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의 흉터”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불과 13년 동안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에서 인도 북서부까지 정복하였고,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통합하여 역사상 최대규모의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리스의 문화, 예술, 학문이 동양으로 유입되어 융합된 헬레니즘 문화가 확산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어를 보급하여 국제 공용어가 되게 했고, 그가 정복한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는 도시를 20여 개 정도를 건설하여 그리스의 언어와 문화를 보급하였고, 훗날 기독교의 복음 전파에 직접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 공용어가 그리스어였던 것도 알렉산더의 정복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수많은 정복 전쟁을 통해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오른쪽 뺨에 깊은 흉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상처도 전쟁 때문에 생긴 상처입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서 화가를 왕실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화가는 왕의 얼굴에 난 상처 때문에 초상화를 그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흉터를 그대로 그리자니 왕이 싫어할 것 같고, 상처를 없애자니 화가의 양심상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던 화가는 좋은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왕에게 손을 턱에 받치라고 했습니다. 물론 얼굴의 흉터를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화가는 그 상태에서 마침내 만족스러운 초상화를 완성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완성된 그림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덮어 주고 싶은 화가의 따뜻한 마음이 알렉산더의 마음에 든 멋진 초상화를 나오게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남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 주고 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아의 두 아들 셈과 야벳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그린 설계도대로 방주를 지어 여덟 식구와 동물들을 보존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의인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의인이란 말은 죄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라는 말은 그가 전혀 실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항상 그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고 성실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항상 동행했습니다. 이런 노아가 결정적인 실수를 했습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 후에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고, 포도를 많이 수확하여 포도주를 담갔습니다. 어느 날 노아는 지나치게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둘째 아들 함이 우연히 아버지가 장막에서 술 취하여 벌거벗은 채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첫째와 셋째 아들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장막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드렸고, 그들이 얼굴을 돌이켜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 함이 자기에게 행한 행실에 대하여 듣고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여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함이 잘못했는데 그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그것은 가나안 족속이 장래에 타락할 것을 예언한 것이며, 함의 죄가 그의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보여 주는 예언적 선언이었습니다. 함의 잘못은 단순히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본 것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수치를 형제들에게 알린 데 있었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 주기보다 형제들에게 알렸고, 아버지를 조롱하고 비웃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반면에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로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의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창9:23) 노아가 셈과 야벳을 축복하였습니다. 셈의 가장 큰 복은 구속사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셈의 후손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이 나왔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벳의 족속에게는 크게 확장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야벳의 후손들은 유럽과 북아시아 지역으로 널리 퍼져 큰 민족들을 이루었고, 이방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의인도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며, 상대의 실수와 허물을 감추어주면 복을 받지만, 허물을 들추어내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남북전쟁 중에 한 장군을 요직에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군은 과거에 링컨을 심하게 비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측근이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각하, 저 사람은 과거에 각하를 공개적으로 욕하고 모욕했던 사람 아닙니까? 왜 그런 사람을 중용(重用)하십니까?” 그러자 링컨은 “나는 원수를 없애 버렸소.”라고 말하자 측근이 “어떻게 그렇게 했단 말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링컨은 “그를 친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링컨은 그를 비난했던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붙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덮어 주고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 장군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며 링컨의 신뢰에 보답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혹시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시기하고 미워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그에게 등을 돌리면 속은 편할지 모르나 결국 사람을 잃게 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10:12)라고 말씀했고,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허물을 덮어 준다는 것은 죄를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정죄하고 끝내 버리는 대신, 회개하고 새롭게 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 준다는 것은 죄를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정죄하고 끝내 버리는 대신, 회개하고 새롭게 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덮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줄 때 관계가 회복되고, 그 사랑이 결국 자신에게도 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교회가 은혜로운 공동체가 되려면 함의 입술보다 셈과 야벳의 옷자락이 많아야 합니다. 허물을 찾아내는 사람은 많지만,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정죄하기보다 사랑으로 감싸 주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는 셈과 야벳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관계의 복, 공동체의 복, 영적인 복을 허락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