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 반야심경의 핵심 말하자면 불교의 핵심을 이야기한 반야심경 가운데서도 또 반야심경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 핵심이 무엇인가? 아 반야신경의 그 첫 구절부터 이제 살펴가는 그런 시간이 되겠습니다. 어제는 반야신경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면 오늘은 오늘부터는 반야심경 본문에 대한 해석을 해가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듯이 관세의 반야신경의 첫 구절은 환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 조견호은 보호주 최고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 관자제보살에 대한 설명은 지난 시간에 했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죠. 그다음에 행 반야바라밀다시 조경호은계공 도일체고행 이 부분이 반야심경의 핵심이고 불교의 근본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야바라밀다를 실천하여 오은희 공화당 사실을 깨달았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반야심경의 한 구절은 불교의 전체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위라는 것은 수행하는데 싼 스크립트로 보면 반야바람 밀다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오원이 모두 자성이 비어 있다는 것을 살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 문법적으로 말하자면은 조결 온 아 행신반야. 바람일다 하고 조견오은 개공이 동시에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행심 반야 바람일다시 조견 오온 계공 이렇게 표현한 거예요. 안영에 그러니까 수행을 하고 나서 뭐가 오는 게 아니라 이 표현이 사실은 굉장히 우리가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대한 수행의 방법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문장입니다. 우리는 뭘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부들을 하죠. 내가 공부를 한 다음에 뭐가 변화 배우고 뭐가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실천하면서 오늘 보니까 오원이 비어 있더라는 것이 오 자성이 비어있더라고. 여기서 지금 온 계공이라고 해 표현하니까. 표현이 조금 명확하지 않습니다마는 산스크리트에 의하면은 아 자 온의 자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의 자성이 비어 있더라. 이렇게 표현이 되는 것이죠. 오운의 자성이 비어있다. 우리는 지금 온이 공화다. 이렇게 말하면은 오온이 웃다 이런 표현이 되는데 오운의 자성이 비어 있다. 이 말은 무엇이냐 하면 오온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은은 있는데 그것을 살펴보니까 그게 자성이 없더라. 이게 자성이 없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여러분들이 주의를 하셔야 돼요. 왜 반야심경이 어려웠냐? 오원이 없다 하니까 자꾸리는 있다. 없다. 이 두 모순된 생각 속에서 원이 없으면 그 말이 무슨 말일까? 이렇게 말하죠. 또 어떤 사람은 그래서인지 오운을 특히 색수상 행식 이 개념을 색은 물질이다. 우리가 이렇게 이해를 한다면 물질이 비어 있다. 물질이 없다. 이런 식으로 표현은 쉽게 우리에게 지금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렵다. 참 심오하다. 이해가 안 된다. 이러한 음 우리들의 이해가 이렇게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5호는 있다. 그런데 오은을 살펴보니까 그것은 자성이 비어 있더라. 그러면 자성이 비어 있다는 말의 의미가 뭘까? 이렇게 접근해 가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 자성이 뭔데 자성이 비어 있다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이제 부처님의 말씀은 굉장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그 뭐랄까요. 인식하는 어떠한 방법을 가지고 대충 자기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면밀하게 살펴서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해 가는 데서 불교 공부가 시작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이제에 중요하게 살펴야 될 개념들이 반야. 바람일다. 행위라는 게 뭘까 하는 거죠? 첫째 뭘 하면은 어느 비어 있음을 우리가 보게 될까? 그다음에 중요한 게 온이라는 게 뭘까? 그다음에 자성이 비어있다는 말이 뭘까? 자성이 뭐고 자성이 비어 있다는 말이 무엇일까? 이 개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이 문장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라도 잘못 이해가 되면 이 문장은 전적으로 잘못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오운에 대해서 제가 이제에 반나신경 강의하는 책들 또 설명하는 책들을 살펴보면 오늘 색 그러면 물질 대게 이렇게 번역들을 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해석들 많이 보셨죠? 그리고 수상행식 어떻게 번역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부분 보면 수라는 것은 느낌입니다. 창이라는 것은 생각 행은 뭐라고 하죠? AC 행위라는 이 말이 굉장히 어려운 말이 그래서 사실은 이 오온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개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개념에 대한 이해는 충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리하기만 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이제 공예 설명에 집중하죠. 대부분 공이라는 개념이 뭘까? 그래서 공은 어 이런 뭔 공 뭔 공 해 가지고 공이라는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공이라는 설명이 또 그렇게 만만치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어려워지고 사람마다 공에 대한 견해가 틀리고 사실은 오원이 무언가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겅이 무엇인가 하는 개념도 그대로 이해가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오은을 설명하는 것이 공이니까. 오은이 있는데 그 오온의 자성이 비어 있더라. 이러한 구도로 본다면 오원을 알면 아 오온을 잘 살펴보니까 대조 우리가 생각해도 내가 봐도 오는 자성이 없구나. 그 자성이 없이 오온 속에 자성이 없음을 공이라고 부르는구나. 이렇게 이해하면은 오온 계획공 그러니까 그 비어 있는 것이 곧 오온이로구나. 이렇게 공지역 시색 이렇게 이제 이해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 오언을 관찰해야 합니다. 반아 신경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반야신경을 개념적으로 이해해 가지고 오원이 비어 있다. 이렇게 아는 것 이걸. 어제 제가 싼자나띠라고 이야기했어요. 개념적으로 하는 겁니다. 개념적으로 아는 건 어떤 거냐 하면 여러분들이 컴퓨터 컴퓨터가 뭔 줄 아시죠? 컴퓨터라는 이름을 가지고 컴퓨터라는 형태를 보고 아 저건 컴퓨터 컴퓨터야라고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를 알면서도 컴맹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컴퓨터를 모르진 않아요. 그런데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컴퓨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컴퓨터를 가지고 사용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제대로 컴퓨터를 아는 겁니까? 모르는 겁니까? 모르는 거죠? 예 이제 부처님은 오원에 대해서 오는 색수상 행식이야. 이렇게 아는 것은 산자나띠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불교 공부하시는 태도들을 보면 대부분이 싼자나띠로 불교를 공부하신 겁니다. 예를 들자면 사 성재는 뭐지 고진멸토 12 연기는 뭐지? 무명행식 명생 유기촉소 예치위생 노사 잘하네. 난 다 알고 있어. 아 이런 게 이제 싼 전화입니다. 근데 아비자나띠는 뭐냐? 그러면은 무음 무엇을 색이라고 부르지? 우리가 지금 색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색이 구체적으로 뭐지?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 공포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대상을 실질적으로 여실하게 있는 그대로 알아가는 거 이걸 아 위자나띠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지금부터 아비자나떼를 한번 이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아비자나띠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오오는 여러분들 자신을 지금 지칭하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오원이라고 말씀하시거나 오치온이라고 말씀하신 건 다시 말해서 오원은 세간이라는 것을 불교에서는 세간을 오온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세간 불교에서 말하는 또 세간이 뭐야? 세간이라는 말을 불교에서는 두 가지 대상을 놓고 부릅니다. 하나는 유정세관과 기세관 이런 표현을 이제 물론 이게 초기 불교에는 유정세관 기세관이라는 표현은 안 나옵니다. 다만 세간이라는 것으로 통일해서 보는 것이죠. 그러나 아무튼 이 세 가지 의미하고 있는 것은 나와 세계입니다. 나와 세계 다시 말해서 중생들의 세계를 세간이라고 부르는데 이 중생들의 세계는 어떻게 전개되느냐 중생과 세계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불교 입장에서 보면 불교 입장에서 본면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와 나는 분리되어 있는 이원적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전체로 싸잡아서 오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죠. 그럼 오늘 세간 가운데서 이제 다 자 나라는 걸 중심으로 해서 오은을 이해해 보면 나는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냐 하면 다섯 가지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내가 다섯 가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분들은 살면서 나라는 말을 항상 사용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사용하시는 나라는 말이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라는 말을 동일한 나라는 단어를 씀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는 말이 때에 따라서 계속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누구한테 매를 맞고 왔습니다. 오늘 나는 내를 맞았어. 그럴 때 지금 내가 매를 맞았잖아요? 그때 나라는 말을 썼습니다. 오늘 불교방송에 가서 이교수 강의를 들으니까 나 오늘 기분이 참 좋아. 지금 이때 또 나라는 말 썼습니다. 이교수 강의를 들어보니까 아 그래.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지금 나라는 말을 계속 쓰고 있죠. 여러분들은 무의식적으로 매마진나도 나고 생각하는 나도 나고 느끼고 있는 어떤 기분을 감정을 느끼는 나도 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게 동일한 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니까 실제로 매마딘나하고 느끼는 나하고 생각하는 나의 성질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여러분들이 매 맞은 것은 몸뚱이에요. 그렇죠? 이때는 이제 몸뚱이를 지금 나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아. 이럴 때 내가 지칭하고 있는 것은 감정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생각하는 놈을 지금 나라고 부르는 겁니다. 내 맛있나 감정을 느끼는 나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나 뭘 행동을 결정하는 데가 있어요. 아 그러니까 이번 강의는 끝까지 들어야 되겠어. 내일 비가 오든 눈이오든 나는 불교 방송 가서 이 교수 강의를 들을 거야. 이때 나는 또 생각하는 데가 아니라 뭔 행동을 어떤 행동을 내가 결정하고 의사를 지금 정화는 내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은 세상을 보고 인식하면서 내가 봤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인식하는 데가 또 있는 것이죠. 이게 5원입니다. 그래서 색수상 행식 달리 여러분들이 나라고 부르는 내가 나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들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아마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고 일체법이다. 모든 것들 내가 지금 우리가 대상으로서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 다섯 가지더라는 거예요. 근데 참 묘한 것은 여러분 여러분들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또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그거 생각해 보시지 않았죠? 당시 세계는 세계대로 있고 난 나대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분들에게 몸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몸처럼 지각되는 것이 밖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몸뚱이가 눈에도 보이고 손에도 만져지듯이 지금 여기 이 책상도 눈에도 보이고 몸에도 만져집니다. 이런 형태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을 통틀어서 색이라고 부릅니다. 그 색 가운데서 자기의 형태를 취해가지고 이게 나다라고 붙잡고 있는 모습을 취원이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올해는 지금 여러분들이 형태적으로 지각하는 그러니까 여기서 지금 물질이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은 색을 물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색은 지금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의식을 분석해 보니까 첫째는 이 몸을 통해서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뭔가 보이는 것들을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수익입니다. 여러분들이 느끼기 때문에 느낌의 대상도 외부에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밖을 보면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 예쁜 것 미운 것 이런 게 있죠. 만약에 여러분들이 위추를 느끼지 못한다면 세상에 아름답고 추한 것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웃기죠 여러분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 생각의 대상들이 또 외부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의지를 행사하기 때문에 그 의지의 대상 의지를 가능하게 해 주는 대상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인식하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또 외부의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착각을 하죠. 밖에는 보이고 느껴지고 사유되고 행위되고 인식되는 대상이 있고 아내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위하고 인식하는 구체가 있다. 이 둘은 별개의 사물로 존재한다라는 생각을 여러분들이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부처님은 그게 정당한가를 한번 따져보자는 겁니다. 그런 생각 속에 빠져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생각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나와 세계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모든 것들은 사실입니까? 그게 있습니까? 꺼지시잖아. 우린 지금 거짓에 속아서 살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겼던 것이죠. 불교의 이야기는 부처님의 말씀은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허유와 거짓으로부터 벗어나 가지고 진실 속에서 참된 삶을 누려야 된다. 이게 무슨 얘기예요? 그런데 어온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이 몸을 여러분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는 내 몸이다 이렇게 생각하시죠. 그렇잖아요? 그리고 감정도 어려서 감정이나 지금 감정이나 늙어 죽을 때 감정이나 내 감정은 내 감정이죠. 생각하는 나도 어렸을 때 생각하는 나나 지금 생각하는 나나. 늙어서 죽기 전에 생각하는 나나 라는 생각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것들은 다른 것과 관계없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어났다는 말을 우리가 쓸 수 있는 거죠. 나는 이 세계와는 무관합니다. 근데 어떻게 우연히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자아의 모습을 우리가 얘가 지금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니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셔야 돼요. 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세상에 오기 전이나 내가 죽은 후나 세상은 나는 무관하게 존재하겠죠. 그렇죠? 아 그러니까 내가 와서 가는데 그럼 이 나는 이 세상하고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절로 저 혼자 존재하는 놈이죠. 이게 스바 봐봐요. 자동 그러면 지금 전부 이 자성 이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이제 죽으면 어디로 갈까? 걱정이 되죠. 그렇잖아요? 어디서 왔을까? 아니 전생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이놈이 죽을 생각을 해 보니까 괴롭잖아요 두려움도 생기지 않습니까? 정말 태어나서 죽는 놈이 있는가? 이제 버자는 겁니다. 그래서 오원을 관찰하는 거야. 이게 불교 수행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수행한다고 하면서도 뭘 가지고 수행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한 인식이 되어 있지 않을 때 수행이 사실은 맹목적이고 무의미하게 진행됩니다. 예를 들자면 부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시죠. 우유를 얻으려면 소 저설자여야 되는데. 그런데 섣불리 짜고 있으면 우유가 나오겠습니까? 그래. 소를 짜면은 소에서 우유가 나온다는 말을 들어요. 그래서 우유를 얻기 위해서 소를 접고 뭘 짜기 합니다. 그런데 뿔이 손에 잡히니까 잡고 막 쥐어 짠다고 해서 절대 우유가 나올 리가 없죠. 이것은 소 젖을 그것도 새끼 난 암소를 짜야지. 숙소를 잡고 앉아 있으면 절대로 우리가 우유를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교를 공부한다고 하고 수행을 한다고 할 때에는 부처님은 우리에게 무얼 대상으로 해서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실천해서 어떠한 결과를 얻도록 가르쳤는가? 이걸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 오운입니다. 좀 이따 제가 그 이야기가 그건 이 교수님 네 이야기 아니냐. 어디 부처님이 그런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 제가 이제 니까야와 암경에 그 이야기들을 제가 모아놨습니다. 근데 이게 모아놓은 건 여기 나온 것은 쉽게 말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경의 초기 경제는 대부분이 5원 12초 18기 이런 이야기로 되어 있죠. 여러분들은 그런데 5월 12차 18개 이런 이야기들이 왜 부처님은 그렇게 눈 귀코 이야기를 자주 하고 물질 뭐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을까? 지금 우리는 전부 안이비설 씨는 색성향 미촉법 이런 단어들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개념으로 취해 버렸습니다. 이런 걸 보고 싼자나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비자나 띠는 뭐냐? 자 그럼 이제 내가 몸이라고 불렀던 거 여러분들은 내 몸 그럼 여러분들은 내 몸에 대해서 잘 알죠? 실제로 잘 알까요? 여러분들이 이제 몸을 잘 살펴보시면 어렸을 때 몸하고 지금 몸하고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어렸을 때 몸이 지금 몸입니까? 아니죠.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 뭔가 지금 몸을 다른 몸이라고 아직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죠. 그러면 이 몸이 어렸을 때 몸이 자라가지고 이 몸이 됐다고 생각을 하시죠. 어떤 놈이 자랐죠? 그래요. 자랐다는 말 속에는 몸이 변하기는 했지만 변하지 않는 놈이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달라졌지만 같은 놈이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근데 이게 얼마나 언어적으로 뭐 선입니까? 다르지만 같다. 말이 됩니까? 더러우면 다른 것이고 같으면 같은 것이지. 왜 다른 것이 같다는 말씀입니까? 이때 우리는 위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다음에 실제로 그러면은 그 안에 뭐 하나는 안 변하고 있 안변하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만 그것이 성장을 했다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여러분은 눈에는 어제의 몸하고 오늘이 몸하고 사실은 전혀 다르지 말하자면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어제 있던 몸이 오늘도 있으니까 아 이 몸이 좀 부피가 커졌으니까 자랐구나라는 표현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어떤 실체가 스스로 존재하는 어떠한 존재가 자라나고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새로운 세포로 교환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렇죠? 그리고 세포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죠. 그때의 어렸을 때하고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몸속에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실제로는 없습니다. 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로 교체가 되고 있습니다. 이 교체가 빠르면 젊다. 이 교체 의식이 늦어지면 늙었다. 그래요. 그러니까 이제 왜 노인들이 피부가 쪼글쪼글하냐 하면 체세포로 교체가 돼야 되는데 우리도 이제 자동차 타이어를 자주 교체를 하면 항상 새 타이어죠. 교체 시기가 늦어지면은 타이어가 고물이 되잖아요. 차가 만약에 차를 계속해서 세부풍으로 계속 교체해버린다면 새차가 계속 유지되겠죠. 교체를 안 하니까 보물이 되는 거예요. 사실 우리 몸에는 여러 가지 세포들이 살고 있죠. 이것들이 모여 있는데 이 세포들이 자주 교체가 일어나면 말하자면 조금 소물이 되니까 새 세포가 대신 이렇게 신진 대사가 빨리 이루어지면 젊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늦어지면 늙습니다. 사실은 제가 아 젊었을 때는 굉장히 몸이 날씬했어요. 그런데 늙으니까 먹는 것도 없는데 살이 안 빠지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 그럴 수밖에 없겠다. 이게 지금 늦게 돌아가는 거예요. 먹은 것이 잘 안 빠져나가고 계속 여기 체중 현상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래서 늙을수록 더욱더 이 빨리 이것이 변화할 수 있도록 운동도도 더 열심히 하고 해 줘야 건강이 유지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불교는 어떠한 신통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책 읽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잘 보자는 것입니다. 그걸 부처님은 무상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다시마 말해서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내 몸에 붙어 있지를 않는다는 거예요. 계속해서 흘러가는 겁니다. 계속해서 변화해 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걸 붙잡습니다. 왜 붙잡을까요? 이게 이제 욕망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몸을 통해서 재미를 느껴요. 첫째는 뭐이냐면 이 몸이 있으니까 그걸 만져보면 좋은 기분도 일어나고 좋은 걸 보면 좋은 기분도 일어나죠. 이런 걸 보고 모욕락이라고 그러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데 이 몸이 있어야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 몸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이게 안 없어지면 좋겠죠 이걸 이제 붙잡은 거예요. 그리고 계속 그것을 취하는 겁니다. 이런 우리들의 삶의 삶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다섯 가지 나라고 하는 요소들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속에다가 모아가지고 실체화하고 살아가는가. 이걸 보여주는 것이 부처님이 깨달았다고 하는 12 연기법이에요. 그러니까 5월에 공을 여실하게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이것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12년 5는 공을 깨달았다는 오은후 자성이 없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속에서 끝내서는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반야심경은 오온 개공을 이야기한 다음에 뒤에 가면 안이비설 신의 색성양 미쪽법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죠. 밑에 보면 아니비비 설치는 구 색상양 밑쪽 꼭 무 안개 내지 무의식계 무 무명 영무 무명진대지 분노사이 쭉 나오잖아요. 이게 근본불교 부처님께서 니까야와 아안경에서 수없이 강조하고 말씀하셨던 불교의 모든 교리체계입니다. 다시 말해서 12입처 18개 오원 4 성제 8 정도 이런 내용들이 부처님의 초기 경전에 교리 체계인 것입니다. 이 교리 체계의 실상이 무언가를 지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이 반야신경인 것이고 그리고 이 오늘 중심으로 해서 전개되는 교리들이 12초 18길 4성제 다 이게 오르고 오늘 핵으로 해서 전개되는 교리 체계들인 것입니다. 근데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이 교상이나 교류의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교를 공부하게 되면 굉장히 복잡한 여러 가지 이론에 빠져들기가 쉽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나비닮아 불교였다. 전임께서 말씀하시는 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 벌려져 있는 천체가 널려있는 우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짐으로써 인식되고 있는 그리고 의식의 세계를 세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이야기하면서 자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들을 불교 가르침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혼란이 일어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온 사실은 우리 밖에 걸려져 있는 어떤 불진 정신 이러한 실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2 입처에서 연기한 것들을 중생들이 어떻게 자아와 세계로 취하고 있는가? 이런 설명들을 부처님이 경전을 통해서 어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싸움 있다니까야. 예 보면 우리가 나라고 기회라는 것은 이제 기회 아 기타 같다. 그건 왜냐하면 꾸며가지고 헤아리는 것이죠. 여기 이렇게 여기는 것이죠. 아 나 이것이 나다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전시간에 공부를 하면서 나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라고 그랬죠? 다섯 가지라고 했잖아요. 오 그 이야기가 지금 여기 예 34쪽에 쌍류따니까야 47경 여기기. 쌈안후 빠싸나라고 하는 경에 나옵니다. 간단히 한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비구들이요. 다양한 것을 자아로 여기고 있는 사문이나 바람원들은 누구나 일체의 오치원이나 오치온 가운데 어떤 것을 자아로 여긴다. 그러니까 종교인이든 일반인이든 사실은 여기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하나 또는 몇 가지를 취해 가지고 자아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오치원인가? 비구들이야. 여기에서 배움이 없고 성자를 보지 못하고 현성의 법에 의해 가르침을 받지 못한 범부들은 형색을 지닌 몸을 자아라고 여긴다. 자아가 몸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거나 자아 속의 몸이 있다고 여기거나 몸이 자아를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거나 감정 또는 생각하는 마음 행위하는 의식 또는 분별하는 마음을 자아라고 여긴다. 자아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의식이 자아를 소유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이렇게 여기고 있을 때 내가 있다라는 생각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내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항상 오 돈을 가지고 그걸 자아로 취해가지고 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내가 있다는 생각이 끊어지질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우리는 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이죠. 이걸 중생이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비구들이요. 내가 있다는 생각이 그치지 않을 때 다섯 가지 지각 활동이 나타난다. 눈의 지각 활동 귀의 지각 활동 코의 지각 활동 혀의 지각 활동 몸의 지각 활동이 일어난다. 이게 이제 육군 가운데 5근이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이 우리들의 지각 활동은 내가 있다는 생각이 그치지 않을 때 제가 아까 여러분들이 뭘 눈으로 본다 할 때 반드시 나라는 생각이 일어날 때 본다 그랬죠? 비적이라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불경의 말씀은 관념적으로 이해를 하게 되면 이해가 안 되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이걸 직접 그 말대로 여러분들이 직접 여러분들을 살펴보게 되면 여러분이 뭘 볼 때 반드시 내가 본 것이죠? 벌 때 나라는 생각이 없이 본 것은 사실은 눈에 들어왔어도 여러분들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눈은 카메라처럼 사물을 잡아내지 않아요. 아까 예를 들어서 어떤 거리를 여러분들이 같이 지나갔을 때 산에 갔다 왔을 때 뭘 봤니? 이렇게 말하면 다 보는 게 달라요. 어떤 사람은 봤지? 지나오면서도 그 옆에 그렇게 많이 그런 게 있었는데도 그게 있었어? 나는 그걸 보지 못했어.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배고픈 사람 눈에는 식당이 많이 보일 거예요. 그렇죠? 지나가다가 보면 식당이 막 보일 거 아니에요. 책을 좋아한 사람 눈에는 책이 서점들이 많이 보일 겁니다. 어쩌한 사람에게는 옷박이가 많이 보이겠죠. 이렇게 그 자아라고 하는 것이 나타나게 하는 작동하는 힘들이 욕구의 욕망이에요. 가래. 그래서 12년기에 보면 예를 연하여 취가 했고 취를 연하여 유가 있다.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 유가 내가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 내가 있다는 생각이 무엇을 통해서 오운을 가지고. 오온을 통해서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곧 불교에서는 괴로움입니다. 불교의 사성제를 보면 고집멸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고성제란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교재 36쪽 제가 그 암경에 나온 분별 성재경 중화암경에 나오는 분별 성재경이라는 경에 보면 고성질환 어떤 것인가? 태어남이 괴로움이요 늙음이 괴로움이요. 병들미 괴로움이요. 죽음이 괴로움이며 원수와 미운 사람을 만나며 괴로움이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이 괴로움이며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요약하면 5002 괴롭니다. 보통 우리가 89라고 하는 말로 알고 있는 말 그 말씀입니다. 대부분 불교 이야기하면 불교는 팔고 근본 사고 생노병사. 그다음에 팔고 그다음에 이걸 또 이제 말하면 뭐 우비고래 이런 거 해가지고 부량한 개호 이런 식으로 이제 숫자를 통해서 공부를 해요. 근데 사실은 이게 사고든 팔고든 그건 별 중요하지 않아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오치원이 괴로웁니다. 이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건 뭐냐 하면 오치원을 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치원을 통해서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생노병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생노병사는 누구에게 일어나는 생노병사입니까? 나에게 일어나는 생노병사 아닙니까? 미 오는 사람이 밖에 그냥 누구나 다 미워하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입니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괴롭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사람이 또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원하는 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내가 괴로운 것이죠. 그러니까 결국 뭡니까? 생노병사. 우비건의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뭐예요? 나인 거예요. 그날을 우리가 분석해 보니까 몇 가지가 있었다고요? 그래요 다섯 가지. 그 내가 그러니까 뭐예요? 원수예요. 7원수 근데 어 그 이야기를 실제로 부처님이 뭐라 했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들의 교재 42쪽으로 건너뛰어 보면 라따라 라다쌍룩다라는 게 있죠? 20 제 23 라다 쌍류타 있죠 거기 제 일 마라? 이 발화는 죽음의 신 악마 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오온이 악마다. 이렇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없애자고 하는 것은 이 오온을 없애자고 하는 건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은을 없애자고 그러니까 그러면 이 몸을 없애자는 이야기입니까? 아니죠. 몸속에 없는 나를 여러분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붙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없는 내가 없는 줄 알면 사라지는 거예요. 시계 그러니까 여실하게 보면 나라는 집착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지겠죠. 이걸 이야기하는 것이지 이 몸을 없애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몸은 먹은 대로 운동한 대로 몸이 나타나겠죠. 그래서 이걸 잘 아는 사람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돼요. 부처님께서 3 권을 없애자고 이야기하셨지. 우리 살아있는 이 몸을 없애자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항상 수행자들은 건강을 참 유념해야 된다. 그래서 건강을 잘 관리하도록 불교의 계율에 보면 율장에 보면 부처님께서 얼마나 건강에 대해서 깊이 이 관심을 가지고 조치를 취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비구들이 음식을 얻어가지고 오면 절대 밥그릇을 섞어서 써들 못 하겠어요. 그게 이제 부처님이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지정해 준 게 옷과 발우지요. 왜 그랬을까요? 단체 생활하는데 이 오다고. 그릇을 뒤섞어 버리면 전염병이 하나 생기면 금방 다 엄마로 옮아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요즘 또 전염병이 돌 때 가장 이 단속하는 게 뭐냐면 식기 같은 거 못 섞게 하잖아요. 자기 것만 먹도록 환자는 환자 것만 먹도록 하고 옷도 소독해서 각자 입어야지 섞어서 못 입겠잖아요. 우리는 그 계율도 그냥 막 부처님이 하지 마라 했으니까. 안 하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대중들이 함께 살아갈 때 청결한 위생이 중요하고 건강이 중요한가. 그래서 음식도 저녁을 넘긴 음식은 먹지 마라. 그랬어요. 왜냐하면 인도에서는 날이 덥기 때문에 하루하루 저녁을 넘어가 버리면 부패해 버려요. 그러니까 반드시 음식은 그날 가져온 음식은 그날 먹고 뒤에 남겨 놓고 먹지 마라.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이만큼 부처님께서는 절저하게 건강하게 또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이지. 몸을 상해서 수행을 하는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 몸을 상하는 것도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그래서 고향을 그만두신 거 아닙니까? 근데 요즘 우리 주변에 보면 막 몸을 내던져서 수영을 한다는데 몸 던져버리면 수영을 뭘로 합니까? 몸 잘 모셔야 됩니다. 다 알고 모셔야 돼요. 어떻게? 이거는 인연 따라서 나타나고 있는 몸이니까. 이 2년 따라서 나타나고 있는 이 몸은 어떤 인연을 주어 줘야 건강하고 행복한 행복한 몸이 될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비웃들이야. 나는 하루 한 끼를 먹으니까 참 건강에 좋잖아. 사실은 부처님께서 하루 한 끼 자시고 한 것은 그건 고향이라고. 억지로 참고 하자는 게 아니라 수행자들이 육체 노동을 많이 하지 않잖아요. 그럼 수행자들이 하루 세끼 밥을 다 먹고 있으면 솔직히 좀 부담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수행하는 입장에서 보니까 하루 한 끼 먹으면 몸이 건강하고 쾌적하고 정신 상태가 아주 맑고 좋더라. 이렇게 권장하는 글이 니까의 맞지만 니까야에 보면 그런 본문들이 나오고 있어요. 불교는 결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몸과 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잘 알아서 바르게 이하고 바르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괴로움은 결국 오혼입니다. 그래 이제 이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 36쪽에 나온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읽어 볼까요? 괴로 104 경이죠. 쌍이었다니까요. 104 괴로움이란 누가라고 하는 게 뭔데? 비구들이 언제가 괴로움과 괴로움의 집기와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겠다. 다시 말하면 사성제입니다. 그대들은 잘 듣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괴로움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오치헌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옷치온은 어떤 것들인가?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이제 표현인데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오치원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워치원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이 표현에 유념하셔야 됩니다. 왜. 이런 표현을 쓰냐 하면 이것은 컵이다. 이렇게. 말
그 자체가 컵으로서 실체로서 있다는 말입니다. 근데 이것은. 컵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면은 가명으로서. 가칭으로서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가 있겠죠. 그래서 부처님은. 언어적 표현을 사용하실 때가 굉장히 세심한 면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2
빨리 일어나. 안스프린터를 이렇게 번역을 하다
보면 아 이게 부처님은 얼마나 언어 사용을 신중하게
또 세심하게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해 놓으면 뒤에 가서 오해가 생기잖아요.
제가 이렇게 강의하다가 보면 제가 실수로 어떻게 말 한
마디 잘못해 놓은 것이 뒤에 가서 어떤 분이 이제
그걸 가지고 저한테 질문을 해요. 근데 저는 그때 무심코 했던 이야기인데 아 그때 내가 실수를 했구나.
그러니까 여기서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이렇게 대중을 상대로 하고 이게 또 이 TV 화면을 통해서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진다고 할 때 굉장히 조심스러운
것이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한마디 한 마디가 경전을 보게 되면 얼마나 세심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가? 그래서
5000원이고 괴로움이다. 그러면서 비구들이여 괴
로움을 짚기 제가 이제 집이라는 말을 기라는 말하고 같이 쓰기를 좋아해요 왜냐하면은 집은 그냥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집이라는 말을 생성이라고 말하고 생긴다는 표현
써요. 근데 이. 해요. 위스 이런 뜻이에요. 이게 뭣이 함께. 모여서 이런 뜻입니다. 깃오
주의해서 지금 만들어 놓은 개념입니다. 이게 쌈 무다야라는 말을. 집이라고도 번역하고 집기라고도 번역을 해요. 집기라고 번역하신 분은 뒤에. 오다야라는 말을 살린 겁니다. 집이라는 말은 그냥 쌈. 오다에서 쌈이라는 게 뭐냐면 투개다. 위스 이런 뜻이에요. 이게. 뭣이 함께. 모여서. 이런 뜻입니다. 깃오다라는 것은 위로 솟아. 올라온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우리가 만약에 어떠한 밀가루 가루나 흙가루를 처음에 뿌려놓으면 바닥에 깔려 있을 때는 별로 드러나지 않죠. 계속해서 도움이라는 것을 계속. 거기다가 뿌리비는 이게 쌓여서 모여가지고 위로 나타나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것들이 이 세상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다는 것은 집기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집기라는 개념은 우리들의 의식이 동일한 의식들이 쌓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 책이
어제 봤던 책이죠? 여러분들이 단 한 번 이
례적으로 보고 뒤에가 가서 그것을 전재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들 이 시간적으로 무엇이 있었다라고 말할 때는 동일한 인식 이 반복되면 시간적으로 부피를 갖는 것처럼 느껴져요 예를 들자면
책도 사실은 실질적으로 본다면 이 책도 계속 변했겠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동일한 형태를 계속해서 보면서 동일한 사물이 여기에 있다는 걸로 해서 집기가 되면은 모여서 하나의 실체적으로 우리에게 인식이 됩니다. 나타납니다. 아무.
이 쌈 우리가 우다야라는 말은 연하요. 일어난 것들이
계속해서 쌓이면 집기가 되는 겁니다. 여기 앞에 있는 촛불이 지금 타고 있습니까? 안 타고 있어요? 있다고 한번 가정을 해 봅시다. 우리가 우리가 이 공부를 시작하기
촛불을 붙여 놨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이 촛불이 1시간 동안 타고 있었다고 이. 강의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됐다고 한다면 한 시간 전에 타기 시작한
한 시간 동안 저기에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죠. 근데. 실제로는 저기 한 시간 동안 촛불은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한 시간 동안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겠죠. 왜냐하면. 여러분
계속 지각하면서 도움이란 불꽃의 모양이 여러분들이 계속 지각됩니다. 이게
계속해서 쌓여가지고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물로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근데 알고보면 촛불은 매 순간순간 기름이 타서 연소해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저
촛불이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한 시간 동안 타고 있는 촛불은 여러분들 의식 속에 집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면은 멸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을 노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내 나이가 40이야. 52야. 나는 50년 동안
몸이 지금까지 존재했어라고 말하는 이 몸은 집기한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은 에어서부터 지금까지 내 몸이라는 하나의 생각 속에다가
다가 계속해서 비슷한 모양들을 계속 쌓아놨다 보니까 그런데 어느덧 보니까 좀 달라졌어요. 그러
변했구나라는 것을 이제 인식하죠. 근데. 어제하고 오늘하고 얼굴을 보면서 변했다고는 못 느끼죠. 그러니까. 동일한 놈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덧 어렸을 때 사진을 보니까 너무 많이 변해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많이 변했네. 그때는. 나는 있는데 모습이 변했네. 이런. 생각을 우리는 갖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게 이제 집이라는 현상을 들이죠. 그러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이 개념들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현실들을 분명하게 우리들하고 우리들에게 느끼도록 해주기 위해서 깨닫도록 해주기 위해서 쓴 개념들이에요. 다시 말해서 방편들이라는 말씀을 그렇게 이해하고 보니까 여러분이 오원을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의식을 여러분들이 분석해 보면 동일한 형태의 모습들이 쌓여가지고 지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나라는 몸을 만들고 있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몸은 과거의 몸 현재의 몸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몸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몸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은 또 미래의 자기 모습을 상상도 하지 않아요. 이렇게 해서 오은이라는 것 이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이 시간성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거에 오운현재 오원 미래 오원이 사실은 무상하고 무아이고 공이고 이렇게 관찰해야 된다. 이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서 느꼈던 뭔가 즐거움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끼는 이런 감정들이 반복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인식됨으로 해서 마치 느끼는 존재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촛불이 지속적으로 지각되니까 저기에 심지어 붙어가지고 타고 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 보통 촛불이 타고 있다. 그러죠. 근데 정말 타고 있을까요? 아니죠. 그냥 기름이 연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불빛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나오는 불빛들이 쌓여가지고 우리는 촛불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이제 성찰입니다. 오운에 대한 관찰입니다. 그래서 이걸 정확하게 보게 되면 거짓 못하니까 쌓여 있잖아. 이게 왜 쌓였을까요? 왜 그걸 자꾸 모아놓을라 했을까요? 개인적으로 답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 집기란 무엇인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환유와 탐욕에 수반하는 여기저기에서 애락하는 새로운 존재로 이끄는 가래 즉 여기에 유예 부유해 입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집기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제 원하는 것들을 쌓아 놓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몸을 여러분들이 갈망하는 겁니다. 이 몸이 없어지면 안 되겠다. 이 몸을 유지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여러분들은 의식 속에 동일한 하나의 몸으로 나타나는 의식을 모아서 쌓아 놓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타난다는 거죠. 이게 이제 집기죠. 그래서 집을 설명할 때 가래라는 말을 써요. 그게 이제 12년계에서 오면 예를 연하여 취가 있고 취를 연하여 뭐 유가 있고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이 가래를 연해서 취해지고 취에 취직된 것들이 유로서 집계하고 이런 겁니다. 그래서 12년기에 보면 반드시 뒤에 이와 같이 괴로움 덩어리가 집기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무명을 내놔야 행이 있고 식 명생 유기촉수 예치 유생 노사 우비권의 순대고치집 이렇게 하문으로 나와요. 저는 순대고치집이 뭔가 이렇게 이제 빨리어로 대조를 해 보니까 순전한 그러니까 여기는 이제 괴로움이 다른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그 자체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방과 같은 그런 뜻이죠. 이 순전히 괴로움이 돼요. 두 콱 한다라는 말을 써요. 괴로움 덩어리라는 말을 씁니다. 이때 칸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걸 한문으로 번역하신 분이 칸다를 취라고 번역한 거예요. 더 거취라고 괴로움 덩어리라고. 그런데 사실은 이 취라는 말이 탄다니까. 고온에서 온도 큰답니다. 그러니까 다섯 가지 덩어리죠. 그러면 집이라는 말은 왜 사용됐냐 하면 원이라는 말을 우원을 우원이 지구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어 색에 대한 관념들이 이 생각들이 모이면 덩거리가 될 거 아니에요. 짚기 하면 덩어리가 만들어졌을 때 그걸 온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12년 기법이 무명에서 오 원이 집기해서 덩어리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12연기하고 4성제는 떼일리야 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12연기가 첫째는 고성재 오치원이 괴로웁니다. 그럼 이 괴로움은 어떻게 나타났지? 사실은 실체적인 자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아가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보인 겁니다. 그때 이제 행의 문제가 있지 않겠어요? 행 음영을 위한하여 행이 있고 노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교 수행은 결국 행을 별하는 겁니다. 행을 실제로 그럼 행이 뭘까요? 우선 중생이라는 도부터 한번 봅시다. 42 쪽에 보면 우리는 불교에서 중생 중생할 때 중생이 무엇을 뭘 의미하는지 명확한 의미는 없죠. 그냥 살아있는 것 우리 저 윤애하는 것 음 생명들을 다 중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 제가 42쪽에 인용한 중생이라고 하나 라다. 쌍류따 악마 밑에 중생이라고 돼 있죠. 라다 존자는 한쪽이 앉아 세 종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중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어찌하면 중생이라고 하나일까? 브라다요. 몸에 대하여 욕심이 있고 담심이 있고 즐기는 마음이 있고 가래가 있어서 그것에 집착하고 묶이면 그렇기 때문에 그는 중생이라고 불린다. 수상 행식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몸 자신이 자 몸이라고 생각하는 자아라고 생각하는 몸 오운을 거기에다가 오은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탐심을 가지고 그 오은으로 즐기고 가래하고 집착하고 묶이기 때문에 이것을 부충쟁이라고 부른다. 거기에 이제 비유하면 이런 비유를 둡니다. 라다이어 비유하면 소년이나 소녀들이 흙집을 짓고 속급장난을 하는 것과 같다. 그 흙집에 대하여 탐심이 있고 욕심이 떠나지 않고 애정이 떠나지 않고 갈망이 떠나지 않고 고뇌가 떠나지 않고 가래가 떠나지 않는 한 그들은 그 흙집을 집착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에 두고 자기 것으로 여긴다. 라다야 그렇지만 소년이나 소녀들은 그 흑집에 대한 탐심이 없고 욕심을 욕심이 떠나고 애정이 떠나고 갈망이 떠나고 고뇌가 떠나고 가래가 떠나면 이제 그들은 그 흙집을 손이나 발로 흩어 버리고 무너뜨리고 부수고 내버린다. 라다요. 이와 같이 그대들은 색을 흩어버리고 무너뜨리고 부수고 내버리고 가래를 배멸해야 한다. 수상 행식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이제 오은의 색은 이 지금 살아있는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삶 속에서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망상 덩어리에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 색 온 이것을 버리라는 이야기지 지금 살아있는 이 몸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 그런데 이러한 고어는 어떻게 해서 형성이 되느냐? 거기 이제 43 쪽에 보면 자바 환경 306 경에 인용한 음 306경을 인용한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색을 보면 무엇인가를 보는 마음이 생긴다. 이게 이제 한문으로는 안과 색을 연하여 안식이 발생한다. 이렇게 돼 있죠. 보통 우리가 눈과 색을 연해서 안식이 생긴다. 이 말을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관념적인 의미로 어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내 눈하고 색하고 인연이 돼가지고 안식이 어디서 생기겠어요. 이건 눈은 지금 여기서 얼굴에 붙어있는 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시각 활동을 하죠. 시각 활동을 한다는 것은 또 무엇이 있기 때문에 시각 활동이 일어나죠? 아니 밖에 있는 시각 대상이 있으니까 시각 활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두 법이라고 그래서 2법 2법이라는 것은 서로 항상 같이 상대하는 법입니다. 예 눈으로 색을 보죠. 근데 눈이 없으면 색을 볼 수 없겠죠. 색이 없어도 눈이 색을 볼 수 없겠죠. 여러분들 이때 잘 생각하셔야 될 것이 보는 놈과 보이는 놈은 절대로 떨어져서 안 나타나요. 따로따로 안 나타납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마치 우리는 안 볼 때도 보는 놈이 있고 안 봐도 보이는 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래 내가 안 보는 본놈은 없을지라도 보이는 놈은 안 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하죠. 이게 이제 객관이라고 말합니다. 주관과 상관없이 객관은 존재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객관적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그리고 이제 3개를 대상을 보고 객체라고 말하고 그걸 보는 나를 주관이라고 말하고 주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주간과 객관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 이게 이제 주개 이원적 구조가 이 세기와 인간의 기본적 틀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은 이게 잘못됐더라고 볼 거야. 이게 운명이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생각을 고집하고 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이때 안희비 설 씨는 색상향 밑촉복을 12입체라고 부르고 뇌 외로 분별되어 있는 12 입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아 의식이 일어나서 인식을 할 때 그걸 보게 되면 그때 근데 이제 식별하는 이걸 이렇게 저렇게 구별하는 의식들이 형성된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 마음속에 몸속에 있는 마음이 눈을 통해서 색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 여러분들이 보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분별할 수 있는 의식이 형성된다는 겁니다. 이게 이제 불교적으로 말하면 연기한다는 것입니다. 그 조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여러분들은 몸속에 사물을 식별하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물을 분별하는 보는 마음이 생기고 이렇게 버는 마음이 있을 때 무엇인가가 보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제에 사물을 본다는 것은 버는 의식이 나타났을 때 보는 거예요. 그리고 보이면 그것에 대해서 느낌이 일어나고 이게 이제 초기입니다. 초에서 느낌이 발생하는 것 제가 초기라는 것을 보인다라고 그랬어요. 인제 경험한다라고도 말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초기라는 것은 의식이 있고 보고 보이는 직업 활동과 그 직업 활동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는 의식이 형성되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대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말은 굉장히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이게 또 어 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이 식이 없으면 밖에 있는 사물이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이 식은 뭘까요? 부처님은 이 식을 명색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의식을 마음이라고 부를 때는 이것은 명색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명색이 뭐죠? 개념과 형태입니다. 컵을 처음 본 사람은 이걸 컵이라고?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의식 속에 급이라는 이름과 그 이름이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만이 이 모양을 보고 이건 컵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죠? 실제로 우리는 밖에 있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식 속에 있는 것을 투영해서 인식합니다. 사내를 가면 야생화를 잘 아는 분들은 무슨 꽃을 그렇게 많이 보고 옵니다. 그런데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잡초만 보고 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 의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근데 그 의식이 우리 안에 본래부터 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기 때문에 형성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인제에 암경에 보면 식은 욕망과 대상에 머물러서 중장한다. 이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여러분들은 의식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의식이 형성되고 그 그걸 토대로 해서 다시 또 경험을 하고 이런 게 계속해서 순환되는 가운데 의식이 쌓이고 커진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이 불경을 이룰 때 모두가 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고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시기 아니었구나. 이걸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지금 이런 법문이 있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개념적으로 이해해 가지고 그냥 뭐 3사 화합이 초기도 하고 고성재는 권은 팔고야. 이렇게 관념으로 이해하고 이래 공부를 해 가지고는 불교 공부를 이런 식으로 아무리 해도 홍보한 뒤에 자기 자신의 삶의 변화가 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이제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만약에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의식으로서 밖을 보고 있는 것이구나. 내 명색으로 보고 있구나. 이걸 아시는 분들은 바깥 태서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을 가지고 시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저 사람 보기 싫어 죽겠어. 그러면 이제 저희는 저게 보기 싫기에 존재하는 거예요. 지금 근데 이제 이걸 아는 사람은 어떻게 보냐고. 아 나는 저런 사람을 보기 싫어하는 의식이 형성돼 있구나. 그걸 보는 거예요. 그러면 저 사람이 잘못됐습니까? 그걸 자 보기 쉽게 보는데 내 마음이 잘못됐습니까? 웬 원수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원수로 보고 있는 것이 내 안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원수를 없애려면 밖에 있는 원수를 없애야 되겠습니까? 지 안에 있는 원수로 보는 마음을 없애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원수를 없애려면 지 마음에서 원망하는 마음을 지워야지. 근데 그 마음은 가만히 두고 앉아서 원수를 없애겠다.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는 마음을 닦아야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 대신 마음이 식입니다. 쉬운 우리들은 시기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분별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 분별이 여러분들을 경험에 의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거예요. 것이죠. 우리 속담에 보면 자라보고 놀란 사람은 속뚜꿈 보고 놀란다. 그러잖아요. 지금 자라한테 물린 경험의 시기 형성돼 있습니다. 자라는 무섭다는 형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랑 비슷한 것만 봐도 겁이 덜컥 나죠. 근데 만약에 자라탕을 맛있게 먹어 본 경험이 있다면 이 사람은 솥뚜껑 보고도 침이 나올 거예요. 아 저거 참 맛있는 건데?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이걸 아는 사람은 내가 분별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전부 상하고 실체가 없는 것들입니다. 여기에 묶이지 않고 살 수 있다. 이게 이제 자유로운 겁니다. 해탈인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법무는 인과 여견 자성 청정 차성 청정 인과 역연 그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절에 들어가면 제일 처음 배우는 신문책이라고 있어요. 지문 신문이라는 게 불과 문중이다. 건물 짓잔데 이 승복을 말하거든요. 성복을 입고 있는 문중이다. 지문인데 그 제일 먼저 그런 말이 있어요. 가사 백천검이라는 가령 100천급의 세월이 흐르더라도 소작업은 불망하야.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해서 2년이 해운시에 인연이 만날 때 과보를 환자손이랑 그 결과에 내 보답을 다시 받는다. 그런 말이세요. 그래서 이게 뭐냐 100천급이 지나도록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맡는다는 겁니다. 이게 인과거든요. 그래서 인과는 역연하다. 아니 인과 얘기 안 하죠. 근데 천수경에 보면 배꼽적집제 여아분 고쳐 이야 새껏 동안 지은 제도 1년은 일찰나거든요. 찰나. 임찬나의 일념 돈탄계 돈이라는 거 한꺼번에 탕계는 다 없어진다 이상하잖아요. 가사 백천급이라도 소작업은 불망하야. 100000겁이 지나더라도 자기가 지은 업은 안 없어져서 2년이 만날 때에 그 결과를 자기가 다시 받는다. 이랬는데 천수경에서는 배꼽적 집제를 100 컵 동안 지은 죄를 1년 본 탕제 이 찰나에 한꺼번에 다 없애버려요. 탄계 흔들어서 단포린다. 태울 당자 태워서 다 버린다. 멸진 모여요. 다 없어져서 아무것도 없다. 질문 여성 중심지 자라는 가족 자체가 없다. 마음의 생일을 하는 것과 재무자 성종심 심향멸시 제짓는 마음이 없어지면 제 욕망이나 제도 또한 없어진다. 이렇게 제망 신멸 양국은 쟤도 없어지고 재짓는 마음도 없어져서 두 개가 다 없어지면 시중명의 진참해라. 이것이 이름이 참다운 참외다. 이랬잖아요. 이게 이게 두 마리 엉틀려요. 아까는 100 천급이라도 안 없어진다고 그랬는데 여기는 음 100 컵 동안 지은 죄라도 일 찰나에 다 없어진다고 그랬잖아요. 이게 불교예요. 그래서 어렵다 그러는 걸요. 그럼 뭐와 맞느냐 다 맞는 거죠. 왜 그러냐. 인과가 여기는 속에 인과가 아주 분명해요. 그런데 어떠냐 자성이 아주 청명해요. 우리 자성 장이 큰 본 본성 자기 본성이 아주 청정해서 글 자기 본성은 아무것도 붙을 수가 없어요. 거기에는 때도 버틸 수가 없고. 나쁜 것도 붙을 수가 없고. 안 좋은 것도 보틀 수가 없고. 아주 자성 청약이에요. 자기 본성 우리 본성 청경에서 아무리 모래를 가도 두 가지가 없어요. 거기는 뭐가 없냐 시분과 반분이 없어요. 시라는 게 이제 과거 그러면 이건 과거 과거에 속한 거고 이게 나눌 분자인데 현재 아마 현재에서 속한 전해요. 미래암은 미래에 속하고. 그래서 시간이 과거분 현재분 미래분 이렇게 나눠서 이걸 시분이라고 그러거든요. 방분이라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어느 지방인데 이게 남방에 속했느냐 북방에 속했느냐. 이 서방에 속했느냐? 동방에 속했느냐 이게 반분이죠. 상방이냐 하방이냐 그럼 여기가 어디예요? 여기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데랑 이게 이게 남방군이요. 북방분이 어디요? 빅스비 방소를 딱 이야기하면 이게 이제 다 나누어지거든요. 그래서 이걸 반군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그런데 이 자성에는 십은 방분이 없어요. 이게 과거 현재 미래에도 이게 해당되지 않고 동서남북 상하 사방에도 해당이 안 돼요.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이게 시간과 공간이 없다 이러거든요. 그게 신분과 방문이 없다. 이 자리예요. 지금 여전히 딱 앉았는 이 차성의 방소로는 예 이 자상의 망설음은 이게 지구도 아니고 대한민국도 아니고 서울특별시도 아니고 그런데 이게 이 육체가 머물러 있는 이게 인과의 이 장소로는 분명히 있는 거예요. 이 3000대 전 세계 안에 사과 3개가 있고 사과 3개 안에 대한민국이 있고 뭐 어디 어디 어디 이러면은 이게 반분인 거거든요. 근데 이거는 인과에 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몸으로 보면 분명히 시분과 반분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자성 자기 본성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고 그 덤서남북 상하가 없다. 이게 청교이거든요. 그래서 이 자성으로 돌아가면 깨끗한 지은 재가 이 철나에 다 없어지는 거예요. 근데 이 인과로 돌아가면 중요한 거예요. 얼마 전에 몇만 년 전에 누가 뭐 한 거 지금 다 하나? 삼국 시대에 우리 조상이 뭐 한 거 다 알아요. 백 년 전에 누가 뭐 한 거 지금 다 압니다. 이게. 그리고 자기 기억난 이후로 가만히 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뭐 했는지 자기는 다 그래요. 근데 이 아는 마음이 어디 있느냐 이 말이에요. 이게 머리에 있느냐 아니면 뱃속에 있느냐 발에 있느냐 찾아본 건 없어요. 근데 분명히 알아요 이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데도 없는 약 없는 게 아니에요. 네 겉들이 보면 다 감각이 있어요. 그게 마음에 그 마음 손에 찾아봄 없는데 이 손 눌러보면 아파요. 머리에도 찾아본 마음 없는데 눌러보면 아파요. 이렇게 찾아봄은 없지만 온몸에 다 있는 애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모르고 마음이 어딨나. 뭐 뱃속에 있나 없어요. 그럼 뱃속에 없냐 있어요? 그래서 우리 몸을 이야기하는데도 천만 가지로 다 이야기를 하는데 크게 나누면 다섯 가지 종류로 몸을 나눠요. 첫째는 우리 몸 딱 보면 육단신이라고. 그래서 근육이라는 육자하고 덩어리 단자. 집단 단체라는 게 있잖아요. 집단 집단 단자인데요. 근육 덩어리 얘기해요. 살점 덩어리야. 그래서 근육을 육단신이라고 그럽니다. 6단신 근데 그냥 살짝 덩어리만 되는 게 아니라 상어가 있어요. 상어. 상이 있거든요. 눈은 눈에 상이 있고 코는 코에 상이 있고 얼굴은 얼굴 상이 있고 이게 이걸 상호신이라고 그래요. 상호가 있는 거예요. 고기 덩어린 것만은 틀림없는데 각자 상어가 다 있거든. 어떻게 이게 부처님 말하면 30 이상 뭐 이러거든요. 이게 사무실이에요. 또 근데 이 상어가 그냥 상어가 아니라 지금 얘기한 것처럼 법보가 있어요. 여기. 업의 과보가 있어요. 젊을 때 수술을 했느냐 안 했느냐 수술했으면 수술 자국이 나거든요. 안 하면 안 나요. 이게 없어요. 그러고 젊을 때 뭘 먹었느냐 또 틀려요. 어떤 사람은 약을 잘못 먹어가지고 위장을 보내서 평생 보상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산에 잘못 가서 완전히 이 관절염을 얻어가지고 평생 고생하고 이게 내가 그동안 이 몸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행동했느냐라는 게 그 역사가 몸에 커다란 있습니다. 이게. 그게 오포신입니다. 이게 조금 더 못썩여요. 봄을 조사해 보면 아 들어놔. 여기. 그 어떤 사람은 뭐예요? 나는 먹은 것도 없이 살찐다고. 새빨간 거짓말해. 이게. 예 먹은 것만큼 찌지. 안 먹었는데 어떻게 째요? 돌멩이가 살찌는 거 봤어요. 그러면 이게 온몸이 자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허공신이라고 해요. 허궁 몸 그대로가 허공인 거예요. 수봉식 그럼 몇 가지가 나오세요? 처음에 6 단신 사무실 그다음에 어봇이 나중에 나중에 제일 마지막에 뭐라고 그랬지? 허공신 언니 내가 했잖아요. 이게 이게 그대로 허공이면서 엇 보이면서 상호이면서 조깃덩어리 근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게 하나가 있어요. 그게 뭐냐 그러면 이 내 몸이라고 하는 거 아는 거 이 몸 그대로가 이게 엇보라고 하는 거 아는 거 또 이게 이제 뭐 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거 아는 거 이 몸이 그대로 소금이다. 이거 아는 거 그 아는 놈이 있어요. 좋아하는 놈이 근데 그놈은 찾아보면 없는 거예요. 근데 분명히 알거든요 그래서 이걸 서울로 바꿔 이루이 밥타일에서 예로 골자하고 밝은 명자를 써서 고명신이라고 합니다. 고명 그 하나뿐이에요. 그 하나가 오민준도 알림 업 보인 줄도 알고 소공인들도 알고 다 알아요. 그래서 이걸 영력 고명하다. 역력하다는 그 말이 있거든요. 역력해야죠. 분명해요. 솔로 발라요? 이게. 외로울 곳자는 하나라는 뜻이거든요. 홀로 밝아. 뭐 의지에서 밝은 게 아니에요. 그래서 홀로 맑은 봄이세요. 그것이 그것이 고명신입니다. 그래서 이 우리 몸에는 6 단신과 고명신이 있다. 이게 분명히 살짝 덩어리고 고기 덩어리인데 거기에 홀로 갈게. 그걸 마음이라고도 하고 뭐 여러 가지 영혼이라고도 하고 뭐 여러 가지 붙이는데 아 그거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거든요. 그냥 홀로 하는 거야. 그래서 고명이라. 고명 그래서 이제 이거는 10분 반뿐이었기 때문에 시간도 또 무엇도 없기 때문에 이게 아무리 세월이가 좀 늦는 게 아니에요. 또 형체가 없어서 이게 어떻게 변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나거든요 그게. 그게 영역 고명한 나란 말이에요. 근데 지금 이렇게 이제 오고 가는 거 이게 인과예요. 인간대 이 영역 보면 한 것이 2년을 따라서 어디에 이제 많이 치우치느냐? 그게 이제 인구거든요. 그래서 물질에 많이 치우칠 수가 있고 사람의 침을 칠 수가 있고 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런 걸 감정이라고 해요. 간편 그래서 그것이 2년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감정이에요. 분명히 감정이라는 것은 자득이라는 뜻이거든요. 스스로 얻는 거 자드 아무도 못 느끼는데 스스로 느끼는 게 감정이에요. 자득 현상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누구는 누구를 좋아하는데 누구는 또 안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왜 좋냐 물어봐. 그냥도 다 그래요. 왜 싫으냐 그러면 그냥 싫다고 그래요. 그래서 항상 우리 동생은 시간도 공간도 없는 자성청정한 자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자기 감정으로 스스로 좋아하기도 하고 스스로 싫어하기도 합니다. 이게 전부 자기 감정이에요.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무엇을 더 좋아하는 것도 있고 무엇을 더 싫어하는 것도 있는데 이게 핵심 감정이에요. 핵심 감정 자기 감정 핵심 감정 자기 감정이라는 건 자기 스스로 하는 건데요. 핵심 감정이라는 건 항상 자기 소개에 꽂혀 있는 감정이 있어요. 멈춰 있는 감정 나는 어릴 때부터 어떤 감정의 핵심 감정으로 꽂혀 있었느냐 제 핵심 감정이 있거든요. 이미 처음 등재하는데 이거는 위에 누나가 하나 있는데. 그 옛날 시골에서 딸은 별로잖아요. 그래서 이게 누나보다 3살 뒤로 세상 덩어리로 내가 나왔는 모양인데 이제 이게 할머니로 볼 때는 뭐 이제 큰 손자고 부모로 볼 때는 이제 첫 아들이니까 어릴 때 내가 나간다 그러면 임금님 나가는 것처럼 뭐 그냥 뭐 야단도 아니었는데 어느 날 하루에 그냥 내가 와장창 무너졌거든요. 밖에 있다가 그 5분인데 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아무도 나를 안 찾아봐요. 사람은 꽉 있는데. 근데 그게 뭐냐 하니까 우리 엄마가 내 동생을 거기서 낳는 순간이에요. 그러니까 엄마 아이 낳는 거 다 돕는다고 다 하고 뭐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도 땀을 뻘뻘 흘리는 거 같더라고. 그거 엄마면 쳐다보지 나는 아무도 안 쳐다봐. 세상에는 누군가 진짜 못 믿은 세상이다입니다. 그래서 문 탁 닫고 나왔거든요. 그 뒤로는 생각이 안 나는데 그 아무도 나를 안 쳐다본 거 그게 그게 첫 기억이고 굉장히 심각한 기억인데요. 그게 꽂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세상을 깊이 못 믿는 그런 핵심 감정이 있었어요. 세상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에 다 떠나간다 그렇게 그냥 임금님 나가는 것처럼 막 그렇게 하던 그런 어른들이 어머니가 그 아이 낳는 순간에는 날 아무도 안 쳐다보더라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언제나 나는 쳐다보는 게 아니라는 거를 아주 어린 나이에 아주 슬프게 그걸 느낀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 대한 기대를 안 하고 겨우겨우 있다가 이제 나중에는 어머니하고 집 말 안 듣고 잔뜩 먹기만 먹고 튀어버리세요. 그게요.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도 핵심 감정이 있어요 보니까.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뭘 많이 얻으려고 안 하는 게 그때부터 딱 생기더라고. 나중에 이렇게 가만히 분석을 해 보니까 그래서 그 핵심 감정은 그냥 감정이 아니라 일상일거수일투족에 항상 나타납니다. 그런 감정이 혹시 막 적극적인 핵심 감정이 있으면 항상 뭘 가지려고 음악 할 텐데 아 모든 거는 다 떠나갔다. 그런 감정을 가진 그렇게 가지려고 하네요. 자기 할 만큼만 하지 그렇게 안 합니다. 그게 천두와 인과의 영웅이에요. 스스로 어떻게 서서히 그래서 뭘 보든지 아 저만큼 있다가 저렇게 가는구나. 그 헤어지는 걸 봐요 자꾸 만나는 걸 보는 게 아니라 이게 전부가 이게 인가라 그래서 이런 것은 어디서 나왔느냐 자기 경험 자기 생활에서 나왔던 사람하고 이게 인과관계예요. 이거는 스스로 나 혼자만 느끼는 거지. 아무도 못 느껴. 우리 부모가 내가 그런 건 느끼는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자식을 안다는 게 아 무서워요 몰라요 여러분 모릅니다. 자식이 부모 모르듯이 부모가 자식을 몰라요. 안다는 걸 잠깐이에요. 인간은 아주 분명한 거예요. 그 분명하기 때문에 나쁜 기억이나 좋은 기억이나 몸에 다 있거든요. 그래서 좋은 기억은 그게 도설 천궁입니다. 1000궁 중에 도설천이 제일 좋거든요. 납품 기억원극의 아비지옥이에요. 아비라는 거는 간격이 없어요. 그냥 끝없이 펼쳐지는 거예요. 지옥 저 땅 속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이 다 있는데. 좋은 기억은 무슨 전국이라고 그랬지? 도솔천 도솔천 없는 곳이 다 있는 거예요. 아니면 만족한 거 있고 부처님이 도설천에서 내려오셨거든요. 지옥에서 묻어요. 여기 부처님으로 모두 도성촌에 이제 일단 올라가서 무량 대북을 지은 분이라야 성분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아주 나쁜 기억은 기억은 그거예요. 아비 지옥 아비라는 게 한번 들어가면 계속된다. 이거예요 그냥 아비 누가 아니라 그래? 번역할 때 아비는 보면은 그런데 없을 문자 사이가 짱뚱아. 무가 지역이에요? 무관지역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냥 펼쳐지는 거예요. 그 우리 마음속이 도설천군과 무관지옥이 다 있다 이거죠. 그러면 내 마음속에 그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아비지옥이 떡 들어 있으면 괴로워요. 그래서 그 아비디오를 자꾸 내려누르려고 그러고 감출려고 그러고 덮으려고 그래요. 그래서 자기 마음속에 있는 좋지 않은 거 기분 나쁜 거 뭐 힘들었던 거 억울한 거 이것이 계속 기어올라와서 아주 고생하는 사람 많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자꾸 덮으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 자기를 이해해야 다른 사람을 이해해요. 그 자기 속에 있는 실수했던 거 잘못했던 거 이게 자기가 자기 용서를 먼저 해야 다른 사람을 문제야. 자기 자신을 먼저 다 이해하고 나면 다른 사람 다 이해해요. 근데 내가 그때 한 거 그 진짜 내가 바보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사냐 그럴 수가 없었지. 막 이래 되면요. 단순히 그래서 자기가 젊을 때 공부 잘 못했던 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들이 공부 안 하는 걸 절대로 용서해 그냥 반죽이려고 그래요. 그 아 나한테 절대 공부 안 했다.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은 애들 아 그렇지 너도 나처럼 그렇구나. 이래서 이겨요. 이게 정신치료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말인데 자기 지옥에서 벗어나야 된다. 자기 지옥을 통과하라. 비행기 차 안 가르쳐줄 만해 이런 말 응? 자기 지역을 통과하라. 자기 지역에서 벗어나야 된다. 자기 마음속에 지옥이 있는 거예요. 말 못 할 실수 말 못 할 기억 말 못 할 경험 이런 걸 가지고 있단 말이야? 근데 그거를 스스로가 이해 못하고 서로가 용서 못 하니까 그거 비슷한 사연이 밖에 있으면 막 공격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소개에 일어나는 그 지옥을 다 들어가 봐야 돼요. 내가 한번 승리를 했지. 들여다보고. 그 자기가 잘한 것만 자꾸 드러내서 자랑하지 말고 그거는 자기 소개에 있는 도설 천국이거든요. 근데 아주 무관 지옥이세요. 그래서 그것의 깊이 들어가서 그것만 마주 봐야 돼. 마주쳐서가. 얼마 정도 나이에 무슨 일을 했고 어느 정도 나이에 무슨 일을 했는데 그때는 그럴 수 있었지. 그게 나다. 근데 그것만 한 게 아니다. 이게 다른 건 좋은 것도 있다 이거야. 그래서 자기가 잘못하고 자기에게 감추고 싶었던 걸 전부 자기가 끌어안아서 그걸 자기 자신이 이해를 하고 싹 녹여버려야 됩니다. 이 그것이 자기 지역에서 통과한 그 자기 지역에서 통과를 하지 못하면 한쪽으로만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나쁘다고 하는 것에서는 자기는 감추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생각해요. 은퇴 공격이 계속되는 거예요. 그니까 다른 사람 잘한 거 그거 애들이 안 믿는 게 알아요. 애들이 뭔지 알아요? 엄마는 말이야 어느 땐 뭘 했고 어느 땐 뭘 했지. 근데 아이들이 엄마도 잘못하고 있으면서 그건 잘못한 건 싹 감추고 잘하는 것만 지금 내세운다. 그거 알아요. 아버지가 뭐 나는 원했다 뭘 했다 그랬는데 이제 할머니한테 너희 아버지가 잘못되고 어쨌다 이 소리까지 들었거든 벌써. 그래가지고 아버지 그 무관 지역을 다 알고 있는데 자신이 이야기할 때는 도설천국만 이야기하니까 아니 가짜라는 거 다 알거든요. 이 그래서 그러니까 이게 한쪽으로는 자꾸 은폐를 해요. 한쪽으로는 자꾸 자랑을 해요. 이게 인간이거든요. 그건 또 다른 사람이 뭔 줄 알아요. 저 친구한테 다 숨기고 잘하는 것만 내세운다. 그러지 말고 자기가 잘못한 거 다 받아들여서 자기를 용서하고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다 감싸안아서 그것까지 사랑해와. 그때는 몰라서 그랬고 경험이 없어서 그랬고 잘하려고 그랬고 그런데 잘하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이게 뭐 굉장히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잘하고 잘못한 거 딱 비교해 보면 제로거든요. 제로 섬이에요. 그래서 나랑 다 용서하고 이해하다 보면 며느리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고 용감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고 아들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고 이게 인간성이에요. 자꾸 뭐 내세우는 사람은 자기 잘못한 건 감춰요. 자기 잘못을 감추는 사람만이 남의 잘못을 공격하고 자기 잘못을 다 감싸안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요. 남의 잘못 절대로 공격하지 않아요. 공감하세요? 음 그러니까 자기 지역에서 벗어나라. 자기 지원 통보하기 남의 잘못 이야기 이래야 이게 사회가 더불어져요. 자기 잘못은 다 통과를 해야 돼요. 그게 인과거든요. 그럼 인과는 나쁜 일을 하면 그게 오래 가잖아요. 좋은 일을 해도 그게 오래 가요. 그래서 한 번 좋은 일을 하면 그 좋은 일 한 투자가 평생 즐거움을 받는 거예요. 그러나 이 좋은 일 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에게 어마어마한 투자가 없어요. 그리고 나쁜 일을 하면 그 하는 순간은 잠시인데 이게 평생가거든요. 그러니까 나쁜 거 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을 망치는 게 없는 거예요. 이거를 알아야 돼요. 인간한테 나쁜 일은 순간인데 그게 평생 나를 괴롭히는 거예요. 좋은 일은 순간인데 그게 평생 나를 즐겁게 만들어요. 근데 이 마음이 이제 점점 깊어지고 깊어지면 이게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그 하나의 영원히 현상이기 때문에 고명신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조명 그 선과 악이 근본은 다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