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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불이 不異 법문

작성자空山 내려놓음 마음학교장|작성시간26.06.17|조회수22 목록 댓글 0

네 반갑습니다.
이렇게 저는 중간에 임시로 어 갑 거짓으로 만든 성을 하나 세웠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승이나 심지어 단각 묘각 같은 옷이 갭이라는 것 자체도
전부 다 사람들을 이끌어 주기 위한 방편으로 세운 가르침으로써
이 화성이나 보인 성과 화성이라는 거죠.

계속 이렇게 불교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선불교에서는 이 공부는 단계가 없다.
그런데 또 다른 경전에서 보면
견도
수도
고학도가 됐든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일계적인 법문을 살았단 말이야.
그런데 또 다른 이 문제 이런 거예요.
방편법과
근본법
세속의 지혜와
출세 간의 지혜 이렇게 이제 두 가지 길을 설명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니까 그런 사람한테는 어떤 논문이 필요하냐면 야 그렇게 공부하셔가지고 너는요. 세세생세 깔고 닦아도 쉽지 않아요. 다음 생 그다음생 몇 생을 공부해야 될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해요. 그니까 그렇게 막편으로 공부하기만 하는 분들은 조금만 딴 사람이 겪는 사람이 어디 있고 감기나 위장이 안 좋거나 어디가 아파요? 그러면 내가 팔만대장경 다 공부하겠다. 이러는 거예요. 뭐라는 듯 하냐면 그럴 때는 수행 안 하면 못 깨닫는다. 이렇게들이야 이렇게 원턱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렇게까지 세상 세상 공부는 그렇게 안 하잖아요
물류 공부는 이 얘기를 했다. 제 얘기했다가 오늘은 맞았다 했다. 틀렸다. 했다가 계속 깨뜨려 주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저도요. 오면요. 음 야 뺏기기만 한다 했잖아요. 여러분이 어 보통 어떤 이야기를 해도 스님한테 가서 이제 상담을 해요. 예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제 공부를 잘하고 있나요? 뭐 이렇다 저렇다 막 얘기를 해요. 그러면 인정하는 얘기 듣기가 그는 뭐 거의 쉽지 않을 거예요. 그냥 다 깨주는 거예요. 사실은 어 심지어 훌륭하게 잘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도 심지어는 깨준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떤 어떤 수준에서 들을 때는 조용반이 지금 나한테 뭐가 심적이 있나? 내지는 저분이 뭐 도대체 뭐 모든 사람을 전부 다 부정하지 저렇게. 저 사람은 지금 분명히 옳은 얘기를 했는데 저 사람은 내 수준에서 봤을 때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라갔는데 그것조차도 아니라고 하나. 어제 분명히 이 사람한테는 이게 맞다고 했잖아. 근데 맞는 얘기를 오늘 하고 있는 이 사람한테 또 틀렸다고 얘기했단 말이에요. 그게 억까 심정이 하나도 없어요. 사랑하는 마음 있지. 이 걸리는 부분이 달라서 그래요. 사람마다. 사람이 공부가 어느 정도 되어지고 나면 어 공부된 거기에 또 걸려요. 그래서 금강경에 하는 얘기의 구조와 똑같아요. 아상 인상 중생상 후수자상을 깨도록 이끌어요. 처음에는 아상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분별 망상을 깨도록 이끌어요. 근데 이제 분별 망상을 잘 깬 사람은 뭘로 분별 망상을 깨냐면 법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법문을 통해서 바른 법문을 통해서 내가 사로잡혀 있든 분별 망상을 깨뜨린단 말이에요. 그러면 당연히 어떤 병이 또 걸리겠어요? 와 내가 이 효율이 없는 거 함께 있어야 한다. 언제나 늘 끼어 있어야 한다. 뭐 이런 식의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자기 마음을 확인해야 되니까 마음을 무엇인가 하고 파토르 들어가면 몇 얘기 더 간단 말이죠. 나중에 가서는 그런 깨달음도 따로 없다. 깨달은 나도 깨달을 것도 없고 해탈 열반도 따로 없다. 요렇게 해서 해탈할 것도 없다고 얘기한단 말이에요. 그 말은 이제 어느 정도 공부가 된 사람한테 하는 소리예요. 그 얘기를 또 처음 공부하던 사람이 듣고는 어 투격을 받아가지고 공부하다가 갑자기 포기하고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단 말이죠. 이처럼 어 하늘에서 범문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벗귀가 내리는 것과 같아요. 버비가 느리지만 법화경의 배우처럼 뿌리가 얕은 나무들은 자기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비를 머금는단 말이죠. 뿌리가 긴 나무는 더 많은 수분을 머금는 것처럼 저마다 법문을 그냥 뜯고 있지만 다 다른 근기로 듣고 있어요. 다 다른 양만큼 소화하면서 듣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머리도 과도하게 해야 되려고 가지 않고 그냥 내맡긴 채 법문을 듣고 있으면 어 저절로 저절로 그렇게 돼 있어요. 사람은 걱정할 필요 없는 이유는 내가 코디가. 내 근육이 얼만큼밖에 안 되면 거기에 맞는 법문만 들리게 돼 있어요. 다 안 들려요. 그래서 내가 소화시킬 수 있는 만큼만 소화하게 돼 있어요. 그런 측면이 있어요. 근데 또 다른 측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되는 얘기들을 들을 때 아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이 되게 혼란스러워요. 질문이 너무 많아요. 밥 말도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자꾸 하고 오늘은 이 얘기했다. 내일은 제 얘기했다 막 하니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 때문에 막 화가 날 정도로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냥 질문을 멈추고 그냥 오래오래 들어봐라.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럼 한동안 듣다 보면 아 저절로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가 그냥 스스로 소화가 돼요. 그래서 이 버핏을 맡다 보면 저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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