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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사상이 얇어지면 일어나는 일 관자재

작성자空山 내려놓음 마음학교장|작성시간26.06.17|조회수15 목록 댓글 0

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 밥의 맛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생각하면서 먹었습니다. 오늘 할 일 어제 있었던 일 누군가에게 들은 말 이런 것들이 밥상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상이 얇어진 뒤에는 밥 한 술의 온기가 느껴지고 국물 한 모금의 따뜻함이 느껴지며 지금 여기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충만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이전에는 그 사람의 말에 내가 라는 축이 흔들렸는데 이제는 흔들림이 줄어듭니다. 이전에는 그 사람을 바꾸려 했는데 이제는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괴로움 속에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바꾸려는 마음이 시면 이해의 마음이 조용히 자라나며 이해가 자라나면 관계의 여백이 생깁니다. 그 여백안에서 사랑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오래 함께 온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서운함이 먼저 올라왔던 자리에 이제는 따뜻함이 먼저 찾아옵니다. 세상이 얇어진 뒤에는 같은 사람인데 보이는 것이 달라지며 그 달라짐 안에서 관계가 새롭게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향한 분노도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은 여전히 올라오지만 그 판단에 묶여 있지 않게 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되 그것 때문에 밤잠을 설치지 않게 되며 분노 대신 조용한 실천이 가능해집니다. 분별은 하되 분별에 매이지 않는 것 이것이 금강경이 가리키는 삶의 모습입니다. 시간에 대한 조바심도 조금씩 힘을 잃습니다. 남은 시간을 새는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게 됩니다. 과거를 후회하는 대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놓아두게 되며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올 것은 올 때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 이수만 번이 과거와 미래를 합한 것보다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상이 쌓여서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이며 사상이 거치기 시작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마음은 다시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일은이 되어도 여든이 되어도 사상이 얇어지는 순간 마음은 처음처럼 가벼워지며 그 가벼움 안에서 삶이 다시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먼 곳에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법문을 듣고 계시는 이 순간에도 세상이 조금씩 얇어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들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지셨다면 혹은 조용히 고개가 끄덕여지셨다면 그것이 사상이 얇어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떨림입니다. 이 법문의 처음에 왜 같은 괴로움이 반복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의 답이 지금까지의 여정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똑같은 괴로움이 반복되었던 것은 네 가지 뿌리가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며 나라는 집착 남이라는 집착 세상을 가르는 마음 시간에 매달리는 마음 이 네 가지가 돌아가며 괴로움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 뿌리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의 힘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알아차림이 깊어지면 뿌리가 서서히 힘을 잃으며 뿌리가 힘을 잃으면 괴로움이 반복되던 자리에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고요함 너머에 금강경이 가리키는 진짜 자리가 있었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자리 꿈처럼 살되 꿈에 매이지 않는 자리 사상이 거친 뒤에 드러나는 본래 마음의 자리입니다. 이 법문을 듣기 전과 후에 마음이 조금이라도 달라지셨다면 그것이 바로 사상이 얇어지기 시작한 첫 번째 순간입니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구나 하는 알아차림 하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금강경 사상의 가르침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이 알아차림 안에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법문이 마음에 닿으셨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괴로움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의 상에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상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만으로도 괴로움의 고리는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금강경의 마지막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체유의법 여몽한 포용 여로역 여전 응작여시관 모든 지어진 것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으며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하라 하셨습니다. 꿈이라 하여 삶이 헛되다는 뜻이 아닙니다. 꿈인 줄 알면서도 살아가되 꿈에 매이지 않는 것이며 그것이 사상을 벗어난 자리에서의 삶입니다. 꿈처럼 왔다가 꿈처럼 지나가는 이 삶을 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금강경이 전하는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이슬은 아침에 맺혔다가 해가 뜨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슬이 맺혀 있는 그 순간 이슬은 온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온전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아서 영원하지 않기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깊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괴로움이 반복되던 자리에 마침내 찾아오는 것은 바로 이 아름다움을 잇는 그대로 느끼는 평안입니다. 잠자리에 누우시면 잠시 눈을 감고 사상을 하나씩 내려놓아 보십시오. 오늘 하루 올라왔던 내가 라는 마음을 가만히 놓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서운함을 가만히 놓습니다. 세상을 향한 판단을 가만히 놓습니다. 시간에 대한 조바심을 가만히 놓습니다. 네 가지를 모두 놓은 자리에서 수만함만 남아 있을 때 금강경이 약속한 고요가 찾아옵니다. 여러분 이 법문을 들으시는 이 밤이 고요하고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누우실 때 금강경의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아 있으시기를 바라며 그 구절이 내일의 하루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 주시기를 바란답니다. 이 법문의 공덕이 듣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고루 돌아가기를 환향합니다. 나무 석가모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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