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순희 方順熙 (1904~1945)】 "대한의 여성과 청년들이여, 모두 일어나라"
제31회‧34회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유일한 여성의원, 방순희
1904년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출생한 방순희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친러 공산주의 인물로 분류돼 일제의 극심한 경계를 받아 상해로 활동지를 옮겼다.
그는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정원 함경남도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31회 정기의회에서 새로 선출된 18인을 포함해서 제적의원 33인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방 선생은 제34차 임시의정원회의에서도 유일한 여성의원으로 참석했다.
이어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한 외교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유년시절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낸 방 선생은 유창한 러시아어를 기반으로 대 소련대표로 선임되어 중경에 있는 소련대사관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펼쳤다.
1940년대 이념을 초월해 임시정부 내의 좌우합작이 이뤄지자, 여성들도 한국혁명여성동맹을 만들어 민족통일전선 대열에 합류했다. 방순희 선생은 집행위원장 겸 서무부주임으로 임명되어 활동을 주도했다.
이어 1943년 2월 23일 충칭 임시정부 집회실에서 재건된 한국애국부인회의 부주석에 선임되어 독립운동 지원 및 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국가 건설과 조국광복에 여성들 역시 주체로서 나설 것이며, 남녀평등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겠다고도 천명했다.
1945년 9월에는 애국부인회 회원들과 중국군으로부터 인계받은 23명의 한국 출신 위안부 여성들에게 임시정부의 존재를 알리고 다시 교육하는 등의 보호 활동을 맡아 수행했다.
구국의 책임이 어찌 남자들만의 몫이겠습니까? 우리 3천만 한국민족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 아닙니까? 남녀의 역량을 합하여 각기 맡은바 직분과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세계, 진선진미의 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방순희 선생이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한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 선언서 중에서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방순희 선생을 2014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얻기 위해 대소련 외교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한국독립당 중경구당 간부, 한국애국부인회 부주석,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선생은 1904년 1월 30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했다. 1911년 부친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 그곳에서 성장하며 민족의식을 키워나갔다. 1918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국으로 돌아와 여성교육의 전당인 정신여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4년 뒤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 신한촌 백산소학교의 교사가 되어 재러 한인 아동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소비에트의 한인학교 폐쇄 정책에 따라 더 이상 교육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반제국주의 혁명운동에 뛰어들어 북풍회에 가입하는 등 선전활동에 참여하였으나 일제의 치안유지법 발효로 감시 대상이 된 선생은 국내에서 활동을 이어 갈 수 없게 되었다.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의정 활동을 중심으로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립운동 진영에 참여하였다. 분열과 갈등 속에서 혼란에 빠진 독립운동계의 통합을 위해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등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량을 결집하였고, 독립운동계의 좌우합작 운동에 동참하여 독립의 완성과 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쉼 없이 분투하였다.
선생은 국내외 동포 여성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면서 남편 내조에 그치지 말고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또한, 선생은 소련 전문가로서 주중소련대사관을 상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얻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선생은 1944년 중국 국민당정부와 임시정부 간의 협조로 결성된 대적선전위원회(對敵宣傳委員會)를 통해 일본군으로 참전한 한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방송을 하면서 반일의식을 고취시키고, 일본군의 만행을 동맹국과 국내 동포들에게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선생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가장 오랜 기간 의정활동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에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