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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공덕법신

작성자空山 내려놓음 마음학교장|작성시간26.06.20|조회수27 목록 댓글 0

이제 오늘 들으면요. 지난번에 이제 부처님의 신통 관련된 부분 좀 이어진다. 아 이제 경계 지난번에 뭐라 그랬냐면 신통이라는 것은 신통력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신통력이 신통이 아니라 이 신령스럽게 통하는 이 우리의 마음 우리 성품 이것을 가지고 어 신통이라고 하는 거다. 아 이것은 신랑스럽고 영엄스럽게 통해서 우주 법계 전체의 두루 통해서 산과 강 가공에 걸림이 없어서 찰나의 천리만리를 가도 도리의 흔적이 없다. 불이 능히 이것을 태우지 못하고 무리능이 빠뜨리지 못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경에 의대 모양을 취하는 범부에게는 편의일을 따라서 설해준다고 하니 마음의 형상이 없는 것이 곧 미묘한 색신이고 모양이 없음이 곧 실상이며 실상은 본체가 콩하니 이것을 곧 허공무변신이라 하고 만행으로 장엄하였기 때문에 공덕 법신이라고 한다. 이 법신이 만행의 근본으로 씀을 따라서 이름을 세우지만 실로 말하면 다만 이것이 청정 법칙 신이다. 이랬습니다. 음 이제 아 이 이 마음 이 마음을 모르는 사람 이 마음 이 우리의 본 마음 성품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허공을 날리려고 하고 몸을 이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날아다니는 것 뭐 그런 것이 신통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모양 없는 이 마음 이것이 진정한 뜻인청이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 마음의 형상이 이 마음. 이것은 형상이 있는 게 아니죠. 모양이 있거나 뭐 빛깔이 있거나 크기가 있거나 뭐 위치가 있거나 우리가 이렇게 만질 수 있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냄새 맡거나 맛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알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그 어떤 대상도 아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제 모양이 없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 이것을 묘색신 이렇게 표현하게 돼요. 미묘한 아 몸이다. 이걸 법신이라고도 하죠. 허공법신이라고도 하고 미묘한 색신이다. 이거 묘하다. 이러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묘하다. 이렇게 표현을 하고요. 또 모양 없는 이것이 바로 실상이다. 우리가 알고 보고 느끼고 뭐 이렇게 육군 경계인 대상 대상은 전부 다 어떤 모양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전부 다 허상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근데 이것만이 실상이다. 허상은 허망한 모양이라는 말이거든요. 화상은 허망한 모양인데 화상을 제거하면 곧장 바로 실상이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 이 실상 모양이 있는 게 아니고 그러면 아 허상을 제거하면 곧장 실상이다. 그럼 이 제법 실상이라고 해서 제법이 모든 것이 이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는 이 실상이 드러난 여기에서 실상을 보지 못하고 진실 진리를 보지 못하고 화상만을 보는 거죠. 그러면 허상을 이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 가운데 허상인 거는 빼면 싹 다 빼버리면 거기 실상 하나가 남겠죠. 그럼 이제 뭐가 화상이냐? 아 있다 없다 하는 거 2년 따라 생겨나고 2년 따라 사라지는 것 그래서 2년생 2년별 2년 가합 2년 따라 연기적으로 생겨났다가 2년이 다 하면 무너지는 거 생주이멸 성주 괴공 색노병사 하는 것 그것은 전부 다 2년 따라 생기고 사라지니까. 2년이 가짜로 화합한 거란 말이에요. 그건 실체가 아닙니다. 허상이라고 하죠. 그런 곳은 그러면 우리가 나라고 하는 나 나는 실상일까요? 화상일까요? 나라고 하는 나는 언젠가 2년 따라 생겨났잖아요. 그죠? 2년따라 생겨났다가 이 봄동아디 이것은 2년 따라 생겨나고 2년 따라 늙고 병들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거죠. 그리고 지금 있다고 하는 이 순간도 몸 계속 변하는 거잖아요. 무상하게 변해가는 거죠. 재행무상이고 재판부화라고 하죠. 무상하게 변해갈 뿐이죠. 그러니까 변해가는 가운데 내가 10대 때 몸을 가지고 나라고 할 수도 없고 20대는 30대 머물러 나라고 할 수 없고 어떤 거 가지고 다 내 몸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단 말이에요. 몸이 아플 때 병든 몸이 내 몸인지 생생할 때 건강한 몸이 내 몸인지 젊었을 때 몸이 내 몸인지 나중에 늙어서 병든다면 그때 늙은 몸이 내 몸인지. 이 몸은 계속 변하는 거기 때문에 몸을 가지고 나라고 한다면 뇌가 계속 변하는 거 아니에요. 계속 변한 변화잖아요. 그 계속 변해 가는 오고 가는 이걸 가지고 날아갈 수 없단 말이죠. 그리고 음 어 내 몸이 여기 있다라고 생각할 때 내 몸이 있다라고. 여기서 생각을 할 때 어 여기서 내가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내 몸이 여기 있다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죠. 내가 여기서 한 생각이 일으켜서. 이 몸이 나야 이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여기 내가 없으면 그 생각하는 내가 없다면 이 몸이 나다라는 그 생각도 없겠죠. 그러니까 이 몸이 이 몸이 나다라고 하는 게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분별이잖아요. 내가 멍 때리고 있거나 한 생각들이 키지 않고 있으면 나다라는 생각이 없잖아요. 이 몸이 나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 때 그때 내가 있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뭐 뭔가 이렇게 아 막 삼매 빠졌다? 어디에 몰입되어 있다. 이럴 때 보면 뭐 시를 쓰는 사람들도 그러죠. 어떤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이럴 때 아 무화지경 이러잖아요. 내가 없는 것 같은 그냥 그 그 경기 하나에 그냥 완전히 압도돼 가지고 나를 잊은 풍경 뭐 이런 식의 표현을 쓰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내가 사라진단 말이에요. 나에 대해서 내가 분별하거나 생각하지 않을 때 그게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럼 내가 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없네요. 또 밤에 잘 때 꿈도 없는 깊은 잠에 확 빠져서 자고 있다. 그때 내가 있을까요? 난 어디 갔을까요? 꿈도 없는 깊은 잠에서 내가 있을까요? 지금 지금 꿈깬 지금 지금 어 어젯밤 꿈도 없이 제가 푹 잤는데. 그때도 제가 있죠. 그때 제가 그 안방에서 뭐 내 방에서 누워 있었는데 하고 지금 생각하는 거죠. 그 지금의 일이잖아요. 어제 그때 그때 진짜 내가 있었을까요? 그땐 내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잖아요? 그럴 땐 내가 있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근데 내가 없다면 세계는 있을까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있을까요? 내가 있다고 할 때 쌍으로 세계가 생겨나거든요. 나와 세계는 쌍으로 생긴단 말이에요. 오은통 이우주 전체 나밖에 없다. 그러면 내꺼에 대해 가지고 이렇게 경계선을 그을 필요가 없죠. 오다가 경계선을 끌 거예요. 온통 어느 주 전체가 나라면 경계선을 끌 필요 없잖아요. 나와 이 경계선을 적어놓고 이 안에는 나고 이 바깥은 남이야. 이렇게 말할 필요가 없잖아요. 온통 자기뿐이라면 즉 내가 있을 때 타인도 있고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등장하거든요. 그니까 꿈도 없는 깊은 잠에서 내가 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근데 뭐 꿈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어디 하나의 몰입해 있을 때 몰두해 있을 때 그때 내가 있는말이에요. 오직 그 일밖에 없지. 무하지경일 때 그때 내가 없잖아요. 그러면 이 말은 이 말은 내가 한 생각을 일으킬 때 내가 생겨난다는 거죠. 내가 한 생각 이렇게 잘하면 나도 없다는 거죠. 꿈도 없는 기쁜 잠에서. 내가 사다지고 세상도 사라지죠? 또 여러분이 어떤 한 가지의 의식을 딱 모으면 어떤 막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요? 내가 너무 사랑하는 뭐 500만원짜리 컵이에요. 예를 들어 이거 어제 샀는데 오늘 이게 깨졌어요. 금리 갔어요.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얘가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겠죠? 그럼 오직 이거밖에 없잖아. 이때 세계가 있고 뭐 우주가 있고 뭐 내 젊은 날이 있고 막 이런 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직 그냥 이거 하나가 그냥 있잖아요. 응 그렇다면 보세요. 내가 이 몸이라는게 나라고 한다면 이 몸이 나다라는 그 생각에 있을 때 몸이 나다라는 그 생각이 일어날 때 그런 분별망상 아상이 생긴단 말이에요. 꿈과 아상은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하네요. 꿈속에서는 사라졌다가 눈을 딱 뜨면 다시 생기잖아요? 아무 생각 없을 때는 없다가 한 생각 일으킬 때 이렇게 등장하잖아요. 이렇게 우리 눈앞에서 탄생하죠. 뭐가? 나와 세계가 동시에 지금 여기서 탄생하죠. 천재 창조가 지금 여기서 일어나잖아요.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죠. 내가 꿈도 없는 깊은 잠에선 그게 없단 말이에요. 나도 세상도 없단 말이에요. 그럼 이렇게 이따가 없는 게 어떻게 나겠어요? 이따가 없는게 있다가 없다. 이따 없다 있다 없다 한다. 그럼 그 어떻게 날아갈 수 있습니까? 이거는 시상이 아니죠. 허상이죠. 분별 망상이죠. 내가 분당할 때만 있으니까 있는 것처럼 생각되니까. 그럼 내가 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요? 나는 못난 놈이야. 나는 능력이 없어. 그렇게 그렇게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을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이렇게 규정짓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난 이런 사람이다. 난 이런 인생을 살아왔다 하고 나의 과거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모든 삶의 경험 그걸 나라고 동일시 하잖아요. 그래서 그 과거에 빗대어서 나는 능력 있다. 능력 없다. 능력 있는 사람이야. 능력없는 사람이야. 매력 있는 사람이야. 매력없는 사람이야.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사람이야. 이런 식의 자기 규정을 하고 있죠. 그게 무명행식 12연기에서 그렇게 이어지는 거거든. 어디서든 그걸 나라고 생각하니까 팽 위에서 일어난 모든 경험들을 가지고 이게 나다라고 의식을 부여잡는 거예요. 난 이런 사람이다 하고. 근데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하는 그 생각 그 생각도 계속 바뀌죠. 어떨 때는 본인이 스님 저는 10대 때는 저는 제가 공부를 못 해서 되게 능력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고등학교 때 막 막 열심히 공부를 하니까 성적이 좋아서 갑자기 좋은 대학을 갔어요. 그때 이제 저거 아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대학 갔는데 별 볼 일 없이 그냥 비실비실 살다가 취직도 잘 안 되고 뭐 별로 이렇게 시답지 않게 그냥 비리비디하게 살다 보니까 또 회사 가가지고도 영 욕을 먹고 살다 보니까 아 내가 능력 없는 게 맞았구나 하고 생각이 됐어요. 그러다가 나이 뭐 한 사십 넘어가고 이러면서 갑자기 회사에서 잘려가지고 비참함을 안고 퇴사를 해서 어쩔지 사업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사업이 대화가 나서 내가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었구나. 요렇게 자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죠. 계속 달라지고요. 여러분 그 자존감이라는 거 있잖아요. 내가 자기 효능감 같은 거 있잖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응 내가 누구인지가 남들의 말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규정되고 있고 그걸 내가 믿기 시작해 믿어요. 그러니까 어 엄청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자기가 능력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가 정말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한 어떤 사람 한두 명 두 세 명이 그쪽이 나한테 야 너는 정말 능력이 넘치고 매력이 있고 참 훌륭한 사람이다. 하면서 막 그냥 찬사를 보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갑자기 자기 뭐랄까 효능감. 이런 게 막 올라가면서 예를 들어 이제 여러분이 회사에서 막 욕을 먹다가 아 이 욕 먹고 저 욕 먹고 회사에서 영 능력 인정 못 받고 살면서 계속 자존감이 다운받아가지고 살다가 결국에는 제일 먼저 잘렸어요. 동기들 다 안 잘리고 있는데 나만 제일 먼저 잘려서 너무 충격적으로 회사에 나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놀랍게도 한 두 군데 세 군데. 우리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 한 두 세 군데에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 회사가 마침 뭐가 어쩌지 해가지고 사람이 더 필요했을지 또 사업을 확장시킬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 대기업에서 우리 회사보다 더 큰 연봉도 많이 주는 회사에서 아니 이 회사를 확장시키려다 보니까 경력직이 필요한데 자기네보다 더 높은 해산 더 좋은 회사는 경적직이 나올 리가 없잖아요. 뺏어 올 수도 없잖아요. 근데 보니까 우리보다 좀 못한 회사인데 여기서 나온 사람이 있으니까? 야 우리가 그때부터 좀 더 줄게. 그래가지고 채용을 할 수도 있잖아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적절한 답을 못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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