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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일형 咸一亨 (1861 ~ 미상)】 「1920년 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 용천군 군감」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16|조회수19 목록 댓글 0

【함일형 咸一亨 (1861 ~ 미상)】 

                    「1920년 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 용천군 군감」

함석헌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부나면(府羅面) 원성동(元城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7년 당시 67세인 것으로 보아 1861년생으로 추정된다. 씨알 함석헌(咸錫憲)의 5촌 숙부이다. 종교는 기독교이다. 1920년 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 용천군 군감(郡監)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주도하였다.

1907년 용천군 부나면 원성동 일신학교(日新學校) 교장을 지낼 때는 일본에게 진 빚 1300만 엔을 민족의 힘으로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5월 교감 장두범(張斗範) 등과 학생 및 학부형·마을 주민을 모아놓고 국채보상에 대한 연설을 하고 기부금을 모아 『대한매일신보사』에 보내기도 하였다. 1908년 8월에는 용천 덕일학교(德一學校)의 설립을 인가받아 교육 계몽 운동에도 앞장섰다.

1920년 1월 12일 임시정부의 연통제 기관인 용천군 군감에 임명되었다. 1920년 11월 광복군사령부 참사 홍식(洪植) 등이 군자금 모집을 위해 용천군 양광면(陽光面)에 잠입했다가 일제 경찰에 사살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 단체와 연계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27년 6월 15일에 동아일보사 낙성기념사업(落成記念事業)의 민간교육공로자(民間敎育功勞者)로서 조선 교육계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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