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14. 주일오후예배
벨직신앙고백서 제 13항
창 45:4-8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여러분,
삼위일체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무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영원히 존재하신 분은 한 분 하나님뿐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하여 천사를 포함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심으로 그의 모든 창조물들은 다 선합니다. 악하고 부조리한 것은 없었습니다. 불합리한 것도, 죄도, 죽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물 중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떠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먼저 천사에게서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역할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타락이라고 합니다. 천사가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 것입니다. 이 천사의 타락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겠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뿐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악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났느냐? 할 때, 악도 악 자체로 스스로 존재한 개념이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에서 떨어진 것이 악입니다. 이것이 좀 추상적인데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식입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것입니다. 어둠은 원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빛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둠이 있는 것은 빛이 그곳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악에 대해서 이해가 되십니까? 선이 없는 것, 선의 부재가 악입니다. 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없는 것, 의로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 타락이든, 악이든, 범죄든, 불의든, 더러움은 모두 하나님의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지, 하나님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벨직신앙고백서 제 13항은 선하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그 창조하신 만물을 어떻게 하시는가? 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는 본문으로 다음과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창조하신 만물을 운명과 우연에 맡겨놓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섭리하시나 범죄의 조성자도, 그 책임자도 아니시다.
1. 창조하신 만물을 운명과 우연에 맡겨놓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아주 분명하면서 단호하게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시작합니다.
“이 선하신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내버려두시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맡기지 아니하시고”
우리 교인들은 그 단어 개념을 이미 아시지요. 섭리는 다스릴 섭자에 다스릴 리자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제하고 통치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배울 때, 세가지 확고한 믿음을 요구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그 만물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내버려 둔다는 것은 만물이 어떻게 되든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은 창조했지만 내버려둔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볼 때, 도저히 하나님이 간섭하고 이끄신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득세하고, 힘 있는자가 득세하고, 그들은 처벌도 적게 받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교회를 위협하고, 교회는 여전히 힘없고, 연약할 뿐인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요즘은 동성애도 합법화되고, 우리나라는 간통죄도 합법화되고, 이혼은 이제 부끄러운 것이 되지도 않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들에게 불을 내려서라도 처단해야지 않는가?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으되 내 버려두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이런 주장을 좀 고상하게 유신진화론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유신이라는 말 그대로 신은 있어서 창조는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생물이 다양하게 변형되고, 퇴화하고 멸종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유신이라는 종교적 가치와 진화라는 과학적 가치를 혼합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그 혹 여러단계의 진화가 있을지라도 그 진화과정도 하나님의 통제하에, 하나님의 의도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종교와 과학을 결합한 것입니다. 종교의 신과 과학의 이론이 거의 동격수준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과학자들이 창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창조과학회 같은 것을 그리 좋아 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기독교도 합리적인 종교다. 과학으로도 기독교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창조가 터무니 없는 신화가 같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설명될 수 있는 사실이다는 것을 과학이라는 이론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유한한 사람의 이론으로 가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설교에서 말씀드린데로 선하신 하나님 하면 선이라는 개념에 하나님을 한정시킬 수 있어서 악이 없으시다는 부정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무한성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의 유한성 안에서 무한한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는 것이고, 믿지 않는 자들은 믿지 않으면 믿게 하려고 그들의 방식, 수단으로 설명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있습니다. 믿음의 방식이지, 이론에 의한 설득과 설명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학적 이론으로 창조가 설명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시고 무한한 권능과 능력의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기에 믿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무로부터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참 신이기에 무로부터 창조하셨고, 그 하나님이 무한한 능력으로 지금도 그 창조물 내버려 두시지 않고 통제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운명에 맡겨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운명은 예정과 비교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운명은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또는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것입니다. 예정은 정해져 있지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예정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되느냐 하면 현재 자신의 신앙으로 증명됩니다. 예정을 말할 때, 창세전을 먼저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일어난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현재의 일입니다. 현재 내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산다면 그는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임을 입증한 것입니다. 반대로 전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종교인으로서 예배당에 나오고 믿음에 관심도 없다면 그는 예정받은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정됐으니 언젠가는 나올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예단할 수 없습니다. 열매 맺은 감나무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감나무가 빨갛게 익어 열매를 따야 합니다. 운명은 딸 필요도 따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저 감은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또 내가 다른 감을 땄다고 해도 내가 처음에 골라놓았던 감은 내 손으로 들어옵니다. 이게 운명입니다. 그러나 예정은 내가 감을 따려고 지금 노력합니다. 감나무에 올라가든지, 긴 막대기로 따려 하든지 합니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의 결실을 맺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신인 협동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 안에 믿음을 불려 넣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감동하시고 주님의 교회로 부르신다는 것이고, 그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운명은 불렀다 해도 내가 반응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운명적으로 나는 결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다스림, 통치의 섭리가 운명이 아니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운명과 같다고 하면, 모든 문제의 책임, 모든 만물의 책임은 그 운명을 결정한 분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 운명을 하나님이 결정했다 그러니 모든 것은 하나님책임이다 하면, 악의 책임도, 살인의 책임, 죽음의 책임도, 병의 책임도 다 하나님이 됩니다. 이것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물에게 내린 운명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운명이 아닙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우연에 맡겨 두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연은 운명과 정 반대입니다. 이 세상 일이 우연히 운으로 일어난 듯이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운이 좋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운이라는 것으로 말하는 것 뿐이지 운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운명은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내가 하든 안 하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만, 우연은 그 반대입니다. 우연은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이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개입할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개입하고 섭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일관성 있고, 질서가 있으며, 계획적이며, 불변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어쩌다 보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 만들어지고 어쩌다 이리 저리 된 것은 없습니다.
2.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섭리하시나 범죄의 조성자도, 그 책임자도 아니시다.
하나님의 섭리 즉 다스림과 주권적 통치를 인정할 때, 고민이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개입하시고 주관하시는 이 모든 만물이 왜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버젓이 잘 살고 버젓이 만수무강하며 살고 있는가? 이런 생각들 때문에 하나님은 다스리지 않아? 다스린다고 해도 확실히 100% 는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겸손해집시다. 우리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같이 사는 가족의 생각도 모릅니다. 자신의 생각도 수시로 변해서 자신의 생각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신앙고백이 이것 또한 지적합니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행위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허용된 역량 이상 호기심으로 탐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지극한 겸손과 경외심으로 우리에게 감추어진 하나님의 합당한 판단을 존중하며 우리 스스로 이런 한계들을 넘어서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바를 배워야만 하는 그리스도의 생도로 만족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해서 겸손과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완벽하며 선하시며, 그분은 자비하시지만 의로우시며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여기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즉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약속의 이행을 위한 섭리였음을 고백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이 위치에 있는 것이 자신의 개인적 영예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섭리하심,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으로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이끄신 결과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7-8f)
바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요셉을 애굽으로 이끄셔서 그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애굽으로 가게 한 역할을 한 것이 요셉의 형제가 아니냐? 요셉을 형제들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서 된 것이 아니냐? 아니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그의 형제들에게서 보내서 그런 것이 아니냐?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의 형제들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악한 생각입니다. 그들은 아무도 요셉이 살아서 애굽의 총리로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야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다고 여기고 판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범죄는 그들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지도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를 놓고 결과가 정당하면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에 있다고 자신의 죄가 없어지거나 정당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벌어지는 사람의 모든 죄는 죄를 지은 그 사람의 책임이요 그 사람이 범죄의 주관자이며, 조성자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고초를 당하게 한 원인 제공자도, 조성자도 아닙니다. 그들의 범죄와 악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지 하나님께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고 하니 자신의 잘못과 죄와 거짓과 불의에 대한 책임과 결과에서 면제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신의 책임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우산으로 덮으려 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범죄와 그로 인한 결과의 여러 변수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주관적 통제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안에서 어떻게 사용되기를 원하십니까? 요셉의 형제처럼 사용되기를 원하십니까? 어려움 중에도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요셉처럼 사용되기를 원하십니까?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과 환경을 핑계 삼지 마십시오. 그 상황과 환경과 여건을 변명삼아 악을 도모하거나 불의가운데 행하지 마십시오. 요셉은 상황과 환경, 여건 모든 것이 다 최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요셉은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요셉은 여러 가지로 연약하고 부족한 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원형인 예수님은 온전하게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하나님의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그 섭리를 온전히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그분을 의지합니다. 그분이 보내신 바 성령님을 의지하여 행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 안에서도 성령님이 이끄심을 따라 진리가운데 행합니다. 우리 교인들이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로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선한 길로 우리를 이끄시는 섭리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