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도 내가 아니고 감정도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굽니까?
정묵 대사가 미소 지었습니다.
좋은 질문이요. 하지만 아직 답할 때가 아니요.
7일 동안 여기 머무르시오.
그리고 매일 관찰 수행을 하시오.
7일 후에 다시 만나겠어.
성각은 절을 올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성각은 움막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정목대사는 매일 새벽 한 번
저녁 한 번씩 짧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성각 혼자 수행했습니다.
첫째 날 새벽 정묵대사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몸을 관찰하시오. 호흡을 관찰하고 감각을 관찰하시오. 하지만 내가 숨쉰다. 내가 느낀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냥 숨이 들어오고 나간다. 감각이 일어난다. 이렇게만 관찰하시오. 정각은 평상에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숨이 들어왔습니다. 숨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했습니다. 평소 하던 호흡 명상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냥 숨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누가 숨 쉬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호흡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생각은 놀랐습니다. 내가 숨 쉬는 게 아니라면 누가 숨 쉬는가? 저녁에 정묵 대사를 만나 물었습니다. 스님 관찰하다 보니 내가 숨 쉰다는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이게 맞습니까? 정묵대사가 미소 지었습니다. 좋은 시작이요. 내일은 감정을 관찰하시오. 둘째날 성곽은 감정을 관찰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뻐근했습니다. 불편하다는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 나 불편해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찰했습니다. 불편함이 일어나고 있구나. 신기하게도 그렇게 관찰하니 불편함이 덜했습니다.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괴로웠는데 불편함이 일어나고 있다고 관찰하니 견딜 만했습니다. 점심 때 공양을 했습니다. 맛있는 나물이 있었습니다. 좋다는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즐거움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렇게 관찰하니 또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즐거움은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졌습니다. 마치 파도처럼 셋째 날 성곽은 생각을 관찰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저녁에 뭘 먹을까? 고향은 잘 있을까? 내가 이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예전 같으면 그 생각들에 휩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찰했습니다. 생각이 일어나고 있구나.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각을 관찰하니 생각과 거리가 생겼습니다. 생각이 일어나도 이것은 내 생각이다라고. 동일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넷째날 성곽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만약 몸도 내가 아니고 감정도 내가 아니고 생각도 내가 아니라면 나는 대체 뭐지? 저녁에 정묵대사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관찰하다 보니 더 혼란스럽습니다.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굽니까? 정묵 대사가 반문했습니다. 지금 그 질문을 하는 것은 누구요? 그게 저입니다. 그 나는 누구요? 성곽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정묵대사가 말했습니다. 계속 관찰하시오. 답은 머리로 생각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요. 깊이 관찰하면 저절로 보일 것이요. 다섯째날 성곽은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나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관찰했습니다.
이 몸은 이 몸이 9가? 어릴 때와 지금이 다르다. 지금과 늙었을 때도 다를 것이다. 변하는 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이 9가? 생각은 계속 바뀐다. 아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르다. 변하는 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이 9가? 감정도 계속 바뀐다. 기쁨도 사라지고 슬픔도 사라진다. 변하는 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여섯째 날 성곽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침 좌석 중이었습니다. 새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순간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새 소리를 듣는 나가 없었습니다. 그냥 새 소리가 있었습니다.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나가 없었습니다. 그냥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호흡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호흡하는 나가 없었습니다. 그냥 호흡이 일어났습니다. 성곽은 그 순간 알았습니다. 나라는 것은 환상이구나. 처음부터 없었구나. 몸이 있고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감각이 있지만 그것들을 소유하는 나는 없었습니다. 그냥 현상들이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었습니다. 생각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20년 동안 찾던 것이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알았을 때 묘하게도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실제 날 아침 정각은 정목대사를 찾아갔습니다. 정묵대사는 그를 보자마자 미소지었습니다.
보았어?
성각은 저를 올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 보았습니다.
정묵대사가 차를 내왔습니다.
무엇을 보았어?
정각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좋소
계속 말해 보시오.
몸이 있고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감각이 있지만
그것들을 소유하는
나는 없었습니다.
마치 영화가 상영되지만 영화를 보는 고정된 관객이 없는 것처럼
정묵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죠. 이제 거울을 다시 보시오.
정목 대사가 청동 거울을 들어 성각에게 건넸습니다. 좋소 거울을 보시오. 무엇이 보이오?
얼굴이 보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은 제가 아닙니다. 그냥 거울에 비친 형상일 뿐입니다.
정묵 대사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소. 이제 뒤를 보시오.
성곽은 거울을 뒤집었습니다.
無라는 글자가 햇빛에 반짝이었습니다.
이것이 금강경의 핵심이요.
무와 나는 없다.
정묵 대사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찾으려 합니다.
진짜 나 참된나? 영원한 나
하지만 금강경은 말합니다.
그런 나는 없다고
아상이 안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나가 없다면
누가 살고?
누가 수행하고?
누가 깨닫는가?
하지만 이것이 바로 착각이오.
정묵 대사는 창밖에 강을 가리켰습니다.
저 강을 보시오
물이 흐릅니다.
그런데 강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어?
강은 그냥 물이 흐르는 과정일 뿐이요.
순간 순간 다른 물이 흐르고 있어 마찬가지요.
나라는 고정된 실체는 없어.
그냥 몸과 마음의 흐름이 있을 뿐이오.
매 순간 다른 생각 다른 감정 다른 세포들이 일어나고 사라지오.
성곽은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럼 스님 나는 누가 20년 동안 괴로워한 겁니까?
아무도 괴로워하지 않았어.
예
괴로움이 있었어.
하지만 괴로워하는 나는 없었어.
마치 비가 오지만
비가 나다라고 할 수 없듯이
괴로움이 일어나지만 괴로움이 나다라고 할 수 없어.
성각은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정묵대사가 계속 말했습니다.
금강경은 말합니다.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
왜 그럴까요?
왜 나라는 생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나라는 생각이 모든 고통의 뿌리이기 때문이요.
정묵대사는 찻잔을 들어보였습니다.
나와 남이 있다고 생각하면 비교가 생기어. 나는 가지고 남은 가지지 못했다.
나는 잘났고 남은 못났다.
그래서 교만과 질투가 생기고
나가 있다고 생각하면 집착이 생기오.
내껏 내 가족 내 명의 내 재산
그래서 탐욕과 분노가 생기어
나가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생기오.
나를 잃을까 봐
나를 해칠까 봐
나를 무시할까 봐
그래서 불안과 공포가 생기고
하지만 나가 없다는 것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지오.
성곽은 그제야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20년 동안 자신이 왜 괴로웠는지
나를 찾으려는 그 집착이 괴로움이었습니다.
나를 확인하려는 그 노력이 고통이었습니다.
스님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정묵 대사가 웃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가? 아니요
그냥 삶이 일어나는 것이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시오.
하지만 내가 먹는다.
내가 잔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냥 먹음이 일어나고
잠이 일어나고
행함이 일어나는 것이요.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성곽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20년의 무거운 짐이 내려놓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할 나가 있어?
성각은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감사함이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성곽은 한 달을 더 토굴에 머물렀습니다.
그 한 달 동안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예전처럼
나는 잘 잤나?
못 잤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몸이 깨어났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양을 할 때도 내가 먹는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냥 먹음이 일어났습니다.
신기하게 하게도 이렇게 먹으니
음식 맛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맛본다는 생각이 없으니
오히려 맛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일을 할 때도 달랐습니다.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하고
마당을 쓸 때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피곤함도 덜했습니다.
내가 수고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괴롭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성각은 적묵 대사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신기합니다.
나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오히려 삶이 더 생생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목대사가 답했습니다.
나라는 생각은
현실과 우리 사이의 막을 만들어
나가 보고 나가 듣고 나가 느낀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일어나는 것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생기오
하지만 나가 없으면
그냥 봄이 일어나고
들음이 일어나고
느낌이 일어나오.
직접적이고 즉각적이오.
그래서 더 생생한 것이요.
성곽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확히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한 달 후 성각은 절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정묵 대사가 청동 거울을 건네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시오
스님께서 가지고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 그대가 가져야 할 때요.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 가르침을 전하시오
성곽은 깊이 절을 올렸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스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요?
만약 나가 없다면 윤회는 어떻게 됩니까?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갑니까?
정묵 대사가 미소지었습니다.
좋은 질문이요.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만약 나가 애초에 없었다면
윤회할 나도 없는 것이오.
그럼 물이 증발하면 구름이 되고
구름은 다시 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오오.
하지만 이 물이 계속 같은 물이라고 할 수 있어.
물의 분자들은 계속 바뀌어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의 흐름은 계속되지만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윤회하는 것은 아니오.
금강경은 말합니다.
과거 심불가득 현재 심플가득 미래 신불가득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왜 얻을 수 없을까요?
왜냐하면 고정된 마음이 없기 때문이요.
매 순간 다른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오.
성각은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수행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군요. 수행도 그냥 일어나는 것이요.
인연이 맞으면 수행이 일어나고
인연이 무르익으면 깨달음이 일어나오.
내가 수행한다.
내가 깨닫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장애가 되고
성각은 산을 내려갔습니다.
20년 만에 찾은 답을 가슴에 품고
나는 없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월정사로 돌아온 성곽은
주지스님께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주지스님은 기뻐하며 법당의 청동 거울을 모셔 놓았습니다.
그날부터 성곽은 무아의 법문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법문은 단순했습니다.
나를 찾지 마십시오.
애초에 없는 것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대신 지금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십시오.
관자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감각이 일어나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나라고 집착하지 마십시오.
많은 스님들이 그의 법문을 듣고 의문을 풀었습니다.
몇 년 후 성각은 다른 절로 가서 주지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그는 청동 거울을 법당에 모셔놓고 그 앞에 작은 글씨로 새겼습니다.
금강경이 말하는
무아
나를 찾지 말고 흐름을 보라.
그러면 자유다
성각은 평생 이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의 제자들도 이 법문을 이어받아 후대에 전했습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그 절에는 청동 거울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거울 앞에는 늘 이런 질문이 적혀 있습니다.
거울 속의 그대는 진짜 그대입니까?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그림자입니까?
우아
나는 없습니다.
애초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온 몸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의 임시적 결합일 뿐입니다.
마치 강물처럼
계속 흐르는 과정일 뿐
고정된 실체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허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입니다.
나라는 환상이 사라지면
집착이 사라집니다.
집척이 사라지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순수한 현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찾고 있습니까?
그것을 멈추고 지금 일어나는 것을
그냥 관찰해 보십시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나라고 규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없지만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가볍고
자유로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