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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한문 자료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밀쎄 ...용비어천가

작성자박경동|작성시간06.08.06|조회수1,542 목록 댓글 0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핵심 정리


연대  세종 27년(1445)

작자  정인지[鄭麟趾 1396-1478 문신, 학자, 호는 학역재(學易齋),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큼]

      권제[權踶 1387-1445 문신, 학자, 호는 문경(文慶), ‘고려사’ 편찬에 참여]

      안지[安止 1377-1464 문신, 호는 고은(皐隱), 시호는 문정(文靖), 시와 서예에       능함]

형식  악장(樂章). 2절 4구(전절은 중국 제왕(帝王)의 사적을, 후절은 조선 왕조의       사적을 찬양)

성격  서사시, 송축가(頌祝歌)

구성 10권 5책 125장

      서가(序歌) : 제1장 - 제2장(개국송(開國頌)

      본가(本歌) : 제3장 - 제109장(사적찬(事蹟讚)

      결가(結歌) : 제110장 - 제125장(계왕훈(戒王訓)

주제  조선 창업의 정당성

국문학상 의의

    ①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

    ②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장편 영웅 서사시

    ③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악장 문학의 대표작

    ④ 세종 당시 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

    ⑤ 역사 연구의 보조 자료가 됨

창작 동기

    ① 조선 건국의 정당성 도모

    ② 후대왕(後代王)에 대한 권계

    ③ 훈민정음의 시험과 국자(國字)의 권위 부여

제 1 장

  海東(해동) 六龍(육룡)이 샤 일마다 天福(천복) 이시니

  古聖(고성)이 同符(동부)시니

한역가

  海東六龍飛 莫非天所扶 古聖同符

  해동육룡비 막비천소부 고성동부

정리

 형식  1절 3구(형식상 파괴)

 성격  송축가(개국송(開國頌)

 주제  조선 창업의 정당성

 명칭  해동장(海東章)

전문 풀이

 우리 나라에 여섯 성인이 웅비(雄飛)하시어, (하시는) 일마다 모두 하늘이 내린 복이시니,

 (이것은) 중국 고대의 여러 성군(聖君)이 하신 일과 부절을 맞춘 것처럼 일치하십니다.


제 2 장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 곶 됴코 여름 하니

  미 기픈 므른 래 아니 그츨 내히 이러 바래 가니

한역가

  根深之木 風亦不兀 有灼其華 有蕡其實

  근심지목 풍역불올 유작기화 유분기실

  源遠之水 旱亦不竭 有斯爲川 于海必達

  원원지수 한역불갈 유사위천 우해필달


정리

 형식  2절 4구

 성격  송축가(개국송)

 주제  조선 왕조의 운명

 명칭  근심장(根深章)

전문 풀이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찬란하게 피고 열매가 많습니다.

 원천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아니하므로 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감상

 ‘불휘 기픈 남’은 국기(國基)가 튼튼함을, ‘미 기픈 므른’은 유서가 깊음을 비유하였고, ‘곶 됴코 여름 하니’는 문화가 융성함을, ‘내히 이러 바래 가니’는 무궁한 발전을 비유하여 조선 창업이 정당하며 왕조의 운명이 영원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이 장은 고유어로만 쓰였고, 중국 고사가 전혀 없으며, 비유가 돋보여 용비어천가 125 장 중에서 가장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 4 장

  狄人(적인)ㅅ 서리예 가샤 狄人(적인)이 외어늘 岐山(기산) 올샴도 하 디시니.

  野人(야인)ㅅ 서리예 가샤 野人(야인)이 외어늘 德源(덕원) 올샴도 하 디시니.

한역가

  狄人與處 狄人于侵 岐山之遷 實維天心

  적인여처 적인우침 기산지천 실유천심

  野人與處 野人不禮 德源之徙 實是天啓

  야인여처 야인불례 덕원지도 실시천계

정리

 형식  2절 4구

 성격  송축가-사적찬(事蹟讚)

 주제  조상 때부터 천명이 내림

전문 풀이

 (주나라 태왕 고공단보가) 북쪽 오랑캐 사이에 사시는데, 그들 오랑캐가 침범하므로 기산으로 옮으심도 하늘의 뜻이시도다. (익조가 목조 때부터 살던) 여진족 사이에 사시는데, 그들 여진족이 침범하므로 덕원으로 옮으심도 하늘의 뜻이시도다.

배경 고사

 (전절) 주나라 태왕(太王) 고공단보가 빈곡에 살고 있을 때에, 적인(狄人)의 침범이 잦으므로 피폐(皮弊)와 견마(犬馬), 주옥(珠玉) 등을 주어 달랬으나, 이에 응하지 않으므로 칠수(漆水)와 저수(沮水) 두 강을 건너 기산 밑에 가서 살자, 빈곡 사람들이 따르는 자가 많아 시장과 같았다.

 (후절) 목조(穆祖)의 뒤를 이어 익조(翼祖)가 오동에서 원나라 벼슬인 오천호 소장(五千戶所長)으로 있으면서 인심을 얻으니, 여진(女眞) 장수들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므로 적도(赤島)로 피하였다가 덕원으로 옮겼다. 이에 경흥 백성들이 따라 옮기는 자가 많아서 시장과 같았으니, 이것이 다 하늘의 뜻이라 하였다.

감상

 주나라 태왕 고공단보의 고사에 견주어 익조의 고사를 대비시킨 것으로, 후손 이성계가 나라를 세울 것이므로, 그 조상 때부터 천심이 내리고 인심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제 7 장

  블근 새 그를 므러 寢室(침실) 이페 안니 聖子革命(성자혁명)에 帝祜(제호) 뵈니.

  야미 가칠 므러 즘겟 가재 연니 聖孫將興(성손 장흥)에 嘉祥(가상)이 몬졔시니.

한역가

  赤爵啣書 止室之戶 聖子革命 爰示帝祜

  적작함서 지실지호 성자혁명 원시제호

  大蛇啣鵲 寘樹之揚 聖孫將興 爰先嘉祥

  대사함작 치수지양 성손장흥 원선가상

정리 

 형식  2절 4구

 성격  송축가-사적찬(事蹟讚)

 주제  조선 왕조의 영원한 발전 기원

 핵심어  聖孫將興(성손 장흥), 嘉祥(가상)

전문 풀이

 붉은 새가 글을 물고 (문왕의) 침실문 앞에 앉으니 거룩한 임금의 아들(무왕)이 혁명을 일으키려 하매 하느님이 주신 복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뱀이 까치를 물어다가 큰 나뭇가지에 얹으니, 거룩한 임금의 성손(聖孫)인 태조가 장차 일어남에 있어 경사로운 징조를 먼저 보이신 것입니다.

배경 고사

 (전절) 주나라 문왕(文王) 때 천명을 받아 표시로 붉은 새가 다음과 같은 글을 물고 문왕 침실문에 와 앉았다. “부지런한 사람은 길(吉)하고 게으른 사람은 망한다. 의리(義理)를 지키는 사람은 흥하고 사욕(私慾)을 탐하는 자가 흉(凶)하다. 무릇 모든 일이 억지로 하지 않으면 사곡(邪曲)이 생기지 않고, 굳세지 못하면 바르지 못한다. 사곡(邪曲)이 일면 망할 것이고, 굳센 사람은 만세를 누린다. 인(仁)으로써 얻고, 인(仁)으로써 다스리면 백 세를 누릴 것이고, 불인(不仁)으로써 얻고 불인(不仁)으로써 다스리면 당세(當世)를 마치지 못하리라.”

 (후절) 다조(度祖)가 행영(行營-야영을 하는 곳)에 있을 때, 까치 두 마리가 영중(營中)의 나무에 앉았다. 도조(度祖)가 그것을 쏘고자 하니 휘하 군사들이 모두, “몇 백 보나 되는 먼 곳이니 맞히니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나, 도조(度祖)는 활을 쏘아 두 마리의 까치를 땅에 떨어뜨렸다. 마침 그 때 큰 뱀이 나와서 물어다가 나무 위에 가져다 놓고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기며 모두 칭송하였다.


제 13 장

  말 리 하 天命(천명)을 疑心(의심)실  므로 뵈아시니.

  놀애 브르리  天命(천명)을 모실 므로 알외시니.

한역가

  獻言雖衆 天命尙疑 昭玆吉夢 帝迺趣而

  헌언수중 천명상의 소자길몽 제내취이

  謳歌雖衆 天命靡知 昭玆吉夢 帝迺報之

  구가수중 천명미지 소자길몽 제내보지

정리

 형식  2절 4구체

 성격  송축가-사적찬(事蹟讚)

 주제  하늘의 계시(啓示)

 핵심어  天命(천명), 알외시니

전문 풀이

 (무왕에게 은나라 주왕을 치라는) 말씀을 사리는 사람이 많다. (무왕이) 천명을 의심하므로 (천명인지 아닌지 몰라 주저하므로) (신인이) 꿈으로 (주왕을 치라고) 재촉하시도다.

 (여말에 이씨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이가 많되, 천명을 모르시므로 (나라를 세우지 않더니) (하늘이) 꿈으로 알리시도다.

배경 고사

 (전절) 무왕이 문왕을 이어 즉위하여 관병(觀兵)할 때, 기약하지 않고 모인 제후(諸侯)가 팔백이나 되었는데, 모두 주(紂)를 쳐야 한다고 무왕에게 진언(進言)했다. 그러나 무왕은 천명을 알 수 없다 하여 군대를 돌이켰다. 그 후 2년 뒤 주왕의 학정은 점점 심해가므로, 무왕은 ‘내 꿈으로 보나 점괘로 판단하나 천의(天意)가 내게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반드시 주(紂)를 쳐 이기리라.’ 하고 발병(發兵)했다.

 (후절) 이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무렵에, 진중에서는 태조가 나라를 세워 백성을 구해 줄 것을 바라는 동요[‘木子得國(목자득국)’이라는 참요적(讖謠的) 내용으로 이씨가 나라를 세울 것]가 떠돌기도 하고, 목자(木子 즉 李씨)가 나라를 얻을 것이란 뜻의 노래가 불리었으나, 태조는 천명을 모른다 하여 잠저(潛邸-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에 있을 때, 꿈에 신인(神人)이 하늘에서 내려와 금척(金尺-금으로 된 자)을 주면서 ‘공이 문무(文武)를 겸하여 민망이 높으니, 이것으로써 나라를 바로 잡으라’고 하여, 드디어 마음을 결정하기에 이른 것이라 한다.


제 34 장

  믈 깊고  업건마 하히 命(명)실 톤 자히 건너시니다.

  城(성) 높고 리 업건마 하히 도실 톤 자히 리시니다.

한역가

  江之深矣 雖無舟矣 天之命矣 乘馬截流

강지심의 수무주의 천지명의 승마절류

  城之高矣 雖無梯矣 天之佑矣 躍馬下馳

  성지고의 수무제의 천지우의 약마하치

정리

 형식  2절 4구

 성격  송축가-사적찬(事蹟讚)

 주제  천우신조(天佑神助)

 핵심어  하히 命(명), 하히 도

전문 풀이

 물이 깊고 배가 없건마는 하늘이 명하시므로 (금나라 태조가) 말을 탄 채 (혼동강을) 건너시었습니다.

 성이 높고 사닥다리도 없건마는 하늘이 도우시므로 (태조께서) 말을 탄 채 내리시었습니다.

배경 고사

 (전절) 금 태조(金 太祖)가 요나라 황룡부(黃龍府)를 칠 때 혼동강(混同江)에 이르니 배가 없었다. 태조는 한 사람을 시켜 앞을 인도케 하므로, 제군(諸軍)이 따라 건너는데 물 깊이가 말의 배에 미치었다. 다 건너고 나서 사공을 시켜 건너온 물목을 재게 하니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길로 황룡부를 떨어뜨렸다.

 (후절) 이 태조(李 太祖)가 송도에서 침입하여 온 홍건적(紅巾賊) 20만을 물리쳤는데, 한때 이 싸움에서, 적이 오히려 방루(防壘)를 쌓고 굳게 지키는 것을 해질 무렵에 여러 군사가 나가 에워쌌다. 이 날 밤 태조는 길가의 한 집에 머물러 있었는데, 밤중에 적이 포위를 뚫고 달아나려고 우리 군사와 성문(城門)을 다투느라 혼란해 있었다. 이 틈에 한 적이 뒤에서 창으로 태조의 귀 뒤를 찔렀다. 사세가 매우 위급하여 칼을 빼어 앞의 7, 8인을 베고, 말을 뛰게 하여 성을 넘었건만 말은 넘어지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신이(神異)하게 여기었다.


제 48 장

  굴허  디내샤 도기 다 도라가니 半(반) 길 노 년기 디나리가

  石壁(석벽)에  올이샤 도 다 자시니 현 번 운 미 오리가.

한역가

  深巷過馬 賊皆回去 雖半身高 誰得能度

  심항과마 적개회거 수반신고 수득능도

  絶壁躍馬 賊以悉獲 雖百騰奮 誰得能陟

  절벽약마 적이실획 수백등분 수득능척

정리

 형식  2절 4구

 성격  송축가-사적찬(事蹟讚)

 주제  태조의 초인간적 용맹

 핵심어  石壁(석벽)에  올이샤

전문 풀이

 구렁에 말을 지나게 하시어 도둑이 다 돌아가니, 반 길 높인들 다른 사람이 지나가겠습니까?

 석벽에 말을 올리시어 도독을 다 잡으시니, 몇 번 뛰어오르게 한들 남이 오르겠습니까?

배경 고사

 (전절) 금태조가 적에 쫓겨 골목에 들어 길을 잃었는데, 적이 급히 쫓는지라 높은 언덕을 대번에 뛰어 넘어가니 적이 쫓아오지 못했다.

 (후절) 이태조가 지리산에서 왜적을 토벌할 때 왜적이 절벽 위에서 대치하거늘, 장수들이 모두 올라갈 수 없다하므로, 태조가 칼등으로 말을 쳐서 한달음으로 올라가니 군사들이 뒤쫓아 적을 섬멸하였다.


제 67 장

    자거늘 밀므리 사리로 나거 니다.

  셤 안해 자싫 제 한비 사리로 뷔어 니다.

한역가

 宿于江沙 不潮三日 迨其出矣 江沙迺沒

  숙우강사 부조삼일 태기출의 강사내몰

  宿于島嶼 大雨三日 迨其空矣 島嶼迺沒

  숙우도서 대우삼일 태기공의 도서내몰

정리

 형식  2절 4구

 성격  송축가-사적찬(事蹟讚)

 주제  천우신조(天佑神助)

 핵심어  뷔어 니다

전문 풀이

 (원나라 백안(伯顔)의 군사가 송나라를 치려고) 전당강 가에 진을 치고 자는데, 밀물이 사흘이나 이르지 않다가 떠난 뒤에야 그 자리가 물 속에 잠기었습니다.

 (이태조가) 위화도에서 묵으실 때, 큰 비가 사흘이나 계속되되, 섬이 회군한 뒤에야 온 섬이 물 속에 잠기었습니다.

배경 고사

 (전절) 원세조(元世祖)의 중서승상(中書丞相) 백안(伯顔)이 송나라를 치려고 군사를 전당강 가에 주둔시키니, 항주(杭州) 사람이 이를 보고 곧 조수(潮水)에 잠길 것이라 생각하여 기뻐하였는데, 밀물이 사흘 동안이나 이르지 않다가 떠난 뒤에야 그 곳이 물 속에 잠기었다.

 (후절) 이태조가 위화도에 군사를 주둔시키니, 장마비가 수일 동안이나 내렸으나 물이 불지 않더니 회군한 뒤에야 비로소 온 섬이 물 속에 잠기었다.


제 91 장

  아바님 이받 제 어마님 그리신 므를 左右(좌우)ㅣ 하 아바님 怒(노)시니.

  아바님 뵈 제 어마님 여희신 므를 左右(좌우)ㅣ 쓸 아바님 일리시니.

한역가

  侍宴父皇 憶母悲涕 左右訴止 父皇則懠

  시연부황 억모비체 좌우소지 부황즉제

  來見父王 戀母悲淚 左右傷之 父王稱謂

  내견부왕 연모비루 좌우상지 부왕칭위

정리

 형식  2절 4구체

 성격  송축가-사적찬(事蹟讚)

 주제  지극한 효성(孝誠)

 핵심어  어마님 여희신 므를

전문 풀이

 (당 태종이 궁중에서) 당 고조(高祖)를 모시고 잔치를 할 때, 죽은 모후(母后)를 그리워하신 눈물을 좌우가 참소하여 아버님이 성을 내시니.

 (태종이 모후 산소에서 시묘하며) 아버님을 뵐 때, 어머님을 여의신 눈물을 좌우가 슬퍼하여, 아버님이 아들의 효성을 칭찬하시니.

배경 고사

 (전절) 당 태종(唐太宗)이 궁중에서 고조를 모시고 잔치를 할 때, 죽은 모후(母后)를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니, 고조의 총희(寵姬)들이 저희들을 미워하며 우는 것이라고 참소하여, 고조가 아들에게 성을 냈다.

 (후절) 태종(太宗)-이방원이 모후에게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상(喪)을 입으실 때에, 능(陵) 앞에 여막(廬幕)을 짓고 있다가 태조를 뵈러 서울로 향할 때면 길에서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태조저(太祖邸)에 이르러서도 느낀 바가 있으면 통곡하니, 좌우가 다 슬퍼하였고, 태조는 항상 그 효성을 칭찬하였다.


제 102 장

  시름  업스샤 이 지븨 자러 시니 하히  뮈우시니.

  모맷 病(병) 업스샤 뎌 지븨 가려 시니 하히 病(병)을 리오시니.

한역가

 心無憂矣 將宿是屋 維皇上帝 動我心曲

  심무우의 장숙시옥 유황상제 동아심곡

  身無恙矣 欲往彼室 維皇上帝 降我身疾

  신무양의 욕왕피실 유황상제 강아신질

정리

 형식  2절 4구

 성격  송축가-사적찬(事蹟讚)

 주제  하늘의 가호(加護)

 핵심어  하

전문 풀이

 근심하는 마음이 없으시지마는 이 집에서 유숙(留宿)하려 하시니, 하늘이 (한 고조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니.

 몸에 병이 없으시지마는 저 집에 (방간의 초대에) 가려 하시니, 하늘이 (방원에게) 병을 내리시도다.

배경 고사

 (전절) 흉노(匈奴)가 마읍(馬邑)에 침입하자 한신(韓信)도 이에 가담하였다. 한 고조가 이를 토벌하다 평성(平城)에서 포위되었다. 7일 만에 조(趙)나라로 돌아와 조왕(趙王) 장오(張敖)를 핍박하자, 조나라 재상 관고(貫高)와 조오(趙午) 등이 노하여 고조를 해하려 하였다. 고조가 한신의 잔당을 파하고 조나라 고을인 백인(柏人)에서 유하려다가, 지명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柏人을 迫人으로 고치면 사람에게 핍박을 당한다는 뜻) 자지 않고 갔기 때문에 조왕(趙王)의 해를 면하였다. 즉 고조를 헤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그 마음을 움직였다는 뜻이다.

 (후절) 정도전(鄭道傳)의 난(‘방원의 난’이라고도 함)을 평정한 뒤, 논공행상에 있어 불평을 가진 박포(朴苞)가 방간(芳幹)을 충동하여 태종을 제거하려고 했다. 이에, 방간이 태종을 해하려고 자기 집으로 청하였으나, 태종은 갑자기 병이 나서 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화를 면하였다. 태종을 구하기 위하여 갑자기 태종에게 병을 내렸다는 뜻이다.

제 110 장

  四祖(사조)ㅣ 便安(편안)히 몯겨샤 현 고 올마시뇨 몃 間(간)ㄷ 지븨 사시리고.

  九重(구중)에 드르샤 太平(태평)을 누리 제 이 들 닛디 마쇼셔.

한역가

  四組莫寧息 幾處徒厥宅 幾間以爲屋

  사조막녕식 기처도궐댁 기간이위옥

  入此九重闕 亨此太平日 此意願毋忘

  입차구중궐 형차태평일 차의원무망

정리

 형식  2절 4구체

 성격  송축가-계왕훈(戒王訓)

 주제  후왕(後王)에 대한 경계

 핵심어  이 들

전문 풀이

 사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께서 편안히 못 계시어 몇 곳을 이주하셨겠는가? 몇 간이나 되는 집에서 사셨겠는가? (그 고초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황후께서) 궁궐이나 드시어 태평 성대를 누리실 때에 이 뜻(조상들의 개국을 위한 고초)을 잊지 마소서.

배경 고사

 (전절) 목조가 전주에 살 때 지주(知州)와의 사이가 어긋나서 강원도 삼척현으로 옮아가 살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못 살게 되어 바다를 건너 함길도로 옮겼다가 원나라에 귀화하여, 뒤에 다시 경흥부(慶興府) 동쪽 오동 땅에 옮아 살게 되었다. 원나라에서는 목조에게 오천호소(五千戶所) 다루하치의 벼슬을 주었는데, 우리 나라의 동북면의 민심이 모두 목조께로 돌아갔다.

 (후절) 익조는 목조의 뒤를 이어 위덕(威德)이 날로 높아지니, 야인(野人)들이 익조를 시기하여 죽이려 하므로 익조는 경흥부 동쪽 60여 리에 있는 적도(赤道)로 피신하여 움을 파고 살다가, 후에 다시 덕원(德源)으로 돌아와 살게 되니 경흥 백성들이 좇아와서 마치 저자를 이루듯 하였다.


제 125 장

  千世(천세) 우희 미리 定(정)샨 漢水(한수) 北(북)에 累仁開國(누인개국)샤 卜年(복년)이 업스시니

  聖神(성신)이 니샤도 敬天勤民(경천근민)샤 더욱 구드시리다

  님금하 아쇼셔 落水(낙수)예 山行(산행) 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가.

한역가

  千世黙定 漢水陽 累仁開國 卜年無彊

  천세묵정 한수양 누인개국 복년무강

  子子孫孫 聖神雖繼 敬天勤民 迺益永世

  자자손손 성신수계 경천근민 내익영세

  嗚呼 嗣王監此 洛表游畋 皇祖其恃

  오호 사왕감차 낙표유전 황조기시

정리

 형식  3절 9구(형식상 파괴)

 성격  송축가-계왕훈(戒王訓)

 주제  후왕(後王)에 대한 경계

 핵심어  경천근민(敬天勤民)

전문 풀이

 천세 전부터 미리 정하신 한양에, 어진 덕을 쌓아 나라를 여시어, 나라의 운명이 끝이 없으시니. 성스러운 임금이 이으시어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돌보셔야 더욱 굳으실 것입니다. 임금이시여, 아소서. 낙수에 사냥 가 있으며 할아버지를 믿었습니까?

배경 고사

 <도선(道詵)의 비결서(秘訣書)> 신라 때의 중 도선의 비결서에 의하면, 삼각산의 남쪽, 곧 한수(漢水)의 북쪽에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흥하리라고 하였다. ‘한수북(漢水北)’은 도선의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水之北曰陽(강의 북쪽을 陽이라 한다.)’이라 하였으니, ‘한수북(漢水北)’은 ‘한양’을 가리킨다.

 <하(夏)나라 태강왕> 하나라 태강(太康)이 임금으로 있으면서 놀음에 빠져 그 덕을 잃으니 백성이 모두 다른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인 우왕(禹王)의 덕만 믿고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더니, 마침내는 사냥을 절도(節度) 없이 해서 뤄수이(洛水) 밖으로 사냥간 지 백 날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궁(窮)나라 후(后) 예(羿)가 백성을 위하여 참을 수 없다 하여 태강을 허베이(河北)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폐위시켜 버렸다.

감상

 조상의 어진 덕으로 개국한 총결사(總結詞)에 해당된다. 조상의 어진 덕으로 개국한 나라의 운명은 영원하리라는 국운(國運)의 송축에 이어, 왕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는 후대 왕들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 다스리는 제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하(夏)나라 태강왕(太康王)의 고사를 인용하여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도록 권계(勸戒)하고 있다. ‘여민락(與民樂), 치화평(致和平), 취풍형(醉豊亨)’ 등 궁중 음악에도 활용되었던 이 장은 ‘용비어천가’ 전체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참고> 악장에 대하여

 궁중의 여러 의식과 행사 및 연례(宴禮)에 쓰인 노래의 가사, 즉 종묘 제향(宗廟祭享)이나 공사 연향(公私宴享)에서 불려지던 조선 초기의 송축가(頌祝歌)를 이른다.

 조선의 국기(國基)가 공고히 다져지고 모든 제도가 정비 · 개혁되면서부터 차차 조선의 건국과 문물 제도를 찬양하고, 임금의 만수무강과 자손의 번창을 축원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특권층 귀족의 다분히 목적성을 띤 문학이었기 때문에 얼마간 성행하다가 성종 때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를 형태별로 보면, 한시체, 속요체, 경기체가체, 신체(新體) 등으로 나뉘며, <악학궤범>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등에 실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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