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최고의 걸작으로 피워낸 대한민국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한국이 우겨도 이건 중국이 원조임이 틀림없습니다.
지금 중국 땅 속에서 한꺼번에 유물이 3000점이나 쏟아졌다고요?
중국이 동아시아 미술의 중심이라 축제를 벌이던 그 순간
한국 불상 하나가 조용히 판을 뒤집자
전 세계 고고학계가 난리가 났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2012년 중국 읍성의 땅이 갈라지자 거대한 구덩이 속에서 불상이 끝도 없이 올라왔습니다.
6세기 동의와 북제 1500년을 잠들어 있던 불상 3000여 점이었습니다.
중국은 동아시아 불교 예술의 뿌리라며 축제가 열렸고
세계의 카메라가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불상을 들여다보던 학자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습니다.
한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자세.
그 미묘한 반가 사유의 모습이
바다 건너 한국의 삼국 시대 불상과 소름 끼치게 닮아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외국 학자들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형식이야. 인도에서 중국 거쳐 한반도로 흘러간 것 아닙니까?
한국 불상도 결국 중국을 베낀 모방일 뿐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이 자세는 큰 부처 발치에 딸린 곁다리 조각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한국은 받은 그대로 베껴서는 영원히 이류라는 걸 알았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장인들은 중국 불상에서 똑같이 반복되던 옷주름을 지우고
얼굴과 팔과 허리가 하나의 숨처럼 흐르도록 다듬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었습니다.
1mm에 가까운 거대한 상을 구리 두께 단 2 ~3mm로 떠내야 했습니다.
조금만 두꺼워도 균형이 깨지고 조금만 얇아도 그대로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장인들은 머리를 관통하는 철심과 어깨를 가로지르는 철심을 교차로 박아 종잇장처럼 얇은 몸체를 완벽하게 세웠는데요.
그렇게 국보 83호 방가 사유상이 세상 앞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높이 93cm 금동 방가 사유상 중 가장 컸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국보 83호와 쌍둥이처럼 닮은 목조 불쌍이 일본 교토 고류지에서 고스란히 발견된 건데요.
받아 온 형식을 걸작으로 완성해 일본에까지 건넨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던 겁니다.
모방이라 비웃던 학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시작이 어디였든 이 유물을 예술의 끝까지 밀어 올린 건 한국인데요.
대륙이 곁다리로 흘려보낸 유물을 동아시아 최고의 걸작으로 피워낸 대한민국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