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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교회

[마태복음 21장(12.13)] "사석원의 꽃을 진 당나귀"

작성자씨알|작성시간20.12.02|조회수402 목록 댓글 0










   "사석원의 꽃을 진 당나귀."    

                                            < 마태복음 21장(2020.12.6.일)>


2020. 12. 6일- 마태복음 21장(현대어성경)

21:1 예수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감람산 위에 있는 벳바게 동네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예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21:2 말씀하셨다. "너희가 저 동네로 들어가면 나귀 한 마리가 그 새끼와 같이 매여 있을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 끌고 오너라.

21: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하고 말하라. 그러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다."

21:4 이 일은 옛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다.

21:5 '너 시온성아, 기뻐뛰어라! 너희 예루살렘 시민들아, 환호성을 올려라! 보아라, 네 왕께서 네게로 오실 것이다. 그분은 의로우시고 노련한 해방자이시다. 그런데도 겸비하여 나귀를 타고 오신다. 잡종도 아니고 전투용도 아닌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

21:6 두 제자가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 놓았다. 예수께서 올라타시자

21:8 무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겉옷을 벗어 길에 폈으며, 어떤 사람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21:9 군중이 예수를 앞뒤에서 에워싸고 따라가면서 크게 환성을 올렸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비오니, 우리를 구하소서. 한없이 높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여. 호산나!"

21: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온 도시가 들끓었고 사람들마다 "이분이 누구요?"하고 물었다.

21:11 무리는 "이분은 예수님이요.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언자요"하고 대답하였다.

21:12 예수께서는 성전뜰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곳에 있던 장사꾼들을 다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21:13 그리고 그들을 큰소리로 꾸짖으셨다. "성경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느냐?"

21:14 성전뜰 안에는 맹인들과 절름발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께로 나오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1:15 이런 이적을 놀라서 지켜 보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린아이들까지 성전 안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하소서"하고 외치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21:16 "이 아이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립니까?"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듣고 있다. 너희는 '어린이와 젖먹이까지도 주님의 권능을 찬송하오니'라고 한 성경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21:17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베다니로 가셔서 거기서 밤을 보내셨다.

21:18 이튿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시던 예수께서는 매우 시장하셨다.

21:19 그때 마침 길가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리로 가까이 가보셨다. 그러나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는 보이지 않자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 버렸다.

21:20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금방 말라 버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21:21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만일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이와 같은 일뿐만 아니라 더 큰일도 할 수 있다. 너희가 이 산더러 '땅에서 들려 바다로 옮겨 가라'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21:22 너희가 믿고 기도하면 너희가 기도한 것은 무엇이나 다 얻을 수 있다."

21:23 예수께서 성전에 되돌아오셔서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와서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며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는지 알려 달라고 추궁하였다.

21:2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하면 내가 알려 주겠다.

21:25 요한은 무슨 권한으로 세례를 베풀었느냐? 하나님께 받은 권한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받은 권한이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였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고 하면 그런데 왜 요한을 믿지 않느냐고 할 것이요,

21:26 또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라 해도 궁지에 몰리기는 마찬가지일 것이오. 군중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알고 있으니 말이오."

21:27 결국 그들은 "우리는 모르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렇다면 나도 너희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하고 말씀하셨다.

21:28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두 아들을 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가서 '얘야, 오늘은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거라'하고 말하였다.

21:29 그러자 큰아들이 '싫습니다'하고 대답하였지만 후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21:30 아버지는 또 작은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작은아들은 '예, 아버지,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하고는 가지 않았다.

21:31 두 아들 중에 그의 아버지에게 순종한 아들은 어느 쪽이냐?"하고 예수께서 물으셨다. 그들이 "물론, 큰아들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그 말씀하신 뜻을 설명해 주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분명히 못된 짓만 일삼는다는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21:32 세례 요한이 너희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을 때 세리들과 창녀들은 그 말을 들었지만 너희는 듣지 않았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21:33 이제 이 비유를 들어라.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쳤다. 그러고는 포도즙을 짤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운 뒤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다른 나라로 갔다.

21:34 포도를 거두어들일 철이 되자 그는 소출을 받아 오라고 종들을 소작인들에게 보냈다.

21:35 그런데 소작인들은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 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다.

21:36 지주는 다시 더 많은 종들을 보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1:37 마지막으로 주인은 그의 아들을 보내며 '내 아들이야 함부로 대하지 않겠지'하고 생각하였다.

21:38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이 오는 것을 보자 서로 말하였다. '저기 상속자가 오는구나. 잘됐다. 저놈을 죽여 버리고 이 포도원을 우리가 차지하자.'

21:39 그러고는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다 죽여 버렸다.

21:40 그렇다면 포도원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 주인이 소작인들을 어떻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21:41 유대인 지도자들이 대답하였다.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그 포도원은 제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세줄 것입니다."

21:42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집 짓는 이 쓸모없다 버린 돌이 이제는 어떤 돌보다도 더욱 소중한 돌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이루신 이 일 그저 놀랍기만 하여라. 엄청나기만 하여라.'

21:43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늘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소출을 잘 내는 백성들에게 그 나라를 맡기실 것이다.

21:44 이 진리의 반석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모두 깨어질 것이고 이 돌 밑에 깔리는 사람은 먼지처럼 흩어지고 말 것이다."

21: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지도자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을 알고

21:46 예수를 붙잡으려 하였다. 그러나 예수를 예언자로 믿고 있는 군중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사석원 "꽃을 진 당나귀" 를 다시 봅니다.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어릴적 누구나 신나고 재밌게 불렀던 전래동요 '고추 먹고 맴맴'

이 노래에 등장하는 동물은 다름아닌 당나귀, 이 노래 뿐만 아니라  당나귀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당나귀와 바보 부자 이야기

이솝우화에서는 사자가죽을 쓰고 왕노릇한 당나귀, 짐 옮기는 당나귀 소금과 솜을 싣고 가다 제 꾀에 물에 빠져 죽은 당나귀, 아라비안나이트에서도 알라바마와 40명의 도둑에 이 당나귀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려 놓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당나귀는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등장합니다. 당나귀가 원래 그렇게 멍텅구리같은 짐승이 아닌데 말 잘 듣고 묵묵히 맡은 바 일에 충실하기만 한 당나귀로선 여간 기분 나쁘고 억울한 대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보의 대명사로 푸대접을 받아온 당나귀에게 그 오명을 한꺼번에 뒤집을 엄청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옛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실 때 잘나고 야무진 동물이 아닌 당나귀를 타고 들어간 것이죠. 일류사 엄청난 사건에 예수님은 벤츠나 크라이슬러를 타고 간 게 아니라 구루마를 타고 간 셈. 그 후로 당나귀는 경전에 예수님과 함께한 짐승으로서 이름을 얻고 제대로 임자 잘 만나서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지요.


세월이 흘러 예수님처럼 이 당나귀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있으니, 다름 아닌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화가 1위에 꼽힌 미술계의 인기화가 사석원님(1960. 서울) 잠시 들꽃처럼 예쁘고 나귀처럼 우직한 그의 길을 밟아봅니다. 반 고흐에 빠져 초등학교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98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최연소로 대상을 차지한 바 있으며, 외모에 풍겨나는 이미지는 사람좋은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그의 독특한 예술편력은 내면 깊은 곳에서 활화산같이 타오르는 자유혼의 발로. 동양화를 전공하고 그곳에서 안주하려고도 했으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발길을 돌려 미술의 고장 파리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동서양의 영감을 확 휘적시고도 그것으로도 배가 고픈 나머지 아프리카의 뜨거움 속으로 그가 그린 황소처럼 돌진해 갑니다. 마침내 동양의 짙은 선과 농담, 여백, 서양의 강렬한 색채, 아프리카의 뜨거운 생명력을 마구 섞어 자신만의 색깔을 창조해낸 화가의 날선 몸부림이 잦아들 무렵, 돌연련 밖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그 자신 안에 그렇게 찾아 헤메던 색채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니..! 결국 그는 보물찾기를 마치고 끝내 자신에게 돌아오고야 말지요.

 

어릴적 방학때면  포천의 외갓집에서 가서 만난 닭, 오리, 소, 돼지며 강아지, 부엉이까지 온통 그의 가슴을 적시고 파고들던 동물, 학교 다닐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소 돼지를 그리다가 선생님에게 귀싸대기를  맞으면서도 기어이 그려낸 아픈 동물들. 성인이 되어 다시 어린이의 세계를 두드려 그 때 놀던 동물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추억 속의 동물을 하나씩 되살려 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 손길 닿는 곳에 동물들도 저마다의 표정과 성격으로 살아납니다. 그가 웃으면 호랑이도 웃고, 성질이 나면 소처럼 맹렬이 돌진합니다. 순간 삐치면 수탉처럼 삐치고, 잠자리를 보고 웃으면 좋아 죽습니다. 토끼는 꽃이 되어 잠을 자고 거북이는 불볕더위에 안간힘을 씁니다. 당나귀는 무거운 소금가마나 저보다 큰 무거운 등짐을 지는 대신 형형색색의 꽃을 지고 사랑의 장미를 물고 꽃밭을 걷습니다.

 

그는 어리숙하고 우수꽝스러운 바보 당나귀는  안중에 없습니다. 순하고 착하고 인내심 많은 당나귀, 임자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해 뜨면 해 뜨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멀쩡하면 멀쩡한 대로 고달프면 고달픈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행길이면 행길, 시냇물이면 시냇물, 산마루면 산마루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일생 등짐 지고 자신의 길을 가는 착한 당나귀 맑은날 화가는 당나귀의 등에서 무거운 소금가마를 내리고 옛날 예수님이 나귀타고 가시는 걸음걸음 사람들이 꽃을 뿌린 것처럼 가볍고 향내나는 가장 좋은 꽃을 걷어다 나귀 등에 싣습니다. 나귀는 꽃 한송이 입에 물고 흥에 겨워 두둥실 남은 길을 갑니다.

 

"거칠고 고된 생활 속에서 꿋꿋이 착하게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상징적인 동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당나귀를 많이 그렸고 그 당나귀에 주는 선물로 동화처럼 그림을 그렸지요."

 

그의 말처럼 내면의 어린아이를 찾아 동화처럼 그림을 그려서인지' 그의 그림은 딱딱하거나 자못 심각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림 속에서 여러가지 표정으로 울고 웃는 동물들은 어릴적 그가 만난 동물들에 대한 그의 마음속 생각의 편린이고 그 동물들과의 조우와 사귐을 통해서 잦아들었던 한 인간의 생명력이 회생하고 색깔이 살아나고 비로소 살맛을 회복하게 된 것이지요. "색을 섞지 않고 밝은 색을 쓰고 싶었는데 결국 종착역은 어린이들이 쓰는 색이었어요."

자기 안의 어린 아이를 찾아 그 어린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그림 속의 동물들과 만나 웃고 실컷 놀다가 그냥 행복해져버린 사석원 화가. 그의 어린아이 같은 밝은 표정만큼이나 꽃을 지고 꽃을 문 당나귀 개그맨처럼 은근 살짝 웃어버리는 호랭이 맨 먼저 핀 매화에 놀라 성질 난 수탉, 난 데없이 산 속을 뛰쳐나온 황소, 어쩜 당나귀에게 꽃을 씌운 대신 자신이 동화 속의 당나귀가 되어 우화 속의 당나귀보다 더 웃겨버리는 솜씨에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화가로 그를 꼽은 게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자왈 영무자 방유도칙지 방무도칙우 기지 가급야 기우 불가급야

子曰 寧無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基知 可及也 基愚 不可及也 

자왈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적에는 지혜로왔고

나라에 도가 없을 적에는 어리섞은 체 했다.

그의 지혜로움은 따를 수 있지만 그의 바보스러움은 따를 수 없다."


예수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감람산 위에 있는 벳바게 동네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예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너희가 저 동네로 들어가면 나귀 한 마리가 그 새끼와 같이 매여 있을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 끌고 오너라. 

벳바게는 부자들은 안 먹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나 먹는 설익은 무화과 열매 파게나 따먹는 동네라고 말 할 수 있다. 이 동네에 훌륭하고 멋진 말이 있을 수 없다.이 동네에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당나귀가 고작 가지고 있는 운송수단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 전에 이 당나귀를 이용한다. 이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과 수평적으로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자전거를 공유에서 쓰는 지역이 있는 것처럼 이 당나귀 역시 벳바게의 사람들이 아무나 나눠 쓸 수 있는 운송수단이 아니었을까?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아무나 따먹을 수 있는 무화과 첫 열매 파게 처럼 당나귀 역시 모두가 다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튿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시던 예수께서는 매우 시장하셨다. 
그때 마침 길가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리로 가까이 가보셨다. 그러나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는 보이지 않자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 버렸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시던 중 시장하셔서 따 드시고자 했던 무화과 열매는 파게가 아니라 테에나였다. 그 나무는 파게나 테헤나 중 아무것도 맺지 못했다. 아니면 파게를 따먹고 테헤나가 열려야 하는 데 예루살렘의 무화과 나무 주인이 테헤나를 모두 다 수확을 거두었든지 말이다.

배고픈 사람들이 따먹을 수 있는 파게를 예루살렘 성민이 다 따먹었다고 하면 가난한 사람을 먹고 살게 없다. 이런 무화과나무라면 있으나마나한 과수일 뿐이리라. 벳바게의 무화과나무 열매는 누구나 따먹을 수 있었지만 예루살렘의 무화과나무 열매는 아무나 먹을 수 없었음이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향하여 노여워한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배고프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는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바리세인, 기득권자에 대한 분노이다.

그들이 가진 것을 조금만 나누어도 민중들이 배고파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전뜰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곳에 있던 장사꾼들을 다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그리고 그들을 큰소리로 꾸짖으셨다. "성경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느냐?" 


예수님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음을 탄식하고 분노했다. 오늘날도 검찰과 언론의 행태를 보면 우리 사회에 부조리와 부패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이 이런 현실을 보면 이와 같은 현실과 부패를 들어 엎었으리라!  예수님이 신성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에 대하여 분노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이 나라의 부정부패에 대하여 꾸짖고 같이 분노해야 하리라.



                           2020.12.13   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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