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4. 주일오전예배
시 57편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여러분,
찬송가는 강조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후렴구로서 반복합니다. 시편도 찬송입니다. 시편 57편은 동일한 내용의 절이 두 절이 있습니다. 찬송의 후렴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5절)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11절)
하나님은 주님이십니다. 주는 왕과 창조주에게 적합한 이름입니다. 왕은 모든 죄를 사면하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할 자이기도 합니다. 주는 구원자에게도 해당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주이신 왕이시며, 창조주시며,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은 주, 왕, 창조주, 구원자로서 하늘 위에 높이 들리기를 소원합니다. 하늘위에 높이 들려지신 하나님은 그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도 높아지기를 소원합니다. 시인의 소원입니다. 이 시인의 소원은 자신이 평화롭고 한가하여 왕궁에 앉아 가무를 즐기며 노래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굴에 있던 때 하나님을 높입니다. 분명히 다윗은 지금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주님이시며, 하늘과 온 땅에서 높임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 가장 적합한 상황인데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었는데,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했는데, 그것으로 사울의 시기로 죽을 위험에 빠진 것입니다. 오늘 저는 다음과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 위에,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니이다.
주는 하늘 위에 높아지신다
주는 온 세계 위에 높아지신다
주는 하늘 위에 높아지신다.
지금 다윗은 사울을 피해 굴 속에 있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삼상 22:1)과 엔게디 굴(삼상 24:3)로 사울을 피해 도망한 일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라는 표제를 볼 때, 두 사건 중 하나이든지 둘 다 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비록 자신의 육신은 굴 속에 피했을지라도, 자신의 영혼은 주께로 피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피한 것은 굴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피했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피한 곳은 굴 깊은 곳이 아니라, 나의 주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굴 속이 아니라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1절)
“주의 날개” 와 “재앙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때를 기억하게 합니다.
“내가 애굽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사람에게 재앙들을 내렸습니다. 그 재앙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업어 그 땅에서 지금 약속하신 이스라엘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 32:10-11)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독수리가 그 새끼를 날개를 펴서 보호 하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주의 날개는 보호와 안전을 뜻합니다. 굴 속은 땅 아래 빈 공간이듯, 날개는 새와 땅의 빈 공간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굴 속이 아닌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함으로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자신이 지금 비록 육신은 굴 속에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과 광야에서 독수리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듯이 그의 자녀를 보호하셨던 하나님이 그 분의 날개로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로 피하는 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문제가 해결 되게 해 주세요 구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하나님께 피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을 그대로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그로 인한 안전과 보호를 원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합니다. 그러니 그 문제가 해결됐을 때, 결국 자기가 기도해서 되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기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듯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지금 취한 태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다윗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그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 하나님은 지존하신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2절)
우리는 이 구절에서 “나를 위하여”를 크게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존하신 하나님”과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크게 듣기를 원합니다. 지극히 존귀하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그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모든 과정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그 일을 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새끼를 위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어미 새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는 그의 자녀입니다. 자녀를 위해 일하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제가 아이가 태어난 해의 아내가 쓴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그 때 갓난 아이였던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랐지만, 하루에 분유를 얼마큼 먹이고, 소변과 대변은 몇 번 봤는지, 시간대 별로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갓난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부모는 그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합니다. 사람 부모도 이러할진대 지존하시고 전능하시며, 능력이 무한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주의 날개 아래 있는 새끼로 설명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날개는 새끼를 품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는 날개로 하늘에서 낚아 챌 수도 있습니다. 3절이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는 것이 마치 독수리가 하늘에서 창공을 가르며 희생물을 낚아채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보내십니다. 목적어가 빠졌습니다. 그 목적어는 3절 후반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십니다. 왜 하나님이 하늘에서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십니까? 다윗을 삼키려는 자들의 비방을 헛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분명히 다윗 즉 하나님의 자녀를 삼키려는 그 비방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내시는 인자와 진리와는 반대입니다. 비방은 사랑이 아니라 죽이려는 것입니다. 비방은 진리가 아니라 거짓으로 헐뜯는 것입니다. 다윗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자녀는 지금 비방 즉 인자(헤세드로서 사랑과 같음)와 진리가 없는 사람들로 둘려싸여서 죽음의 위험가운데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이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4절)
비방은 입으로 합니다. 그들의 이빨은 창과 화살과 같습니다. 그들의 입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습니다. 그들은 사자들과 같습니다. 사자는 희생물을 단 한번의 날카로운 이빨로 죽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과 같습니다. 그들은 땅에 속해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들은 다 땅에 속하여 그 땅에 눕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하늘에 속했습니다. 하늘에서 사람의 아들들의 비방과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그의 자녀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 독수리 날개는 바로 인자와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높임을 받는 것은 인자와 진리를 보내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보낸 인자와 진리가 하나님 자녀를 삼키려는 자들의 비방과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의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하십니다. 주권은 주도적 힘, 능력입니다. 그의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2. 주는 온 세계 위에 높아지신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인자와 진리를 보내심으로 하늘 위에 높아지십니다. 이는 땅에도 변화를 일으킵니다. 먼저 하나님이 하늘에서 스스로 모든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십니다. 이제 이 찬송시의 후반부입니다. 6절부터입니다. 바로 앞 5절은 후렴구입니다. 전반부는 하늘 위에 주의 영광이 높여지는 것이었다면, 후반부 6절부터는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즉 온 땅위에 높아지는 내용입니다.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구원이 실제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6절)
웅덩이를 파고 그 위에 살짝 그물을 올려놓았습니다. 함정을 파 놓은 것입니다. 자신들이 판 웅덩이에 자신들이 빠졌습니다. 하나님 백성을 죽으려던 그 비방에 자신들이 빠졌습니다. 하나님 백성을 죽으려던 그 계획에 자신들이 빠졌습니다. 이제 하나님 백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니 기쁩니다. 기쁘면 찬송으로 노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7절)
확정(steadfast)은 확고해졌다는 것입니다. 굳건해졌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굳건해진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굳건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굳건히 신뢰하게 되었고, 하나님만을 굳건히 붙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굳건히 붙잡게 된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로서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원수를 물리쳐 주시고 자신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굳건히 붙잡고 믿습니다. 하나님께만 내 마음을 확정했습니다. 오직 나의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구원은 나를 기쁘게 합니다. 온 세상, 세상은 하늘에 대비되는 땅입니다. 온 세상은 온 땅입니다. 온 땅이 기뻐하며 노래하고 찬송합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승리의 찬송을 합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8-9절)
새벽은 어둠이 물러나는 때입니다. 새벽은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때입니다. 비방과 그물과 함정이 거치는 시간입니다. 빛이 어둠을 이기는 승리의 시간입니다. 그 새벽의 시간에 감사의 찬송이 울립니다. 비파와 수금 등 악기들이 연주됩니다. 승리의 찬가요 기쁨의 찬가요 감사의 찬가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승리를 온 땅은 기쁨과 감사로 찬양합니다. 온 세계 만민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송합니다. 그 기쁨과 감사의 찬송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10절)
주의 인자하심이 크십니다. 주의 사랑이 크십니다. 주의 은혜가 크십니다. 주님의 인자(헤세드, 사랑, 은혜)는 하늘에 미칠 정도로 큽니다. 주의 진리는 궁창에까지 이릅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영역이고 궁창은 우리가 보는 하늘입니다. 이는 주님의 인자와 진리가 하늘과 온 우주 만물에 다 미친다는 기쁨의 찬송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늘과 궁창 즉 하늘 위에, 온 땅 위에 미칩니다. 주는 하늘 위에 높아지시고 온 세계 위에 높아지십니다. 주님이 그의 자녀를 위해서 하신 모든 일은 온전하고 위대합니다. 광대합니다. 승리의 영광과 기쁨의 찬송이 하늘과 온 땅에 미치고, 이로 인해 주님이 하늘 위와 온 땅 위에 높아지십니다.
3. 예수님으로 하늘과 온 땅에 높아지심과 우리의 책임.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자와 진리를 보내심으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땅 위에 모든 만민은 주님의 구원을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기쁨과 감사를 찬송합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하늘에서 보내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입니다. 바로 하늘에서 보내신 인자와 진리의 주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6-17)
진실로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하시는 구주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신 분입니다. 거짓과 비방을 잠잠케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무기로 평화를 가져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자와 사랑, 은혜와 진리로 승리하시는 분입니다. 인자와 사랑과 진리로 평화를 가져오신 분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1-14)
이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모든 일을 하시는 구주이시며 주이십니다. 지극히 높은 곳 즉 하늘위에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온 땅에는 기쁨의 승리의 찬송입니다. 승리했기에 온 세상에 평화가 옵니다.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이 하늘 위에 높이 되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온 땅에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구주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찬송은 처음에 천군이 그 천사가 시작했습니다. 이제 온 땅에 온 피조물이 찬송합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 5:13)
특별히 온 땅에서 높임 받아 찬송하는 때가 새벽입니다. 이 새벽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때입니다. 생명이 죽음을 몰아내는 때입니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둠의 땅아래에서 새벽 빛의 땅위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부활의 새벽에 가장 영광스럽게 온 세계가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새벽에 승리했습니다. 그의 자녀들의 영혼이 깨었습니다. 비파와 수금이 깨었습니다. 새벽에 살아나신 예수님으로 새벽을 깨우셨습니다. 온 세상이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기뻐합니다. 감사합니다. 새벽을 깨워 부활하신 예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찬송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승리를 찬송합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생명으로 이기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와 사랑과 인자는 너무나 커서 하늘에 미치고 그 진리는 지금 온 세계에 이릅니다.(시 57:8-10) 실로 우리는 시편 57편의 후렴구를 다시 기쁨과 감사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 예수님이 하늘 위에 높아지셨고, 온 세계 위에 높아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우리의 영혼을 확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7절)
예수님께 마음을 확정하십시오. 예수님께 마음을 단단히 붙드십시오. 예수님을 굳건히 믿으십시오. 예수님께 온전히 감사하고 찬송하십시오. 예수님을 위해 나의 시간과 물질과 힘을 쓰십시오. 내 인생을 예수님으로 계획하고 그 예수님의 뜻과 계획에 나의 삶을 맞추십시오. 여러분들의 마음을 예수님께 붙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버리십시오. 성령님께 구하십시오. 예수님만을 위한 삶으로 나의 인생을 확정하도록 도와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렇게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이 확정된 자들이 진정으로 주님을 찬송하며 노래하며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