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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詩선

슬리퍼 / 이현승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06|조회수22 목록 댓글 0

슬리퍼 / 이현승

꿈에 신발을 잃어버렸다.

익숙한 식당에 우르르 가서 먹은 점심이었는데,

꿈이란 이상도 하지. 익숙한 식당인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우르르 가서 먹었는데, 정확하게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

 

내 신발만 없었다. 두세 번 신발장을 뒤져도 나오지 않자

곧바로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너무 식상한 꿈이잖아.

그래도 우르르 몰려나가는 사람들의 뒤꽁무니만 보다가

남겨지는 기분은 별로여서 진짜 신발을 잃어버린 것처럼 언짢았다.

 

도대체 어떤 원만한 분이 남의 신발을 신고 간 것일까.

도대체 어떤 사람의 말 못할 이유가 내 발을 묶어놓은 것일까.

훔쳐간 것이 아니라면 결국 한 켤레의 구두는 남겨질 테지.

식당 주인이 내민 욕실용 슬리퍼를 신고 서서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꿈속에 붙들려 있어야만 하는 걸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찾아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벌써부터 꿈 밖에선 언제까지 잠만 잘 거냐고 야단인데

남겨진 구두 주인들의 식사는 끝없이 이어지고

 

앉아서 기다리시라는 주인의 말을 한사코 밀쳐두고서

나는 왜 이렇게 붙들려 신발장을 지키고 있는지

나는 왜 신발 지키는 사람의 자세로 누워 있는지

나는 언제부터 머리는 꿈에 두고 발은 이렇게 한데 두고 있는지

- 이현승,『대답이고 부탁인 말』(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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