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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고 근무 시 선생님들의 모임인 번개 모임에서 서울 덕수궁과 창덕궁 관람

작성자염해일|작성시간24.07.08|조회수17 목록 댓글 0

경산고 근무 시 선생님들의 모임인 번개 모임에서 서울 덕수궁과 창덕궁 관람

염해일

 

나는 모임이 많은 편이다. 그중에서 특별한 모임이 하나 있다. 경산고등학교에 88 서울 올림픽 무렵에 같이 근무하였던 선생님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에 가입하게 된 것은 MBC문화방송국 뒷산에 오후 운동을 나갔다가 경산고등학교 근무할 때 같이 3학년 담임을 하였던 3학년 부장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부장 선생님이 경산고등학교 근무할 때 선생님들과 모임이 있다면서 한번 나와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가게 된 것이 번개 모임의 회원이 되었다. 이 모임은 회장도, 총무도, 회비도, 모임 날짜도 없는 자유로운 모임이다. 회원 중 누구 하나 모임을 하자고 하면 모두가 찬성하면 모여서 등산과 구경 다니는 모임이다. 그날 소요된 경비는 똑같이 나누어 내는 특별한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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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모임에 가입하고 처음에는 모여서 걷기 운동하고 점심을 먹었다. 그러다가 투어 중심으로 모임을 하였다. 영천 재래시장 투어, 서울 남대문 시장과 남산 투어, 영덕 강구 대게 거리와 전통시장 구경하였다. 그저께 2023107일 아침을 먹고 한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스마트폰을 열어보았다. 번개 모임의 회원인 L로부터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잠자기 전에 글을 쓰느라고 전화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번개 모임 회원 K로부터 전화가 왔다. K모래 109일 서울 덕수궁과 창덕궁 구경을 가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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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겠다고 하면서 몇 시에 어디에서 모이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침 730분에 출발하는데 715분까지 반월당 동아백화점 앞으로 나오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어제 108일 새벽 온몸운동을 마치고, 내일 아침에 새벽 온몸운동을 마치고 글 쓸 시간이 없어서 109일 월요일 다섯 곳의 인터넷 카페와 페이스북에 올릴 글인 수성 구립 범어도서관에서 인문학 대잔치 취재, 독감 예방주사, 저축은행이란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 전 마지막 교정을 미리 보았다. 그리고 다섯 곳의 인터넷 카페와 페이스북에 미리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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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09일로 서울 덕수궁과 창덕궁을 구경 가기로 한 날이다. 오늘은 모닝콜 소리가 울리기 한 시간 30분 전인 새벽 317분에 잠을 깼다. 주방으로 가서 보온물통을 들고 서재로 갔다. 서재에서 꿀에 절인 생강과 홍차가 들어간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새벽 온몸운동을 시작한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620분경에 반월당 동아백화점 앞으로 나가야 하기에 새벽 온몸운동 횟수를 종목마다 절반으로 줄여서 하기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평소보다 1시간 30분 일찍 일어났기에 정상적으로 새벽 온몸운동을 책상과 의자를 이용하여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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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의자에 앉아 목을 앞으로 숙였다가 뒤로 넘기기목을 좌우로 돌리기(도리도리), 목을 좌우로 휘돌리기를 각각 100 300번을 실시한다그리고 의자에 앉아 머리를 무릎 아래로 숙였다가 뒤로 넘기는 등배운동 100왼쪽 팔은 왼쪽 옆구리에 대고오른쪽 팔은 하늘 높이 쳐들기와 반대쪽인 왼쪽 팔 쳐들기를 각각 100번씩 200번을 실시하고양팔을 옆으로 벌려 앞으로 모으면서 손뼉 치기와 손등 치기 각각 50번씩 100번을 실시한다그리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마당으로 나간다오늘 아침은 바깥 날씨가 선선하여 졌다마당 둘레를 두 바퀴 돌고 서재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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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을 이용한 운동은 종류도 많고 운동 횟수도 많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실시하고 있다첫 번째 책상 운동은 양손은 책상을 잡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놓았다 100양쪽 손바닥으로 책상 모서리 치기 100책상을 잡고 발뒤꿈치가 궁둥이에 닿을 정도로 높이뛰기 18번을 실시한다그리고 창문틀을 잡고 등배운동 5양손은 책상을 잡고 팔굽혀펴기 51번을 실시한다그리고 왼손은 책상을 잡고 오른손은 하늘 높이 쳐드는 가슴 운동 10반대편인 왼손을 쳐드는 가슴 운동도 10번을 실시한 후 마지막으로 허리를 좌우로 휘돌리기를 각각 10번씩 20번을 실시한 후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마당에 나가 마당 둘레를 두 바퀴를 돌고 서재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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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을 이용한 두 번째 운동은 책상 앞에 서서 왼쪽 주먹으로 오른쪽 등을 치고오른쪽 주먹으로 왼쪽 어깻죽지를 치고반대로 오른쪽 주먹은 왼쪽 등을 치고왼쪽 주먹은 오른쪽 어깻죽지를 치는 운동을 100번을 실시한다그리고 양손은 책상을 잡고 등배운동을 51번을 실시한 후 양손은 책상 모서리를 잡고 왼발로 뛰면서 오른쪽 다리 휘돌리기반대편 왼쪽 다리 휘돌리기를 각각 10번씩 20번을 실시한다그리고 두툼한 담요를 깔고 척주관 협착증 치료 운동인 공굴리기를 27번을 실시한 후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마당에 나가 마당 둘레를 두 바퀴 돌고 서재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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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로 들어와 의자 앞에 서서 복식 호흡 51무릎을 좌우로 돌리기 20번을 실시한 후 의자에 앉는다의자에 앉아 온몸 두드리기를 실시한다가슴에서 발끝까지 앞면 두드리기등에서부터 옆면과 뒷면 두드리기다리 사이 두드리기를 각각 32번씩 96번을 두드려준다그리고 왼쪽 팔의 앞면과 뒤면 각각 12번씩 24오른쪽 팔도 똑같이 24번으로 48번을 두드려준다그리고 양쪽 옆구리 각각 100번씩 200번을 두드려준 후 양쪽 손등과 손목을 각각 40번씩 80번을 두드려준 후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욕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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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 물수건으로 얼굴과 귀를 깨끗이 닦은 후 서재로 들어온다의자에 앉아 얼굴과 귀를 각각 100번씩 마른세수하기양쪽 손바닥을 비벼 눈에 쬐어주기 40마지막으로 손가락빗으로 머리 빗기를 200번 실시함으로써 새벽 온몸운동이 모두 끝이 난다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욕실로 가서 샤워하고 양동이에 뜨거운 물을 받아 주방 탁자 아래 갖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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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집사람에게 내일은 버스 안에서 떡을 주니 아침을 먹지 않고 그냥 가겠다.”라고 하였는데도 집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하여 놓았다. 나는 삼시세끼 밥은 놓치지 않고 먹고 있다. 그래서 새벽에 먼 곳에 갈 때도 아침을 먹고 갔기 때문인가 보다. 새벽에 아침을 먹고 서울 갈 준비를 하여 반월당으로 가는 지하철 2호선을 타기 위하여 620분에 수성구청역으로 걸어간다. 수성구청역에 도착하여 승강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서 정류장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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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서 문양역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 반월당역에서 내린다. 반월당역에서 지하상가로 올라가 동아백화점 앞에 도착하니 7시이다. 사람들이 벌써 많이 와 있다. 그런데 우리 번개 모임 회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회원 K에게 전화한다. 이제 반월당역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회원들이 모두 모이니 3호차에 오른다. 730분에 서대구IC를 향하여 달려간다. 용산 홈플러스에서 손님을 태워 서대구IC로 들어간다. 서대구IC에서 경부선 서울 쪽으로 달려간다. 김천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달려가다가 거봉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 시청 앞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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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 앞에서 내려 시청 부근에 있는 덕수궁을 관람하기로 한다. 먼저 덕수궁 돌담길부터 걷는다. 덕수궁 돌담길은 미국 대사관저 방향으로 길을 튼다. 사람들이 돌담을 따라 걷고 있다. 돌담길을 걷고 난 후 입장권을 끊어 덕수궁을 관람하기 위하여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으로 들어간다. 덕수궁 안내판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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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하여 시어소로 정하여 행궁으로 삼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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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난 이후 덕수궁이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덕수궁은 조선시대의 궁궐로서 경운궁으로 불리다가, 고종황제가 1907년 왕위를 순종 황제에게 물려준 뒤에 이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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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을 읽고 올라가니 중화문이 나온다. 중화문은 보물 제819호로 1902년 건립된 중화전의 정문이다. 중화문이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중건되었으며 좌우에 행각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동 측에 일부만 남아있다는 안내가 되어 있다. 중화문을 지나 중화전으로 걸어간다. 중화전으로 가는 길에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한복 입은 사람 중에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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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문에 들어가니 중화전에 대한 안내가 되어 있다. 중화전은 보물 제819호로 고종황제께서 1897년에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이어 하시면서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셨으나 협소하였으므로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으셨다. 본래는 중층건물이었으나 1904414일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중화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중화문이 있다.란 안내를 읽고 중화전을 관람한다. 중화전을 관람하고 함녕전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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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녕전에도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 함녕전은 보물 제820호로 1897년 건립되었으며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1904414일 함녕전 온돌 수리 공사 도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주요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는 큰 화재가 있었다. 이 건물은 같은 해 12월에 중건하였다. 1919121일 고종황제가 이곳에서 승하하셨다. 함녕전을 관람하고 석조전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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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은 조선시대 궁중 건물 중에서는 최초로 유럽풍의 석조로 건립된 건물이며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였으며 영국인 "데빗손" 감독하에 1900년 기공되어 1910년에 준공되었으며, 특별한 건물 명칭은 없이 "석조전"으로만 전해 온다. 고종황제는 이곳에서 고관 대신과 외국 사절들을 접견하거나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석조전을 관람하고 석조전서관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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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서관에 도착하여 석조전서관 안내판을 읽어본다. 석조전서관은 1936821일 기공하여 193865일 준공하였으며, 이 왕가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덕수궁 미술관으로 사용 중이다. 석조전서관까지 구경하고 창덕궁을 구경하기 위하여 덕수궁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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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가기 위하여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지하철 시청역으로 내려간다. 지하철 승차권을 끊는데 애로점이 많아 젊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승차권을 끊는다. 끊은 승차권 사용 방법을 몰라서 그런지 나가지 못하여 비상문으로 나간다. 한참을 걸어 1호선 지하철 승강장으로 간다. 1호선 승강장에서 종로 3가로 가는 지하철에 오른다. 종각역을 지나 종로 3가역에서 내린다. 종로 3가역에서 한참을 걸어 창덕궁으로 빠져나가는 출구로 나간다. 창덕궁을 향하여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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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도착하여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 도착한다. 돈화문 안내판을 읽어본다. 창덕궁 돈화문은 대한민국의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은 경복궁에 머물면서 형제의 난 등을 겪은 현장이어서인지 별도의 이궁을 건립토록 명하여 1405년에 창덕궁을 건립하였으며 이후 궁의 건물이나 돌다리인 석교, 그리고 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14125월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돈화란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돈하게 교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창덕궁 완성 7년 후인 태종 12(1412)에 처음 세워졌으며, 지금의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 원년(1608)에 완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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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문을 통과하여 창덕궁 안으로 들어가 창덕궁에 대한 안내판이 나온다.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은 조선의 궁궐이다. 1405(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 궐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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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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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의 정문인 인정문은 양쪽의 월랑이 ''로 감싸고 있다. 마당 안에는 임금이 걷는 길이 있고, 북쪽 끝 중앙 월대 위에는 인정전이 자리한다. 인정전의 동북쪽에는 편전인 선정전이 위치하고 있다. 창덕궁의 북쪽 터에는 금원이라 부르던 후원이 있다. 창덕궁에 있는 인정전, 돈화문, 인정문,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선원전 등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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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을 읽고 진선문으로 걸어간다. 진선문으로 들어가 안내문을 읽어본다. 진선문은 창덕궁의 중문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면 있다. '진선(進善)' 뜻은 2가지이란다. 하나는 '선한 말()을 아뢰다()' 이고, 다른 하나는 '훌륭한 사람()을 추천한다()'뜻이란다. , '훌륭한 인재들을 모으고, 이들이 임금에게 선한 말을 아뢰어 좋은 정치를 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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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문으로 들어가 넓은 뜰을 걸어가다가 왼편에 있는 인정문으로 들어간다. 인정문은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꺾어 금천교를 건넌 뒤 진선문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보인다. 인정문 앞에 있는 안내 글을 읽어본다. 인정문은 이름 뜻은 당연히 인정전의 문이다. ‘인정(仁政)’ 자체는 맹자가 왕도정치를 강조하면서 언급했던 '인정(仁政)'에서 따왔다. 이름 그대로 '어진() 정치()를 바탕으로 훌륭한 정치를 실현하겠다.'라는 의지를 담았다. 현판의 글씨는 선조 시대의 명필 북악 이해룡이 쓴 것으로 전한다.라는 글을 읽고 인정문 안으로 들어가니 인정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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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란다.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으로 입궐했을 때 바로 정면에 보이지 않는다.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을 지나 인정문 앞에 이르기까지 2번을 꺾어야 비로소 보인다. 좌측에는 궐내 각사 영역, 우측에는 편전인 선정전과 내전 영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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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 있는 선정문으로 들어간다. 선정문은 창덕궁 편전 선정전의 정문이다. 선정전에 세워진 안내글을 읽어본다. '선정(宣政)' 자체는 선정을 베풀라는 뜻이 아니라,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라는 의미이다. 1405(태종 5) 창덕궁 창건 때 편전 조계청을 세우면서 같이 건립했다. 1461(세조 7) 12월에 세조가 조계청 이름을 선정전으로 바꾸면서 조계청 정문의 이름 역시 선정문으로 개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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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은 보물 제814. 조선 초기에 창건되어 오랫동안 편전으로 이용되다가 조선 후기에 내전의 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하면서 별로 활용되지 못하였다. 이 건물에서는 왕과 왕비가 크고 작은 행사를 벌였는데, 성종 때 왕비는 이곳에서 양로연을 베풀었고 친히 누에를 치는 일을 모범으로 보였으며, 왕이 주연을 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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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을 관람하고 희정당으로 간다. 희정당의 안내문을 읽어본다. 희정당은 보물 제815호로 창덕궁의 편전(便殿)은 본래 선정전이었는데, 이 건물은 내전에 속한 건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 건물을 편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건물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1496(연산군 2)에 궁내의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면서 당호를 희정당이라고 바꾸면서 창덕궁의 한 건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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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을 관람하고 희정당 앞에 펼쳐지는 소나무 숲을 관람하면서 창경궁으로 걸어간다. 창경궁에 도착하니 모이기로 한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두 시간을 관람해야 한다는 창경궁과 비원은 다음에 관람하기로 하고 창덕궁을 나온다. 종로3가역으로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고 종각역을 거쳐 지하철 시청역에서 내린다. 시청역 동아일보사 출구로 나가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올라 대구를 향하여 달려가다가 안성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대구를 향하여 달려간다. 대구 성서 홈플러스에서 내려 지하철 2호선 영대 방향에 올라 수성구청역에서 내려 우리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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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에 절인 생강과 홍차로 저녁에 마실 뜨거운 물을 만들어 보온물통에 담아 놓고 척주관 협착증 치료 운동인 공굴리기를 서른 번을 실시하고 샤워 후 꿈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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