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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예배 설교

2026. 6. 21. 주일오후. HC 37주일, 히 6:13-20,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맹세와 서약할 수 있다.

작성자이은중|작성시간26.06.20|조회수37 목록 댓글 0

2026. 6. 21. 주일오후예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7주일(500쪽)

히 6:13-20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성도여러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4주일에서 44주일까지는 십계명을 가르칩니다. 십계명은 열 개의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34주일에서 44주일은 총 11번입니다. 1번더 가르치는 계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37주일 제 3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 이 제 3계명은 두 주일에 걸쳐서 가르칩니다. 36주일, 37주일 두 주일 가르칩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계명같은데 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 2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라거나 제 1계명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는 계명이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제사도 많고, 천주교가 우상을 성당에 만들어 놓고 하면서 실제로 제 2계명을 빼 버리고 제 10계명을 둘로 나눴습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이것이 제 9계명이고, 제 10계명은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해서 십계명의 숫자 구색을 맞췄습니다. 우리나라는 1, 2계명이 중요하고 4계명도 강조되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제 5계명과 7계명, 9계명, 10계명도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성경접근법은 오바른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다 중요하고 다 온전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시대의 잘못된 것을 바르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한 주 더 설교할 수 있습니다. 제 3계명이 한 주일 더 있는 것이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는 맹세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서원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이것은 실제 생활상 밀접한 연관이 됩니다. 하이델베르크가 작성될 당시에는 서원과 맹세에 대해서 극단적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우리나라에 천주교로 알려진 카톨릭입니다. 천주교는 맹세와 서원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거나 서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지정한 온갖 성인과 유물들의 이름이나 손을 얹고 서약이나 맹세를 했습니다. 성인 베드로의 이름으로,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성 베드로 성당의 물건에 손을 얹고, 나가서는 성경, 십자가, 성인의 옷 등등 엄청나게 많은 사람과 물건들로 서약하고 맹세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성경에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5:33-37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천주교가 서약하고 맹세한 것입니다.

 

반대의 또 다른 부류는 제세례파입니다. 그들은 모든 국가제도와 군대거부, 맹세와 서약을 거부했습니다. 미국의 아미시라는 공동체 그룹은 지금도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18세기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들 나름의 공동체로 모든 소유를 같이 하면서 생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거나 서약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천주교는 너무 많은 서약과 맹세를 한다면, 반대로 재세례파는 그것들은 거부합니다. 이것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작성될 당시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교회의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맹세와 서약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맹세와 서약할 수 있다.

맹세와 서약은 확실한 약속에 근거해야 한다.

맹세는 오직 진리를 입증하게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맹세와 서약은 확실한 약속에 근거해야 한다.

맹세를 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맹세는 자신보다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합니다.(16절) 하나님은 “자기보다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 하였습니다. 여기서 맹세와 서약을 할 때 중요한 조건을 알려줍니다. 맹세는 자신보다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자신보다 큰 자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나보다 큰 업적을 이룬 사람? 나보다 더 부자인 사람? 나보다 더 신앙심이 좋은 사람? 사람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더 확대해 봅시다. 엄청난 규모의 건물? 오래된 나무나 건축물? 엄청나게 큰 협곡이나 폭포? 저 하늘에 밝게 빛나는 해와 달과 별? 이런 것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나보다 크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나보다 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일단 나와 똑같이 피조물입니다. 사람이 훌륭하게 보이지만 실상 그들 모두는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은 다 동일합니다. 피조물이고 죄인이고 영원하지 못하며 썩어 없어질 것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소위 종교적으로 신앙심이 좋다고 여기거나 신심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서 성인이라고 칭한다 해도 그들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NEVER! 그럼 종교적으로 성인이라고 명명한 사람 말고 다른 피조물에게도 하면 되느냐? 절대로 안됩니다. NEVER! 맹세는 자신보다 더 큰 자를 두고 맹세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 똑같은 피조물이고 죄인이고 구원이 필요하고 멸망받을 존재들이며 유한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보다 더 큰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보다 큰 자가 없습니까? 있습니다. 바로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보다 큰 하나님으로만 맹세하고 서약해야 합니다. 자신보다 큰 하나님으로 서약하며 맹세하는 것을 허용될 수 있습니다. 이 첫 번째 조건으로서 상술한 두 부류의 집단 즉 천주교와 제세례파의 맹세에 대한 견해를 다 거부합니다. 천주교는 하나님말고도 다른 성인이나 피조물에 의탁해 맹세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오직 피조물인 사람보다 큰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께만 맹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부합니다. 제가 방금 사람보다 큰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물인 귀신이나 천사의 이름을 불러 맹세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도 거부하고 부정합니다. 천사도 귀신도 다 피조물인 사람과 동일하지 크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큰 분은 오직 창조주이시고 영원하신 신이신 하나님뿐이며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맹세할 수 있습니다. 재세례파도 거부합니다. 그들은 아예 맹세나 서약을 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와 서약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맹세와 서약은 미래에 될 일을 현재에 말함으로서 미래에 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분명히 이 맹세는 아직 이루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맹세가 바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미리 맹세하심으로 그 미래에 이루어질 것에 자신을 매이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맹세와 서약은 확실한 약속에 근거합니다.

현재에 맹세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에 매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미래에 이루어질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안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경우의 수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더 정확히는 미래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약속의 보증입니다.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미래에 있을 것이 분명히 변하지 않고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려고 보증서로서 맹세로 약속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그 뜻이 변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넷째, 맹세와 서약의 약속은 분명히 변하지 않는 진리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이 미래에 있을 것에 대한 약속의 보증으로서 맹세를 하신 것은 그분이 거짓말하지 않고 변할 수 없다는 확고한 진리에 입각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은 분명히 그 맹세로 약속한 그 내용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실한 진리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거짓말 할 수 없기에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분명하게 소망할 수 있습니다.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진리에 근거한 약속이 아니면, 그 약속을 소망하면서 기다리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세로 하는 약속은 분명한 진리에 근거해야 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맹세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짓말 할 수 없다는 것을 맹세로 약속하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오직 맹세와 서약은 거짓말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만을 말하겠다는 확증이요 보증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단락으로 넘어갑니다.

 

2. 맹세는 오직 진리를 입증하게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맹세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진실함으로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위해서 여러 피조물을 빌려 맹세하곤 합니다. 나를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위증하지 않고 오직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믿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진리를 입증하기 위한 맹세가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한 맹세입니다. 물론 우리는 법원이나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할 때, 결혼서약 같은 경우에 맹세로 서약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자신의 진심을 믿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진실로 말하고 진실만은 진술하겠다는 것이요, 앞으로 결혼도 진리의 약속에 근거에 서약하며 맹세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맹세의 예를 들어봅시다. 결혼 당사자가 결혼식에 결혼 서약을 합니다. 이 맹세하며 서약하는 것은 자신의 사랑의 고백이나 진실성을 기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맹세할 때 자신의 진실성을 무엇으로 증명했습니다. 미래에 확실히 이루어질 약속에 근거했습니다. 약속에 대한 보증으로서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예식에서 맹세하는 것은 결혼하는 남녀에 하나님이 주신 확실한 약속의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나누지 못한다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에 근거해서 서약으로 맹세하는 것입니다. 이 확실한 진리의 약속이 없다면 이 맹세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혼 예식에서 맹세는 상호간의 약속이지만 그 약속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한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남녀는 이혼 할 수 없습니다. 이혼 할 어떤 소지도 상호간에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예를 들면 불륜이나 의심, 폭행이나 경제문제등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결혼후에 여러문제가 발생합니다. 배우자의 병고, 배우자의 실직, 배우자의 성격등 여러 가지로 결혼생활에 어려움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결혼 서약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약속,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우자를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이 확실한 약속에 근거합니다.

법정에서 우리는 맹세하면서 서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서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확실한 약속 즉 진리의 말씀에 근거해서 맹세합니다. 제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는 진리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국가도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라고 인정합니다. 국가자체가 하나님나라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국가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으로 그 국가가 국민의 안녕과 질서유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에게 맹세를 요구할 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맹세가 아니라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맹세로 서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입증하기 위해, 진리를 말하기 위해, 진리에 근거해서 맹세하고 서약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세로 서약이나 서원이라고 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이 아이를 목사로 시키겠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아이를 살려주시면 제가 목사가 되겠습니다. 또는 이 회복된 아이를 목사로 키우겠습니다.

저의 이 병을 고쳐주시면 이제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목사가 되겠습니다.

 

사람이 여러 어려움이 생기면 서원을 하고 약속을 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주님께 자신의 소원을 간절히 원하면서 자신이 그 응답의 보답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드리는 목사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뭐 비판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서원은 서원의 형식으로는 가능하지만, 자신이 목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요 자신의 보상 방법이지 하나님이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는 것도 있지만, 목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했다고 확증할 수 없습니다. 이런 서원이나 서약으로서 맹세는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것은 서약이나 맹세가 아니라 예와 아니요 만 하면 됩니다. 즉 믿음을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고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면하라”(약 5:12)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약속된 말씀을 확증하는 것으로서 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진리에 근거해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서약하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진리와 진실이 증거되고, 하나님의 약속의 소망으로 안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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