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예술의향기

【프랑수아 라블레 François Rabelais (1494-1553)】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작성자씨알|작성시간24.05.28|조회수55 목록 댓글 0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1494-1553)】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Gargantua et Pantagrue - 귀스타브 도레(1832-1883).

Gargantua et Pantagruel,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 프랑수아 라블레(59)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1494-1553)】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Gargantua et Pantagrue - 삽화 : 귀스타브 도레(1832-1883).

 

소설 문학의 아버지를 들라면 주저 없이 라블레를 꼽아도 좋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몇몇 “소설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야말로 수사학적 에너지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재치, 언어 유희, 유머 등이 모두 어우러져 있으며,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주춧돌을 놓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블레는 지나칠 정도로 감각적이고, 때로는 외설스럽고 음탕하기까지 한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훗날 『돈키호테』에서 『율리시즈』에 이르는 희극의 포문을 열었다. 아마도 라블레의 가장 위대한 점은 분수를 모르고 흥청대는 천박한 물질주의를 가장 인간적인 재치로 비꼬아 보여줄 수 있었던 그의 자유로운 정신일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거인 가르강튀아와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이다. 제1권에서는 어린 시절 팡타그뤼엘과 그의 익살꾼 친구 파뉴르지가 겪는 환상적인 사건들이 그려진다. 제2권에서는 가르강튀아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구시대적인 교육 방식과 케케묵은 학풍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점이 눈에 띈다. 제3권 역시 팡타그뤼엘의 영웅적인 무훈과 말을 빌려 학문 위주의 교육에 회의를 표한다. 제4권에서 팡타그뤼엘과 파뉴르지는 성스러운 병(甁)의 신탁을 얻기 위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이들의 여정을 통해 지나치게 종교 중심적인 사회를 풍자한다. 제5권에서 그들은 마침내 성스러운 병을 모신 신전을 찾게 되고, “마셔라!”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다소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구성으로 피카레스크 소설의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서술 자체의 발랄함은 매력 그 자체다.

 

전5권, 제1권 가르강튀아(1534), 제2권 팡타그뤼엘(32), 제3권 팡타그뤼엘(46),

제4권 팡타그뤼엘(52), 제5권 팡타그뤼엘(64)이다.

제1권과 제2권은 거인 가르강튀아와 그 아들 팡타그뤼엘 부자(父子) 2대의 거인왕(巨人王)의 탄생과 유년기, 기사도 편력 수련, 초인적인 무훈 이야기이다.

중세 전 기사도의 틀을 답습하면서도, 인간의 존엄과 풍부한 가능성에 눈뜬 르네상스인이 환희와 몽상, 구태의연한 사회적 ·문화적 ·현실적인 알력을 희극적이고 풍자적인 필치로 그린 걸작이다.

제3권 팡타그뤼엘(46)은 팡타그뤼엘왕 측근의 익살스러운 파뉼주의 결혼 가부(可否) 문제로 무녀(巫女)와 점성가 ·신학자 ·의사 ·시인 ·철학자 ·법관 등을 방문하여 그들의 의견을 묻고 박식한 논의를 주고받는 내용으로, 초기의 두 작품에서 보여 준 즐거움과 대중적인 폭소, 그리고 근대적 자기 회의와 모색이 전개된다.

제4권 팡타그뤼엘(52)은 제5권 팡타그뤼엘(64)과 함께 결혼 가부의 신탁(神託)을 구하기 위한 끝없는 항해 이야기로, 섬들을 돌아 다니는 환상적이고 우의적(寓意的)인 것이다.

풍부한 어휘, 다양한 기법, 온갖 언어 표현을 구사한 이 대작은 프랑스 르네상스기의 걸작으로 평가되지만, 작품이 외설스럽고 반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라블레는 당국으로부터 시달림을 받기도 했다.

 

거인국 왕의 왕자로 출생하게 된 가르강튀아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목말라, 목말라" 하고 울었다. 그는 자라나면서 가정교사에게 배웠으나, 학문밖에 모르는 선생이었기 때문에 인간 수업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고 오히려 어릿어릿한 바보로 퇴보했다. 때문에 왕인 아버지는 화를 내어, 이번에는 포노클라트 씨를 선생님으로 초빙했다. 선생은 가르강튀아를 파리로 데리고 가서 나무랄 데 없는 교육을 실시했다.

그가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동안에 그의 나라는 이웃 나라인 피크로콜의 공격을 받아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르강튀아는 서둘러 조국으로 돌아갔다. 피크로콜의 포병들은 대포를 쏘아 댔지만, 거인인 가르강튀아에게는 그것이 쇠파리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승리를 차지한 가르강튀아는 자기 옆에서 용감히 싸워준 장 수도사(베네딕투스회 수사)를 위해 텔렘 수도원을 지어 주었다. 그 수도원의 규칙은 단 한 마디, "네 멋대로 하라"는 것뿐이었다.

가르강튀아는 484세가 되었을 때 아들을 얻게 되어, 그 이름을 팡타그뤼엘이라고 지었다. 그 아이의 식성이란 정말 놀랄 만한 것이어서, 갓난아이인 주제에 4천6백 마리 분의 우유를 마셔 치우는가 하면, 암소 한 마리를 거뜬히 먹어 없애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머리도 또한 영리하기 짝이 없었다.

파리에 유학차 오게 된 팡타그뤼엘은 거기서 파뉘르주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디프소드 사람들이 유토피아 땅에 침입해 오자, 팡타그뤼엘은 파뉘르주와 함께 그들을 정복하러 나갔다. 그리고 3백 명의 거인을 모조리 살해하여 무찔러 버리고 말았다. 침략자들을 모조리 무찔러 버리자, 이번에는 파뉘르주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팡타그뤼엘은 여러 사람에게 좋은 신붓감을 마련해 주도록 물색해 놓았으나, 좀처럼 어떤 여자가 좋은 신붓감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팡타그뤼엘은 광명신(光明神)의 계시를 받기 위하여 파뉘르주와 함께 여행길에 나서게 되었다. 여행 도중 파뉘르주가 염소를 매매하는 장사꾼 단드노와 말다툼을 할 때는 한 마리 염소를 바다로 집어 던지자, 남은 염소 전부가 그 뒤를 따라 바다에 뛰어든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은 뒤에 드디어 광명신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 신에게서 받은 계시는 "마시라"는 한 마디 말뿐이었다. 파뉘르주는 그것을 "술을 마시라"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사실은 "지식의 온갖 샘물을 마시라"는 뜻이었다.

프랑수아 라블레[ François Rabelais ] ​​

프랑스의 작가·의사·인문주의 학자. 프랑스 르네상스의 최대 걸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을 썼다. 몽테뉴와 함께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에스파냐의 세르반테스에 비견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