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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金熹(1889 ~ 1920)】 「1920년 5월 의군단 통신과장」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11|조회수14 목록 댓글 0

【김희 金熹(1889 ~ 1920)】 「1920년 5월 의군단 통신과장」

 

함경북도 무산군(茂山郡)에서 출생하였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89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의군단(義軍團)에 가입하여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무렵 간도로 이주하여 사립학교 13개소를 설립하고 교육에 힘썼다. 1919년 5월 25일 만주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의란구(依蘭溝) 의림평학교(依林坪學交)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모인 한국인은 500여 명이었다.

 

이후 1920년 5월부터 의군단(義軍團) 활동에 가담하였다. 의군단은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한다. 의군단에 소속되어 통신과장으로 대한의정서(大韓軍政署)와 연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한편 1920년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에게 패배를 당한 일본군은 그 해 8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이어 훈춘사건(琿春事變)을 빌미로 10월 7일 대규모의 병력을 간도로 출병시켰다. 그러나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일어났던 청산리전투에서 크게 패하는 등 차질을 빚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1921년 4월까지 수많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방화·약탈·학살을 일삼았다.

이때 의군단 통신부장으로서 독립운동을 이어가다가 1920년 10월 무렵 간도참변으로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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