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회학습으로 포항제철의 포스코 역사관, 호미곶에서 초임교장으로 근무한 대보중 추억, 골굴사에서 선무도 관람
염해일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아침 8시 01분에 학교에서 출발하여 포항제철을 향하여 달려갔다. 대구 포항 고속도로를 달려 9시 30분에 포항제철 주차장에 도착하여 포항제철 안내 아가씨의 안내를 받으면서 포항제철에 대한 해설을 듣고 압연공장을 견학하였다. 압연공장을 견학하고 공장을 빠져 나오면서 안내 아가씨가 압연공장 견학에 대한 정리를 하여준다. 공장 안에서 본 빨간 것은 1,200도의 열을 가한 철판들이 롤이란 무거운 기계를 통과하면서 눌려 얇은 철판으로 변화하는 압연과정을 보았단다. 두루마리로 감아 놓은 것이 완성된 열연 코일이란다. 열연 코일 하나에 15~25톤이란다. 이런 열연 코일을 하루에 500개를 생산하고 있단다. 빨간 쇠를 석물이라고 하는데 얇게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강도에 맞춰 각종 중간 소재들을 만들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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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내연 공장에서 상온 상태에서 표면을 깨끗하게 한 완제품들을 부두로 옮겨서 동남아와 유럽 160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단다. 포항제철에서 생산된 제품의 50%는 국내 내수로 사용하고 있단다. 생산된 내연 제품들은 국내에서 세탁기, 컴퓨터, 냉장고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단다. 버스와 자동차 강판도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단다. 포항제철에서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 강판은 강도가 높으면서 가벼운 것이 특징이란다. 포항제철이 올해 51주년을 맞고 있단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안내 아가씨의 해설이 끝난다. 그리고 가방에 모아 놓았던 휴대폰을 나누어 준 후 안내 아가씨는 박수를 받으면서 버스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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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7분에 포스코 역사관을 관람하기 위하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사관으로 올라간다. 역사관에 들어가니 해설사가 대기하고 있다. 해설사 뒤를 따라 다니면서 포항제철의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한다. 박태준 사장님이 대일청구권으로 일본철강기술을 도입하여 포항제철을 만들었단다. 포항제철의 용광로를 삼분의 일로 만든 모형 고로로 들어간다. 용강로 안에 열이 1500도이란다. 포항제철을 축소한 모형도를 관람하고 포항제철 임직원들의 인물 사진을 붙여 놓은 벽에서 최정우 사장님의 사진을 찾아본다. 포항제철 많은 직원들이 여기에 와서 자기 사진을 찾아보고 있단다. 유리로 만들어 놓은 바닥에 포스코의 사계절의 모습의 사진을 구경하고 영상실로 들어가 영상물을 관람한다. 영상실의 의자가 영상물의 소리에 따라 의자가 흔들리고 있다. 안마 기능을 해 주고 있다. 포스코 역사관까지 관람하고 버스에 오른다. 다음 견학지인 호미곶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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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주민 센터를 지나 이마트 앞을 달려가고 있다. 나는 교장 초임 발령을 호미곶 광장 숲속에 있는 대보중학교에 받았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월요일에 대구 우리 집에 오가던 길이다. 해병부대 앞을 지나면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구룡포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석리를 지나 구룡포로 들어간다. 구룡포에서 새로 난 왕복 4차선 국도를 달려 호미곶으로 간다. 왼쪽은 푸른 산과 밭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푸른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육지와 바다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너무 좋은 길이다. 구름에 뒤덮인 수평선 위에 갈매기들이 날고 있다. 마을 항구에 고기잡이배가 정박해 있다. 배 주위로 하얀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고 있다. 고기잡이배에 자기들의 먹이가 있나보다. 기사님이 “호미곶 주차장에서 점심식사를 한다.”고 안내를 한다. 11시 45분에 호미곶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다. 오늘은 공휴일이 아닌 목요일이어서 관광객들이 적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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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려 버스 짐칸에 실려 있는 밥상과 의자를 꺼내어 점심식사자리를 만든다. 점심식사 봉사하는 학우들이 밥과 국을 떠서 나누어준다. 반찬그릇에는 새우튀김, 도라지, 버섯, 나물, 고추 무침을 함께 담아서 밥과 함께 나누어주고 있다. 밥상에 빙 둘러 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야외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니 밥맛이 꿀맛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내가 초임교장으로 근무하였던 호미곶 광장 솔 숲 속에 있는 대보중학교로 들어간다. 대보중학교가 호미곶 광장에 있는 푸른 소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호미곶 광장에서 학교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학교 건물을 환한 색깔로 도색을 하여 건물이 깔끔해 보인다. 건물 앞 화단에는 잘 가꾸어 놓은 키 작은 향나무들이 일렬로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화단 앞에 10m 정도 누런 천년잔디밭이 길게 펼쳐져 있다. 누런 잔디 앞에는 붉은 바탕에 하얀 선이 그어진 100m 달리기 코스가 있다. 그리고 나머지 넓은 운동장 전체에 파란 인조잔디가 깔려 축구장으로 되어 있다. 축구장 둘레에는 밤에도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야광 전조등이 세워져 있다. 지역주민들이 저녁에도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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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인조 잔디 축구장은 내가 초임교장으로 근무할 때 만들었다. 그 때 지역주민들이 대보중학교에 축구장을 만들기 위하여 학교에 여러 차례 찾아왔다. 내 앞의 전임교장이 대보중학교 운동장에 지역주민들의 축구장을 만들기로 약속을 하였단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축구장을 만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였단다. 그러나 나는 대보중학교에 축구장 만드는 것을 반대하였다. 학교 운동장을 지역주민들을 위한 축구장으로 만들면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할 장소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내가 좀 더 강력히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 교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좁은 터에 학생들의 체육시설인 철봉과 씨름장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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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바로 아래에 있는 실습지로 내려간다. 실습지에는 내가 2년 동안 살았던 교장 사택이 있다. 교장 사택 둘레에 파란 철망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교장 관사에 아무도 살지 않나보다. 내가 초임 교장으로 발령을 받고 가니 600평 가까이 되는 실습지가 아무 것도 심지 않고 놀고 있었다. 그래서 넓은 실습지 전체에 비닐을 깔고 고구마를 심었다. 비닐을 까니 풀이 나지 않아 가을에 고구마를 캐기만 하면 되었다. 고구마 농사가 너무 잘 되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학생들에게 고구마를 삶아 주었다. 그리고도 고구마가 남아 대보면내 각 기관과 마을 회관에까지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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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국에 나가 간이식 수술을 받고 바로 초임교장을 대보중학교에 받았다. 넓은 실습지에 각종 채소를 가꾸어 싱싱한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가 있었다. 거기다가 매일 새벽과 퇴근 후에 호미곶 광장에 나가 운동을 하면서 바닷가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그래서 호미곶에 근무하면서 내 건강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던 잊지 못할 학교이다. 대보중학교 근무시절의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호미곶 광장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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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일만 친구 조형물로 간다. 첨단 과학 도시로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행복한 일상과 건강한 삶으로 충만한 ‘영일만의 친구들’은 집념과 의지로 일궈 낸 ‘영일만의 기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일만 친구 조형물 옆에 있는 연오랑 세오녀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신라 초기 영일지역의 소국 ‘근기국’의 인물로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길쌈과 제철기술 등 선진 문화를 전파하고 그 곳의 왕과 왕비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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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광장에 세워진 상생의 왼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상생의 손아래에 변산반도 일몰 불씨, 영일만 호미곶 일출 불씨, 동해 독도 일출 불씨와 남태평양 피지섬 일출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새천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조국의 평화 통일과 사해동포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민족의 불로 남게 될 일몰 불씨는 1999년 12월 31일 불씨이고, 일출불씨는 2000년 1월 1일 불씨들이란 안내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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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손 오른 쪽에 있는 ‘천년의 눈동자’ 햇빛채화기로 걸어간다. 이 햇빛 채화기는 4개의 채화기 중의 하나이란다. 반도체에 내장된 고감도 센서가 해 넘어, 해돋이 때 미세한 햇빛의 적외선을 감지하여 이를 열로 변환시키는 세계 최초의 채화기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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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화기를 구경하고 바다 곁에 있는 호미곶 호랑이 상으로 발길을 옮긴다.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하여 한반도의 지형에 호랑이 꼬리에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란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고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단다. 호미곶은 국운상승과 국태민안의 상징이란다. 포항시 승격 60년의 첫날이자 기축년 새해 아침에 호랑이 모양의 호랑이 상을 세워서 국가번영을 기원하는 소망으로 세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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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계로 발길을 옮긴다. 거꾸로 가는 시계는 현재 시간에서 다음해 1월 1일 호미곶 일출까지 남아 있는 시간을 초 단위로 알려 주어 ‘되돌아봄’과 ‘나아감’을 제시하고, 창조정신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국운 융성을 함께 염원하기 위하여 세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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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로 만든 해파랑길 나무다리를 따라 전망대로 걸어간다. 다리 중간에 대보의 특산물인 돌문어가 돌을 안고 있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다리 끝인 전망대에 소년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소년 동상 뒤편에 방위를 나타내는 나침판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서울 284Km, 부산 109.3Km, 제주도 401.9Km로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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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지점인 바다 전망대에서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를 바라본다. 푸른 바다가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과 맞닿아 있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 바다와 검은 하늘만 보인다. 파란 바다에 하얀 파도들이 일렁이고 있다. 파란 바다 위에 하얀 갈매기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수평선 너머에 작은 배가 보일 듯 말 듯 떠 있다. 가까이 붉은 등대도 보인다. 전망대 아래를 내려다본다. 하얀 파도에 검은 다시마들이 춤을 추고 있다.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파도가 몰려와 바닷가에 있는 바위에 부딪친다. 하얀 포말이 푸른 바다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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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다리를 되돌아 해파랑 길을 빠져 나온다. 바다에 떠 있는 오른손이 광장에 세워진 왼손과 마주보고 있다. 손가락 장지에 갈매기가 앉아 있다. 갈매기가 앉아 있는 커다란 거무스름한 오른 손 바닥에 갈매기들이 하얀 그림을 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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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다를 뒤로 하고 다시 광장으로 되돌아 나오면서 가마솥으로 걸어간다. 가마솥 안내판에 “전국 최대의 가마솥: 이 가마솥은 2004년 1월 1일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이곳 호미곶에서 개최된 ‘한민족 해맞이 축전’ 행사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새해 아침에 직접 떡국을 끓여 먹는 체험행사 사용으로 특수 제작된 제일 큰 솥입니다. 1)규모: 지름 3.3m, 깊이 1.3m, 둘레 10.3m 2)재질: 내부(스텐레스) 외부(강판) 3)용량: 떡국 20,000명분(4톤) 2004. 1. 1 새해 아침 포항시장”이란 안내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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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월 1일 새벽에 호미곶 광장에 해돋이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떡국을 받아먹던 모습들이 눈앞에 선하다. 내가 대보중학교에 근무할 때는 경찰들이 대보중학교 교실에서 숙식을 하면서 근무를 하였고, 대보중학교 직원들도 밤을 세워가면서 학교를 지키면서 떡국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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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해오름 무대로 걸어간다. 해오름 무대 안내판에 “호미곶과 고래: 예로부터 호미곶 앞바다는 고래를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본 야외무대는 호미곶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형상화하여 설치되었다.”라고 안내되어 있다. 정말 무대가 고래를 닮았다. 고래 꼬리에서 고래 머리까지가 얼마나 높은지 등산을 하는 기분으로 고래 등으로 오르고 있다. 다시 내려와 새천년 기념관으로 간다. 새천년 기념관은 내가 대보중학교 근무할 때 만들었다. 3층에 전시된 수석관을 둘러보고 내려와 선물코너로 들어가 반원들과 커피를 한 잔 한 후 주차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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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에 올라 오후 2시에 골굴사를 향하여 달려간다. 주차장에서 나오자 왕복 4차선 국도로 들어가 구룡포를 향하여 달려간다. 국도변에 있는 밭에 보리들이 파랗다. 왼쪽 편은 파란 바다 오른쪽은 푸른 산에 붉은 진달래가 빨갛게 피어있다. 2시 12분에 구룡포에 도착한다. 구룡포 시내길이 복잡하다. 호미곶 온천랜드 부근에서 왕복 2차선 국도로 빠져 나가 길을 바꾸어 남포항 쪽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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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경주로 가는 왕복 4차선 국도로 길을 바꾸어 달려간다. 다시 남포항 울산 방향으로 빠져 왕복 4차선 고속도로로 들어간다. 도로 바닥에 푸른색이 칠해진 하이패스 길이 나타난다. 남포항 IC를 하이패스로 통과한다. 울산서 포항까지 새로 난 고속도로이란다. 연속적으로 일곱 개의 오천 터널을 모두 통과한다. 그 중에서 오천 5터널이 가장 길다. 이어서 양북 2터널이 나타난다. 양북 감포 쪽으로 빠져 나가 동 경주 IC를 하이패스로 통과하여 양북 보건소 앞을 지나 경주 영천 방향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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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굴사 주차장에 오후 2시 58분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려 골굴사를 오른다. 가는 길에 골굴사 주지 스님이 기르던 진도견인 동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옆에 ‘동아보살 공덕기’에 “동아는 스님과 함께 새벽 예불을 드리고 탑돌이도 하고 참배객들을 안내도 하던 영리한 개였단다. 그래서 각 방송국의 TV프로그램에도 방영되었단다. 동아가 낳은 강아지들을 분양하여 1,200여 만 원을 동아의 이름으로 대적광전과 선무도 대학 건립에 보시하였단다. 동아는 죽는 날까지 새벽 예불을 드렸단다. 동아가 죽고 2월 15일에 기제사를 지내주고 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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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동상을 관람하고 골굴사로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골굴사 앞에서 두 갈레 길이 나타난다. 선무도 공연시간이 남아 있단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난 난간이 있는 가파른 오르막 계단을 오른다. 정상 절벽에 그려진 마애여래좌상 벽화를 구경하러 올라간다. 중간 정도 올랐을 때 건너편 대적광전을 바라본다. 대적광전 마당에는 우리 학우들이 의자에 앉아 있고 선무도를 공연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정상을 오르던 길을 잠시 멈추고 천 길 낭떠러지 바위에 기대 앉아 선무도 공연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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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나온 젊은 남자 스님이 어린 아들들을 공연장 앞에 따로 떼어 놓고 무대로 나와 사회를 본다. 우리 학우들을 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운경대학원에서 왔다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현기스님이라고 자기소개에 이어 골굴사와 선무도 소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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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온 스님이 골굴사를 처음 만들었단다. 200년 전에 화재가 나기 전에는 골굴사가 병풍처럼 아름다웠던 절이었단다. 선무도는 불교에서 금강수행이라고 한단다. 양익자 스님이 부산 범어사에서 금강수행을 배워 와서 선무도라고 이름을 바꾼 후 포교를 하였단다. 선무도가 시작된 지 27주년이란다. 선무도를 알리기 위하여 템플스테이지를 하고 있단다. 템플스테이지에 참석하였다가 선무도에 반해 스님이 되는 사람들이 있단다. 이 절에 외국인들이 300명 가까이 왔었단다. 외국인들도 선무도에 빠져 10년 쯤 선무도 공부를 하여 자격증을 받아 자기나라로 돌아가 자기 나라에서 선무도 지도를 하고 있단다. 외국인 중 프랑스 스페인 사람들이 많단다. 선무도란 몸과 마음, 호흡 등이 조화를 이루어 도를 깨치게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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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끝나자 사회를 맡았던 남자 스님이 선무도 공연을 한다. 조용한 노래 소리에 맞추어 소리를 지르며 선무도를 공연하고 있다. 몸동작에 힘이 있고 절도가 있다. 발도 높이 올라간다. 빠른 노래가 흘러나온다. 선무도가 빨라지고 있다. 몸동작도 크고 빠르다. 이 스님이 선무도를 가르치고 있나보다. 스님의 선무도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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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도 공연이 끝나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민요가수가 무대로 나온다. 붉은 치마에 검은 저고리를 입고 비녀까지 찌르고 나와서 민요를 부른다. 민요도 잘 부르고 몸동작도 아름답다. 녹음된 반주에 맞춰 민요를 두 곡 부르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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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처음에 공연을 했던 남자와 외국인 여성이 나와서 선무도 공연을 한다. 남자는 바닥에 파란 자리를 깔고 앉아서 공연을 하고 외국인 여자는 서서 공연을 한다. 녹음된 불경 소리에 맞추어 공연을 한다. 남자의 선무도 공연은 동작이 크고, 힘이 많이 들어 있다. 외국인 젊은 여자는 느린 동작으로 선이 큰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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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자 공연장 앞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아빠 곁으로 달려와서 안긴다. 공연을 마친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대적광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학감님이 따라가서 아이들에게 돈을 준다. 학감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너무 보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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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관람한 후 다시 정상을 향하여 오른다. 오르는 곳곳에 굴이 있다. 굴속에는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한참을 올라 정상에 도착한다. 처녀들이 마애불상을 배경으로 서서 나 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처녀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니 옆에 있던 우리 학우들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사진을 찍어 주고 정상에 그려진 마애불상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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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상은 조선시대의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골굴 석굴도’에는 마애불상과 12처 석굴이 모두 목조 기와집으로 그려져 있단다. 그러나 현재 골굴도는 모두 불에 타고 바위굴만 남아 있다. 절벽 꼭대기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불상이 새겨져 있다. 마애불상은 보물 제581호로 지정이 되어 있단다. 마애불상은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에 새겨져 있어 보존상태가 좋지 않다. 그래서 오랜 풍화 작용에 의해 훼손이 심해 유리 지붕으로 덮어 씌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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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자세히 살펴본다. 불상의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아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는 가늘어진 눈, 작은 입, 가늘고 긴 코 등으로 엄숙해 보인다. 몸에 비해 얼굴은 다소 작은 편이고, 오른쪽 귀는 떨어져 나갔고 왼쪽 귀는 길게 늘어져 있다. 오른손은 떨어져 나갔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배에 대고 있다. 얼굴의 입체감에 비해 평면적인 신체는 어깨가 수평을 이루면서 넓게 표현되어 있다. 목과 가슴 윗부분은 마멸되었다. 옷 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을 이루고 있고, 겨드랑이 사이에는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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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상을 관람하고 오를 때 반대편인 대적광전이 있는 쪽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이 천 길 낭떠러지이다. 난간을 잡고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 있는 산신굴과 지장 굴을 관람한다. 굴과 굴로 통하는 길은 바위에 파놓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려가는 길에 있는 굴들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앉을 수 있는 것부터 서너 명이 들어앉아도 되는 다양한 동굴들이다. 동굴 속에는 귀여운 동자승부터 위엄이 넘치는 노스님까지 여러 형태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계단을 내려가는 높은 가파른 길에는 밧줄을 달아 놓았다. 밧줄을 붙들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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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중간 지점에 둥그런 바위 구멍이 있다. 몸을 구부려 구멍을 어렵게 통과한다. 아슬아슬한 절벽을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간다. 관음굴이란 부처님을 모셔 놓은 절이 있다. 돌계단을 내려간다. 여궁 남근 굴을 지나서 대적광전으로 내려간다. 법당 굴인 대적광전은 앞면은 벽을 만들고 기와를 얹어 집 같이 만들어 놓았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북쪽 벽에 감실을 파고 부처를 모셨으나 마멸이 심해 얼굴 표정은 알 수가 없다. 대적광전까지 구경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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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내려와 버스에 오른다. 4시 16분에 대구를 향하여 출발한다.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도로변에 선무도의 각 동작들을 조각하여 세워 놓았다. 일주문을 벗어난다. 골굴사 앞으로 지나가는 높은 다리에 ‘한국도로 공사 탑’이란 글씨가 보인다. 국도를 달린다. 4시 55분에 포항 IC를 하이패스로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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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향하여 달려가 북대구 IC를 6시에 통과하여 금호강 다리 위를 달려 신천대로로 들어간다. 반월당에 6시 36분에 도착한다. 우리 반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티파니로 들어간다. 복잡하던 티파니가 썰렁하다. 요사이 우리나라가 불경기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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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반월당역으로 내려가서 영남대 방향 2호선 지하철에 올라 수성구청역에서 내려 집을 향하여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