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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생불멸의 자리-제법무아

작성자혜윰심|작성시간15.11.04|조회수86 목록 댓글 0

 

 

 

 


제법무아(諸法無我)라, 모든 존재는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으니 내 소유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는 그 모든 법이 공(空)해 버린 실상(實相), 그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것이 여실히 나와 있습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각 원소도 비어 있는 것이고, 인간의 관념을 구성하는 느낌이나 생각이나 의욕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고 판단하는 것도 비어 있습니다. 근본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 비어 있습니다. 이른바 오온개공(五蘊皆空)입니다.

 

오온개공은 현대 물리학보다 훨씬 철저한 우주물리학입니다. 모든 것이 비어버린 그 자리는 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不生不滅)는 말입니다. 이것이 있고 저것이 있는 것처럼 상대적인 문제가 되어야 남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비어버린 그 자리, 제법이 공(空)한 그 자리는 생사가 없습니다. 더러운 것도 청결한 것도 없습니다.(佛垢不淨) 물질이라면 더럽고 깨끗한 구분이 있겠지만 물질이 아닌 순수 생명이기 때문에 더럽고 깨끗할 것이 없습니다. 더하고 덜함도 없습니다.(不增不減)

 

제법무아는 칸트철학의 물자체(物自體,Ding an sich)라는 개념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칸트가 말한 물자체라는 것은 물질 그 자체, 즉 물질이 본래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입니다. 칸트는 물질이 본래 형이상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물자체는 중생의 인식주관(認識主觀)으로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정도의 업장(業障)을 가진 눈으로 보고 있을 뿐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실상을 보는 것인데 우리 중생들은 지금 가상을 봅니다. 허상을 봅니다. 유한한 존재라는 것은 결국 금강경의 말처럼 꿈이고 허깨비요, 거품이나 그림자와 같이 허망한 것입니다. 천재적인 철학자나 물리학자들도 물질이라는 것이 결국 허망한 것이고 인간이 측정하려고 해도 측정할 수가 없고 시간성도 공간성도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그 허망하고 무상한,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정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정말로 있는 것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 법을 “여어(如語)” 또는 “진어(眞語)”라고 합니다. 진리 그대로 말씀했다는 뜻입니다. “무이어(無異語)”나 “불이어(不異語)”라, 진리가 아닌 다른 것은 절대로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또는 “불광어(不誑語)”라고도합니다. 어느 누구도 속이는 말씀이 없다는 뜻입니다. 부처님 법은 진리이고 또한 부처님은 진리 그대로 말씀하시므로 부처님 말에는 진리 아닌 것은 조금도 없고, 우리 중생을 속이는 말도 없습니다.

 

『열반경(涅槃經)』 27에는 “사자후자(獅子吼者) 명결정설(明決定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자후라는 것은 사자가 포효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자가 한 번 크게 포효를 하면 모든 짐승들은 다 그 앞에서 쩔쩔매고 뇌가 망가지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부처님 말씀이 바로 사자후와 같이 모든 외도나 삿된 것을 다 그대로 절복(折伏)시킨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또한 결정설이라, 조금의 더하고 덜함도 없이 꼭 사실대로만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사자후 같은 결정설이 무엇인가 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입니다. 모든 중생이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은 유정중생(有情衆生)이니까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불성이 있는 것인가 의문을 품는 일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일체중생을 말할 때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만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나 할 것 없이 모든 두두물물(頭頭物物) 산하대지(山河大地) 하나의 천체(天體), 그 어떠한 것이라도 일체중생의 범주 안에 모두 들어갑니다. 모든 중생이 다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심장에 가지고 있거나 외에 가지고 있거나 하는 가시적이고 부분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불성이라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자체이기 대문입니다. 불성은 우리 마음의 본래면목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모든 존재가 바로 불성이다”라는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처님의 사자후 같은 결정설, 그 다음에 있는 가르침은 “여래상주(如來常住) 무유변역(無有變易)”입니다. 부처님은 항상 있으되 조금도 변동이 없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이 오늘 계시다가 내일 안 계시고 그런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부처님은 존재하는 생명 자체란 말입니다.

 

즉, 허망하고 무상한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정말로 ‘있는 것’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여러 가지 개념을 혼동하는데 부처님이나, 불성이나, 법신(法身)이나 모두 같은 뜻입니다. 부처님이나 불성이나 법신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고 존재의 본체입니다. 그 외의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은 모두가 고정된 것이 없이 덧없고 고유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나’라고 할 것도 없고 ‘내 것’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나라는 것이 근본 진리에서 보면 허망한 것이고, 내가 허망하니 내게 속해 있는 권속이나 재산이나 지위 또한 허망한 것입니다. 제행무상이나 제법무아의 이치만 제대로 알아도 재물이나 권세나 이성에 집착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불교의 개념을 여기까지 알고 깨우쳤다고 해도 아직 중요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영생불멸한 극락세계에 대한 체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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