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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원 權九瑗(1924~2017)】 「1945년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활동」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23|조회수24 목록 댓글 0

【권구원 權九瑗(1924~2017)】 「1945년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활동」

1924년 2월 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일직면(一直面) 광연동(光淵洞) 이동리에서 아버지 권난상(權蘭相)과 어머니 서갑준(徐甲俊)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호는 현오(玄悟), 이명은 권준호(權俊豪)다.

1931년 일직공립보통학교에 입학, 4학년 때 고향에서 가까운 의성군 고운사(孤雲寺)의 등운학원(騰雲學院)으로 옮겨 한문, 불교, 중학교 1, 2학년 과정을 배웠다. 1942년 흥남공업학교 분석화학과를 졸업하고 흥남 질소비료공장에서 1년 반 동안 근무하였다.

 

1943년 초 서울 노량진에 있던 연료선광연구소(燃料選鑛硏究所)에서 화학 발파 강습과 광산 측량 기술 교육을 받고, 10월 서울 대동광업주식회사에 취직하여 현장인 충남 공주의 흑연광업소에서 근무하였다. 1944년 1월 고향에 갔다가 공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한인 형사와 다투다가 공주경찰서에 붙잡혀 고문당하였다.

1944년 10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전선으로 이동하였다. 한커우(漢口)에 있는 히노키(檜) 부대에 배속되어 같은 해 12월까지 훈련을 받았다. 1945년 1월, 한커우에서 헝양(衡陽)으로 이동하던 중 후난성(湖南省) 인근의 정사교(汀泗橋)에서 박해옥(朴海玉)·김철환과 함께 탈출하였다.

 

1945년 2월 장시성(江西省) 이춘(宜春)에 도착하여, 학병 출신인 박정렬(朴貞烈)·유영중(柳英中)을 만나 함께 중국군 제9전구 사령부가 있던 구이동(桂東)으로 이동하였다. 당시 중국군 제9전구 지역에는 일본군을 탈출한 한적 사병들이 모여들어 중국군과 협동으로 적문서 번역·포로심문·정보 수집 및 분석과 같은 대일작전에 가담하였다. 한국광복군 공작대는 중국군 제9전구 내 한인 병력이 증가하자 이들을 모아 별도 광복군 구대로 편성하고자 하였다. 이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일본군을 탈출한 한인 병사를 대원으로 확보하여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를 편성할 때 여기에 참가하였다.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소속으로 적 후방 지구에 침투하여 사령부에서 제작한 대적 선전물을 배포하기도 하고, 구대 본부에 근무하며 후방 잔류 대원과 새로 입대하는 대원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45년 9월 장시성 펑청(豊城)에 집결하여 한커우, 난징(南京), 상하이(上海)를 거쳐 1946년 6월 인천으로 환국하였다. 1946년 경찰에 입문하고, 1948년 경찰전문학교 간부후보생 제3기로 들어가 1960년까지 경찰 간부로 지냈다. 1964년 서울시청 내무국 감사과 감사2계장을 비롯하여 공직을 거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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