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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향기

라파엘 전파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작성자씨알|작성시간22.07.11|조회수448 목록 댓글 0

John Everett Millais, Cinderella,1881, 캔버스에 유채, 125x88.9㎝

 

사실 가만히 따져보면 신데렐라는 단순히 남의 덕에 팔자를 고친 사람만은 아니다. 그는 본래 귀족의 딸이었으니 신분상승을 헛되게 꿈꾸었던 여자는 아닌 것이다. 궁전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간 것은 왕자를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청장을 받은 자신의 권리를 당연히 그리고 꿋꿋이 행사하기 위해서다. 또한 마부가 끌어주는 마차에, 제대로 된 드레스를 입고 가기를 바랐던 것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 라파엘전파의 화가 존 밀레이가 그린 ‘신데렐라’는 바로 그런 꿋꿋한 성격의 여인을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신데렐라는 빗자루를 한 손에 끼고 맨 발 차림에 허름하기 그지없다. 고달픈 일상과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은 감정적으로 흐트러짐 없이 단호하다. 그녀의 다른 쪽 손에는 공작 깃털이 쥐어져 있다. 공작은 자부심을 상징하는 새로서, 여기에서는 신데렐라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상징물로 쓰이고 있다. 이런 신데렐라형 인간은 남녀를 불문하고 주변에서 가끔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기도 하다. 

신데렐라형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수행하고 스스로 부끄러움 없이 살다보면 언젠가는 인정받고 어디선가는 그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믿으며 사는 사람이다. 그렇게 확신하기에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비관하지 않는다. 두 언니처럼 자신을 방해하는 경쟁자들에게도 흔들리지 않으며, 새 엄마처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상사에게도 굴하지 않는다. 신데렐라형 인간은 어려서부터 어느 분야에서나 두각을 나타내고 학교와 집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지내온 자부심 강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 유형은 자존심도 세어서 스스로 나약해지거나 굴욕스러워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어떤 시련이 주어진다 해도 지레 겁먹거나 야단법석을 떠는 법이 없다. 

 

신데렐라는 횡재만 기다리고 있는 한심한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노력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기품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왕자는 분명 최고의 배우자를 선택한 것이다. 백화점에 있는 옷들은 화려한 미래를 잠시 꿈꾸게 해주지만, 그 미래를 가질 자격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화려한 미래는 눈에 띠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자격을 갖춘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이주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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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데렐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그 해석 이상의 것을 표현해주는 그림에 압도되었었다.

훈련소에서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작가의 프레이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올바르게 인도한다. 

밀레이의 그림은 '신데렐라'가 지니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전복시켜 버린다.

신데렐라형 주인공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멸은 특별한 능력없이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운적인 요소에 의해 특별함을 부여받은 것에 기인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경멸이 부당하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작가의 시각은 그림을 통해 전달되고, 새로운 해석은 예술에 힘입어 강한 정당성을 얻는다.

 

2.

"내 가치가 결과로 증명되고나서 나를 알아봐 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을거야.

내 가치가 아직 가능성으로 남아있을 때 나를 알아봐주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난 정말이지 그 사람에게 내 모든 걸 걸 수 있을거야."

 

친구랑 오랜만이지만 여전히 익숙하게 새벽거리를 걸으면서 했던 말. 

내 불안과 소망을 다 담은 생각이었다. 

내가 선호하는 가치들은 뚜렷하고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그것이 인정받지 못한다면 흔들리고 불안에 휩싸일거다. 

내가 선호하는 삶의 방식, 그것을 비추는 다큐멘터리와 영상, 

그렇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추구가 지속성을 지닐 수 있을까. 그것도 내가.

 

방향성은 지녔고 구체성도 눈에 보일듯 잡혀간다. 큰 흐름은 문제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큰 목표를 이루기까지는 사소한 우연들이 결정적이었다. 

혼자 해내기에는 불안하다. 물론 할수도 있을거다.

그렇지만 아직도 곁에서 보아주고 지탱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결과로 인정받는 것에 익숙해지려할 때, 그런 보상이 당연하다고 학습될 때

과정에서 나를 좋아해주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나아갈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익을 요구하지 않는 관계는 입에 담기에 불편할만큼 이상적이지만 어렴풋이 느꼈던 경험은

그래도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행운에 기댈 수만도 없다. 행운도 자격을 갖춘 후 주어지는 기회일 뿐이니까.

 

고등학교때의 나는 밀레이가 그린 신데렐라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저런 얼굴을 지니게 되었을까. 

 

상황에 떠밀리지 않고 스스로 존재가치를 확립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 실존을 택하며 가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뻔뻔하다고 생각조차 안들정도로 상당히 믿어야 한다. 

상황의 힘은 강력하지만, 오히려 그 상황때문에 더욱더 강한 낭만과 환상을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내 가치를 현재의 상황과 결과로만 판단하는 건 하수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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