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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예배 설교

2026. 6.7. 주일오후, HC 36주일, 시 145:1-2, 하나님의 이름은 존경과 경외심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작성자이은중|작성시간26.06.06|조회수78 목록 댓글 0

2026. 6.7. 주일오후예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6주일

시 145:1-2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매 주일 예배하기 정해진 시간에 모입니다. 모여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예배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예수믿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를 믿어 교회의 회원 즉 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불러서 모였다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에클레시아라는 뜻이 밖에서 부름받았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의 뜻을 말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교회의 회원은 모두 성도라고 불립니다. 요즘은 이 성도라는 말이 낯설기까지 합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사회는 관료사회이다 보니, 이름 뒤에 직함이나 존칭을 붙여서 부릅니다. 교회에서는 이은중 목사님이라고 직함으로 부르고, 병원에서는 선생님 또는 아벗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은중씨는 간혹 불려지는데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의사에게 진찰받기 직전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 제일 좋은 것은 이은중씨인데, 제가 어려서는 어른들을 다 누구 누구 씨라고 불렀습니다. 점점 사회가 관료화가 되고, 한번 면장은 영원히 면장이 되어서 은퇴해도 면장으로 부릅니다. 교회에서도 그냥 부르기 뭐하니까 다 직분으로 부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직분이 남발되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어려서는 교회가 다 동네 주변에 있어서 동네 형, 누나, 동생이어서 그냥 이름으로만 불렀습니다. 그런데 도시교회를 다닌 형 누나들이 여름방학이나 여름휴가차 오면 형제님, 자매님 합니다. 대학을 다닌 형 누나들이 동아리에서 형제님, 자매님 하니까 그게 좋아 보였는지 형제님 자매님 하더니 다 그렇게 부릅니다. 그냥 같은 동네 형 동생들이 교회오면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좀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막 20살 안팍에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교회는 예수안에서 한 가족이니까 형제요 자매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하면 대부분 바로 서리 집사라고 해서 직분이 주어지고 그때부터 교회에서 평생 누구 누구 집사, 누구 누구 장로, 누구 누구 권사 이런식으로 불려집니다. 이렇게 해야 자신이 좀 높여지고 존중받는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사실 누구 누구 씨하는 것도 높이는 것인데, 집사, 장로, 권사, 형제, 자매라고 불러야 높아진 듯이 여깁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의 집사와 장로, 목사에 대해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존칭으로서 그 직분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렇게 불려주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당할 수 있는데, 문제는 요즘은 교회가 다 집사, 장로, 목사여서 그냥 이름을 부르기가 참 어렵게 된 시대가 되었습니다. 점점 사람이름보다는 그 뒤에 붙은 직함이나 존칭이 그 사람을 입증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교회는 목사말고는 다른 직분자가 없기 때문에 성도님 또는 누구 누구 씨라고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누구 누구 씨하면 어감에 따라 다를 수 있어서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보다는 그 이름의 뒤에 직함을 붙여 부르는 이유는 이런식으로 함으로 그 분을 높이고 존중하고자 함입니다. 그냥 이름만 부르면 좀 그 사람에 대해서 하대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그냥 이름으로만 부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른들은 다 직함으로 불러서 존경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기분좋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함부로 불러도 됩니까? 하나님은 가장 높임을 받아야 할 엄위로우시고 위대하시고 존귀하신 왕이시고 창조주시오 유일한 신이기에 그에 합당하게 존경을 표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이름에 합당에 존경으로 높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가르치고 고백하는 것이 이번 주 신앙고백서 36주일의 십계명 제 3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존경과 경외심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것들은 그의 이름에 합당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존경과 경외심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것들은 그의 이름에 합당하게 하여야 합니다.

언약의 열마디 말씀의 제 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 제 2계명과 같이 언약의 열마디 말씀에서 “죄”가 직접적으로 언급된 계명입니다. “망령”은 영어로 in vain 이라고 해서 ‘헛되이, 아무 의미없이, 함부로, 불경스럽게(두려움이 없이)’ 라는 뜻입니다. 헛된 것은 우상과 관련됩니다. 우상은 진실하지 않은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우상에게 하듯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상이야 원래부터 없는 존재이고 헛깨비같이 아무 의미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불러도 됩니다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고 지금도 왕으로 권능으로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우상에게 하듯 그의 이름을 말하고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요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면 지금 대통령이 이재명인데, 물론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대통령 이재명을 부른다 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권위와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부를 때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듣지 않고 볼 수 없으니 아무렇게 부른다 할지라도 그가 있는 자리나 또는 공개적인 공식적 자리에서는 대통령의 이름을 남용하거나 아무런 의미없이 재미 삼아 불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개된 장소이거나 비밀스런 장소이거나 공적자리이거나 사적자리이거나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말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뿐 아니라 그 마음의 생각까지도 이미 다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분명히 죄라고 말씀합니다. 우상에게 절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우상에게 하듯 아무런 의미없이 말하는 것도 죄라고 말씀합니다. 우상은 말도 못하지만 듣지 못하니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는데, 하나님은 말씀도 하고 들으시는 분이니 말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목상이나 돌상의 우상처럼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는 그의 합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합당하다는 것은 그분의 신분과 지위와 권위에 합당하게 하나님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전능하신 분이요 영원한 왕이시오 하나님 나라의 주이시오 영원하시고 영광의 유일한 신입니다. 사람은 왕이 될 수 있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무언가를 잘 만드는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왕와 싸움을 잘하는 전사, 발명가와는 전혀 다른 격입니다. 위치와 지위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만든 창조주입니다. 그들은 영원성이 없습니다. 전능성도 없습니다. 온전한 창조도 없습니다. 그들은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닙니다. 사람도 자신의 이름이 그 격에 맞지 않게 사용되었을 때, 얼마나 화가 납니까? 화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고소하기까지 합니다. 서두에서 말한대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존칭을 쓰지 않습니까? 하물며 요즘은 개에게도 강아지를 개새끼라고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물려 피조물도 이러할진대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영원한 왕이며, 영원한 아버지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유일한 구원자,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실 그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함부로 불러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는 함부로 부를때가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경우도 있습니다. 재미삼아 그럴 수 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늘상하는 것이니 그렇게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크게 보면 두가지 이유때문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소위 뒷담화식으로 하나님을 합당하게 부르거나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뒷담화는 그 사람이 없을 때 즉 그 사람 뒤에서 하는 말이잖아요. 앞담화는 그 사람이 바로 앞에 있을 때 하는 것인데, 앞담화때는 그 사람 좋은 소리는 다 합니다. 그런데 진짜 그 사람의 평가는 앞담화가 아니라 뒷담화에서 나올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니 뒷담화 하듯이 함부로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부지불식간에 합당하게 말하지 않아도 바로 진노의 소멸하는 불이 내리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불러도 바로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겁이 없습니다. 뭐 하나님께 합당하게 대우하지 않아도 뭐 별것 없더라 하는 것입니다. 도둑이 처음에는 긴장하다가도 나중에는 겁대가리가 없어진다고 하듯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두가지는 실상은 하나님을 돌상이나 목상과 같은 우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안 보인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고 영원하지 않고, 섭리하지않고, 아니계시곳이 없는 즉 무소부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살아있지 않고 영원하지 않고 섭리하지 않고 무소부재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상아닙니까? 하나님을 함부로 말해도 불을 내려서 나에게 벌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이다 해서 겁대가리가 없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여기는 것 아닙니까? 우상은 나무이고 돌이나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벌하지 않는다 여겨서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고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지 말라고 했는데 이 망령은 헛되이 있습니다. 헛된 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우상과 같이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합당하게 부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여기는 아무런 생각없이 헛되이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반응하시고 진노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 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 함부로 합당하게 말하지 않는자, 우상에게 말하듯이 말하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죄라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함부로 헛되게 아무 의미없이 부르면 죄다라고 정죄하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를 말씀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아버지이니 좀 아버지 이미지여서 함부로 부르면 안되지. 예수님은 우리가 가장 많이 듣고 우리의 친구라고까지 했으니 좀 성부 하나님보다는 가볍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부추기기 위한 방도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니 가장 가볍고 함부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신 영원한 한 분 하나님입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은 오직 존경과 경외심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함부로 저주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함부로 서약해서도 안됩니다. 때로는 법정이나 다른 어느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남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때와 장소와 함께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용되어서도 안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장소나 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반드시 불러야 하는 곳에서 말하지 않고 침묵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할 때는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꼭 가져야 할 태도는 존경과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로서 우리를 멸하실 수 있는 분이니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장소와 때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을 때 그들에게서도 존경심과 경외심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름이 조롱과 조소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하나님을 존경해서 부르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그분에 합당하게 대우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지 확인해야 합니다. 시 145편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송축하며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존경과 경외심을 찬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식했습니다. 자신의 주군으로,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잠깐이 아니라 영원한 왕, 영원한 주로서 인정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왕과 주인으로서 존경과 경외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했습니다. 우리도 매 주일 찬송합니다. 우리는 시편 찬송을 부르기 때문에 매 주일 매 찬송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우리도 다윗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경외와 존경을 나타내면서 찬송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요 나의 왕이요 주님이요 우상이 아니라 영원히 찬양과 영광받으실 유일한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찬송하십니까? 우리 생활가운데 기도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구할 때 진정한 존경과 경외심이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살피십시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부르지 않고 우상에게 하듯 망령되이 부르면 우리는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사형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레 24:16) 저는 여러분들에게 겁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합당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그분에게 합당한 존경과 경외심을 갖고 영원토록 찬송과 영광을 돌리자고 권면하기 위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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