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시대에 소옹(邵雍,1011~1077)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16세부터 소문산(蘇門山)의 백원사(百源寺)에서 머물면서 공부를 시작했고, 북해(北海)의 <정지(挺之) 이지재(李之才)>를 스승으로 모시고 <하도낙서•복희8괘•천문•역법>을 배워서 크게 깨우쳤다.
소옹(邵雍)은 유명한 역학가(易學家)로 선천학(先天學)의 창시자이다. 1077년에 67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철종 원우(元祐) 연간에 강절(康節)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이렇게 그의 시호가 강절(康節)이었기에 주로 소강절(邵康節)로 불리어왔다.
소강절(邵康節)의 철학은 도가(道家)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儒敎)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킴으로써 특이한 수리철학(數理哲學)이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는 선천학(先天學)이라는 새로운 역학(易學)을 창시하고 만물은 모두 태극(太極)에서 말미암아 <변화•생성>한다고 주장했다.
●숫자로 천지(天地)의 이치를 헤아리다
그는 어려서부터 입신양명의 꿈을 키웠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과거를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옛 사람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더 옛날의 사람과도 소통하였는데, 나는 지금 내 주위 사방(四方)에도 못 미치는구나.”하며, 집을 떠나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도(道)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 후, 다시 나가지 않았고 더 이상 과거공부도 하지 않았다.
진정한 소통은 입신양명 같은 외적 확대가 아니라 우주와 직접 연결되는 내면의 확장이라고 깨달은 것일까.
이 무렵 이지재가 소강절이 학문을 즐긴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방문했다. 이지재는 주렴계의 스승인 목수의 제자로 고문에 정통한 학자이자 관리였다. 이지재는 소강절에게 물리(物理)와 성명(性命) 공부를 권했다. 뜻이 깊으면 그 방면에 반드시 스승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그런데 소강절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스승이 제 발로 찾아와 스승 되기를 청했다. 이때부터 소강절은 춘추를 배우고 역학(易學)을 전수받았다. 이지재는 그의 잠재력과 학문적 그릇을 꿰뚫어 보았다. 훗날 소강절의 사상이 주자학(신유학)의 사상적 기틀이 된 것을 보면 이지재의 안목도 대단하다고 하겠다.
소강절은 이지재로부터 도교의 연단술에 운용되던 선천도(先天圖)를 전해 받았고, 그것을 재해석하여 ‘선천역학’이라는 역학의 새로운 해석체계를 세웠다. 이 이론의 핵심은 ‘가일배법’(加一倍法)이라는 단순한 원리에서 시작된다.
가일배법은 하나가 둘로 나뉘는 법칙으로 2 0, 2 1, 2 2, 2 3… 2 n식의 배수로 진행된다. 이렇게 두 배로 분화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만물생성의 이치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 소강절은 숫자 ‘4’에 주목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역사는 ‘4’라는 수의 변천과 순환일 따름이다. ‘춘·하·추·동’과 ‘역·서·시·춘추’로부터 시작된 하늘과 인간의 네 국면은 그 순서대로 생(生; 낳고), 장(長; 자라고), 수(收; 수렴하고), 장(藏; 저장한다)하는 사이클을 가지고 2배수씩 분할된다. 그렇게 분할되어 낳은 것 중에는 ‘인·의·예·지’ 같은 윤리적인 이치도 있고, ‘문왕·무왕·주공·소공’ 같은 역사적 인물도 포함된다.
이런 식으로 확장해 가면 우주만물과 그 시공간을 모두 헤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장수장의 운명적 리듬을 통해 만물의 운명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 우주 1년의 창조 주기, "129,600년"
예를 들어, 소강절의 대표 이론인 원회운세론의 ‘원(元)·회(會)·운(運)·세(世)’는 우주의 시간단위로서 이것은 지구의 ‘연·월·일·시’의 주기성과 통한다. 즉, 원(元=12회)은 우주의 1년이고 지구의 시간으로는 12만 9600년에 해당하고, 회(會=30운)는 우주의 한 달이며 지구시간으로는 1만 800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운(運=12세)은 우주의 하루로서 지구시간으로 360년이고, 세(世)는 우주의 한 시간, 지구시간으로는 30년이다. 이로써 인류를 포함한 만물의 역사는 ‘원회운세’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준칙을 갖게 되었고, 천지(天地)와 인간은 같은 패턴의 시간성 안에서 물리와 생리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원회운세와 더불어 관물내편과 관물외편 그리고 성음율려를 더해 대작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가 완성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예지력은 ‘초월적 능력’이라기보다, ‘숫자’와 숫자에 연결된 이치를 통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관찰한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사물의 관찰, 즉 관물(觀物)이 객관적이기 위해서는 편견의 주체인 ‘나’의 판단을 소거해야 한다. 그래서 소강절은 ‘나로써 사물을 보(以我觀物)’지 않고, ‘사물로써 사물을 보기(以物觀物)’를 강조한다.
결국, 소강절에게 관물은 주체를 만물 속에 깃들게 하는 동시에 만물이 스스로의 이치를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우주만물이 되고, 내 마음의 움직임은 곧 천지자연의 변화와 다르지 않다. 이를 일컬어 ‘심법’(心法)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수의 이치를 꿰고 마음의 변화를 읽으면 만사를 알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예지력의 원천인 셈이다.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점이 바로 우주 시간으로 가을의 문턱(가을로 넘어가기 직전)인 것이다.
☆ 진법. 참법이며 정법이다. 이것은 곧 가을개벽의 문턱에서 일어나는 인류 문명개벽의 참된 도리를 말한다. 삼변성도(三變成道)의 원리에 의해 도운도 3변이 되어야 난법이 종결되고, 진법이 열리게 된다.
“몸은 천지 뒤에 태어났지만 마음은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네. 천지도 나로부터 나오는데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리!”
공부하고 공부하느라 20대 후반에서야 겨우 장가를 가게 되었고 결혼 후 신부와 첫날밤을 맞았으나 너무 긴장한 탓이었는지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났는데, 닭은 아직 울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심심하던 차에 산•가치(산대: 주역•점치는 젓가락)를 뽑아 자신의 점을 치게 되었다.
신혼 첫날 비록 하룻밤을 잤지만 과연 자신의 아이가 잉태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점을 친 결과 아들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이었지만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날이 밝아지려면 멀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평생운수를 점쳐보게 되었고 아들이 자기보다는 못해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 팔자였다.
이어서 <내 아들이 낳을 내 맏손자의 운명>이 궁금해졌다. 점괘의 결과 그 손자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5대손에 이르렀는데, 이 5대손이 중년에 이르러 <역적의 누명>을 쓰고 사형당할 수도 있는 운명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그 점괘 이후로 고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소강절도 늙어 임종을 앞두게 되어 자손들에게 유언하는 자리에서 맏며느리에게 비단으로 싼 함(函)을 하나 내어 주면서 <앞으로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생기거든 이 함(函)을 열어 보거라…만약 너희 대(代)에 큰 일이 생기지 않거든 네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그 맏며느리 대(代)에 아무 일이 없으면 또 그 다음 대(代)의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하여…대대(代代)로 이 함을 전하라>고 하였다. 유언은 실행되어 맏며느리에게서 또 그다음 맏며느리에게로 함(函)은 전해졌고…그런데 5대 손부(孫婦)에게 와서 진짜로 집안에 큰 사단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5대 손부(孫婦)의 남편이 느닷없이 임금에 반역하는 역적(逆賊)의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하옥되었다. 국법에 역적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어 가문의 명예가 더렵혀질 수밖에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가문이 아예 망해버릴 순간이었기에 백방으로 구명할 길을 찾았으나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밤새 끙끙 앓던 소강절의 5대 손부(孫婦)가 새벽녘에 갑자기 시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다. 급히 벽장을 열어 함(函)을 꺼내어 비단 보자기를 풀어보니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지금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즉시 이 함을 형조상서에게 전하라>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소강절의 5대 손부(孫婦)는 급히 집사를 불러 의관을 갖추게 한 후에 함(函)을 들려 형조상서를 찾아가서 전하라고 하였다. 낙양성 중에서도 형조상서네 집은 거리가 좀 먼 곳에 있었지만 집사는 달리다시피 하여 그 집에 당도했다. 형조상서는 마침 아침을 먹고 의관을 차려 입고 입궐을 준비하던 참이었는데 하인이 와서 아뢰기를 <소강절 선생의 유품을 가지고와서 나리를 뵙고자 청하는 사람이 왔다>고 하는 게 아닌가.
형조상서는 그 말을 듣고 비록 100여 년 전에 작고했지만 워낙 명망이 높은 <대정치•대문장가•대학자•대시인>이고 특히 동서고금을 통틀어 주역에 통달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었던 분의 선물을 방안에 앉아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당까지 나아가 돗자리를 깔게 하고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그 유품 함(函)을 받는 순간 자기가 방금 앉아 있던 사랑채가 통째로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형조상서는 급히 함(函)을 열어 보았는데 함(函)속에는 글자 10자(字)가 쓰인 채로 접혀진 하얀 창호지 1장만 뎅그러니 있었던 것이다.
놀란 눈으로 형조상서가 하얀 창호지를 펼쳐 보니 적힌 글은 놀랍게도 <활여압량사(活汝壓樑死)•구아오대손(救我五代孫)>이라 적혀 있었다. 즉 <당신이 대들보(梁)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었으니…당신도 즉시 나의 5대손(代孫)을 구해 주라>는 뜻이었다. 형조상서는 지시에 따라 즉시 재수사하여 소강절 선생의 5대손의 무죄함이 밝혀졌으니 이 얼마나 신묘(神妙)하고 기적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소강절은 살아생전 자기 자손을 구하기 위해 5대 손자 대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점괘를 뽑아보고 대들보에 깔려 죽을 형조상서의 운수(運數)를 150여 년 전에 미리 알아냈던 셈이다.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늘과 땅이 함께 놀랄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내용이 과연 인간의 영역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인지 또 우주를 관장하는 신(神)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라 해야 하는 것일까? 소강절이야 말로 신(神)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걸출한 <대문장•대학자•대예언자>의 후예(後裔)들이 어쩌다가 가끔 1명씩 나왔다. 전해오는 옛말에 ❶ 수명(壽命)은 <삼천갑자(3,000×60甲子)=18만년> 동안이나 오래 살아 BCE 49년까지 살았던 신선 동방삭(東方朔)이고 ❷ 부자(富者)는 중국 서진시대 사치의 끝을 보여준 부자의 대명사 석숭(石崇)>이며 ❸ 문장(文章)은 당대 중국의 최고 시인 이태백(李太白)>이고 ❹ 인물(人物)은 당대의 시인이자 병법가였던 풍류공자 풍류제일기남 두목지(杜牧之)이며 ❺ <예언(豫言)•예측(豫測)•예지(叡智)>로는 송대 최고 예언가 소강절(邵康節)>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주역(周易)을 깊이 연구한 소강절은 관매점(關梅占)을 창안해 냈다. 그는 ❶ 평소에 앉아서 백리를 내다보고 ❷ 누워서 천년을 내다보는 재주가 있다. 소강절은 늘 <영혼(靈魂)과 신(神)의 유무>에 대한 분명성과 함께 귀신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음을 설명했다.
a.청야음(淸夜吟)-소옹(邵雍)
달 밝은 밤에 읊다-邵雍
月到天心處(월도천심처) : 눈부시게 달은 밝고
風來水面時(풍래수면시) : 바람은 물 위를 기어 오는데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 : 이렇게 시원한 이 한밤을
料得少人知(요득소인지) : 뉘라서 알고 즐기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