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의 유래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유명한 고급 요정(料亭)이었습니다.
대원각은 1970~80년대에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곳이었으며, 넓은 대지와 수십 채의 한옥 건물을 갖춘 대규모 전통 음식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1997년 불교 수행도량인 길상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길상사라는 이름은 훗날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 여사가 받은 법명 **'길상화(吉祥華)'**에서 유래했습니다.
백석과 김영한(자야)
백석은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대표작으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있습니다.
김영한(1916~1999)은 젊은 시절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었는데, 함흥에서 백석을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지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사랑했지만 당시 사회적 편견과 가족의 반대, 그리고 해방과 분단이라는 시대적 비극 때문에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이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김영한은 훗날 『내 사랑 백석『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등을 펴내며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습니다.
김영한과 법정스님의 인연
법정은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승려입니다.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대원각 전체를 절로 만들어 달라며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대원각은 약 7천 평의 부지와 40여 동의 건물을 가진 거대한 재산이었으며, 당시 시가로 약 1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쉽게 받지 않았습니다.
김영한은 10년 가까이 간청했고, 법정스님은 그녀의 진심을 확인한 뒤 마침내 시주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대원각은 절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천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김영한 여사의 가장 유명한 말입니다.
기자들이 "천억 원이 넘는 재산을 모두 내놓고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천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라고 답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돈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넘어,
평생 가슴에 간직한 사랑과 추억은 어떤 재산과도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김영한의 마지막
1997년 길상사 창건법회 때 김영한은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한 벌과 함께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999년 11월 1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언으로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눈 오는 날 길상사에 뿌려 달라."
고 남겼고, 실제로 유골은 길상사 경내에 뿌려졌습니다. 지금도 길상사에는 길상화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마지막
법정스님은 길상사를 창건한 뒤에도 검소한 삶을 실천했습니다.
2010년 3월 11일 폐암 투병 중 입적했으며, 마지막까지 무소유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길상사에는 지금도 법정스님의 흔적을 기리는 진영각과 추모 공간이 남아 있습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백석은 사랑을 남겼고,
김영한(자야)은 그 사랑을 평생 간직하다 대원각을 시주해 길상사를 남겼고,
법정스님은 그 뜻을 받아 무소유의 도량 길상사를 세상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길상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사랑, 나눔, 무소유가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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