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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金政植(1888 ~ 1941)】 「부민단(扶民團), 서로군정서 등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18|조회수16 목록 댓글 0

【김정식金政植(1888 ~ 1941)】

             「부민단(扶民團), 서로군정서 등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

1888년 6월 1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천전동(川前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자는 일중(一中)이며, 이명은 한자가 다른 김정식(金正植)과 김욱이(金郁伊)를 사용하였다. 한학자 김소락(金紹洛)의 셋째 아들이고, 위로는 큰형 김조식(金祚植)과 둘째 형 김홍식(金洪植)이 있다. 김소락은 한학자 박주대(朴周大)의 문인이었고, 어려서부터 아들에게 한학을 가르쳐 주었다. 1907년 유인식(柳寅植)을 중심으로 김병식(金秉植)·김동삼(金東三)이 경북 안동군 임하면에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였는데, 이곳에서 학문을 배웠다.

 

경술국치 이후, 대한협회(大韓協會) 안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던 이상룡(李相龍)은 김동삼을 비롯한 양반 일가 김대락(金大洛) 등과 같이 만주지역의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이상룡은 김대락의 매부이고, 김소락은 김대락의 둘째 동생이므로, 이때 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 환런현(桓仁縣) 항도촌(恒道村)을 경유하여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정착하였다. 당시 일본의 압박과 만행으로 많은 한인(韓人)들이 만주지역의 서·북간도로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이러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독립군기지를 건설하여 광복을 이루고자 하였다.

 

서간도에서 이주 한인들을 기반으로 경학사(耕學社)·공리회(共理會)·부민단(扶民團) 등 자치기구가 설립되었는데, 공리회 설립 당시 큰아버지인 김대락이 회장을 맡아 조직을 이끌 때 보좌 역할을 담당하며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지역에서 조직된 여러 무장투쟁단체가 통합하며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로 개편될 때 대원으로 참여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속 부대로 의용군이 편성되자 이에 가입하였다.

 

만주지역의 독립운동이 거세지자 일제는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여 만주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였다. 1920년 10월 일제의 ‘토벌작전’에 의해 만주지역의 한인 마을과 독립운동세력이 큰 피해를 입자, 이를 재건하기 위해 1921년 3월 초에는 의용군 대원들과 같이 국내로 진입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추후 행적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붙잡혀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옥에서 나온 이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哈爾濱) 아청현(阿城縣) 취원창(聚源昶)을 개척하여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4년에는 연관상(煙管商)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추후의 행적은 사료를 통해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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