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의 집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12:43-45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본문의 내용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을 집으로 삼고 살다가 어떠한 계기로 인해 그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귀신은 그에게서 나온 후 물 없는 곳을 찾아다니며 쉴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을 얻지 못했습니다. 귀신은 "내가 나왔던 내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라고 결심합니다. 자기가 원래 지배하던 사람에게 다시 들어가겠다는 말입니다. 귀신이 돌아와 그 사람을 살펴보니, 집이 비고, 청소되었으며, 수리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귀신이 나간 후에 새로운 주인을 모셔 들이지 않은 영적 공백 상태였습니다. 빈집을 확인한 귀신은 혼자 들어가지 않고, 자신보다 훨씬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무더기로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악화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의 논쟁 끝에 결론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자,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어겼다며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자,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며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께서 많은 환자들을 다 고치시고, 눈멀고 말 못 하게 하는 귀신 쫓아내셨습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라며 모독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할 것"이라며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없다고 반박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미 많은 기적을 봤지만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또 다른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책망하시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결론으로 본문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으로 그 시대의 실상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더러운 귀신’을 다루려고 합니다. 제가 이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본문의 내용이 예수님 당시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모든 시대에 해당 되고, 또 각 사람에게 해당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악령은 존재합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악령의 개념이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악령이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악령의 실재를 논리적으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①역사적 보편성의 논리입니다. 악령에 관한 개념이 특정 시대나 특정 문화권에만 존재한다면 집단적 착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령의 존재에 대한 기록과 체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됩니다. 문화인류학계에 의하면 외딴섬의 원시 부족부터 최첨단 현대 도시에 이르기까지 악령에 대한 개념이 없는 문화권이 없습니다. 인류 전체의 공통된 직관과 경험을 단순히 인간의 착각이나 상상으로 치부하는 것이 오히려 비논리적입니다.
②도덕적 악의 기원의 논리입니다. 인간의 이기심, 환경적 결핍, 사회적 모순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지성적이고 악의적인 파괴성이 존재합니다. 환경의 결핍이 악을 낳는다면 풍요로운 곳엔 범죄가 없어야 합니다. 교육의 부재가 악을 낳는다면 고학력자들의 잔인함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환경을 도구 삼아 오직 파괴만을 목적으로 치밀하게 움직이는 지성적 악의 배후에는 악령이 존재합니다.
③정신의학적 한계와 차별성의 논리입니다. 현대 정신의학은 영적 현상의 상당수를 조현병이나 해리성 정체감 장애(다중인격)로 진단하며, 인간의 뇌와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축귀 사역 현장과 오랜 기독교 역사 속에는 현대 의학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예외적인 현상들이 있었습니다. 평생 배운 적 없는 고대 원어를 구사하거나 타인의 은밀한 죄를 들추어내는 초자연적 지식, 도저히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동 시간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한 지식, 왜소한 체구의 사람이 성인 남성 여러 명을 팽개치는 비정상적인 괴력 등은 의학적 진단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실재의 강력한 증거들입니다.
제 지인의 친구의 누나가 귀신 들렸을 때, 그 자매는 아주 연약한 체구였는데, 밤새도록 안방의 장롱을 혼자 번쩍 들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겼습니다. 의학적,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입니다.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의 정신과 교수인 리처드 갤러허(Richard Gallagher) 박사는 25년간 가톨릭 교회의 의뢰를 받아 정신질환자와 악령 들린 자를 감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악마의 역사》 등을 통해 "전형적인 정신질환의 범주를 완벽하게 탈피하여,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지식과 물리적 현상(공중부양 등)을 직접 목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④인과율의 논리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실체가 있으면 그에 따른 현상이 발생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선한 영적 세계의 실재 즉 기도 응답이나 성령님의 역사 그리고 사람의 변화 등을 인정한다면, 그와 대척점에 있는 악한 영적 세계 역시 인과 원리상 반드시 실재해야 합리적입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에서 "마귀의 가장 큰 전략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적 세계의 한쪽 면인 선과 빛만 인정하고 다른 쪽 면인 악과 어둠을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시각입니다.
악령은 논리적으로 존재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로 믿는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가?”입니다. 성경에는 사탄, 마귀, 귀신이라는 단어가 총 152회 나옵니다. 그리고 ‘용’, ‘뱀’, ‘더러운 영’ 등의 관용적 표현까지 보면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성경이 있다고 하면 진짜 있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입니다. 예수님은 21번이나 귀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시며 직접 언급하셨습니다. 사탄은 16번, 마귀는 7번 언급하셨습니다. 본문 43절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45절에서는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악령이 존재한다고 하셨으니 악령은 있습니다.
2. 악령은 사람의 몸을 집으로 삼습니다.
43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고 말씀합니다. 그 전에는 사람 속에 거했습니다. 44절에서는 귀신이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고 말합니다. 그 전에는 귀신이 사람의 몸을 집으로 삼고 거했다는 말입니다. 45절에서는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라고 말합니다. 귀신은 사람의 몸을 집으로 삼고 거합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석학 C.S.루이스는 무신론자였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의 회심은 세계 지성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루이스 박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열 명이 술좌석에서 웃고 떠들고 있다면 그때 웃음소리는 열 한명이 웃는 소리일 것이다. 바로 열한 번째 목소리는 마귀의 것이다. 만약 누군가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면 그 뒤에서 마귀는 팔짱을 끼고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은 마귀와의 영적전쟁임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영적 전투의 현장에 있습니다. 악령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공격하여 넘어뜨리고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악령의 공격으로 인하여 부상을 입거나 영적인 죽음을 당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악령의 역사로 인해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주요 패턴이 있습니다.
①신체적 기능 장애와 질병 유발 패턴입니다. 악령이 역사할 때 영적 원인에 의한 신체 고통이 있습니다. 막 9:25에 보면 악령이 한 아이에게 역사해서 말 못하고 못 듣게 했습니다. 마 12:22에 보면 한 사람이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했습니다. 눅 13:11에 보면 한 여자가 18년 동안이나 귀신 들려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질병의 원인 중에 악령의 역사도 있습니다.
②자해 및 극단적 생명 위협 패턴입니다. 악령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목숨을 끊도록 충동질합니다. 막 5:5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막 9:22에 보니 귀신이 주변의 위험한 환경을 이용해 한 아이를 공격 했습니다. 그 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습니다.
중국선교를 하시다가 지금은 이스라엘 선교와 순회선교를 하시는 우바울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중국에서 사역을 하실 때 큰딸이 귀신들렸습니다. 귀신이 역사를 하니 10년 넘게 우울증으로 고생했습니다. 먹지 않으니 몸무게가 28kg까지 빠지고 죽음 직전까지 갔으며, 아빠를 엄청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나가니 딸이 치료 되었고 그 이후 선교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결혼도 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귀신은 ᄑᆞ괴하고 주님은 세워주십니다.
③정신적 광기와 인격 파괴 패턴입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으면 이성이 마비되고,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눅 8:27에 보면 한 사람이 군대 귀신 들려서 이상 행동을 하고 옷을 벗고 살았습니다. 그 사람은 오래 동안 옷을 입지 않았고 무덤 사이에 거했습니다. 그는 통제 불가능한 괴력과 광기를 발휘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고랑과 쇠사슬로 결박했지만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습니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정신적 광기에는 공산주의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공산주의는 마귀의 사상입니다. 공산주의의 귀신에 들리면 가족의 가슴을 죽창으로 찌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만민의 평등을 주장하지만 항상 독재로 흘러가서 한 사람을 위하여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못살게 만드는 사상입니다. 공산주의에 점령당한 나라 중에 독재를 하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까? 공산주의의 악령이 역사하는 나라 중에 잘사는 나라가 있습니까?
④마음의 억눌림과 번뇌 패턴입니다. 귀신이 내면의 평안을 깨뜨리고 극심한 두려움과 분노, 우울감으로 괴롭힙니다. 삼상 16:14에 보면 사울 왕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났고 악령이 찾아와 그의 마음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며 그를 억눌렀습니다.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⑤생각 주입을 통한 영적, 도덕적 파멸 패턴입니다. 사람의 생각 속에 죄의 동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을 은밀히 집어넣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만듭니다. 요 13:2에 보면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유다는 이 생각에 이끌려서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악한 생각, 불신앙적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대적해야 합니다.
➅개인의 환경적 파괴 패턴입니다. 악령은 한 사람을 압살하기 위해, 그의 환경을 초토화하는 방식도 사용합니다. 욥기에 보면 사탄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고 이방 민족을 충동질하여 욥의 모든 가축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했습니다. 사탄은 거친 들에서 대풍을 일으켜 자녀들이 모여 있던 집 네 모퉁이를 쳐서 무너뜨려서 열 자녀를 한순간에 몰사시켰습니다.
영적 세력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자연현상을 조작하여 인간에게 환경적 재앙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막 4:39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 때 일어난 갑작스러운 광풍을 향해 예수님이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꾸짖으셨는데, 이때 사용된 표현은 귀신을 쫓아내실 때 쓰셨던 강력한 영적 꾸짖음과 같습니다. 배가 뒤집힐 만한 급변 배후에 영적 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3. 악령은 물리쳐야 합니다.
요 10:10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예수님은 악령을 도둑으로 비유하셔서 악령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싸움에서 악령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요일 3:8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사역 기간 내내 사람들에게 역사하던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악령들은 절대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엡 3:17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예수님은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면 그 사람 속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내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을 놓치는 순간 마귀에게 당합니다. 언제나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는 것을 확신하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전도사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시골 교회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앉혀놓고 죽 둘러앉아서 막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안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성경을 읽었습니다. 쭉 돌아가며 성경을 읽다가 시원찮게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성경을 읽으니까 갑자기 조용하던 귀신이 눈을 막 올려 뜨더니 “넌 안 믿잖아!”라고 소리를 치더랍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쇼크 받았습니다. 너무 충격 받아서 큰 소리로 “오,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막 회개를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곳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귀신 때문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귀신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압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본문 43절을 보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더러운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귀신이 물을 무서워할까요? 그래서 물 없는 곳으로 다녔을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요 3:5, 벧전 1:23). 악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성경 읽기를 귀찮게 여기지 마시고 생명줄이라 여기시고 성경 읽기에 열심을 내기를 바랍니다.
제가 군생활 할 때 전방 1사단 견학을 가서 야간근무를 서봤습니다.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적외선 안경을 쓰니 전방이 대낮처럼 훤히 보였습니다. 자연의 세계는 육안으로 볼 수 있고 초자연적인 세계는 영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눈이 떠지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믿음의 눈이 열립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영적인 세계가 보입니다. 적이 보여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영적인 눈이 떠지고 적이 보이기 때문에 영적 싸움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3) 성령님을 힘입어 살아야 합니다.
마 12:28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신앙생활은 성령님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자동차가 기름 없이 달릴 수 있습니까? 달릴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역사 없이 영적 싸움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하와이에서 ‘도비’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얼마나 신앙이 좋은지 성령으로 충만하여 앉으나 서나 예수님 말씀을 늘 전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알고 보면 그 동안 그는 너무 불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이혼을 하여 친척 집에서 자랐습니다. 친척은 그가 하도 우니까 밉다고 젖 대신 안약을 주어서 온 위가 다 헐고 입이 다 헐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집 저 집 양자로 다니면서 초등학교도 못 나온 채로 천덕꾸러기가 되어, 하루는 개집에 들어가서 자며 개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그의 마음에는 사회에 대해 반발이 심했고, 46세가 되도록 결혼도 못했습니다. 집도 없었고 생활이 공중에 떠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었습니다. “사람 죽이는 것만 빼고 모든 죄를 다 지어보았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죄 짓는 일에 모두 다 써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늘 마음에 원망과 미움이 가득차서 몸부림쳤는데, 추수감사절에 한 한국 부인이 그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발심이 있었지만, 그 부인이 어찌나 자상하고 상냥하던지 그 사랑에 감동되어 교회에 따라 나갔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데, 처음에는 꼭 죽을 것만 같이 갑갑하여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섰다가 앉았다가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와 그 마음속으로 싹 들어 왔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니 그는 통회하고 자복하고 울고 뒹굴며 회개했습니다. 그 동안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귀신이 나가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 하루 만에 천사처럼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온화해졌고, 이제는 작은 죄 된 생각만 들어도 가책이 되어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난 46년 동안 귀신에게 잡혀서 온갖 죄악 가운데 살았는데, 예수님을 모시고 성령이 오시자 귀신이 쫓겨나가고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영적 싸움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4)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주님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을 때, 산 밑에 있는 제자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는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아이었습니다.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그 아이에게 역사하는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조용할 때 제자들이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이 답하셨습니다. 막 9:29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해야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시간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을 지키십시오. 기도해야 악령을 이길 수 있습니다.
5) 악령을 대적해야 합니다.
약 4:7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믿고 마귀에게 선포하면 됩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은 병을 가지고 떠날지어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은 가난을 가지고 떠날지어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은 저주를 가지고 떠날지어다.”
엄밀히 말하면 영적 전쟁은 우리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승리를 지키고 누리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십자가로 악한 영들의 권세를 무력화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하면 승리합니다.
6) 성도 간의 교제와 연합에 힘써야 합니다.
악한 영은 공동체와 단절된 고립된 개인을 찾아서 의심과 두려움을 심고 공격합니다. 영적 전쟁은 개인의 전투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함께 싸우는 연합 전쟁입니다. 불타는 숯불이 모여 있어야 꺼지지 않듯, 교회 공동체의 중보기도와 연합이 강력한 방어벽이 됩니다.
마지막 때는 영적인 연합이 중요합니다. 히 10:25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하면 안 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지만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고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1세기 갑바도기아에 갑바도기아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갑바도기아는 화산재가 굳어진 부드러운 응회암 지대로, 도구로 쉽게 굴을 파낼 수 있는 지형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지하에 굴을 파고 그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굴 속에서 생활하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어느 날 한 청년이 공동체의 리더에게 공동체를 떠나겠다고 알렸습니다. 리더는 잠간만 있다가 이별의 의식이라도 하자고 하고는 그 청년에게 모닥불을 피우게 했습니다. 말없이 불타고 있는 모닥불을 지켜보던 리더는 갑자기 나무토막 하나를 불속에서 꺼내며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잘 보게. 이 나무토막 하나가 바로 형제의 운명이네. 이 나무토막은 불속의 공동체를 떠나는 순간 불꽃을 잃어버리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리더는 그 나무토막이 식은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이 나무토막을 갖고 이곳을 떠나게나. 그러나 자네가 다시 불타기를 바란다면 언제나 이곳으로 돌아오도록 우리는 기도하겠네.” 그 형제는 울면서 자신의 결정을 철회하고 다시 공동체를 향한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라들이 교회에 등록한 후 적어도 주일 예배만 참석합니다. 주일 예배만 참석하면 신앙생활의 명맥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깊은 교제 생활은 어렵습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무교회 주의자처럼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시고 좀 더 공동체 안으로 깊이 들어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임 중에 함께 하십니다. 교회 공동ㄷ체를 통하여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7) 영적 틈새를 제거해야 합니다.
엡 4:27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연탄가스는 틈만 있으면 방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악령은 우리가 틈을 보이면 그 틈으로 들어옵니다. 악령이 신자의 삶에 침투하려고 하는 틈은 무엇입니까? 해결 되지 않은 죄입니다. 분노, 미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악한 생각, 음란한 생각,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악령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막는 방법은 적극적으로 죄를 회개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악하고, 음란한 생각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성경적인 가치관을 세우는 것입니다. 특별히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이 있기에 생각을 수동적으로 받아서는 안 됩니다. 걸러낼 것은 걸러내어야 합니다.
설교를 정리하겠습니다. 박봉수목사님이 인도네시아 선교 여행 도중 신학교 강의 차 지방에 있는 스마랑이라는 도시 한 복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도시 한 복판에 네덜란드 식민 시대부터 있었던 빌딩이 있습니다. 창문이 무려 천개나 되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몇 년째 비어있었습니다. 선교사님에게 들은 이유인 즉 귀신이 나온다고 사람들이 이 건물에 들어가지 않는답니다. 그 도시의 90% 이상의 주민이 이슬람교 신자들입니다. 그런데도 귀신 나온다고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빌딩이 텅 비어있는 것입니다. 도시 전체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도시 사람들이 사탄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지만 악령들에게 영적인 유린을 당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나십시오. 그리고 영적인 싸움에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