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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향기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 - 1652)】 "촛불 앞에선 여인"

작성자씨알|작성시간24.11.16|조회수191 목록 댓글 0

【조르주드라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 - 1652)】 "촛불 앞에선 여인"

    

                      조르쥬 드 라투르 Georges de La Tour  "막달라마리아"   

 

 

17세기 바로크시대 화가. 어두운 배경에 촛불 하나로 인물의 심리상태를 강조하는 극단적인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순수하고 경건하 신앙심이 짙게 느껴지는 종교화를 그렸다.

또 거짓과 파렴치가 난무하는 인간 세상의 일면을 냉철하게 꼬집는 풍속화를 그리기도 했다. 생전에 부를 누렸지만 악행을 일삼아 사후 잊혀졌고 20세기 초에 재발견되었다.

 

라투르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주제로 한 내개의 작품을 그렸고 깊은 생각에 잠긴 마리아를 그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촛불과 해골이 있다는 점이다.  테이블에는 거울 앞의 양초가 은은하게 마리아와 주변을 비추고 있다.  마리아는 머리릅 곱게 빗어 내리고 가만히 앉아있다. 마리아의 흰 블라우스가 아래로 깊이 퍄여 속살이 드러난 것은 그녀가 회개하기전 몸파는 여자였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무릎에 둔 것은 뜻밖에도 만인이 기피하는 죽음의 상징 해골이다. 해공은 정물화에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등장한다. 즉 삶속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해갈 수 없으니 덧없고 허무한 욕망이나 집착은 저버릴 것을 일깨우는 도구다. 라트루는 이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테이블 위에 진주목거리를 둔다. 마리아는 진주 목걸이 대신 해골을 가까이에 두는 것으로 욕망의 세계로부터 떠나 있다. 촛불은 제몸을 태워 세상을 비추고 타오르는 속성으로 인해 인간의 유한한 삶을 나타낸다. 즉 촛불은 해골과 유비되어 시간 속에서 소멸됨을 표현한다. 한편 스스로를 태워 세상의 빛이 된 예수님을 뜻하기고 한다. 거울은 타자 없이 오직 촛불만을 비추고 있다. 그림에서 거울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사물이라는 의미에서 깊은 번민과 성찰을 의미한다. 거울이 촛불을 비추는 것은 촛불이 뜻하는인생의 허무함, 세속적 욕망의 덧없음을 자아 성찰을 통해 깨닫고 참회하라는 의미다. 

바로크시대는 빛과 어둠의 대비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지만 그 빛이 그림 내부에서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라투르는 촛불을 통해 빛의 근원을 그림 안에 넣었다. 이로인해 관람자는 촛불이 비추는 가장 밝은 부분을 찾게 되고 라투르가 빛을 통해 강조하는 부분을 더 빨리 알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정지된 순간 해골을 곁에 둔 마리아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경전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동편 막달라 지방 출신으로  일곱 귀신 들린자,예수에게서 치유 받은 여인으로 예수에게 세번씩이나 향유를 부은 특별한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그 후 예수를 따르면서 바리세인 시몬의 집에서 발에 향유를 붓고 두번째는 유월절 엿세전, 예루살렘 근처 그녀와 언니 마르다와 함께 베다니에서 살았던 나사로가 죽었다 살아났던 곳에서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등에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전에 문둥이였던 시몬의 집에서 마리아는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의 발등이 아닌  머리에 붓습니다.   더구나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형되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여인, 예수가 무덤에 묻혔을 때, 또 부활의 날 예수를 찾은 두 여인과 함께 향유를 ㅡ들고 무덤을 찾은 분이고, 예수 역시 부활이 후 처음으로 막달라마리아에게 모습을 드러냈으며,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처음 알린 이도 여제자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성으로서 다른 제자들 중에 "사도들 중의 사도" 로 불리워졌습니다.

 

이렇게 예수와 친밀한 관계이고 남성들과 대등한 관계였던 마리아는 아이러니 하게도 예수의 부활사건 이후 정경에서 사라지고 간혹 외전에 등장할 뿐입니다. 

 

영지주의 외전에 의하면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마리아에 대한 견제와 질투가 마리아를 멀리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의 마리아에 대한 애정과 그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헌신 등으로 수제자 베드로와 경쟁하게 되었고 급기야 베드로는 예수에게 "마리아에게 저희 곁에서 떠나라고 하소서"라고 간청하기도 합니다.

 

 한편 이  막달라마리아가 창녀로 쾌락을 탐닉하다가 예수를 만나 죄를 뉘우치고 회개했다지만 이는 남성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제자로 등장한 여제자 마리아에 대한 시기와 질투, 남성 사회에 대한 위협이 다름 아닌 마리아에 대한 비난과 왜곡된 형태로 나타났다고 보는게 정당한 설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그림은 빛과 어둠의 대비로 장중한 느낌을 주는 바로크시대의 거장 북프랑스 로렌의 조르쥬 드 라 투르(LA TOUR, Georges de  1593~1652)  "촛불앞에 선 막달라마리아" 마치 운명 앞에서 자신의 삶을 웅변이라도하듯 그림  그림 곳곳에 남긴 코드 처럼 언제 꺼질 지 모르는 피묻은 자신의 목소리와 탄식이  숨겨져 있습니다.

     

제빵사의 아들로 나서 로렌공의 회계사의 딸과 결혼, 종교전쟁을 거치며 일약 신분 이동과 부호가 된 그의 파란만장한 생의 반영이랄까? 다양한 행적으로 신비를 불러일으킨 여성, 뭇 사람들의 예술적 소재다뤄지고 다빈치 코드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막달라마리아를 조르쥬 드 라투라도 빼놓지 않고 주재로 삼아 그린 작품입니다. 다만 이 그림은 종래의 성화로서 성스러운 느낌의 그림이라기 보다는 시대의 이단아 카라바죠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빛과 어둠, 현실과 이상, 신비와 의미의 지대를 오가면서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합니다.

 

 관객은 해골을 어루만지고 있는 이 그림 앞에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각별한 제자였던 마리아가 백합이나 장미, 향유간 든 옥합이 아닌 촛불 앞에 해골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림은 사실관계를 떠나 마치 그 시대에 그녀의 약점으로 창녀이기를 바라거나 다짜고짜 그녀가 창녀였다는 듯이 어깨와 다리를 드러낸 채

촛불 앞에서 깊은 상념에 잠기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그림이 말못할  죄에 대한 뉘우침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르쥬 드 라투르는 이 그림이 마리아의 회개가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과 죽음앞에 촛불처럼 흔들리는 생의 언덕에서 넌즈시 삶 속에 찾아왔던 예수란 존재 또 그가 감당해야 했던 율법과 채찍, 십자가가 곧 그녀의 삶이며, 생사가 아무 것도 아니란 듯이 흔들리는 운명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무릎에 얹은 해골을 만지작거리는 용감했던 여인과 그녀의 생을 송두리째 바꾼 위대한 영혼에 대하여 그녀와 께 신비의 지대를 오가며 깊은 애상과 영감에 젖게 합니다.

 

한편 조르쥬 드 라투르 역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부와 명성을 가졌으나 그의 그림과 달리 농민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사건으로 민중의 저항에 부딪쳐 그가 즐겨 그린 촛불 속에 죽음을 어루만지는 운명과 같이 일가족이 모두 학살 당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또 거기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여자들도 많았는데,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마태 27:55~56)

 

                 

                           's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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