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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아직 많이 생소한 면이 있는 아이기도는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 1883~1969)에 의해 창시된 무술로 일본은 물론 미주와 유럽에 많은 수련생들이 수련하고 있다. 고바야시 야스오 8단은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내제자(우치데시)출신으로 중요한 전후(戰後)제자의 한 사람이며, 일본에 100개 이상의 도장과 해외에 15개 이상의 지부도장을 가지고 아이기도의 저변 확대에 많은 노력과 공헌을 하고 있다. 한국 아이기도계의 중요한 인물인 대한아이기도연맹(大韓合氣道聯盟)의 윤익암 관장이 고바야시 8단의 제자 이기도 하다. 고바야시 8단은 99년 ‘Aikido Today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해외 지부도장으로 한국을 꼽은바 있다. 고바야시 8단의 연무 모습은 여러 아이기도 연무대회 자료를 통해 접할 수 있으며, 오는 9월 미국 라스베가스에게 개최될 ‘2003 Aiki Expo’ 에도 초대되어 연무할 예정이다. 아이기도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고바야시 야스오 8단을 지난 6월1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인터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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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용
: 형님의 아들이 수원에서 결혼을 하게 되어 결혼식 참석을 위해 오게 되었습니다. - 이번 방한에서는 별도의 수련이나 세미나등의 계획은 없으신가요? : 그렇습니다. 이번 방한은 사적인 일로 방문한 것이므로 별도의 수련계획은 없습니다. - 선생께서 아이기도에 입문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어려서 유도를 배웠는데, 함께 배우던 친구의 아버지가 이아이도(居合道)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친구의 아버지에게서 이아이도를 배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배웠던 이아이도 선생이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님의 친구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에시바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아이기도를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 대학 3학년때까지 유도를 수련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유도수련이 아이기도수련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요? : 유도 수련을 통해 몸이 튼튼해졌습니다. 유도와 아이기도는 모두 유술에서 나왔지만, 유도의 수련방식은 아이기도에 비해 덜 부드럽습니다. 메치기, 낙법등을 수련했던 것이 나중에 아이기도를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도는 3단까지 수련했습니다. - 한국에는 아이기도가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이기도의 수련형태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검술은 검을 사용하고, 가라테는 손과 발로 치고 때리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유도는 잡고 던지는 수련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아이기도는 체술과 검술을 포함하면서도 그 이외의 형태로 하는 것입니다. - 선생께서는 이아이도를 수련하시기도 했는데, 아이기도수련에서 무기술(검술, 장술)수련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나 된다고 보시는지요? : 나의 도장에서는 1시간 반 정도의 수련시간에서 20분 정도는 무기술에 할애를 하는 편입니다. 또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검과 장을 한 달씩 번갈아 가며 수련합니다. - 아이기도의 검술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고류검술 유파는 무엇인가요? : 우에시바 선생님은 여러 검술을 하셨기 때문에 꼭 한가지와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굳이 가까운 검술을 들자면, 가토리 신토류(香取 神道流)와 가시마 신류(鹿島 神流)가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 우에시바 선생의 스타일이 전쟁(제2차 세계대전)전과 후가 다르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한 선생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내가 처음 우에시바 선생님을 만났을 때, 선생님의 나이는 이미 70세가 넘으셨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주 건강하셨지요. 60kg정도 되는 물건도 번쩍 들어올리실 정도였습니다. 이와마에서는 선생님께서 농기구등으로 농사일을 직접 하시기도 했으며, 나 또한 선생님을 거들곤 했습니다. 이 당시의 선생님의 스타일은 요신칸(養神館) 스타일처럼 수련에 있어, 세고 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선생의 나이가 80을 넘으면서 현재와 같은 부드러운 스타일로 변화하였습니다. 요시칸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 이미 시오다 고조 선생이 독립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의 선생님의 스타일을 보이게 되었고, 나와 기쇼마루(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아들, 아이기도 제2대 도주)선생은 계속 우에시바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고, 수련을 했기 때문에 변화하는 모습에 따라서 현재의 스타일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 우에시바 선생의 유명한 제자들인, 시오다 고조, 도미키 겐지, 모치즈키 미노루 등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시오다 고조 선생은 내가 아이기도에 입문했을 당시 이미 다른 도장을 가지고 독립을 한 상태였고, 도미키 겐지 선생과는 함께 수련했던 적이 있습니다. 도미키 겐지 선생은 유도를 하였기 때문에 유도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마찬가지로 요세이칸 부도의 모치즈키 선생도 유도를 하였기 때문에 유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치즈키 미노루 선생에게는 가서 수련한 적도 있습니다. - 고바야시 선생께서는 오는 9월의 ‘아이키 엑스포(Aiki Expo)’에도 초대되셨는데, 아이기도가 세계화 되는 모습을 보시면서 좋다거나 우려된다거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 아이기도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연무를 통해 서로 비슷한 점과 다른점을 확인 할 수 있으며,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보면서 자기에게 가장 맞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선택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연무 스타일의 차이는 각자의 기준에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하거나 하는 점은 없습니다. - 선생께서는 오랜기간 우에시바 선생의 내제자 생활을 하셨는데 당시의 생활에 대해 몇마디 들려주십시요. : 우에시바 선생님은 제자들을 엄하게 교육하셨고, 항상 바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기도(신도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셨고, 청소와 운동을 하셨습니다. 운동은 보통 6시 반부터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전차로 이동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전차를 타게 되는 경우 나는 선생님의 표까지 같이 사서 선생님에게 달려갔는데, 선생님은 이미 전차에 올라계시곤 했습니다. 150cm정도로 키가 작으셨고 수염이 많은 노인이었으므로 무임승차를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나는 선생님의 몸동작만 보아도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 정도가 되었는데, 무슨 일이건 미리 알아서 해두곤 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친구나 선배가 방문하면 차를 내서 함께 드시곤 했었습니다. - 한국 아이기도의 윤익암 관장이 제자인 것으로 아는데, 한국의 아이기도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 윤익암 관장과는 13년 전에 만나서 사제관계를 맺었고, 기술을 전수해오고 있습니다. 윤익암 관장은 아이기도를 하기 전에 이미 다른 운동을 오랜 기간 했었기 때문에 아이기도를 습득하는 데에도 탁월한 성과를 나타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아이기도 교류에 대해서는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한국의 아이기도인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 무엇보다 기본을 철저히 하고, 한국에 아이기도 도장이 많이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 바랍니다.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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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고
고바야시 8단의 연무 모습은 그간 인터넷, 비디오자료등을 통해 몇 번 접했고, 그 연무 모습의 부드러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바야시 8단에 대한 첫인상은 말 그대로 옆집 할아버지의 모습 그것이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모습은 아니었으나, 165정도가 될까 하는 정도의 키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기도가 비교적 부드러운 모습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해도 무술임에는 틀림없는데,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무술의 고수라고는 솔직히 전혀 믿겨지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통역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질문이 되물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음에도 시종 부드러운 모습을 잃지 않고 친절하게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특히 자신의 선생인 우에시바 모리헤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 옛날을 회상하며 즐거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금은 그 역시 많은 제자를 가지고 있는 유명한 선생이지만, 스승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이야기를 할 때에는 ‘스무살 무렵의 고바야시 야스오’로 돌아가 있는듯 했다. 이번 고바야시 8단의 방한에서는 연무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직접 연무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긴 하지만, 아이기도도 조금씩 알려져 가고 있는 상항이므로 쉽게 아이기도의 연무자료를 대할 기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리라는 생각이다.(인터뷰를 주선해 주신 대한아이기도연맹의 윤익암 관장님과 통역을 해주신 신미애님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신미애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인터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출처- 무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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