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吏典) 6조는 1. 속리(束吏아전을 단속함) 2. 어중(御衆부하통솔) 3. 용인(用人인재임용) 4. 거현(擧賢어진사람의 천거) 5. 찰물(察物아전들의 부정이나 민간의 실정 등 물정을 살핌) 6. 고공(考功성적을 고과함)입니다. 지방 관아의 인사관리 등을 논한 것입니다.
제1조 속리(束吏아전을 단속함)에는 18개의 꼭지가 있다.
목민심서 이전(吏典) 제1조 속리(束吏)
1. 아전(衙前)을 단속하는 기본은 자기의 처신을 올바르게 하는 데 달려 있다.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잘 시행되고,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명령해도 잘 시행되지 않는다.
2. 예(禮)로써 정연하게 하고 은혜로써 대우한 다음 법으로써 단속해야 한다. 업신여기고 짓밟거나 잔악하게 부리거나 사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거나 속임수를 쓴다면 단속을 받지 않는다.
3.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성인이 이미 경계하였다. 너그럽게 하되 너무 지나쳐서 해이하지 않고, 인자하되 너무 지나쳐서 나약하지 않아야 또한 그르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4. 이끌어 주고 도와주고 가르쳐 주면 그들 또한 사람의 성품을 가졌으니 고치지 않을 리가 없다. 위엄을 먼저 베풀어서는 안 된다.
5. 타일러도 깨닫지 못하고 가르쳐도 고치지 않으며 끝내 허물을 뉘우칠 줄도 모르고 사기만을 일삼는 아주 간악한 자는 형벌로써 다스려야 한다.
6. 아주 간악한 자는 모름지기 포정사(布政司) 밖에 비를 세우고 그 이름을 새겨 영원토록 복직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7. 수령이 좋아하는 것이면 아전들은 영합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쪽이 재물을 좋아하는 줄 알면 반드시 이(利)로 유인할 것이니 한번 꾐을 받으면 그때는 그들과 함께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8. 수령의 성품이 편벽되면 아전은 그 틈을 엿보아 이내 격동시켜서 제 간계를 쓰게 되니, 그 술책에 빠지게 될 것이다.
9.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하면서 술술 응해 주는 것은 수령이 아전의 간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10. 아전들이 구걸하면 백성들은 고통스러워 한다. 그것을 금지하고 단속하여 함부로 악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11. 아전의 인원수가 적으면 한가하게 지내는 자가 적어서 백성을 침학하고 가렴하는 일이 심하지 않을 것이다.
12. 요즈음 향리들은 재상(宰相)과 결탁하고 감사(監司)와 내통하여, 위로는 관장(官長)을 가볍게 보고, 아래로는 민생을 들볶는다. 능히 이들에게 굴하지 않는 자라야 현명한 수령이다.
13. 수리(首吏)는 권한이 무거우니 치우치게 맡겨도 안 되고 자주 불러도 안 되며 죄가 있으면 반드시 처벌하여, 백성들의 의혹을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
14. 아전이 참알(參謁)할 때에는 흰 옷에 베로 만든 띠를 착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15. 아전들의 잔치 놀이는 백성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니, 엄중히 금지하고 자주 경계하여 감히 놀이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16. 이청(吏廳)에서 매질하는 일도 역시 엄금해야 한다.
17. 부임한 지 두어 달이 지나면 하리(下吏)들의 이력표(履歷表)를 책상 위에 비치한다.
18. 아전이 간사한 짓을 하는 데는 사(史)가 주모자가 되니, 아전의 간사한 짓을 막으려면 그 사를 혼내야 하고, 아전의 간사한 짓을 들추려면 그 사를 캐물어야 한다.
목민심서 이전(吏典) 제1조 속리(束吏)
1. 아전(衙前)을 단속하는 기본은 자기의 처신을 올바르게 하는 데 달려 있다.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잘 시행되고,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명령해도 잘 시행되지 않는다.
백성은 흙을 전지(田地)로 삼는데, 아전은 백성을 전지로 삼아 고혈을 짜내는 것을 경작(耕作)하는 일로, 마구 징수하는 것을 추수하는 일로 여기되, 그것이 버릇이 되어서 당연한 것으로 아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잘못이 없어야 남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리다. 수령 자신의 행동이 남을 복종시키지 못하면서, 아전을 단속하는 것만 위주로 한다면, 아무리 명령해도 반드시 시행되지 않고, 아무리 금지해도 반드시 그치지 않으며, 위엄이 반드시 떨치지 못하고 법이 반드시 확립되지 못한다. 자신은 황음(荒淫)하면서 항상, “아전의 습속이 몹시 사납다.”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 논법이다.
세속의 관원들은 매양 엄한 형벌과 혹독한 곤장을 아전 다스리는 기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자신이 청렴하지 못하고 슬기롭지 못하면서 사나운 것을 주무로 삼으니, 그 폐단이 난잡하다.
충간공(忠簡公) 조정(趙鼎)은 월(越) 지방에 있을 때 오직 아전 단속하고 백성 구휼하는 것을 주무로 하면서 매양 이렇게 말했다. “아전을 단속하지 않으면 아무리 선정(善政)을 베풀어도 잘 시행되지 않는다. 대개 해(害)를 제거한 뒤에야 이(利)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고양왕 옹(高陽王雍)이 상주 자사(相州刺史)로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수령 노릇 하는 방법은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잘 시행되기 때문에 쉽다고 하는 것이고,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명령해도 따르지 않으므로 어렵다고 한 것이다.” - 《당서(唐書)》에 보인다. -
이 문절(李文節)의 《연거록(燕居錄)》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공직(公職)에서 사(私)를 행하거나 법을 잘못 쓰면 그 속임은 이서(吏胥)에게도 통과되지 못하고, 가정에서 불법을 행하거나 부정한 물품을 받으면 그 속임은 동복(僮僕)에게도 통과되지 못한다.”
고려 때 금유(琴柔)와 옥고(玉沽) - 두 사람 이름 - 는 다 대구군(大丘郡)의 수령을 지냈다. 대구군의 아전 배설(裴泄)이란 자는 교활하고 영리하여 문부(文簿)를 마음대로 뜯어 고쳤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령들은 그를 의지해서 정사를 하였다. 배설은 만년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후 수령들을 내가 모두 거느리고 지냈는데, 금유와 옥고만은 모시고 지냈다.”
참판(參判) 유의(柳誼)는 언젠가 홍주 목사(洪州牧使)가 되었다. 홍주 아전들의 간활한 버릇은 충청도 지방에서 제일갔다. 그러나 공이 청렴과 검소로 몸을 지키고 성심으로 백성을 사랑하자 아전들이 모두 기뻐하였으며, 형벌을 쓰지 않았지만 조금도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니, 나는 이것으로 자기의 처신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아전을 단속하는 기본임을 알았다.
[주-C001] 속리(束吏) : 아전(衙前)을 단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주-D001] 조정(趙鼎) : 송(宋)나라 때 문희(聞喜) 사람으로 자는 원진(元鎭), 호는 득전거사(得全居士),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벼슬은 어사중승(御史中丞)ㆍ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ㆍ동중서문하 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등을 지냈으며, 저서에는 《충정덕문집(忠正德文集)》이 있다. 《宋史 卷360》 《宋元學案 卷45》
[주-D002] 고양왕 옹(高陽王雍) : 위 고조(魏高祖)의 아들로 자는 사목(思穆)이다. 처음 영천왕(潁川王)에 봉해졌다가 시중(侍中)ㆍ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ㆍ중호군(中護軍)ㆍ진북장군(鎭北將軍) 등을 거쳐 고양왕(高陽王)으로 고쳐 봉해지고 상주 자사(相州刺史)ㆍ기주 자사(冀州刺史) 등을 지냈다. 《魏書 卷21 高陽王雍列傳》
[주-D003] 수령 …… 것이다 : 실은 위 고조가 옹(雍)을 상주 자사로 삼고 나서 옹에게 경계하는 말이다.
[주-D004] 당서(唐書) : 《위서(魏書)》의 잘못이다.
[주-D005] 이 문절(李文節) : 중국 명나라 때의 이정기(李廷機, 1542~1616)를 말한다. 자는 이장(爾張), 호는 구아(九我)이다. 1583년(만력 11) 진사가 되었고, 관직이 예부 상서(禮部尙書) 겸 동각대학사(東閣大學士)까지 이르렀다. 1612년(만력 40) 치사한 뒤 태자태보(太子太保)에 가봉되었고, 사망 후 소보(少保)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저서에 《사서억설(四書臆說)》, 《춘추강장(春秋講章)》, 《연거록(燕居錄)》, 《이문절문집(李文節文集)》 등이 있다.
[주-D006] 유의(柳誼) : 1734~? 자는 의지(誼之),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정언(正言)ㆍ지평(持平)ㆍ병조 참판(兵曹參判)ㆍ승지를 거쳐 홍주 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으며, 뒤에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束吏之本。在於律己。其身正。不令而行。其身不正。雖令不行。
民以土爲田。吏以民爲田。剝膚槌髓。以爲耕耨。頭會箕斂。以爲刈穫。習與性成。認爲當然。不束吏而能牧民者。未之有也。然無諸己而後。非諸人者。天下之達道也。牧之所爲。不足厭服。而惟以束吏爲主。令必不行。禁必不止。威必不振。法必不立。自荒自淫。而常曰吏俗極惡者。不通之論也。
〇俗吏。每以巖刑猛棍。爲束吏之本。然不廉不慧。以猛爲主。其弊也亂。
忠簡公趙鼎在越。唯以束吏恤民爲務。每言不束吏。雖善政不能行。蓋除害。然後可以興利。
高陽王雍爲湘州刺史曰。爲牧之道。亦難亦易。其身正。不令而行。故曰是易。其身不正。雖令不從。故曰是難。出唐書。
李文節燕居錄云。在公堂。行一私。枉一法。瞞不過吏胥。在私宅。行一法。受一物。瞞不過僮僕。
高麗琴柔,玉沽 二人名。 俱知大丘郡。郡吏裵泄狡猾。而機警舞文。守令多倚以爲政。泄晚年謂人曰。前後守令。我皆率居。唯琴柔,玉沽。侍居耳。
柳參判誼牧洪州。洪州吏習之奸猾。甲於湖右。而公淸儉自持。至誠愛民。吏屬咸悅。薄鞭不用。而豪髮不犯。余以此知律己。爲束吏之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