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들”
‘바이러스(Virus)’가 무엇입니까? ‘바이러스(Virus)’는 아주 작은 감염성 입자로서, 생명체의 특성과 비생명체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세균보다 작은 크기의 병원체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없고 반드시 다른 생명체의 세포 안에 들어가야 증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엔 바이러스(N-Virus)’가 무엇입니까? 이 말은 사회학 용어이며, ‘바이러스’란 말 앞에 ‘필요’, ‘요구’라는 뜻을 가진 ‘Need’란 단어의 머릿자를 따서 ‘엔 바이러스(N-virus)’라고 합니다. ‘엔 바이러스(N-virus)’는 무슨 뜻으로 사용하는 말입니까? 바이러스는 병을 옮깁니다. 감기에 걸린 사람을 가까이하면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감기에 걸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엔 바이러스(N-Virus)’도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러나 해로운 바이러스는 아닙니다. 기업이나 대학교의 운영이 어려워지면 일하는 관계자가 부정적인 사고에 젖어 “우리 회사는 미래가 없다. 곧 부도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든지 “우리 대학은 이류는커녕 삼류도 유지하기 어렵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못 가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하고 비관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등장한 CEO나 임원, 총장이나 교수가 그 말에 동조하지 않고 “아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우리 학교는 반드시 일류학교로 도약할 수 있다.” 혹은 “우리 회사는 여기서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단합하여 도전하면 반드시 활로(活路)가 열릴 것이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라고 하며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를 대며 설명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그의 말과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어 지금까지의 비관적이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게 됩니다. 희망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들까지 희망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래 우리는 희망이 있어! 우리가 힘을 모으면 지금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을 반전시키는 바이러스를 ‘엔 바이러스(N-virus)’라고 하고, 자신감을 불어넣고, 희망을 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사람을 일컬어 ‘엔 바이러스(N-Virus)를 지닌 사람’이라 부릅니다.
성공한 사람은 무언가 다릅니다. 성공연구가 데일 카네기(Dale Breckenridge Carnegie)는 “성공한 사람들은 조사해본 결과 그들이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세 가지 말이 있는데 그것은 ‘없다’ ‘잃었다’ ‘한계가 있다’하는 말이었습니다.
뇌를 연구한 어느 학자는 뇌세포의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뇌(腦)는 현실과 언어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기에 말하는 대로 명령하고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희망이 있다.”하고 외치면 그 순간 그의 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동하고 그 몸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주변에서는 그를 도와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생각지 않은 행운도 따라옵니다. 그리하여 결국 “나는 희망이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고 말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반면에 자주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말이 그 사람의 행동을 묶어 놓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어!”하고 외치는 순간 안 되는 이유가 그 사람의 머릿속을 지배하며, 그에게 찾아온 기회들도 하나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입으로 짜증 난다는 말을 반복하면 그 소리가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고, 뇌는 “너, 지금 짜증이 나 있는데 왜 멀쩡한 척하느냐?” 하면서 온몸에 불쾌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뿌립니다. 그래서 짜증 난다고 말하는 사람 주변에는 짜증 날 일이 계속 생깁니다. “죽겠다.”라고 말하면 어깨가 더 축 늘어집니다. 왜요? 죽겠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 몸의 모든 조직과 세포와 신경이 죽을 준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지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말하면 몸의 모든 조직과 세포와 신경이 살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생기가 넘쳐납니다. 이렇게 생각이란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입니다. 따라서 모든 행동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안된다고 생각해버리면 심리적 장벽이 형성되어 자기 발전을 제약하여 넘을 수 없는 벽을 스스로 만들어버립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절대로 그 일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1950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세계역도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세계적인 관심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역도 선수 바실리 알렉세에프가 당시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500파운드를 들어 올리느냐 실패하느냐에 쏠려 있었습니다. 결국, 알렉세에프는 역도에 관심이 있던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500파운드를 포기하고 499파운드를 들어 올렸기 때문입니다. 알렉세에프가 499파운드를 택한 이유는 그 당시 그 누구도 500파운드를 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들어 올린 역기의 무게를 다시 달아보니 501.5파운드였습니다. 이 사실이 발표되자 세계 여러 역도대회에서 그 해에만 무려 여섯 명의 선수가 5백 파운드의 장벽을 뛰어넘었습니다. 결국, 인간의 육체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다는 500파운드의 한계는 심리적인 것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포츠계의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는 100m 달리기의 10초 벽을 들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100m를 10초 이내에 주파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당시 스포츠 과학자들의 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이 1968년 미국의 짐 하인스에 의해 깨어지자 그다음부터 여러 선수가 10초 벽을 뛰어넘었습니다. 마라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육체로는 2시간 5분대의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케냐의 폴터갓이 2003년 베를린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04분 55초를 기록하며 2시간 5분이라는 마의 장벽을 허물자 역시 많은 선수가 그 벽을 뛰어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니오.”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단어라고 믿습니다. 사실 “안돼!”라는 말의 힘은 너무 강력해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너무 쉽게 지배해버립니다. 하지만 더 강력한 단어는 “노!”가 아닌 “예스!”입니다. “예스!”는 허락이고 가능성이며, 사람들에게 꿈을 꿀 기회를 줍니다. 자유와 영감도 줍니다. 심지어 “예스!”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안 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 하는 부정적인 말투를 바꾸지 않고서는 성공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을 글로 쓰면 나쁜 글이며, 말로 하면 나쁜 말입니다. 이 말은 욕설이나 거짓말보다 더 많은 해를 끼칩니다. 그 말로 강인한 영혼이 수없이 파괴되고 그 말로 수많은 목표가 죽어갑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며, 생각하는 대로 삶을 추구하며, 생각하는 수준만큼의 삶을 삽니다. 인간의 가치 또한 소유물이나 지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격과 그 사람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부정적인 말이 나의 머릿속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꿈속에서도 이런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는 긍정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