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혜의샘터

목민심서 애민(愛民) 제6조 구재(救災)〔5〕

작성자씨알|작성시간26.06.09|조회수19 목록 댓글 0

목민심서 애민(愛民) 제6조 구재(救災)

5. 그 재해(災害)가 이미 사라지고 나면 다독거리고 편안히 모여 살게 하여야 할 것이니, 이 또한 수령의 인정(仁政)인 것이다.

정백자(程伯子)(주1)가 호현 주부(鄠縣主簿)로 있을 적에 부(府)의 경내에 수해가 있어서 갑자기 역사(役事)를 일으키니, 여러 고을이 모두 당황하였으나, 선생의 관내만은 음식이나 숙소가 편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때 한더위여서 설사가 크게 유행하여 사망자가 매우 많았지만, 유독 호인(鄠人)만은 죽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역사를 다스리되 사람을 수고롭히지 않고도 일이 이루어졌다. 선생은 항상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요역을 감독하는 것은 곧 군대를 다스리는 법이다.”

하였다.

옛날에 교리(校理) 김희채(金熙采)(주2)가 장련 현감(長連縣監)이 되었는데, 때마침 홍수로 구월산(九月山)이 무너져 매몰된 것이 30리나 되어서 사람이 다치고 곡식밭이 손상된 것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공이 밖에 나와 보자, 백성들은 그를 맞아 통곡하므로 공도 말에서 내려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통곡하였다. 백성들은 감격하고 기뻐서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였다. 울음이 멎자 백성들에게 소원을 묻고는 곧 산을 내려와 순영(巡營)으로 달려가서 - 읍에 들어가지 않았다. - 무릇 백성들의 소원을 다 중앙에 보고하기를 요구하여 종일토록 다투니, 감사는 이를 괴롭게 여겨서,

“공은 어질기만 하지 일에는 어둡다.”

하였다. 장계(狀啓)를 올려 유능한 자와 바꿔 줄 것을 청하니, 전조(銓曹)는 안협 현감(安峽縣監)과 바꾸도록 허락하였다. 공이 벼슬을 버리고 떠나려고 할 적에 백성들이 길을 막고 말굴레를 잡은 채 열 겹이나 둘러 싸니, 공은 할 수 없이 촌가에서 10여 일을 묵다가, 백성들이 조금 방비가 해이해지자 밤에 몰래 빠져나와 도망해 돌아갔다. 백성들은 경계에 모여서 어린애가 어미를 잃은 듯이 통곡하였다. 이것을 보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인(仁)에 있는 것이지 정사〔政〕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판서 이서구(李書九)(주3)가 평양 부윤(平壤府尹)이 되었는데 - 곧 감사(監司)다. - 그때 평양에 불이 나서 공사(公私)의 집들이 거의 다 타버렸다. 부윤의 조치와 계획이 방도가 있고 집을 짓는 데 법도가 있어서 관청 건물 수십 구(區)와 민가 만여 호가 일시에 새롭게 되고 백성들도 망하여 흩어지는 자가 없었으므로, 지금까지도 그의 은혜를 사모하고 있다.

[역주]

[주-D001] 정백자(程伯子) : 송(宋)나라 때 도학자인 정호(程顥)를 가리킨다. 정호와 정이(程頤) 형제를 모두 정자(程子)라 칭하기 때문에 형인 정호를 ‘백자(伯子)’라 칭한 듯하다. 자는 백순(伯淳), 호는 명도(明道), 시호는 순(純)이다. 진종(眞宗) 때에 진성령(晉城令)이 되어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뒤에 하남백(河南伯)에 봉해지고 공묘(孔廟)에 종사(從祀)되었다. 《宋史 卷427 道學列傳 程顥》

[주-D002] 김희채(金熙采) : 1744~? 조선 문신. 자는 혜중(惠仲),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초계 문신(抄啓文臣)에 뽑혔고, 여러 지방관을 거친 뒤에 수찬(修撰)ㆍ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주-D003] 이서구(李書九) : 1754~1825. 조선 순조 때의 문신.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척재(惕齋), 시호는 문간(文簡),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여러 지방관을 비롯, 호조 판서(戶曹判書)ㆍ대제학(大提學) 등을 역임하고, 우의정(右議政)에 이르렀다. 박제가(朴齊家)ㆍ이덕무(李德懋)ㆍ유득공(柳得恭)과 함께 사가(四家)로 일컬어졌으며, 저서에는 《강산집(薑山集)》이 있다.

其害旣去。撫綏安集。是又民牧之仁政也。

程伯子爲鄠縣主簿。府境水害。倉卒興役。諸邑率皆狼狽。惟先生所部。飮食茇舍。無不安便。時盛暑泄利大行。死亡甚衆。獨鄠人無死者。所至治役。人不勞而事集。常謂人曰。吾之董役。乃治軍法也。

昔金校理熙來知長連縣時。大水。九月山崩。覆沒者三十里。人命殞者。禾稼傷者。至不可算。公出視百姓迎哭。公下馬。執民手同哭。百姓感悅。謂死無恨。哭定。詢民所願。卽自山下。馳往巡營。不入邑。 凡民所願。悉要狀聞。爭之終日。監司苦之。謂公仁而昧事。狀請與能者相換。銓曹許以安峽縣監相換。公將棄官歸。百姓遮道執鞚。圍之十匝。公留村家十餘日。民少懈弛備。公得乘夜脫身逃歸。百姓會哭于境上。如孩失母。由是觀之。牧民在仁。不在政也。

李判書書九爲平壤府尹 卽監司 時。平壤失火。公私廬舍。延燒殆盡。府尹措畫有方。營葺有法。官廨數十區。民家萬餘戶。一時頓新。而民無蕩析者。至今猶思其惠。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