는 분별 없는 이 세계로 가려고 지금 이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님들께서. 어떨 때는 옆날에 그런 게 있느냐 무슨 심판이 있느냐 이렇게 얘기하고? 또 어떨 때는
있으니까 이 인광도 명확한 것이다 염라대왕의. 심판에서 나쁜 짓하면 저 발설적인 보낸다. 말. 함부로 하지 마라. 말 함부로 하면 혓바닥을 쭉 뽑아가지고 칼로 난도질을 하는 지옥에 보낸다 몸으로. 샀댄 악행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몸으로 샀든 음행을 하거나 이러지 마라 그렇게. 하면 몸을 그냥 막 아주 저 포항제철에 끓는 쇠고 쇳물처럼 같은 그런 곳에 몸을 확 던져가지고 사시간에 그냥 가루가 되도록 만들었는데 만들어서 죽을 것처럼 뜨겁고 괴로운 속에 1초 만에 가루가 됐는데 바로 끄집어내가지고 다시 살려놓고 다시 던지고 이걸 계속 재펀치 한번 몇 천 년 동안 반복한다. 이런 식의 방편으로 나쁜 짓 하면 지역 가고 좋은 짓하면 천상 간다라는 방편으로 현상색에 대한 법칙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현상 세계 꿈의 세계 그런 액은 다 꿈의 세계예요. 현상 세계 꿈의 세계예요. 실제 그런 일이 있다라는 게 아니라 꿈속에서 자라나는 거예요. 꿈속에서. 자기 번뇌 속에서 분별 속에서 분별 속에 있는 지옥이에요. 그러니까 그 지역은 실제 그런 발설 지역에 있는 게 아니라 실제 내가 남들을 나쁘게 평가해서 누군가로부터 인광보를 받아서 내 욕하는 걸 듣고 나면 얼마나 죽고 싶어요? 듣기 싫은 소리 한 번 들었을 때 죽고 싶을 만큼 괴롭지 않나요? 말 한마디가 나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괴로울 때가 있지 않나? 살다 보면 그게 발설 지옥이에요. 그렇지요? 여기 자기 분들 속에 지역에 이렇게 있어요. 어 그다음에 보면요. 아기 연미가 몇 개까지는 악한 자도 행복의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악행의 열매가 있게 되면 악한 자는 결정코 불행을 피할 수 없다. 선의 열매가 맺기까지는 선한 자도 불행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선행의 열매가 맺었을 때 선한 자는 결정코 지구한 행복을 맛본다. 악 나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인데 자산상 많잖아요. 진짜 저놈은 좀 빨리 좀 지역에 갔으면 좋겠는데 꼭 근데 지역이 안 가고 심지어는 내가 죽을 때까지 나보다 더 오래 살면서 죽으면서 억울한 마음으로 죽을 수도 있어요. 저 친구는 나는 이렇게 착하게 살았는데 저 친구는 저렇게 나쁜 짓하고 살았는데 죽을 때까지 계속 승승장구하면서 살다가 결국엔 저놈이 지옥 가는 건 못 보고 죽을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럴 수 있죠. 당연히 그럴 수 있어요. 근데 걱정 안 해도 된단 말이에요. 내가 응징할 수 없어요. 내가 응징할 필요도 없어요.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요. 인가 왕보가 알아서 해요. 알아서. 정확한 때 정확한 때 알아서 해요. 정확한 때 그러니까 지금 나쁜 짓을 했는데도 승승장구한다. 억울해 할 필요가 없어요. 막 막 이거 되게 억울하잖아요. 나는 이렇게 착하게 사는데 안 되고 저는 친구는 저렇게 나쁜 짓을 하는데도 되고 저렇게 아 아버 아부하는 데도 되고 나는 아부 안 하고 당당한데 안 되고 당연한 거 본 거 아니에요? 아부 하면 되는 게 아버하면 되는 거예요. 원래 현실 세계에서는 왜냐하면 누구한테 아부해요 중생한테 아부 한단 말이에요. 부처한테 아부하면 안 먹히겠죠. 아니 똑같은 동생들끼리 아부하면 먹힌다니까요. 당장 눈앞에서 먹히는 거예요. 그게 인간 거예요. 현실에서는 먹혀요. 그게. 근데 100% 먹히진 않을 수 있지만 상당수 먹힐 수 있어요. 근데 그게 100% 먹힐지 안 먹힐지 그것도 자기 복에 달려 있어요. 그러니까 그 아부 하는 사람도 지금 자기는 자기가 잘한다 생각하고 하겠지만 자기도 지금 그 결과도 알 수 없는 거를 그냥 해 보는 거예요. 아부 했는데 아부하는 거 되게 싫어하는 사람한테 아부를 했다 해 보세요. 그럼 그 사람이 겉으로는 어 그래 그래 했지만 속으로는 저 심한 놈 이럴 수도 있잖아요. 왜 이 사람이 옛날에 내가 아부하다 아부한 사람한테 밀렸던 적이 있었던 사람인지 모를 수 있잖아요. 그렇게 심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일단 어보라는 게 그렇거든요. 어보라는 거는요? 당장에 이게 쉽게 말해서 이런 표현도 있죠. 도력을 높은 사람은 업이 가벼운 사람은 도력이 높거나 업이 가벼운 사람은 업보가 빨리 온다. 그래요. 바로바로 업보를 받는다. 그래요. 잘못하면 바로바로 밖에 받는다 그러죠? 그런데 오히려 업이 너무 지중한 사람은 잠옷을 아무리 해도 그 볼을 안 받는다는 거예요. 왜? 선생부터 가져온 옷 먼저 소화시키기도 바빠 죽겠는데 지금 지금 지은 옷까지 다들 그거는 좀 쟁여 놓는 거예요. 저축해 놓는단 말이에요. 과거에 워낙 나쁜 놈이어서 받을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아난전자는 그랬다 그러죠. 부처님이 아난존자가 꽃 향기를 이렇게 맡았더니 부처님 아난존자한테 혼을 냈대요. 꽃 향기로 훔친 도둑놈이라고. 방편으로 설명을 한 거죠. 너는 꽃 향기만 맡아도 그 도둑질한 것이다. 그런데 아난조제가 억울해서 얘기했단 말이에요. 부처님 저기 저 사람은 저렇게 나쁜 짓을 했는데 저렇게 나쁜 놈인데도 왜 과보를 저렇게 안 받고 안 받습니까? 그런데 이제 부처님이 그랬단 말이에요. 저 사람은 나쁜 짓을 해도 지금 당장 갑을 안 받는다. 근데 너는 꽃 향기만 맡아도 도둑질을 해도 앞 과부를 받을 수 있다. 왜 그런지 아느냐? 너는 너무 업이 가벼워서 업이 없어서 너무 가벼워서 작은 거 하나만 훔쳐도 그게 이만큼 크게 보인다는 거죠. 바로 가부를 받는다는 거죠. 근데 저 사람은 업이 너무 많아 가지고 숨이 산을 넘을 만큼 엄청난 악업이 많아 가지고 지금 지가 아무리 악업을 해 봐야 그거는 저 악업에 비하면 뭐 그냥 보이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악업받을 스케줄을 그거부터 일단 소화해 놓고 나서 요거를 이제 해도 해야 될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눈에 확확 드러나지 않을 수 있어요. 과보가. 그러니까 지금 당장 와부하는 사람은 잘 되는 거 같고 정직하게 하는 사람은 안 되는 거 같은 게 맞는 거예요. 또 이 같은 중생들 세상에서는 나한테 막 잘 보이려고 애쓰고 아부하면 예뻐 보여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정직하게 딱 이렇게 사는 사람은 건방져 볼 수도 있단 말이에요. 너무 꼿꼿하니까. 지가 나한테 와서 고개를 안 숙여? 이렇게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어 지가 잘났으니까 저러는 거나 저런 근데 네가 얼마만큼 잘났나 보자. 이렇게 보는 사람도 비슷하니까요. 있어요. 저는 봤다니까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잘난 사람을 끌어주고 당겨주고 진급시키고 안 해요. 회사가 크는 게 목표일까요? 높은 사람들이 회사가 크는 게 목표일까요? 회사가 큰 게 목표가 아니고요. 회사에서 내가 살아남는 게 목표예요. 주로는 그러니까 나는 능력이 없는데 저 사람 능력이 있어요. 그러면 능력 있는 사람 뽑아야 회사가 살아남잖아요. 근데 요 윗사람이 얘는 무조건 내 편 들어줄 사람이 내가 뭔 나쁜 짓을 해도 나를 막아주고 내 편 들어줄 사람이 있는데 저 사람은 너무 정직한 사람이라 저 사람 뽑아내면 실력도 나보다 좋은 데다가 내가 나쁜 게 너무 티가 날 사람 사람이야. 너무 깨끗하고 너무 능력 있으면 그럼 제거 대상 이루어지고 당연히 그렇지 않겠어요? 중생생활은 그렇게 돌아간단 말이죠. 꿈꾸서 한번 제거해야 돼요. 이 사람을 뽑아줘야 돼요. 그 회사가 성공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살아남는 게 중요. 하나만 해야지. 응. 그러니까 당장에 눈에 보이는 인간분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어요. 그 이 현상 세계 그런 그런 어떤 그에 따라서 돌아갈 수 있단 말이에요. 음 그러나 악의 열매가 있게 되면 악한 자는 결정코 불행을 피할 수 없다. 결정코 불행을 피할 수 없어요. 결국에는 꼬리가 길면 밟히게 돼 있고. 그 금생의 그 사람은 계속 승승장구해서. 신경 쓰지 마세요. 다음 생에 의지로 태어나거나 아주 저 뭐 저 한 못 사는 나라에서 진짜 막 너무 봐요. 이거 이렇게 말하기가 좀 조심스럽죠. 그럼 못 하겠어요. 난 태어나면은 뭐 다 악업에 있는 거냐 뭐 이렇게 또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뭐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악업은 어떻게 받을지 모르는 거예요. 본인이 어떻게 태어날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를 남들의 인간보를 내가 나서서 왜 저거는 저렇습니까? 왜 날 이렇습니까? 이렇게 따질 필요 없어요. 누구한테 따질 거예요? 이 인광고를 주거나 주관하는 주관하는 자아가 따로 없는데 누구한테도 도대체 딸릴 겁니까? 따질 필요가 없다. 또 선한 열매가 몇 개까지는 선한 자도 불행을 맛볼 수 있다니까요. 그러나 성한 열매가 맺으면 반드시 행복을 맛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의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다라고 했고요. 그 다음 다음 장에 보면 또 똑같이 나와요. 이름은 임시로 부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선입견을 가지고 말한다. 태생에 의해서 바람이 된다고 인도에서는 태어나자마자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트라 이렇게 계급이 정해지면 그냥 끝까지 가는 거잖아요. 그렇게 태생에 의해서 바람언니 된다고 말하잖아요. 그게 인도 모든 사람이 다 믿고 있던 거였어요. 근데 여기 부처님은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을 했단 말이에요. 되게 용기 있는 발언이에요. 이게 사실 인도에서는 충격적인 발언인 거예요. 브라만들한테 전부 다 등을 돌릴 발언은 아니에요. 크샤트나 야 왕족이나 브라만 성직자 계급이 상당히 높았단 말이에요. 그들 모두에게 등지는 발언인 거예요. 그러나 태생에 의해서 바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태생에 의해서 바람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인해서 바람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람문이 안 되기도 한다. 여기서 바람이라는 것은 고귀한 존재 이런 의미로 우리는 해석을 하면 돼요. 행위에 의해서 농부가 되고 행위에서 기술자가 되며 행위에 의해 성인이 되고 상인이 되고 행위에 의해 고용이 된다. 행위의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며 행위에 의해 신화가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현자는 이와 같이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세상은 행위에 의해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에 의해서 존재한다. 수대바퀴가 축에 매여 있듯 세상 모든 것은 행위에 매여 있다. 이게 법행 말과 생각과 행동이라는 신고의 삼억 삼행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바르고 청정한 생각을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람은 이지. 그 사람이 부처고 그 사람이 성직자지. 성직 이게 요즘 말로 하면 이 말이에요. 성직자 성스러운 직업이 있다 이게 아니라는 소리죠. 성스러운 직업이 어디 있어요? 성직을 행하면서도 삿된 마음으로 성직을 행하면 그건 성직이 아니라 아닌 것이고 내가 직장 생활을 나는 하고 있는데 그것을 성스럽게 한단 말이에요. 지혜로운 마음으로 뛰어있는 마음으로 복짓는 마음으로 한단 말이에요. 그럼 그 사람은 성직을 행하고 있는 거예요. 성스러운 직업 생활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진짜 성직은 뭐냐? 부처님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수행 그럼 팔 정도라 그랬잖아요. 정도 8 정도 팔 정도의 수행은 정사율 정견을 바탕으로 정사율 정오 정업 정명이거든요. 바르게 생각하는 게 수행이고 바르게 말하는 게 수행이고 바르게 행동하는 게 수행이면서 동시에 바르게 직업 생활하는 거 바르게 삶을 사는 거 바른 직업을 가지는 게 수행이거든요. 그러니까 바른 직업 정명 바른 직업 생활을 하는 게 그게 성직이에요. 그게 진짜 바람원이에요. 그게 진짜 수행자고. 그거를 불교에서 말하는 승보라. 그래 승보 거룩한 승보 그래서 자성 승보라는 말이에요. 불교계에서는 자성 삼보 삼보가 불법성 삼보가 어디 있느냐? 자기 상품 가운데 있다. 자기 상품이 곧 부처고 상품이 곧 법이고 자기 상품이 곧 승이에요. 승은 뭐예요? 스님이 승이 아니라 스님도 승이지만 뭐가 승이냐? 여러분 안에 있는 진리를 그리워하는 마음 나도 모르게 이 진리와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 이거 있잖아요 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진정한 진리에 개합하고 싶은 이 간절함 그게 승고예요 그게 승부 그러니까 자기 안에 있는 그 승부 그게 거룩함이거든요. 그게 청정함이고. 그래서 이렇게 모든 사람은 업에 따라 자신이 지은 행위에 따라서 그 사람이 규정되는 것이지 어떤 자리나 위치에 따라서 규정되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마음먹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예요. 현실 세계에서는 현실 세계 인간부의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거는 이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현실에서 내가 복을 받고 싶다. 왜냐하면 여기 보듯이 수레바퀴가 축에 매여 있듯이 세상 모든 것은 행위에 매어 있다 그랬잖아요. 근데 어떤 행위 말과 생각과 행동의 행위 생각하는 것도 행위란 말이에요. 말하는 것도 행위란 말이에요. 행동하는 것도 행위란 말이에요. 그러면 이거를 맑고 청정한 행위를 하고 있느냐. 이거를 보면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가 훤히 나오는 거예요. 이거는 뭐 미래 뭐 스님 전 볼 줄 아세요? 미래를 볼 줄 아세요? 자기 말과 생각과 행동을 보면 자기 미래가 백 프로 늘어난다니까요. 그냥 말을 하는데 거칠게 하는 분들 있죠. 말을 하는데 그치 않을 정도 있단 말이에요. 부모님이 말투가 부모님이 되셔 가지고도 나이 4 50 넘어서 가지고도 말을 거칠게 욕을 하는 분들이 계셔요. 운전하다가도 자식들 뒤에 앉아 있는데도 욕을 하고 뭐 세상 판단하고 분별하면서 심지어 내가 직접적으로 저 사람 욕을 안 해도 그냥 라디오를 듣다가도 예를 들어 이럴 수 있죠. 라디오 듣다가도 뭐 뭐 예를 들어 극단적인 보수나 진보다. 그러면 내가 진보인데 보수 뭐 어떤 얘기가 나오면 아 싫으면 싫어하면 되는데. 말로 자식 뒤에서 다 듣고 있는데 말로 저 천하 죽이는 새끼들 말이지 하면서 하면서와 온갖 악담을 만약에 이렇게 하잖아요. 그러면 뒤에 있는 아이들은 그걸 그대로 훈습해요. 배우고 싶어 배우는 게 아니라 훈습 상대음이 저절로 몸에 베이듯이 저절로 훈습이 되어 가지고 똑같은 말투가 나오는 거예요. 부모와 똑같은 말투 음 저 뭐 새끼들은 뭐 하면서 친구들을 막 무시하는 말투를 쓰게 되고 온갖 그 극단적인 말투를 쓰게 된단 말이에요. 극단적인 말투를 그래서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여러분 여러분 그게 되게 단순하지만 너무 중요한 게 이거 아니든가요? 사람이 이제 우리가 그렇잖아요. 옛날에는 어렸을 때는 얼굴 이쁘고 얼굴 잘생기면 괜히 멋있어 보이지만 나이 들고 나면 어떠냐면 대화를 해봐야 알잖아요. 그 사람은 영어 외모는 별론데 대화를 해 보니까 말을 너무 예쁘게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화를 해봤는데 말이 너무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말을 써도 어째저렇게 예쁜 말을 쓰지? 사람들한테 좀 안 좋은 말을 해도 어떻게 저렇게 기분 안 나쁘게 저렇게 잘 하지? 정말 말을 너무 예쁘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식들도 있지 않을까요? 자식들도 엄마 아빠한테 아주 예쁘게 막 듣기 좋게 참 신기하게 그렇게 예쁘게 말하는 자식들 있단 말이에요. 아들이 엄마한테 우리 엄마 정말 너무 예뻐. 천사 같아. 정말 우리 엄마 진짜 오늘 진짜 너무 예쁘다. 이런 말을 왜 하겠어요? 부모님이 늘 그런 말을 쓰니까 자식들한테 또 딱 타인들에게도 늘 그런 말을 쓰니까 안 좋은 말 판단하는 말보다는 정말 이렇게 긍정하는 말 좋은 말들을 늘 쓰고 말을 예쁘게 하니까 그게 저절로 혼습이 되는 게 이게 놀라운 무서운 교육인 거죠. 저절로 되는 교육인 거죠. 그러니까 발 왜 말투가 중요한 이유는 뭐냐면 말투는 마음에서 나오거든요. 마음씨가 말씨로 그대로 나오거든요. 그리고 마음이 그대로 말로 나오면서 그게 그대로 행동으로 나온단 말이에요. 말을 정말 예쁘게 하는데 행동이 더러운 사람이 잘 없어요. 물론 이제 교묘하게 말로는 예쁘게 하지만 마음은 딴 데가 있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 이미 말은 예쁘게 하고 있지만 마음 마음의 의엽은 악업을 짓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법계에서는 다 걸러진단 말이에요. 법계 거름망에서는 사람은 속여도 이 인간부의 법계 이 인간부를 못 속인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행위가 중요한 것처럼 행위가 드러나는 거 마음이 안 이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마음도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마음을 댈 수 있으면 꼭 짓는 이야기. 공부하는 이야기 뭔가 지혜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그런 말을 하게 되고 그런 마음을 쓰게 돼요. 영화 한 편을 봐도 안 좋은 영화 막 폭력적인 영화 막 욕하는 영화 이런 영화보다 선택할 줄 알아야 돼. 이게 택법 깍지 법을 택하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요. 그래서 영화를 봐도 되게 따뜻한 영화 행복한 영화 정말 예쁜 영화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고 막 감동이 온 이런 영화 한 편을 보면 내가 그 영화에서 뭘 배울지? 머리도 굴릴 필요가 없어요. 저절로 훈습이 돼 가지고 그 따뜻함이 그대로 내 삶으로 이렇게 훅 괴워져요. 저절로 그런데 막 폭력적이고 폭력인 그러니까 영화 요즘에 이런 거 있잖아요. 영화를 만들거나 작품을 만들 때 독창적이거나 뭔가 기존 질서와 좀 다르거나 이런 것들을 점수를 줘 가지고 무슨 이렇게 상을 줘요? 무슨 무슨 무슨 상무선에서 준단 말이에요? 근데 그 작품성만 가지고 준단 말이에요. 제가 옛날에 한번 이게 또 대놓고 얘기하면 안 되니까 모 영화를 조금 뭐 좀 좋은 것처럼 얘기를 했고 모 영화를 좀 그 제목 그 유명세에 비해서 뭐 그냥 그렇더라 이렇게 얘기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막 몇 어떤 사람이 약간 이제 스님이 정말 작품성을 모른 사람이라면서 이게 얼마나 좋은 작품인데 이걸 비난하자라면서 이거는 내가 보니까 정말 수준 떨어지는 작품 작품성인데 어떻게 이걸 좋다고 할 수 있느냐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제 기준은 제가 작품성에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어 오늘 행위를 얘기하는 거예요? 이걸 보고 얼마만큼 우리가 따뜻해질 수 있느냐. 얼마만큼 내가 맑아 생각과 행동이 따뜻해질 수 있느냐. 이걸 보는 거예요. 작품성이 뭐 뭐가 중요해요. 이거는 이제 작품성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뭐 뭐 외도도 하고 하지만 그게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거죠. 또 그 소화력이 배우들의 소화력이 뛰어나고 그거 인정한단 말이에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좋다. 그런 영화도 또 필요하다. 거기서 좋은 것들을 우리가 또 배우고 깨달을 수 있으니까. 역행고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배우고 깨닫듯이 이렇게 나쁘다는 게 아닌데. 자칫 잘못하면 어떤 그런 것들이 우리 모방 범죄라는 거 있잖아요. 저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서 아주 심한 어떤 이렇게 잘못을 하거나 이런 것들 좀 난쟁 처음 보는 것 같은 악업을 나쁜 짓을 하는 걸 보면 걱정스러운데. 알이나 다를까? 좀 충격적인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영화가 나오지 않아요? 그러면 몇 년 안에 그 비슷한 모반 봉제가 늘 있어요. 신기하게 있어요. 그렇게 일어날 수 있다니까요. 이게 그러고 싶어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은 저절로 배우는 거예요 저절로 일단 스캔들에 저기 뭐죠? 쇠 쇠구슬 가지고 이렇게 이런다고 이러더만. 저거 애들이 또 애들이 초보 먹고 하잖아요. 이거 구해 가지고 이거 참 좋아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가 말을 조심해서 해야 되는 거예요. 가능하면 좋은 말 따뜻한 말 말과 생각과 행동 이런 것들을 우리가 지혜롭게 쓸 수만 있으면 이건 뭐 인간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우리 삶이 저절로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 중간고 안 읽은 거 보면요. 아들이 착한 법을 닦으면 아버지가 착하지 않은 짓을 하여도 아들로 인해 그 아버지도 나쁜 세상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몸과 맑은 뜻으로 지은 업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 무슨 말인가요? 엄마가 아들 좋은 대학 보내주세요 하고 벨기도를 또 아니 그건 아니에요. 이거 이 말이 그만 아니에요. 근데 이게 백 프로 안 된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효과 있긴 있어요. 근데 어떤 효과가 있냐? 직접적으로 업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효과를 주진 않아요. 근데 그 영향을 미친 효과는 줄 수 있어요. 그건 확실해요. 왜냐하면 이런 거요. 엄마가 열심히 기도했는데 아들이 그대학 갈 복이 없고 그대 알 각을 머리가 없어요. 근데 엄마가 기도 기도는 대한민국에 1등으로 했어요. 그러면 걔는 그 대학을 갈까요? 못 가죠 걔가그 신중 교사는 못 간단 말이에요. 엄마가 아무리 가장 막 1등으로 기도를 잘했어도 못 갈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그렇게 일대일로 오는 그렇게 과거를 막 자식이 부먹고 대신 받아주고 부모가 자식 그 대신 받아주고 이렇게는 안 된단 말이에요. 자격은 자기가 받아야 돼요. 책임져 줄 수 없어요. 그런데 어떤 효과가 있느냐? 이게 기도의 효과는 뭐냐 하면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서 아기 기도를 해 준다. 그러면 기도를 진짜 꾸준히 하다 보면 처음에는 눈동자의 내 자식이 A란 대학에 반드시 가야 된다 하는 집착심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해요. 보통은 뭔가를 반드시 잃어야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해요. 저래서 베개기도 할 때 나는 기도하러 왔는데 스님들이 한 번씩 이렇게 법문을 해 준단 말이에요. 기초견도 얘기해주고 뭐 이런저런 법문도 한 번씩 해준단 말이에요. 그 왜 해주는지 아세요? 그럼 저도 저희가 100여 기도를 하면서 100일 동안 100일 동안 보통 1시간 반 기도를 했었는데 옛날에 100일 기도 할 때 100일 기도를 하면서 한 시간 반 기도 하지 말고 한 시간 기도하고 30분 내에 설법하겠습니다. 보탰어요 결국 하도 반대돼가지고. 중요한 시간에 지금 우리는 지금 기도하러 왔지. 내가 법문 들어왔느냐. 나 본문 그 들으면 난 안 한다. 나는 한 시간 기도 기도하겠다. 하도 반발이 심해 가지고 옛날에 그런 적이 있었어요. 범 법론을 들어야 돼요. 왜 그러냐면 혹은 기도를 하더라도 기도를 하면서 자동으로 그렇게 바뀌는 것이 어떻게 바뀌느냐면 법문을 들으면 더 많이 바뀌겠죠. 어떻게 바뀌었느냐면 처음에는 반드시 대학을 보내야 돼 하니까 그 집착과 욕망 때문에 기도 막 신청을 해 가지고 올리잖아요. 막 이절저절 막 갖다 올리잖아요. 그러다가 한 계속 기도하다 보면 정말 정상적으로 기도를 잘 하시는 분들은 보면 대부분 그래요. 한 50일쯤 넘어가잖아요. 그러면 마음이 이렇게 좀 편안해지고 또 스님도 계속 본문을 하시고. 집착을 집착하는 대로 반드시 이루어져야 된다는 집착이 오히려 기도를 거꾸로 하는 기도다. 마음을 비우는 기도 있는 이대로의 자식에 대해서 너 좋은 대학 가야 돼. 이게 아니라 좋은 대학 가든 안 좋은 대학 가든 어떻게 되더라도 결과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너는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너 성적이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너를 온전히 그냥 허용하고 받아들인다. 이렇게 감사에게도 꽤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기도 이런 기도를 점점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 진짜 기도의 본뜻은 거기에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은 모르잖아요 우리가. 그러니까 법문을 듣는 걸 통해서 이게 기도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되는 거죠. 그러면서 기도를 하게 되면 나중에는 계속 기도를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이제 마음을 비우게 돼요. 왜 비우게 되느냐 하면 여러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을 기도를 하잖아요. 한 시간 정도를 연불하거나 정근하거나 복경하거나 다른 일 외우거나 절을 하잖아요. 사람이 동일한 걸 반복을 계속 하잖아요. 그러면 동일한 것을 계속 반복을 하면 잡념이 막 일어나다가도 동일한 것을 계속해주면 잠념이 잦아들 수밖에 없어요. 그게 옛날에 뭐 무슨 무슨 기계가 뭐 공부 잘 된다 이래가지고 뭐 똑같은 빛을 막 계속 쏴준다 그랬는데 절이라는 것도 이렇게 몸이 반복적으로 계속 절을 하게 되잖아요. 같은 파동으로 이렇게 파동이 막 왔다 갔다 하지 않는 거예요. 같은 파동으로 계속 하니까 고요해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막 생각이 죽을 듯이 날 날뛰는 게 딱 멋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저를 하든 연부를 하든 똑같은 반복 관세무사를 계속 반복하든 다른 일을 계속 반복하든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하면 처음엔 잡념이 막 일어나다가도 100 읽기도 하는데 그중에 가끔은 순식간에 몰입이 되는 때가 있어요.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면 몰입이 확대가지고 그냥 산매에 딱 들어버리는 때가 있어요. 그건 연보를 하다가 도경하다가 뭐 절을 하다가 뭘 하다가도 순식간에 거기서 탁 그냥 몰입이 돼 가지고 그냥 그 영화에 주는 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런 때가 자꾸 자꾸 이렇게 반복되게 되면 내 욕망집착 이런 것들이 잦아든단 말이에요. 음 그러다가 나름대로의 또 뭐 뭐 저는 별사람 다 봤어요. 기도하다가 심지어는 이제 대안 나왔던 사람은요 정말 기도를 열심히 한 사람들 기도하다가 갑자기 자기 전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 그랬더니 남의 전생도 보인다. 막 이런 사람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뭐 뭐 그러니까 약간 신통 같은 것들이 막 생기는 사람도 봤어요. 근데 이제 그거 신경 쓰지 않는단 말이죠 그게. 그게 제일 법칙이란 말이야. 어떤 경계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거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거이고. 어쨌든 그렇게 해서 기도가 됐든 수행이 됐든 그 모든 것들이 법 환경에서 말하듯이 전부 다 선근 공덕이 될 수 있어요. 선근 선을 심는 이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는 게 될 수 있어요. 어 하다못해 법방에 가서 바닷가 백사장에서 어린 아이가 동그라미 그려 놓고 눈코입 그려 놓고 부처님 이렇게 귀합니다. 이렇게 나무 불 한 번만 해도 그게 모여 가지고 선불 2년이 된다. 그랬잖아요. 그 말이 그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기도하고 염분하고 도쿄 마는 게 왜 공격이 안 되겠어요? 놀라운 공덕이 되고 그게 버려지지 않아요. 그거 한 30년 했던 분들이 이 공부 딱 한 다음에 그 공부를 정말 몰입해 가지고 기도하고 이런 분들은 그래서 기도 몰입해서 해가지고 뭔가 이렇게 이런저런 산맥 체험을 많이 했던 분들이 은근히 우리나라 그 그게 할머니들의 저력인데 그런 할머니들이 더러 계셔요 그런 분들은 이 법문데다가. 금방인가 알아차리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 제가 그런 노부사님들 보면서 야 이게 하나하나 여쭤보니까 당신 젊었을 때 기도를 많이 했다고. 그런 것들이 그런 경험들이 나름 발휘를 한다니까요. 그게 그냥 사라지진 않는다니까요. 그렇게 다만 그분들은 마음을 열고 기도했겠죠. 기도할 때도 마음을 열고 했고 또 이 본문을 듣다가도 마음을 열고 한단 말이에요. 내가 이렇게 딱 쥐지 않고 근데 이것만이 저 불교의 정부에라고 쥐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마음의 열기가 쉽지 않겠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마음 열고 공부하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이 우리 공부에 큰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