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두로 존자는 부처님의 제자 중 1명으로 뛰어난 신통력을 지닌 아라한이었습니다. 후대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그를 16 라 한 중 한 분으로 모십니다. 어느 날 한 부유한 장자가 향남으로 만든 귀한 발우를 높은 장대 위에 걸어두고 신통역으로 이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이 바루를 주겠다며 수행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결국 빈두로 존재가 나섰습니다. 그는 하늘을 날아 발우를 손쉽게 가져갔고 이를 본 군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불법의 위대함을 찬탄했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은 곧 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부처님은 빈두로 존자를 불러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신통력은 중생을 돕기 위한 방편일 뿐 대중 앞에서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행동은 마술사의 묘기처럼 군중을 현혹시킬 뿐이며 불법의 본뜻을 흐리고 외도들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경계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진정한 수행은 내면의 번뇌를 끊고 지혜를 얻는 것이지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 부처님은 수행자가 대중 앞에서 신통력을 과시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계율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빈드로 존재는 후대 불교에서 겸손과 절제를 상징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기억되게 되었으며 후대 동아시아 불교 전승에서는 그가 미래를 미륵불이 출연할 때까지 세상에 머물며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수호나한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신통력은 목적이 아니라 중생 제도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아무리 높은 경제에 올랐다 하더라도 겸손과 절제를 잃으면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동아시아 불교 사찰에서는 빈두로 존자를 빈두로 응공이라 부르며 승가를 보호하는 수호나한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많은 사찰에서는 공양을 시작하기 전 빈두르 존자에게 먼저 음식을 올리는 의식을 행합니다. 빈두로 존자는 화려한 능력을 내려놓고 묵묵히 법을 지키는 수행자의 본보기로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겸손과 봉사 그리고 진정한 수행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