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까떼나 (Catena)
라틴어의 원뜻은 "사슬" 혹은 "연결고리"이다. 이 까떼나는 레지오 기도문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기도문이며, 성모님께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부르신 노래인 마니피캇 (Manificat)이 그 중심이다. 까떼나의 원뜻이 드러내고 있듯이, 이 기도문은 레지오 조직안의 모든 행동 단원들과 협조 단원들을 일상생활 안에서 서로 서로 연결시키는 고리로서의 연결이 결국 우리의 복되신 성모 마리에께도 이어지는 "끈"이 된다. "고리"는 한 매듭만 끊겨도 "고리"로서의 원래의 역할을 다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행동 단원과 협조 단원은, 이 까떼나는 기도문 만큼은 하루도 빠짐없이 바침으로써, 우리 한 사람의 부주의로 인하여 성모님께 연결된 "레지오 마리애의 고리"가 끊기어 불완전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힘 써야 할 것이다.
* 까떼나 기도문
◎ <후렴>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
●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움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로다.
○ 그 인자하심은 세세대대로 당신을 두리는 이들에게 미치시리라.
● 당신 팔에 큰 힘을 떨쳐 보이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 권세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 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 자비하심을 아니 잊으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 이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하여 영원히 우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바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후렴> 먼동이 트익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 당신께 매달리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기도합시다.
저희를 하느님 아버지께 이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저희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저희의 전구자로 세우셨나이다. 비오니,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간구하는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 아멘.
* 까떼나 해설
레지오의 기도문은 시작 기도, 레지오의 까떼나, `마침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레지오의 까떼나(Catena Legionis)는 "레지오의 사슬"이라는 뜻이다. 레지오의 행동단원은 상훈에서 명시하고 있고, 또 단원의 의무 중에 포함되어 있듯이 매일 까떼나를 바쳐야만 된다. 그러나 협조 단원은 까떼나가 포함된 레지오의 기도문 전체를 날마다 바치고 있으므로 모든 레지오 단원도 가급적이면 매일 `레지오의 기도문`전체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단원은 날마다 까떼나를 바침으로서 사슬을 만드는 한 개의 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고리는 모든 단원들의 일상생활을 연결시키고 복되신 성모님과 결합기키는 끈이 된다. 즉,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는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을 정점으로 일치 단결하여 주님 안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세속 군대에서는 단결을 제일 중요시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대별 점호`라는 행사를 실시하며 그때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충성할 것을 다짐 한다. 비록 성모군은 매일 한 곳에 모이지는 않으나 각 단원이 하루 중 까떼나를 한 번 바침으로써 레지오 단원이 뭉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까떼나를 빠뜨리면 고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며 성모군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전 단원들은 이 의무를 궐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이 까떼나를 함께 바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쁘레시디움이 기쁨에 넘칠때, 또는 실망에 빠졌을때, 또는 판에 박은 듯한 단조로운 길을 고달프게 걸어가고 있을 때, 이 까떼나는 마치 하늘에서 불어오는 미풍과도 같이, 백합이자 장미이신 성모님의 향기는 모든 것을 흠뻑 젖게 하고, 신선하고 기쁨에 찬 신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이것이 단순한 묘사가 아님을 모든 레지오 단원은 너무나 잘 안다.
까떼나의 구성은 후렴, 성모의 천주 찬가, 영광경, 후렴 반복 및 기도로 되어있다. 까떼나의 후렴인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는 성모님의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먼동이 트이는 때는 어둡고 지루한 암흑 세계에서 밝은 빛의 세계, 절망과 죄악의 어둠에서 희망과 환희의 세계가 펼쳐지는 새벽을 말하며, 이와 같은 새벽은 성모님을 칭한다. 달과 같이 아름다운 얼굴은 아가서 6장 10절에 나온다. 여인의 아름다움의 묘사는 흔히 밝은 달에 비유 하는데, 성모님의 아름다움에 이보다 더한 표현을 어디서 찾겠는가. 그리고 "해와 같이 빛나며"는 눈부실 정도의 광휘로움을 빛의 원천인 해에 비유했다.
성모님을 찬미함에 있어서 빛에 비유한 사례는 많다. 예컨데, "천상의 햇살 밝은 빛이여" "영원히 밝히는 빛"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밝은 빛" "찬란한 광채" "칡흑 같은 들판을 비추는 횃불" 등으로 묘사한다.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 는 우선 엄위로움이 느껴진다. 성모님이 악의 무리에 대하여는 아름답고 부드럽고 겸손한 여인이 아니라, 적을 무찌르기 위해 돌격 자세로 진을 치고 있는 군대와 같이 무서운 분이심을 말한다 (루도비꼬마리아 성인의 「복되신 동정녀께의 참된 신심」50항 참조). 이에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의 군대로서 악마의 무리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전투에서는 적을 잘 알고 대처하면 백전 백승을 할 수 있다.
까떼나에서 주요 부분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로 시작되는 마리아 자신의 기도인 마니피캇 (magnificat : 천주 찬가)이다.
마니피캇은 `성무일도` 중 저녁 찬가에 들어 있다. 이 찬가는 사제와 부제들이 의무적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이고 공통적인 기도중 가장 겸손하고 감사에 넘치며, 가장 뛰어나고 뜻이 깊고 엄숙한 찬가이다.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성무일도서」의 축소판으로 만들어진 「성모소일과」에도 저녁 기도에 `성모의 노래`가 들어 있다.
마니피캇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마리아가 구세주 하느님을 찬양하고(루가 1,46-50), 이스라엘에 베푸신 하느님의 업적을 회상하는(1,51-53) 부분과,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하느님의 계획이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감사하는 내용 (1,54-55) 등으로 되어 있다.
이 찬가는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구세주 잉태를 예고받고 몇일 후에 예수님을 잉태한 몸으로 유다 산골에 살고 있는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불렀던 것이다. 그때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 되시며 태중에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루가 1,39-43). 마니피캇은 엘리사벳의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부른 노래였다. 마리아는 특별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세주를 자기 태중에 기쁘게 모실 수 있음에, 영적으로 자신의 모든 애정과 존경을 다하여 하느님을 찬미 찬송하였으며, 또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무한한 기쁨을 나타내고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자신을 더욱 비천한 종으로 낙추고 겸손해진 마리아는, 구원의 영원한 근원이신 분으로 알고 있던 예수님을 자기 몸에서 나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능하신 분이 큰 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 하신 분이시로다." 이 구절에서는 성모님이 아무 것도 자신의 공로로 돌리지 않으시고, 다만 비천한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만드시고자 하신 하신 그분께 돌리는 것이다. 능하신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 즉 하느님을 일컫는다. "그 인자하심은 세세대대로 당신을 두리는 이들에게 미치시리라." 이 말은 하느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흩어 보내신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이를 끌어 올리셨도다." 이는 권세를 부리고 교만한 자들은 구원의 길이 막히지만, 그러나 낮은 자, 미천한 자를 높이시고 억눌린 자에게 해방의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이심을 (욥 5,11) 말해 준다. 그리고 배고픈 사람은 좋은 음식으로 배부르게 해주시고 부유한 사람은 빈손으로 보내셨다. 또 주님은 복종을 잘하고 겸손한 이스라엘을 구하시고자 택하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다른 말로 "주님의 종"이라고 부르셨다. 자신을 낯추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어서 영광송과 후렴이 반복된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매달리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이 호도에서 우리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에 관해 되새겨 보자. 이 교리는 마리아가 잉태 첫 순간부터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았다는 교리이다.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께서는 성모 마리아가 원죄의 물듦없이 잉태되었음을 믿을 교리로 반포하셨다. 또 루르드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께서 "자신은 원죄 없이 잉태된 자 (Immaculate Conception)"임을 밝히셨다.
`기적의 패`라고 부르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패` (교본 445쪽)에도 이 호도가 적혀 있다. 까떼나의 끝 부분인 "기도합시다"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모 마리아를 또한 우리의 어머니도 되게 해주셨음을 밝히고 있다. 갈바리아의 비통중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린 채 마리아에게 "여인이여, 이 사람은 당신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제자 요한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요한을 통하여 선택받은 모든 이들에게 주신 것이었다. 이로써 마리아는 글자 그 대로 완전한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다. 우리는 어머니의 참다운 자녀답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온갖 은총을 가득히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 모든 은총, 구원의 모든 은혜가 마리아로부터 우리에게 흘러 내리도록 마련하셨다.
그뿐 안니라, 기도문에 나와 있듯이 "주님 앞에 우리의 중재자"가 되시었다. 국어 사전에서 중재는 또는 제삼국이, 쟁의를 야기시킨 당사자 또는 당사국 사이에서 조정하는 일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①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재자 가 되신다 :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하느님과 사 람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뿐인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 I 디모 2, 5-6). ②의 경우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하여 성인들이 해당된다. 이것은 2차적인 의미의 중재자를 말한다. 성서에서는 속죄와 화해라는 말로써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중재적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을 인격적인 신으로 해석하는 것은 `화해라는 표현을 통해 중재자를 이해 하는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성모님이 우리 인간과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고자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 를 위해 전구해 주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점을 믿고 우리가 주님께 간절히 구하는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도록 바라면서 이 까떼나의 기도를 바친다.
(자료출처 : 음성성당 주일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