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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교회

[마태복음 20장(11.29)]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작성자씨알|작성시간20.11.26|조회수222 목록 댓글 0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복음 20(2020.11.29.)>



2020. 11. 29일- 마태복음 20장(현대어성경)

20:1 하늘나라는 또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느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아침 일찍이 나갔다.

20: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20:3 아홉 시쯤에 품꾼들이 대기하는 곳을 지나다가 보니 몇 사람이 일거리를 얻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20:4 그래서 주인은 그 사람들도 포도원으로 보내며 그날의 일이 끝나는 시간에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 하였다.

20:5 정오와 오후 세 시쯤에도 주인은 나가서 이와 같이 하였다.

20:6 그날 저녁 다섯 시쯤 다시 마을에 나갔다가 몇 사람이 더 서 있는 것을 본 주인은

20:7 '왜 자네들은 하루 종일 일하지 않는가?'하고 물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주인은 '그러면 내 포도원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게'하고 말하였다.

20:8 저녁이 되자 주인은 관리인에게 사람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라고 하였다.

20:9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20:10 그러자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품삯 역시 한 데나리온씩이었다.

20:11 그들이 투덜거렸다.

20:12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이 사람들과 온종일 뙤약볕에서 일한 우리들에게 똑같은 품삯을 주신단 말입니까?'

20: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이보게, 나는 자네에게 잘못한 것이 없네. 자네는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처음부터 정하지 않았는가?

20:14 자네 품삯이나 가지고 가게. 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준 것은 내 마음에 달린 것일세.

20:15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주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내가 친절을 베푼 것이 자네 비위에 거슬린단 말인가?'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다."

20: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열 두 제자를 곁으로 불러

20:18 예루살렘에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다. "나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20:19 그들은 나를 로마 정부에 넘겨 주어 그들의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20:20 그때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절을 하며 청을 드렸다.

20:21 "무엇을 원하느냐?"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 부인이 대답하였다. "주님의 나라가 서거든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20:22 그러자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네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하고 말씀하신 뒤에 야고보와 요한을 향하여 다시 "너희는 내가 마시게 될 그 무서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예, 저희는 마실 수 있습니다."

20: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도 정녕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누가 앉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내 권한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20:24 다른 열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였다.

20:25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왕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을 내리 누른다.

20:26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27 만일 너희가 으뜸이 되기를 원하거든 반드시 종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라.

20:28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온 것이다."

20:29 예수와 제자들이 여리고를 떠날 때 큰 무리가 그 뒤를 따랐다.

20:30 맹인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소리로 "선생님, 다윗의 자손이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20:31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더욱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20:32 예수께서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20:33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으셨다. "선생님,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하고 그들이 간청하자

20:34 예수께서는 측은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에 손을 대셨다. 그러자 즉시 그들은 눈을 뜨게 되어 예수를 따라갔다.


세베대/는 Zebedai'o"/Zebedaȋos는 히브리어 hy:d]b'z]/zebad-iāh에서 유래했으며 ‘여호와께서 주셨다’라는 이름이다. 세베대는 갈릴리의 어부였다. 세베대는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다. 또 세베대는 살로메의 남편이었다.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는 그의 형제 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라는 부름을 받는다.  마가복음3:17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와 그의 형제 요한에게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12제자 중에서 특별했다. 중요한 곳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동행하게 하셨다.


세베대의 아내 살로메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을 앞두신 시점에 그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를 위해서 부탁을 한다.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야고보는 사도 중에서 제일 먼저 순교를 하게 된다. 이런 것을 놓고 볼 때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이 연결된 우리의 삶이기에 세상 사람들과 다른 시각(視覺)으로 봐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형벌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살로메는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다. 살로메는 성경에서 모범적인 인물이다. 비록 자식들을 위해서 청탁은 했지만, 살로메의 믿음은 확실했다.유대의 관습 중 하나는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는 일이다. 따라서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았다. 야고보가 성경에 처음 나오는 것은 주님께서 기적으로 베드로가 고기 잡는 것을 도와주실 때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부르셨다. 그들은 바로 응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는 다시 어부로 돌아갔다. 하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나타나셨다(요21:2). 세베대의 두 아들들은 참 특이했다. 그 중에서 요한은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과 가장 친밀했다. 이렇게 주님과 더불어 친구로서, 동반자로서 지냈던 조건들이 야고보로 하여금 사도직에 올랐다. 주님께서는 사도직의 권위보다는 그것의 자질에 더욱 관심을 가지셨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성질이 꽤 급했다.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한 사람은 먼저 순교하게 하시고, 또 한 사람은 오래도록 남게 하셔서 고난 받게 하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핍박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토록 하셨다.


야고보의 탁월함은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대략 14년 후에 헤롯 아그립바가 유대인들에게 인심을 얻기 위해서 교회 중 몇 사람을 죽이려 했을 때 야고보가 먼저 죽는다. 헤롯 아그립바는 교회 중에서 눈에 띄고 열심을 내는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당시에 교회에서 열렬하게 일하던 사도는 베드로와 야고보였다. 아마도 당국에서는 야고보가 더 유능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범적으로 야고보를 죽였다. 그렇게 해서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서 제일 먼저 순교를 당한다. 유대사회는 사도들을 죽이면 교회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죽였고, Roman-Catholic이 성도들을 죽였으며, 무슬림들이 성도들을 죽였다. 

그러나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라고 했다. 야고보는 헤롯에 대한 적개심을 느끼는 최초의 사람이었다. 헤롯은 야고보와 베드로를 죽으면 예루살렘교회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다. 야고보는 스데반에 이어 초대교회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로 생을 마무리한다.


요한은 사도,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야고보와 형제간이다. 이름의 뜻은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 이다. 복음의 사가로서 요한복음서와 요한 서신, 요한계시록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요한의 상징은 독수리인데, 그 이유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만 기술한 반면, 그의 저서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에 관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탈을 쓰고 온 것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단자 마르키온의 주장인 가현설을 반박하기 위해서 예수의 죽음을 자세히 묘사하는 등 인성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의 복음사가로서의 저술 활동은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에 빗대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 부르셨다(막 3:17). 이 형제들의 활화산 같은 성품은 주님에게 겸손하지 못한 사마리아인에게 불을 내리기를 원했을 때 잘 나타났다.

또 이 형제는 앞으로 올 왕국에서 높은 자리 둘을 주십사고 예수께 간청하는 절제 없는 야망을 갖기도 했다. 주 예수는 이들의 불같은 열망과 경건하지 못한 욕심을 꾸짖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을 삼년간 훈련시켜 폭풍 같은 성격을 잠재웠으며 우뢰를 조용하게 변화시켰다.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를 잡았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 였다(마 10:2),고기잡이는 근육을 발달시키는 힘든 노동이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노를 젓기 때문에 손바닥에는 못이 박혔다. 뙤약볕 아래서 그물을 수선하는 일은 청년들을 구리 빛으로 만들었다.

 안드레와 함께 요한은 세례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되었다. 예수님과 몇 말씀을 나눈 요한은 그가 구세주임을 확신하였다. 요한은 육십년이 지난 뒤에도 처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감격적인 시간을 회상하였다. 이 순간부터 예수님은 요한의 생애에 빛이 되셨다.

사랑이란 서로 주고받는 보완관계이다.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후 요한은 고기잡이하러 돌아왔으나 나중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야고보,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큰마음을 먹고 아버지와 배와 고기와 직업을 버렸다.

  

신학자들은 요한이 복음서뿐만 아니라 서신과 계시록도 썼다고 믿는다. 약1세기 전에 일부 학들이 "요한서신을 쓴 사람이 과연 사도 요한이냐"하는 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복음서의 요한과 서신의 요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요한을 야망으로 가득 차 있고 화를 잘 내며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하여 요한서신의 기록자인 요한은 사랑의 정수라고 설명되어 있다. 요한은 주 예수에 의하여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다. 

요한이 이렇게 변하는 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의 인격 속에는 타고난 성격이 항상 깃들어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잠재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함께 해주시는 권능과 근엄한 용모는 여러 갈래로 찢어진 요한의 옳지 못한 정력을 온유한 길로 인도하였다. 우리는 요한의 강력한 정신이 거짓 교리나 사악한 행동에 대하여 단호히 규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의 성품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격려를 해 준다.

 

우레와 같은 요한의 성격이 온유하게 변한 것은 십자가와 초대교회에의 성심과 용감성도 설명해 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어느 사도보다도 먼저 예수님에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요한이었다.

베드로가 멀리 떨어져서 뒤따르고 있을 때 요한은 용감하게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다(요 18:15-16). 아마 대제사장은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의 사업과 관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과는 서로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대제사장을 알고 있던 덕택으로 요한은 베드로도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 왔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종을 해쳤기 때문에 겁에 질려 베드로가 숯불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재판장에게로 곧장 들어갔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요한은 진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사도 가운데서 오직 요한 만이 십자가 옆에 서서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의에 찬 독설을 내뿜을 때에도 요한은 도망치지 않고 적들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도 유일하게 요한 뿐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바라보시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고 하시고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하셨다(요 19:26-27)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마리아를 모셔온 후 요한은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서둘러 되돌아갔다.

  

오직 요한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최후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고개를 숙이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과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사한 사실을 말한 것도 요한 뿐이었다.(요 19:38-42).

요한은 용감하였으며 최후까지 예수님께 헌신하였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양의 죽음과 부활을 증 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몇몇 사도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셨던 것 같다. 예수님과의 우정을 갖는 게 기뻐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끼리 점점 친밀해진 것은 큰 무리들로부터 더욱 독자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오백여 형제이며(고전 15:6), 모인 무리의 수는 일백 이십 명이고(행 1:15), 예수께서는 칠십 인을 제자로 세웠다.(눅 10:1). 이들 가운데 열 두 사도가 있으며 사도 가운데 핵심이 되는 세 사람이 있으며 이 중에서 사랑 받는 요한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자주 불리어졌다.(요 13:23/20:2/21:7).

요한은 "여호와의 은총을 받는다."는 이름의 뜻 그대로 일생을 살았다. 분명히 요한은 제자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세 제자의 한 사람일 뿐 아니라 예수의 사랑 받는 제자로 불리어진 유일한 사람이며 다락방에서는 그리스도의 품에 앉았다(요 13:23).

초대교회의 문헌을 보면 요한을 예수의 가슴에 기댄, 사랑을 의미하는 "에피스테티오스"(The Epistethios)라고 자주 부르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라는 부탁을 받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들은 사람이 되었다.

  

소아시아 태생으로 요한의 제자이면서 폴리갑(Polycarp)과 잘 아는 이레니우스(Irenaeus)는 요한은 주후 98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을 독살시키려는 음모에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한다. 이 전설은 뱀이 그려진 성찬배가 요한을 상징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 다른 전설은 핍박 받는 동안에 끓는 목욕탕에 던져졌으나 요한은 그 속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에게 해 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섬인 밧모에 요한이 유배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한은 계시록의 인사말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1:9)라고 썼다. 밧모섬에서 도미시안 황제에 의하여 추방된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 대한 메시지를 받고 환상을 보았다. 순교자와 성도와 하늘의 승리를 본 요한의 마음은 기뻤다. 계시록의 마지막인 22장에서 요한은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라고 썼다(계22:8)

트라얀(Trajan)황제는 요한이 밧모를 떠나서 에베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를 따르는 자들의 선교 사업은 그의 목숨이 다할 때 성취되었음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 알 수 있다. 요한은 자기의 영적인 자식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요한은 충분한 보응을 받을 것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들에게 충고했다. 요한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의 선행과 디오드레베의 교만함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요한은 그의 영적인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증거 하기를 원했다. 요한은 대단히 오래 살았다.

예수를 처음 따를 때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요한은 열 두 사도 가운데서 제일 장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형제인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죽었다. 은혜 속에 살고 성장하는 것에 관하여 요한의 생애는 많은 교훈을 준다. 요한은 불같은 성급한 성격을 서서히 가라앉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권세에 순종했다.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며 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밧모 섬은 묵시록의 저자인 요한이 로마의 도미시아누스 박해 시대 유배를 가서 묵시록을 기록한 장소로 알려진 섬이다(계1:9). 이 시기를 대개 94-96년 경으로 보고 있다. 사모스 섬으로 부터 남서쪽으로 4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으로 면적은 34 평방 Km, 남북의 길이는 16 Km, 동서의 폭은 가장 넓은 지점이 10 Km, 해안선의 길이는 63 Km이다.

현재 이 섬의 인구는 약 2500명이다.로마 제국 시대에 이 밧모 섬은 종교, 정치범을 귀양 보냈던 유배지였다. 계시록 저자인 요한은 도미니아누스 황제 때 이 섬으로 유배 와서 약 18개월 동안 살다가 네르바 황제 때에 풀려나서 에베소로 갔다. 현재 이곳에는 밧모섬의 중심지인 호라 마을에 사도요한 수도원이 있고, 묵시록을 썼다는 요한의 동굴, 1713년 경에 세워진 밧모희랍정교회 신학교가 있다. 또한 이곳에 요한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세례 터가 있다.

  

요한은 세베대의 둘째 아들로, 초기에는 형인 야고보와 함께 가파르나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 더불어 어부로서 생활을 연명해 나갔다. 어느 날 게네사렛 호수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손질하다가 우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와 삯군들을 남겨둔 채 그를 따라 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마4,21-42).

  

예수가 그들에게 자신이 마실 잔을 마실 수 있으며 자신이 받을 고통의 세례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묻자 그들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예수는 자신의 잔을 나누어줄 수는 있지만 하늘나라의 영예로운 자리에 앉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미리 마련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줄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요한과 야보 형제와 다를 게 없었던 다른 사도들은 이 형제의 야심을 불쾌히 여겼으며,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훈계하여 제자들이 섬김을 실천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영향으로 제자들의 마음속에 생긴 신분 상승 욕구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였다.(마태 20,27-28)

또한 두 형제는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은 불친절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저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벌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는 나는 사람을 살리려고 온 것이지, 멸하러 온 것은 아니라면서 되려 두 사람을 크게 꾸짖었다. (눅 9,54)

  

이러한 타고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예수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아울러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의 보아네르게스(Boanerges)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 요한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되살리는 기적, 타볼산에서의 그리스도의 변모,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같이 예수의 중요한 행적마다 수제자 베드로와 함께 예수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요한이라고 하면 요한 13:23에 근거, 예수로부터 사랑받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임종하기 직전에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마리아와 요한을 보고 먼저 마리아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요한에게는 “이 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하고 말하며,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였다.

이때부터 요한은 임종 때까지 평생 마리아를 곁에서 모시고 섬기게 된다(요한 19,26-27).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후 마리아 막달레나로부터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사도들 중 가장 먼저 예수의 빈 무덤으로 달려갔으며, 뒤따라오는 베드로를 기다려서 그가 먼저 들어가게 했다.

그제야 요한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차례대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었으며(요한 20,1-5),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한 예수를 제일 먼저 알아보았다(요한 21,7).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사도 3,1)과 사마리아(행8:14)에서 포교 활동을 벌였다. 그러한 요한을 바울은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2:9)전승에 의하면 44년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로 피신했으며 그 곳의 일곱 교회, 즉 에페소,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및 라오디게아 교회를 지도했다고 한다.

 95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때 요한은 군병들에게 붙잡혀 파트모스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저술하다가,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자 사면 받아 에페소스로 귀환하여 요한복음서와 요한 서신을 저술하였다. 그때 너무 노쇠하여 제대로 설교할 수 없어 항상 신도들에게 부축을 받았다고 한다.


요한은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에 대해 신도들이 불평을 하자 요한은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AD 100년 경에 90살의 나이에 사도들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았다고 전해 내려온다.

                                      2020.11.29 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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