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이전(吏典) 제1조 속리(束吏)
2. 예(禮)로써 정연하게 하고 은혜로써 대우한 다음 법으로써 단속해야 한다. 업신여기고 짓밟거나 잔악하게 부리거나 사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거나 속임수를 쓴다면 단속을 받지 않는다.
조빈(曹彬)은 아전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고, 그들이 일을 아뢸 때마다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나서 만나 보았다.
오암(娛菴) 박지경(朴知警)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 나의 선친은 수령으로 계실 때 호장(戶長)과 이방(吏房)이 죄를 지으면 먼저 그들의 직위를 갈고 나서 벌을 주었으니, 이것은 염치(廉恥)를 장려하는 방법이다.” - 야곡(冶谷)의 삼관기(三官記)에 보인다. -
초하루ㆍ보름으로 인원을 점검하는 일 외에, 뜻밖에 또는 때 없이 인원을 점검하는 것은 예(禮)가 아니다. 세속에서는 아전이 마을에 나가서 잔약한 백성을 침학(侵虐)하기 때문에 수시로 인원을 점검하여 제멋대로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하나, 아전이 나쁜 짓을 하자면 반드시 자신이 나가지 않고 자제들을 보내서도 얼마든지 백성을 침학할 수 있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장(張)○○’ ‘이(李)○○’하고 부른다면, 정령(政令)이 어지럽게 되어 도리어 위엄을 손상시킨다.
대체로 직임(職任)을 가진 자는 으레 멀리 나가지 않고, 오직 직임 없이 한가히 지내는 자가 때로 이런 폐단을 저지르니, 관아에 혹시 잡무가 있거든 그들을 불러서 시킨다. 그래서 즉시 들어오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가 마을에 나가 있음을 알 수 있으니, 곧 벌을 주되 형적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그들이 자진 단속하도록 해야 한다. 때 없이 인원을 점검하는 일은 해서는 아니 된다.
노예의 경우에는 별도로 인원을 점검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추첨해서 호명하더라도 얼마든지 경계시킬 수 있으니, 명부를 모조리 넘기면서 호명할 필요는 없다.
아전이 허리 굽히는 것은 어느 때에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요즘 중앙 관서의 이속들은 머리만 숙일 뿐, 허리는 굽히지 않는데, 향리(鄕吏)만은 왜 허리를 굽힐까? 나는 일찍이 그것을 의심했었다. 그런데 내가 남쪽 지방에 와 있게 되어서야 허리 굽히는 법은 본래 옛사람의 깊은 뜻에서 마련된 것이니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아전이란 원래 교만 방자한 인물이므로 관장(官長)도 안중에 두지 않고 사민(士民 선비와 백성)을 마구 제 마음대로 부린다. 그런데 만일 허리 굽히는 법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처신이 자신을 더욱 존대(尊大)하여 제압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억압하여 목에 새끼를 걸어 돌을 달거나 거꾸로 매달아 땅에 드리우거나 하는 것은 모두가 해괴한 짓이니, 군자는 하지 않을 일이다. 그들 중에 혹시 거만을 피우는 자가 있거든 그 죄를 따져 - 허리 굽히지 않는 죄 - 뜰에 엎드리게 했다가 잠시 후에 물러가도록 하는 것이 무방하다.
그들 중에 부모가 병을 앓거나 뜻밖의 재액(災厄)을 당한 자가 있을 적에도 수령은 또 위로하고 구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상(喪)을 당했거든 부의(賻儀)를 하고 경사가 있거든 부조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한 다음에 그들이 상관을 속이고 백성을 약탈하는 죄를 방지하고 응징한다면, 법도에 벗어나는 짓을 하는 아전이 없을 것이다.
아전들이 자벌레처럼 허리를 굽히고 개미처럼 걸음을 걸으며 마치 물 흐르듯 고분고분 응대(應對)하면, 수령은 그들을 벌레처럼 낮보고 때로는 잔재주와 얕은 꾀를 가지고 쥐락펴락 하면서, 저것들은 내 마음대로 쥐었다 놓았다 한다고만 생각하지, 저들은 마치 여관집 주인과 같아 행인을 상대하는 데 능숙하므로 진실과 거짓, 허와 실을 눈치 빠르게 아는지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뜰에 엎드려서는 시시덕거리며 몰래 비웃고 문밖에 나가서는 마냥 조소하는 줄을 모르니,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오직 지성으로 그들을 대하여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죄가 있으면 벌주고 죄가 없으면 용서하며, 언제나 정당한 도리를 따르고 권모술수를 쓰지 말아야만 그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이다.
[주-D001] 조빈(曹彬) : 송(宋)나라 때 영수(靈壽) 사람으로 자는 국화(國華)이다. 송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때 양장(良將)의 제1인자로서 큰 공을 세웠으며, 벼슬은 선휘남원사(宣徽南院使)ㆍ의성군 절도사(義成軍節度使)를 거쳐 검교태사(檢校太師)에 이르고 노국공(魯國公)에 봉해졌다. 《宋史 卷258》
[주-D002] 박지경(朴知警) : 미상이다.
[주-D003] 호장(戶長) : 향직(鄕職)의 우두머리이다. 고려 태조 때 지방에 세력을 펴고 있던 호족(豪族)들을 포섭하여 호장ㆍ부호장(副戶長)의 향직을 준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이 고려 시대에는 토호적 존재로서 상당한 세력을 가졌으나, 조선조에 와서는 중앙집권 체제의 발달로 인하여 수령(守令) 밑에 있는 아전의 격으로 떨어졌다.
[주-D004] 이방(吏房) : 지방 관아에 속한 육방(六房)의 하나로 이전(吏典)의 일을 맡아보았다.
[주-D005] 야곡(冶谷)의 삼관기(三官記) : 야곡은 효종 때 조극선(趙克善)의 호이다. 삼관기는 《야곡집(冶谷集)》에 실려 있다.
齊之以禮。接之有恩。然後束之以法。若陵轢虐使。顚倒詭遇者。不受束也。
曹彬不名下吏。每白事必冠而後見。
〇朴娛菴知警云。昔先君爲宰時。戶長吏房有罪。則先遞其任。然後罰之。此爲勵廉恥之道也。冶谷三官記。
朔望點考之外。出其不意。無時點考。非禮也。俗謂吏屬出村。侵虐小民。故無時點考。使不得任意出入。然吏之行惡。不必躬出。遣其子弟。亦足侵民。何可防也。中夜擧火。呼張喚李。政令顚倒。反損威重。凡時有職任者。例不遠出。唯無任閒居者。時有此弊。府中或有閑雜事務。召而使之。不卽入來者。知其出村。便可施罰。不露形跡。自就團束。無時點考。不可爲也。若奴隷之屬。別點亦可。然抽籤呼名。亦足以警。不必按籍而悉呼也。吏之曲腰。不知所昉。今京司諸吏。俛首而已。未嘗曲腰。鄕吏何獨然矣。余嘗疑之。及處南土。知曲腰之法。本出古人深意。不可變也。吏之爲物。驕逸放恣。眼無官長。頤指士民。若無曲腰之法。其所自處。尤益尊大。不可制也。然項索掛石。倒懸垂地。皆是駭擧。君子所不爲也。其或慢蹇者。徐數其罪。不曲腰之罪。 使伏磚上移時。命退無妨。
其有父母疾病及意外災厄。官且撫存拯救。有喪致賻。有慶助具。然後惟其上竊下攘之罪。是防是懲。則吏未有不軌者也。
〇吏蠖屈蟻行。應對如流。官俯視如蟲豸。時以小智淺術。顚倒闔闢。自以爲握之放之。惟意所欲。不知此輩。如逆旅之主。慣經行人。誠僞虛實。豁然在目。比肩伏庭。相與咥然竊笑。及其出門。譏嘲萬端。將何益矣。但當以至誠待之。知之曰知之。不知曰不知。有罪則罰之。無罪則恕之。一循常理。無用霸術。斯可以服其心矣。